213화
짝
철꾸라지의 실각.
3일, 7일도 아닌 영구 정지라는 소식이 알려지며 그 여파는 대대적으로 미친다.
─지금 보라판 제대로 ㅈ된 이유
주인 잃은 철빡이들 미쳤음
온갖 방송 돌아다니며 깽판 칠 예정
└진짜네 ㅅㅂ
└수용소였누ㅋㅋㅋㅋ
└쓰레기통
└아 씹 철꾸라지 복귀 좀
사황 중 하나였다.
원피스에서 정상전쟁에서 흰 수염이 사망하자 난리가 났듯 파프리카TV의 보라판도 마찬가지다.
세력의 균형이 변한다.
예측 못한 스노우볼이 생길 것이다.
그런 세간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일동은 선언합니다
파프리카TV의 주류는 '롤'입니다
철꾸라지를 비롯해 사고만 치는 '보라'는 꺼져 주시길 바랍니다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일동―└이왜념?
└주작 뭔데 씹덕갤 새끼들 ㅡㅡ
└인방은 우리 롤충이 접수한다
└롤갤 화력 보소ㄷㄷ
전혀 상상치도 못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어느 정도 필연이었던 부분이다.
「PC방 점유율 종합게임순위」
1. 리그 오브 레전드 AOS △1
2. 단풍잎스토리 RPG ▼1
3. 블레이드 & 소울 RPG ―
4. 피파온라인2 Sports △2
5. 디아블로3 RPG ▼1
하던 것만 한다.
주위에서 안 하면 안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이렇다 할 변화가 없던 한국 게임 업계다.
리니지, 아이온, 블앤소를 잇는 계보가 있었긴 해도 같은 게임사고 스타일도 비슷해서 변화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갑작스레 태풍이 들이닥친 것이다.
─롤이 뭐 하는 게임이냐?
진짜 개듣도 보도 못 했는데
└카오스 같은 거
글쓴이― 카오스가 뭔데
└도타 같은 거 ㅇㅇ
글쓴이― X발련ㄴ아!
약칭 '롤'이라는 게임이 단 반년만에 1위 자리를 먹는다.
한국 게이머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일단 AOS가 드문 장르였다.
카오스, 도타, 파오캐 등 마니아층이 있긴 했지만 글자 그대로 마니아층에 불과한 인지도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모른다.
게임사도 듣도 보도 못한 중소 기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건.
"형님들 걱정 마세요! 제가 탑갱 가서 탑 반드시 풀어보겠습니다!"
―가면 갱승
―모쿠자 명언 모름?
―아
―쌍벞 배달ㅋㅋㅋㅋㅋㅋㅋㅋ
BJ의 역할이 컸다는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최근 파프리카TV는 롤을 기반으로 한 게임판의 성장이 눈부시다.
『애청자 증가수」
1. 오정환 ↑1
2. 러너맨 ↑3
3. BJ러이갓 ↑17
4. cgvMax ↑7
5. 마포고 매콤주먹 ↑2
.
.
.
고고하게 1위를 지키는 오정환을 제외하면 전부 롤BJ일 정도다.
롤이 대체 무슨 게임인데?
하기는 좀 그렇고, 궁금하기는 한 게이머들이 대규모로 몰려온 결과다.
인터넷 방송의 순기능이 작동한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며, 물어볼 수도 있다.
게임의 진입 장벽을 확! 낮추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롤충 새끼들 왜 이렇게 깝침?
그래봤자 겜비 주제에
그래서 철꾸라지보다 많이 범?
└무직보다는 많이 벌겠지
└걔는 이제 나락 갔잖아
└아ㅋㅋ
└롤충들 의문의 1승
그 새바람이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완전히 다른 부류의 게임인 롤이 한국 게임 시장에 정착하는데 큰 이바지를 했다.
물론 애청자 증가수는 최근의 상승세를 의미한다.
실제 순위와는 다르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 롤판이 존나 블루 오션 같긴 하네
다 듣도 보도 못한 BJ들임
방송 들어가 보니까 정치도 모르고 존나 순진무구함
특히 러이갓? 걔 괜찮더라
└방송이 깨끗한가 보네
└러이갓 달동네에서 방송함ㅋㅋㅋㅋㅋㅋ
└그런 놈이 성공해야 하는데
└ㄹㅇ 구독자 100만 돼도 컴퓨터 10대 깔끔하게 증정할 듯
방송이라는 건 분명 흐름이 있다.
