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한미 동맹
서양녀.
백마라는 속어를 쓰기도 한다.
비하적 표현임을 떠나서 남자들의 환상을 가장 잘 가리키는 단어다.
'엘프라는 말도 많이 쓰고.'
전설의 종족. 현실에 있지 않을 법한 아름다움을 지녔을 거라고 상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일은 없다.
사진 보면 엄청 예쁜데?
사진은 어디까지나 사진이다. 동서양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소리를 괜히 한 게 아니다.
'그냥 대놓고 연예인 보면 알잖아.'
한국에서 뜬 백인 남자는 셀 수도 없이 많지만, 백인 여자는 한 손에 꼽아도 널널한 수준이다.
예쁜 백인 여자가 한국에 적어서라고 보기에는 모델을 포함해 족히 수천은 된다.
홈쇼핑 속옷 광고만 봐도 한 트럭이다.
잠자코 보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질린다.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양물만봄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와 엘프녀가 실존했다니 ㄷㄷ
"1004개 감사합니다. 아, 이게 인터넷 화폐에요."
"쌌다! 쌌다! 별풍선. I know!"
"……."
―쌌다!
―누가 저거 가르침ㅋㅋㅋㅋㅋㅋㅋ
―별풍선을 안다고?
―눈나 나 쥬지가 이상해……
분명 예쁜데 무언가 이질적이다.
편안한 느낌이 중요시되는 방송 무대에 맞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야동도 서양물만 보다 보면 가끔 현탐 오잖아.'
물론 MLB를 말하는 것이다.
류현진이 미국에서도 진라면을 끓여 먹고 있는지 궁금함이 사무칠 때가 있다.
"쌌다 No. 감사합니다."
"캄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그래서 방송 전에 한 번 만났다.
거리낄 것도 없는 게 넓은 의미에서 선후배 사이다.
―써머
「(궁금해 하는 이모티콘. jpg)」
―잠깐 만날 수 있어요?
「(끄덕이는 이모티콘. jpg)」
서양 여자.
아무리 예뻐도 친숙하지가 않다.
그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모종의 방법을 취했다.
'별 건 아니고.'
한국식 메이크업.
동남아시아는 물론, 일본·중국을 포함한 동양권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 화장법이다.
국뽕 거르고 존나 사기적이기 때문이다.
거의 성형한 것이나 다름없이 변신시킨다.
그런 치트키를 본판이 되는 서양인이 받는다면?
"시청자들에게 인사해주세요."
"Hi!"
"한국말로 해주세요."
"안뇽!"
―안뇽ㅋㅋㅋㅋㅋㅋ
―외모랑 갭이ㅋㅋㅋㅋ
―한국어 누구한테 배운 거지?
―남친한테 침대에서 배웠겠지 크~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별 차이는 없다.
서양의 이목구비는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라 화장을 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신 부드러워지는 건 있지.'
서양식 화장은 그런 자기 주장을 더욱 강조한다.
동양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날이 서있어서 무서울 정도다.
한국식 화장은 네츄럴한 느낌에 초점을 둔다.
좀 까놓고 말하면 포토샵의 현실 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밥2000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진짜 DNA가 다르네
─제비꽃2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센세 ㅠㅠ
─커피우유신화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존함 좀요!
.
.
.
써머의 얼굴을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방향으로 가다듬었다. 상상 속 엘프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살린 채 말이다.
'쉽진 않았지.'
아무래도 한국인과는 다르다.
방향성을 알고 있어도, 실제 작업을 행하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다행히 잘 되었다.
예쁜 얼굴 만지는 게 자신 있기도 하다.
본판이 좋을수록 작업하는 입장에서도 흥이 난다.
"이름이 써머에요 써머. 예, 그 써머 맞아요."
"맞다! 맞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잖아요?"
친숙해져야 한다.
이 말은 단순히 외견 조금 치장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매력적인 외모가 친해지는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결국 마음이 안 맞으면 오래 못 가는 게 인간 관계야.'
방송도 마찬가지다.
문화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두텁다.
이 벽을 허물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첫 단계다.
"써머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나? Me?"
"여름입니다. 당신을 여름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Sure! Sure! Why not"
―나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맞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름이 진짜 써머임?
―봄이과네
봄이도 처음부터 데뷔시킨 게 아니다.
