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당신의 짝은?
"이번 단풍잎스토리 9주년 오프라인 이벤트의 주제는 화합! 유저와의 상생을 강조하는 것으로……."
돈슨이 운영하는 수많은 게임들.
그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꼽힌다.
단풍잎스토리는 그 위상에 걸맞게 자체적인 오프라인 이벤트를 매년 진행한다.
'음, 뭐 평범하군.'
'무난한 느낌인데?'
'쓸데없이 일 벌리는 것보다야…….'
그 사전 브리핑이 진행된다.
대형 행사라는 게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다.
예산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납득을 시켜야 한다.
"상생 좋지. 근데 너무 양보하는 자세를 취하면 유저들이 이것저것 요구하게 될 텐데 대책은 있나?"
임원들을 말이다.
사람을 해부라도 할 것처럼 살벌한 눈초리를 가진 장하권 이사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는 강경파에 속한다.
회사의 이익을 매우 중요시한다.
유저와의 상생이라는 밋밋하기 그지없는 방향성이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예! 이미 과거 완료형이라 그 점은 문제가 없습니다. 얼마 전 스타포스 등 유저 친화적 업데이트로 행했고……."
유저들의 반응이 좋다.
커뮤니티에서도 칭찬일색이다.
돈슨의 돈자를 돼지 돈으로 바꿔도 될 만한 수준이다.
'역시 장연수.'
'갑자기 안 하던 짓을 왜 하나 했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생색 좀 부려보자. 그런 거구나?'
그 좋은 분위기를 이용하자.
안 좋은 의미기 아니라, 이만큼 했으니 유저들의 반응도 좋을 수밖에 없다.
다음 패치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는다.
겨울 방학을 맞아 기획한 대규모 업데이트를 성대하게 발표할 것이다.
'역시 일은 잘해.'
매끄러운 대응으로 받아 넘겼지만 자칫 임원들의 비난을 감수할 수도 있었다.
장연수에게 그런 시련을 준 이유.
같은 라인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안 나올 수가 없는 질문이고, 그렇다면 타이밍을 자신이 잡아주는 게 설명하기 더 편하다.
다른 임원들도 납득을 한다.
강경판인 자신이 물고 늘어졌다. 더 이상 시비를 가릴 게 있겠냐는 이야기다.
"그런데."
"예! 말씀하시면 됩니다."
"나는 이번 이벤트로 기대하고 있는 게 점유율의 탈환이거든. 로드 오브 레전드에 내준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
물론 반대쪽 라인도 있다.
사내 서열 2위 고동빈 전무이사는 단풍잎스토리의 점유율이 2위로 밀려나게 된 걸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이번 브리핑의 주요 쟁점이기도 하다.
경쟁 게임이 치고 올라온다!
단풍잎 뿐만 아니라 돈슨 내부적으로도 혈안이 된 사안이다.
"저희 단풍잎 부서에서도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고, 지난 디아볼로3 사태보다 훨씬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조리기구를 검사하는 취사병처럼 깐깐하기 그지없는 고동빈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술술 대답한다.
구체적인 해결 방안까지 제시하며 말이다.
"작년 말부터 꾸준하게 밀고 있는 차별성! BJ들과의 협업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나갈 방침입니다."
그 효율성만은 입증되었다.
연예인을 부르는 것과는 비교가 안되게 싸고, 효율은 그 이상을 넘보니 기똥찬 사업 아이템이다.
행사의 콘셉트인 화합과도 맞아 떨어진다.
콧대 높은 연예인과 달리 유저들의 시야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다.
문제는 부작용.
하늘에서 막 캐시가 터지기도 한다.
그 점을 알고 있지만 원래 쓰기에 따라 독도 되고 약도 되는 법이다.
'확실히 극약 처방이 필요한 건 맞지.'
'너무 무난하기만 하면 안돼~.'
'그래서 통제 가능한 카드야?'
임원진 사이에서 조성되는 불안.
장연수는 누구보다 절실히 인지하고 있고, 그 점을 각별히 신경을 써서 진행시켰다.