어지간히 특출나지 않는 이상 정해진 파이에서 나눠 먹기 때문이다.
롤판이 부상한다.
이를 먹는 사람은 적다.
롤BJ가 꿀이라는 답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 * *
로드 오브 레전드.
그냥 까놓고 말해서 롤은 굳이 말하기도 귀찮을 만큼 유명한 게임이다.
'다 해먹는데 뭐.'
향후 10년간은 말이다.
BJ를 하는 이상 지긋지긋하게 할 것이다.
비단 주콘텐츠가 아니더라도 가볍게 할 게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저희가 지금 이벤트를 하나 추진하고 있거든요.>
"예, 말씀하세요."
<그렇게 시큰둥하게 말씀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주셔야…….>
나에게는 이미 있다.
단풍잎스토리.
그 디렉터를 맡고 계신 대단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물론 좀 다르지.'
근본 게임이 있다고 해도 롤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RPG 자체가 꾸준하게 재미를 선사하긴 힘든 콘텐츠다.
특히 돈슨.
노가다가 베이스라면 따질 것도 없다.
단풍잎, 던파 등으로 유명한 스트리머들도 롤을 하는 이유다.
"자세한 사항을 말씀을 해주셔야 저도 고려를 해보던가 하죠."
<에이~ 보통 일이면 정환씨에게 연락을 드리겠습니까? 저희도 지금 기획 중인 사항이라. 아 물론 하는 건 확정입니다!>
하지만 그건 차후의 시선.
콘텐츠로서의 분석이 끝난 이후 말이다.
현재 시점에서는 경쟁 대상으로 비추어져도 무리가 아니다.
'장연수 씨 말고도 여럿 있지.'
단풍잎BJ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다.
롤판의 기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롤이 매칭 시스템이라 자꾸 롤비들끼리 엮이니까 어그로가 잘 끌리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걸 자제해오긴 했죠」
「청자들이 싸우니까……」
「한 번 해보는 게 어때요? 단풍잎BJ끼리」
「펑이! 펑이!」
단톡방이 따로 있다.
평소에는 잘 돌아가지 않지만 롤대세론이 조명받은 이후로 부쩍 활성화되었다.
'딱히 못 할 것도 없으니까.'
이미 해본 이력이 있기도 하다.
단풍잎BJ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이력이.
얼마 전, 시리우스 여제 레이드가 바로 그것이다.
단톡방이 만들어진 것도 그때였다.
혹시 뭔 일 생기면 단풍잎BJ끼리 으쌰으쌰하자.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원래 저희가 방학을 기준으로 이벤트룰 짜긴 하는데.>
"네."
<에……, 그러니까 개학 시즌에도 하나쯤 필요하다고 판단돼서 헤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연수씨 입장에서는 꿈에 나올까 두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양측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뭐, 롤도 하고 싶긴 한데.'
어차피 질리도록 하게 될 테고, 롤BJ가 나 혼자만도 아니니까 가끔은 대세를 거슬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
요약을 하자면 그 한 줄이다.
로드 오브 레전드의 급부상.
돈슨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경쟁 게임이 생기는 건 게임사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사태일 수밖에 없다.
"저희 단풍잎BJ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런 취지로 합동 콘텐츠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희?
―보라BJ 아니었누
―아ㅋㅋ RPG 꼴릴 땐 단풍잎BJ 맞지
―올ㅋ
그것도 대표로 말이다.
장연수씨와도 이야기가 끝났다.
모든 권한을 일임 받아 다른 단풍잎BJ들과의 공동 콘텐츠를 주선하기로 했다.
'이런 건 좋아.'
돈슨이 돈슨 소리 듣긴 해도 트렌드는 굉장히 잘 따라가는 기업이다.
BJ가 게임 업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드디어 깨닫게 됐다면 다행인 일이다.
《콘텐츠 관련한 부분은 정환씨에게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영할 테니…….》
이미 기획된 행사에 BJ를 부르는 건 급 떨어지는 연예인 부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BJ를 쓰는 방법에 대해 아직 감은 못 잡은 것 같지만, 대략적인 이해는 한 모양이다.
