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그러니까 별일은 아니다.
집 근처의 PC방.
집 자체가 대학 근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이라고요?"
"그렇다! 그렇다!"
"혹시 여기?"
그러려고 잡은 자취방이니까.
한적한 PC방을 알고 있었던 것도 단순히 기억을 되짚었을 뿐이다.
'근데 그걸 나만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는 거지.'
학교 건물쪽을 가리키자 환하게 미소 짓는다.
티끌 한 점 없이 새하얀 치아가 그만큼 하얀 피부 탓에 더욱 신비스럽다.
─깔깔만두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캠 켜 ^^ㅣ발련아
"저도 여기 다니거든요. 이거 완전 운명이네. 오늘부터 1일각인가?"
"What? What?"
―??
―누군데
―방금 전까지 X발X발 거리다가ㅋㅋㅋㅋㅋㅋㅋ
―뭐임? 외국인임?
연갈색에 가까운 더티 블론드.
그 이국적인 머리 색깔이 염색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외국인들이 은근히 많긴 해.'
요즘 같은 시대에 희한할 것도 없다.
특히 대학원은 한국어가 요구되지 않다 보니 많이 온다.
이렇듯 조우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같은 취미, 도움까지 받았다면 그냥 지나치는 건 실례다.
"그거 GMS죠?"
"맞다! 맞다! You know?"
"오~ 레벨도 높은데? 만렙?!"
―GMS가 뭐야
―프메 같은 건가
―말투 십라ㅋㅋㅋㅋㅋㅋㅋㅋ
―GMS 아시는구나! 글로벌 단풍잎 스토리의 약자로 겁.나.재.밌.습.니. 다
스타포스를 도와준 옆자리 그녀도 단풍잎을 하고 있었다. GMS는 해외에서 서비스되는 단풍잎으로 북미쪽 서버를 뜻한다.
'트럼프 보고 알았지.'
GMS에만 있는 NPC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굉장히 유명하신 아저씨가 택배를 배달한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나자 똥줄이 탄 돈슨이 자진 삭제한다.
현재는 그보다 한참 전이다.
자연스럽게 공감대부터 잡는다.
타지 생활에서 외로움을 타고 있다면 호감을 따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공대장도 하는 유저인데 혹시 레이드 관심 있으시면……."
"안다! 안다! You 고수."
"아 진짜요? 나를?"
"Of course! 나 배웠다 Your play!"
"하이파이브?"
"High five!"
―레이드 관심 있으시면ㅋㅋㅋㅋㅋㅋㅋ
―작업 멘트 레전드
―진짜 오정환을 안다고?
―그저 ^메^
킹능성이 꽤 유망해 보인다.
해외에도 단풍잎 커뮤니티가 있다.
핑크린 공략도 원래는 한중일의 합작이었을 정도다.
'내가 좀 일을 크게 벌이긴 했나 보네.'
이를 단신의 힘으로 해냈다.
신규 보스가 나오는 족족 깨버리는 한국 스트리머로 명성이 알려졌다.
내 공략을 참고했다고 한다.
고레벨 유저라면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는 퀄리티인 것도 사실이다.
가히 내 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녀가 처음부터 호의를 가지고 접근한 것도 이제 이해가 된다.
"하지만 I heard. You 여자 논다."
"아~ 그건 방송 콘텐츠. OK?"
"No! No! 내 친구 said……."
"Shut up."
정말 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쓸데없는 잡소리는 못하게 만든다.
대신 잘하는 것을 하게 한다.
『타이거투스 부츠 (+8)』☆☆☆☆☆ ☆☆☆☆☆ ☆☆☆☆☆ ☆☆☆☆☆장비분류 : 신발
물리 방어력 : +151
마법 방어력 : +160
공격력 : +27
STR : +41
DEX : +45
이동 속도 : +25
점프력 : +17
업그레이드 가능 횟수 : 0
스타포스를 돌려야 하는 아이템은 한둘이 아니다.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기분이었던 강화가 보람을 맺는다.
신발 외에도 2개 더.
내가 했으면 정말 몇 배는 쏟아부었을 것이다.
빈말이 아닌 수준으로 ㅈ박았었기 때문에 식은땀이 흐른다.
─밀가루vs고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ㄹㅇ 행운의 여신이네
"정말 글자 그대로네요."
"hehe."
이를 한 방에 해결해주었다.
물론 연속적으로 따다닥 붙은 건 처음 뿐이고 이후로는 시행착오를 반복했지만.
'충분하지.'