시청자들이 익숙해질 수 있는 과정을 거쳤고, 이는 한국인이 아닌 그녀에게 더욱 중요하다.
'외국인들이 괜히 김치 맛있어요, 지성팍 알아요, I love BTS 하겠어?'
공감대라는 건 중요하다.
그냥 외국인과,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은 단일 민족 사회인 한국인들에게 와 닿는 느낌이 다르다.
흔히 국뽕이라 불리는 그것 말이다.
과하면 문제가 되지만 약간 정도는 상관이 없고, 방송 어그로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부합한다.
"푸딩 좋아해요?
"Really love it! 좋아한다! 사랑한다!"
"아~ 한국식 푸딩이 있는데 혹시 관심 있어요?"
―달달하게 가네
―이 새끼 사심 챙기는 거 봐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ㅇㅈ
―뭐 설빙 말하는 건가?
마음의 거리를 좁힌다.
시청자와 더욱 친근해진다.
같이 밥을 먹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먹방 말이야.'
동시에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사이도 개선한다.
친구 이상의 진지한 관계로 발전해나가는 징검다리다.
"기대된다 한국 푸딩!"
"블러드 푸딩."
"???"
신미양요의 복수도 살짝 겸한다.
* * *
오정환의 방송.
철꾸라지 퇴출 이후 둘째 가라면 서러운 탑급 BJ로 자리 잡았다.
「보라) 오정환. 신미양요 시즌2」_ ?36, 974명 시청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물 수밖에 없다.
3만 명이 넘어가는, 파프리카TV 전체 시청자 수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건 말이다.
─블러드 푸딩 ^^ㅣ발놈아
─선짓국 컬쳐쇼크 아님?
─일부러 엿맥이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혐한 양성 +1
.
.
.
커뮤니티에서부터 파다했기 때문이다.
요 며칠 논란이 됐고, 그로 인해 화제는 본래 조성돼야 했을 크기보다 훨씬 커졌다.
그 관심이 ―에서 +로.
방향성이 바뀌자 단순한 홍보가 된다.
이른바 바이럴 마케팅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This is red!"
"토마토 스프야 토마토."
"리얼뤼~?“
―표정 봐
―서양 봄이 입갤ㅋㅋㅋㅋㅋㅋㅋㅋ
―의심 100%
―퍼뜩 무봐라! 디진다 아이가?
이에 제대로 당한 서양 처자가 문화 충격을 느끼고 있다. 푸딩 전문점이라 알고 간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눈앞에 뒀다.
─오정환이 진짜 씹새끼인 게 ㅋㅋ
선지 (Blood Pudding)
거짓말은 안 함
└이 새끼 원래 거짓말 안 하잖아
└정직해서 더 씹새끼인 새끼
└아니 그냥 속이라고
└저게 왜 푸딩이야 야발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다.
그런 음식을 외국인, 그것도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서양 처자가 먹는다.
"벽돌? What?"
"그것이 푸딩이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Like a block. 벽돌!"
―대빵 큰 거 나왔네
―벽돌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선짓국을 외국인한테 왜 먹여 병신아!
―크아~ 침 고인다!
몇몇 업체들의 작업과, 여캠들의 견제로 모여진 어그로.
방송에 온 목적은 이미 온데간데 사라진지 오래다. 기겁할 만한 광경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다.
합!
잔뜩 벌린 입으로 작게 나눈 벽돌을 가져다 넣고 억지로 닫는다.
어린 시절 가루약을 먹던 기분이 고스란히 재연된다.
"Um……, Not bad."
"괜찮지?"
"But! 이상하다. 고기 아니다. 푸딩 아니다. 나 싫다."
어찌저찌 목에 넘겨도 씁쓸한 뒷맛이 가득 남는다.
찌푸려진 그녀의 인상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애태우던 찰나.
"그럼 내 거 먹을래?"
"Are you okay? hehe. I love 해장국!"
―오 해장국을 아네
―킹다귀 갓장국은 ㅇㅈ이지
―선짓국은 나도 못 먹어……
―거기 오정환 즙 섞인 거 아님?
다른 대안책을 찾으며 평화롭게 막을 내린다.
피로 얼룩진 신미양요가 끝나고, 21세기에 걸맞는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한다.
"나 GMS 아이디 만들었어."
"Really??"
"레벨 10."