─롤안하면죽는병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그냥 같이 롤이나 하지 5인큐 딱 좋은데
"100개 팬가입 감사합니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롤을 안 하는 BJ분들도 계시고, 애초에 후원을 돈슨쪽에서 해주는 거라."
―자본주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 받는 거면 킹정이지
―오~ 잘 나가네
―정환이는 함?
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내가 BJ이긴 해도 콘텐츠를 짜는 것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한다.
'BJ이긴 해도 말이야.'
회사측의 생각과는 조금 많이 다를 수도 있다.
* * *
LOL의 갑작스러운 급성장.
이는 하루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2012년의 초부터 순위권에 이름을 보였고, 최근에 와서 포텐이 터졌을 뿐이다.
"이벤트를 한다고 롤의 기세가 꺾일 수 있을까요?"
"글쎄."
"요즘 막 주위에서도 롤 얘기 나오고…… 그래서."
"뭔 그런 걸 생각하고 있냐."
어느 정도 필연이었다는 이야기다.
돈슨 내부에서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통은 굳이 견제까지 안 해도 제풀에 넘어지지만.
"둘이 사겨?"
"아,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경우가 조금 특별하다.
점유율이 꾸준하게 상승세를 타고 있다.
딱 두 달 동안 전성기를 누리고 퇴장한 디아볼로3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참 귀여울 때지.'
20대 중반의 신입 직원들.
장연수는 자판기 커피를 들고 쫄래쫄래 도망가는 그들을 보며 슬며시 웃는다.
돈슨은 딱히 사내 연애가 금지돼있지 않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사생활로 핀잔을 줄 만큼 속이 좁은 사람도 아니다.
「오늘요?」
―네 ㅎㅎ
―칼퇴각이 잡혀서요
「시간은 나는데」
―진짜 맛있는 곳이에요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정확히는 그렇지 않게 됐다.
신민하와 관계가 느리지만 착실하게 발전하고 있다.
카톡을 확인한 장연수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그냥 처음부터 맡기면 불만이 생길 리가 없지.'
이벤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에 대한 기획과 예산 확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하지만, 전자의 과정을 한 사람에게 일임하게 되었다.
오정환.
여러가지 악연이 얽혀있는 BJ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은 인정하고, 단풍잎스토리 내에서 인지도도 극강을 달린다.
섭외비도 연예인에 비하면 훨씬 싸다.
이벤트를 맡기기에 최적의 인재다.
사고를 워낙 많이 쳐서 문제지.
'불평불만이 겁나 많거든.'
그와 알게 된지도 1년이 지났다. 그런 만큼 성향에 대해서도 파악했다. 사고를 치는 이유는 대부분 불만이 있어서다.
즉, 불만이 없게 만들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니가 짜봐!
어차피 통제가 불가능하니 마음껏 날뛰게 해준다.
자신들의 일거리도 줄어드는 셈이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신민하와 데이트를 할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는데.
"아, 디렉터님 여기 계셨구나……. 한참 찾았네."
"커피 좀 마시려고 왔지. 왜?"
직원 한 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찾는다.
보통은 사무실 안에서 해결하지만 마침 사뒀던 커피가 다 떨어졌다.
"오정환에게 이번 이벤트 맡기셨잖아요."
"그랬지."
"이번에 페스티벌까지 연계되는 중요한 거."
"그래, 그거."
고작해야 10분 남짓이다.
그 잠깐의 사이에 생길 급한 일?
오정환이라는 세 글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니, 설마…….'
원하는 대로 하게 해줬다.
불만이 생길 건덕지가 없다.
심지어 이벤트는 아직 시작도 안 한 시점이다. 자신들조차 뭘 하게 될지 모른다.
문제가 터질 구석이 없을 거라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오정환이 제안한 콘텐츠 무조건 해야 하는 겁니까?"
"아니, 뭐 추진 불가능한 것만 아니면 상관없지."
"추진은 가능한데."
"근데 왜?"
"이벤트 취지에 부합한지 제가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대체 뭐라 했길래?"
"그게 그……, 소개팅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X발."
사고방식이 조금 많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