오히려 추억이 되었다.
그녀와 보낸 애틋한 시간은 내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여러 의미로.
―진짜 외국인임?
―보고 싶당……
―영어 발음 보면 100% 네이티브인데
―그래서 예쁘냐고 ㅡㅡ
시청자들에게도 말이다.
꿈만 같았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녀는 연구실에 돌아가야 한다며 얕은 체취만을 남기고 떠났다.
'써머라.'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다.
이성으로서 끌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짝' 콘텐츠의 인재로서 적합하지 않을지.
1. 예쁘다.
2. 많이 예쁘다.
3. 개성 있게 예쁘다.
시청자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다.
그런 최적의 인재가 어디 굴러다닐까?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 탐이 안 날 수가 없다.
─버려진외딴섬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근데 그분도 방송 해요?
물론 방송을 할 리가 없다.
지나가던 사람 붙잡고 물었는데 BJ일 확률?
1만분의 1보다 무조건 낮고, 트위치TV도 흥행하지 않던 때다.
―방송한다고?
―파프리카 5년차다 그런 여캠 못 봄
―있으면 무조건 떴지ㅋㅋㅋㅋㅋ
―캠을 안 킨 거 아님?
애시당초 BJ가 아니라는 소리다.
여자 4호로 모시는데 애로사항이 꽃핀다.
그런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뭐 어쩌라고.'
데뷔시키면 그만이다.
* * *
'짝'의 마지막 멤버.
그 신경전이 치열하게 펼쳐지던 와중이다.
커뮤니티를 뜬금없이 강타한 속보는 화제가 안될 수가 없었다.
─오정환 간만에 찐텐 같은데?
리아 만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리아는 처음부터 그랬고
└둘이 현실 남매 수준임ㅋㅋㅋ
└서양녀라 그런 거 아님?
└백마는 무적권 ㅇㅈ이지
게임판에서도, 보라판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BJ다.
그의 방송에 출연한 여성 게스트?
그 자체만으로도 이슈거리다.
그런데 단풍잎 고레벨. 심지어 보기 드문 서양 처자.
전시 상황이 아니었어도 이목이 집중되는 건 필연이다.
─북미 단풍잎 하는 사람 많음?
GMS 처음 들어보네
한국 왔으면 한국 단풍잎 하지 그냥
└그럼 1렙부터 다시 키울래?
글쓴이― 아ㅋㅋ
└인터넷 좋아서 할 만한가 보지
└아무튼 만렙은 만렙임!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이기까지 하니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안 좋을 수가 없다.
흐트러졌던 여론을 단박에 결집시킨다.
─백마는 못생길 수가 없지 않음?
나이 먹을수록 급격히 퇴물돼서 그렇지
20대 때는 DNA빨로 씹어먹고 다닐 텐데
└ㄹㅇ DNA 개깡패ㅋㅋㅋㅋ
└인종빨 확실히 있더라
└야동도 백마만 보는데 존나 기대 중
└백마 여캠 데뷔하면 큰손들 난리 나냐?
개인 방송 갤러리.
개판 오분 전이었던 이곳도 마찬가지다.
단일 민족인 한국은 서양에 대한 환상이 짙게 깔려있다.
하물며 개인 방송.
비슷한 인재가 있을 턱이 없다.
남성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큰 지지를 받을 만도 하다.
물론 긍정적인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 보니 안여돼면 어떡하냐?
일각에서는 그런 의문도 제기되긴 했지만.
[Best Comment]― 오정환이 개소리 안 하는 것만 봐도 최소 ㅆㅅㅌㅊ임 乃892└아ㅋㅋㅋ
└급이 떨어지진 않았나 보네^^
└리아좌 의문의 1패
└오정환 눈깔 하나는 믿을 만하지 ㅇㅇ
금세 불식된다.
워낙 기대가 높은 탓에 자정작용이 생각 이상이다.
그런 의문을 제기한 쪽의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 꼴이 되어버린다.
"아니, 저년은 몬데!"
"오빠들이 대처하고 있으니까 기다려봐;;"
"아 몰랑! 난 분명 하란 대로 했단 말이야."
업체들로서는 어안이 벙벙하다.
아예 상상치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강력한 경쟁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셈이다.
'뭐지? 오정환 숙제 받았나?'
'숙제인지 우연인진 몰라도 그냥은 못 내줘.'
차곡차곡 올려가던 단풍잎 레벨과 여론의 지지가 물거품이 되기 직전이다.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닌데 말이다.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그만큼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자리다.