"BJ들의 이상 행동은 그들의 문제가 크지만, 저희들도 협업 초기 단계다 보니 서로간의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BJ들의 입장을 반영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 2위만 하지 마 2위만."
BJ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일까?
귀를 기울여 적극적으로 의견을 반영해줬으니 트러블이 생길 리가 없다.
만에 하나 생겨도 여론이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것이다.
서열 2위의 고동빈 전무 이사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임원진도 분위기가 풀어진다.
잘하고 있네.
방향성이 이토록 확실하다면 프로젝트도 믿고 맡길 만하다.
"대규모 업데이트 공개로 유저들의 반응을 끌어올리고, BJ들과 진행하는 콘텐츠로 행사를 성황 리에 마무리 짓겠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겠습니다."
"오오!!"
사실상 수긍을 받았다.
구태여 책 잡을 점이 안 보인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브리핑을 끝마쳤음에도.
"그래서 BJ들은 어떤 걸 하는 거지?"
"짝입니다."
"뭐라고?"
"짝입니다."
"뭐라고?"
"짝……, 입니다. SBS에서 하는 그 예능."
""…….""
장연수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진짜는 지금부터 보고해야 할 말도 안되는 기획안이었으니까.
'X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야 했다.
* * *
짝.
일종의 소개팅 프로그램이다.
참가한 다수의 남녀가 '애정촌'이라는 지정된 장소에서 생활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단풍잎에 애정촌은 없기 때문에 라프레 마을 촌장집에서 대신하겠습니다."
―촌장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풍잎 짝이라니
―촌장은 뭔 죄야?
―할아버지 간만에 서겠누
물론 틀을 빌려왔을 뿐이다.
같은 포맷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래 봬도 짝은 스케일이 상당히 큰 프로그램이다.
'말이 같이 사는 거지.'
살려면 집도 필요하고, 음식도 필요하고,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소가 크다 보니 촬영 인원도 엄청나다.
개인 방송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겨울을걷는다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혹시 이어지면 애프터 방송도 하나요? ㅎㅎ
"글쎄요. 제 개인 콘텐츠라면 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돈슨측에서 진행하는 공식 행사니까."
그것이 아쉬움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차피 개인 방송용으로 짠 콘텐츠가 아니고, 실전은 오프라인 행사장에서 진행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 리허설.
현장에서 얼타지 않기 위한 연습이다.
그와 동시에 인방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현재 여자들은 5채널에 있습니다."
<거기 가면 돼요?>
"아니, 씨……. 귓구멍 좀 똑바로 열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급했누
―사심 만땅이네
―여캠이잖아ㅋㅋㅋㅋㅋ
모든 걸 행사장에서 할 수는 없으니까.
리허설임과 동시에 예고편의 느낌도 겸하고 있다.
짝의 첫 단계.
남자와 여자가 각각 따로 모인다.
동성간에 가볍게 속마음을 떠보는 것이다.
"참가하신 분들 얼굴 다 한 번씩 보셨죠? 솔직히."
<뭐 당연히……. 헤헤.>
<남자 얼굴은 안 봤는데.>
<아니, 남자 얼굴을 왜 봐!>
여자들은 5채널에서, 남자들은 6채널에서 각각 따로 방송을 진행한다.
본격적인 만남에 앞서 긴장을 푸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사소한 문제는 있다.
나는 진행자임과 동시에 참가자.
캠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여자쪽은 비출 수 없지만.
─내여자라니까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여자쪽 피셜) 오정환, 네글자, 구해조, 펑이조순
"오~ 진짜요?"
<뭐? 뭐라고?>
<크으~ 2등 만족합니다.>
<펑이! 펑이!>
딱히 문제가 되진 않는다.
개인 방송이기에 오히려 가능한 연출 방식도 존재한다.
'시청자들이 돌아다닐 거 아니야.'
나는 캠이 하나밖에 없지만, 시청자들은 마음껏 옮겨 다닌다.
개인 화면이 묘미인 짝의 감성을 살릴 수 있다.
아직은 시작 단계.
갈수록 톡톡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토리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정환씨.>
"구해조님 왜요?"