―10렙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당하누
―아니 그럴 거면 아이디를 사지
―왜 만듬? ㅋ
식사를 하고 장소를 바꾼다.
PC방.
그들이 처음 인연을 텄던 곳으로 말이다.
시작하는 게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버의 벽이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고, 이는 쉽게 허물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댕! 댕! 댕!
그럴 수 있는 콘텐츠도 있다.
그 상징성과 평소 보지 못한 신비함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자연스럽게 잡아 끈다.
─TV는사랑을싣고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여기 뭐임? 진짜 첨 보는 맵인데
"여기가 GMS에만 있는 맵이에요. 러브랜드라고."
―러브랜드 ㅓㅜㅑ
―러브 호텔도 아니고ㅋㅋㅋㅋㅋ
―GMS에만 있음?
―결혼식장 확장판인가
해외 단풍잎들은 현지화가 되어있다.
그 나라의 특성에 맞는, 혹은 필요한 맵들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서비스한다.
미국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
맵 하나 달랑 있는 한국 서버와는 다르다.
고유 콘텐츠와 퀘스트 등 여러가지가 있어 즐길 거리가 많다.
댕! 댕! 댕!
약혼식이 끝나고 결혼식이 진행된다.
종소리가 성대하게 울리며 두 사람의 미래를 축복한다.
―게임 결혼ㅋㅋㅋㅋㅋㅋㅋㅋ
―방송 실화냐
―게임에서 결혼하는 걸 방송하네
―어라……? 어째서 눈물이
물론 실제 결혼식과는 비교가 안된다.
기껏해야 게임.
그것도 방송 콘텐츠로 해보는 장난에 불과하다.
─달달함 뭔데
─아니 단풍잎 결혼 보면서 부러워하긴 처음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백인 쿼터제 찬성 안 하고 뭐함?
─여신님 능지가 살짝 딸려 보이긴 하는데……
.
.
.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보라 시청자만 있었다면 모를까.
단풍잎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게 현실이다.
─결혼까지 바라보고 사귈 여친 구합니다
저 반에서 일짱이고 능력남입니다
결혼 티켓값 제가 댑니다
몸만 오셈ㄱㄱ
└혹시 몇살이니?
글쓴이― 15살이다
└패기 보소
└20살 모쏠인 나보다 먼저 결혼하겠누
보다 현실성이 있기도 하다.
데이트 자금도 훨씬 저렴하고,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괜찮다.
하물며 단풍잎스토리.
여성 유저가 가장 많은 게임이다.
현실과 가미되자 단풍잎 유저들로서는 몰입감이 생긴다.
─개인 방송 갤러리는 '여름'을 적극 지지합니다
물빨 하위 호환 여캠들의 억지 단풍잎이 아닌
순수 실력으로 단풍잎 만렙을 찍은 여름을 지지합니다 부디 파프리카TV에 강림하여 별풍 창녀들을 물리쳐주시길 바랍니다 ―개인 방송 갤러리 일동―
└추천 속도 실화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
└2천 돌파했네 ㄷㄷ
└이런 누추한 곳에 오겠냐?
└오늘만은 갓정환
보라쪽 콘크리트.
개인 방송 갤러리의 반응도 좋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인재이거니와 실물 자체가 워낙 호평이다.
한국 남자들의 로망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부담스럽지 않은 화장과 더불어 성격까지 좋으니 게임 끝인 수준이다.
「닭다리학살자」
20분 전。
#오정환#미국녀#선짓국
[선지에 기겁하는 여름. jpg]
미국인한테 선짓국 먹이는 거 실화냨ㅋㅋㅋㅋㅋㅋㅋ
「박해찬」
22분 전。
#오정환#썸녀#백마
[2012―10―27 오정환 방송. jpg]
BJ들 개부럽네
백마랑 데이트도 하고
「코코볼♡」
25분 전。
#오정환#죽어
[이게 예쁨?. jpg]
몸매도 별로고
비율도 이상하고
서양 여자라고 좋아하는 놈들 눈깔 사시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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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도 파다하다.
보라쪽 감성만이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이야기다.
그렇게 화제가 점점 커질수록.
"나 이딴 노가다겜 안 해! 아 몰랑!"
"뭘 잘했다고 이 년이!"
업체들의 가망성은 희박해진다.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뒤집는 일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