이를 되찾기 위해, 경쟁자를 배제하기 위해 여론전을 펼친다.
─구해조팬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서양 여자 성격 까탈스럽다던데ㅋㅋㅋㅋㅋ
"아 진짜? 하긴…… 나도 감당할 자신 없긴 하다."
―심지어 말도 안 통함ㅋㅋㅋㅋ
―글킨 하네
―내 친구가 그러던데 서양녀 성격 쓰레기래!
―여적여 난리 났누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짝'은 오정환의 개인 콘텐츠가 아니다.
돈슨도 돈슨이지만 함께 참여하기로 한 BJ가 펑이조, 구해조, 네글자 등 많다.
만약 그들이 반대한다면?
제아무리 오정환이라도 별 수 없다.
몇몇 BJ들의 생각을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유도한다.
<아앙~ 여기 너무 분위기 무서워용.>
<원래 이 렙때는 골렘 잡는 게 제일 효율이 좋거든요.>
<무섭단 말이에요!>
<헤헤…….>
―달달하누
―좀 더 밝은 사냥터로 가죠
―둘이 잘 어울린다
―단풍잎이 무서운 건 뭐 아스퍼거임?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노골적인 방법까지 사용해서 말이다.
단풍잎스토리를 매개체로 남자BJ들에게 접근하여 친분을 쌓는다.
그 목적.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 챈다.
그래봤자 고추로 생각할 나이라서 문제지.
'와 존나 귀엽다 진짜.'
'이런 기회 아니면 말이나 섞어 보겠냐.'
평소에는 말도 걸기 황송한 여캠이다.
게임 하나 덕분에 인연이 생겼고, 달달한 분위기까지 조성되자 정신 못 차린다.
―진짜요?
「저도 참여하고 싶죠」
「근데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ㅠㅠ」
―제가 뭐 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잘 말해볼게요!
대놓고 카톡까지 주고받는다.
사적인 관계까지 성립되자 알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내가 별야씨 넣어주면 짝에서도 나 뽑아주겠지?'
남자BJ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돌리는 작업은 손쉽게 진행된다.
그와 동시에 커뮤니티에서도 여론이 반전되고 있다.
─오정환이 제정신이면 백마 안 뽑겠지
처음부터 BJ라고 공언을 해놓고
이제 와서 ㅈ 꼴리는 데로 하면 여론 뒤집어지는 거 볼 만하겠누ㅋㅋ└왜 뒤집어짐?
└불공정하니까
└이 새끼 초심 잃었는지 검증할 기회임
└갤 무섭네 ㄷㄷ
여러 업체들의 이해 관계가 일치한다.
일단 저 굴러온 돌을 빼내야 들어갈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성난 여론.
그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BJ의 입장에서 민감하다.
오정환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을 텐데.
공지― 『PC방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습니다』
정면 돌파를 선언한다.
* * *
세간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다.
'짝'의 마지막 여성 멤버 자리를 두고 일어난 혈투가 말이다.
'대체 왜 그러는진 모르겠는데.'
딱히 별일은 아니다.
애초에 보라판이 얽힌 시점에서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더 이상하다.
─보라고인물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꿀잼이긴 한데 민심 ㅈ될 듯ㅋㅋ
이미 전조가 보이고 있다. 후원 메세지는 빙산의 일각.
채팅창은 어그로가 북적이고, 아마 커뮤니티 상황도.
'뒤집어졌겠지.'
반발 여론이 생긴다. 만렙이고 나발이고 일반인 아니냐?
아직 내가 이렇다 할 오피셜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성화다.
보라판에서는 드물지도 않다.
오히려 이 정도는 애교인 수준이다.
이러한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 내가 아니다.
─우리집강아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백마라고 너무 노골적으로 사심 챙기는 거 아님?
"이런 말하기 좀 미안한데 서양 여자들이 사실 이성적으로 매력적이진 않아요. 아무래도 미의 기준이 달라서."
―왜 미안함?
―감사한 거 아님?
―아ㅋㅋ 관심 꺼줘서 감사하자너~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그럼에도 무리한 스케줄을 강행하는 이유.
알기 때문이다.
그 보편적인 미의 기준을 아득히 상회할 수 있다면.
"어?"
"오……."
"누구야? 외국 연예인?"
"모델이겠지!"
채팅창으로 올라올 반응이 귀로 먼저 들려온다.
약속을 잡은 당사자로서 썩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 거지.'
대형 화제를 잠재울 수 있는 건 맞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