<이런 말씀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건 보통 안 말하는 게 낫거든요?"
<혹시 남자 좋아하세요?>
"아니, 미쳤어요?"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들키네
―정환이 지금 미팅으로 싱글벙글 중이었는데
―구해조 눈치 없냐고ㅋㅋㅋ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이다.
이슈라는 게 꼭 긍정적인 영향만을 야기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그렇기에 더욱 불타오르는 화제가 될 수 있다.
참가하는 당사자들이 진심이라면 효과는 배가 된다.
<저 진짜 BJ 시작한 이후로 어디 제대로 놀러 간 적도 없어요.>
"네."
<사람도 못 만나고, 너무 외롭고……, 오정환님은 원래 여자에 관심 없으시고 다른 참가자분들은 그냥 나온 걸 수도 있는데 저는 진짜 마음 맞는 사람이 절실해요.>
"……."
너무 진심이면 조금 곤란할 수도 있지만.
짝이라는 게 그런 사심이 있어야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다.
'까놓고 말해서 이런 기회 아니면 여캠을 어디서 만나겠어.'
나야 뭐 보라BJ고, 여캠들과도 공감대가 있어서 그렇지.
보통은 접점이 있을 수가 없다.
워낙 폐쇄적이기도 하다.
<은근슬쩍 지만 진심인 척하네?>
<아니, 님들은 솔직히 좀…… 빻았잖아요. 여캠 감당할 자신 있어요?>
<뭐, X발?>
<펑이! 펑이!>
―개판 났눜ㅋㅋㅋㅋㅋㅋㅋ
―이거지
―ㄹㅇ 사심충들
―펑이조 개빡쳤네
참가자들이 찐텐일수록 콘텐츠도 더욱 빛을 발한다.
그 높은 호응 덕에 분위기도 살아나고 있다.
─사람냄새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여캠쪽은 그냥 지들끼리 놀고 있는데ㅋㅋㅋ
물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밑져야 본전인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썩 흥미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애들이기도 하고.'
먹을 거 많이 주면 따라갈지도 모를 우리 봄이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는 말이다.
애시당초 강제성은 없는 이벤트다.
그것도 양지쪽.
돈슨의 공식 후원을 받고 진행한다.
지나친 진흙탕 싸움이 되어서야 본말전도다.
"일단 동성간의 속마음은 원 없이 확인한 것 같거든요? 바로 10채널에 모여서 첫 인상 선택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원 없이ㅋㅋㅋㅋㅋㅋ
―몰표 나오면 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현실에서 만나면 멱살 잡을 듯
―와 진짜 짝처럼 가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또 모르는 법이다.
어찌저찌 친구가 되고, 가볍게 사귀어볼 수도 있는 것이 남녀 관계다.
'특히 민하는.'
방송 성장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참여한 남자들은 다 중견급BJ이니 방송적으로 얽히면 도움이 된다.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저도 왔어요.>
<안녕하세요~.>
―캬~ 드디어
―난 하와와방에서 보고 있었는데ㅋㅋㅋ
―목소리부터 커엽다
―여름이 어색한 거봐ㅋㅋㅋㅋㅋㅋㅋ
특히 여름에게는 말이다.
나의 권유로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 본격적인 건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을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이번 콘텐츠를 계기로 뜰 수 있다면 상당히 진지하게 장기 체류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여건은 이미 갖추어두었다.
<와 네이티브.>
<저분은 진짜 네이티브지~! 그때 그 정환님이랑 합방 하신 미국인분 맞죠?>
―너무 빨리 말하지 말래
―한국말 잘 못한다곸ㅋㅋㅋㅋㅋㅋㅋㅋ
―꼬추 새끼들 흥분했네
―백마 ㅗㅜㅑ
예쁜 여자.
서양 여자.
한국말이 다소 서툴긴 하지만 대화에 지장이 가는 수준까진 아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뜰 수 있을 만큼 BJ가 만만한 일은 아니지.'
어그로를 끄는 것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흥미는 생겨도 친숙하지 않을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는 건.
<여름님 BJ명이 뭐에요? 여름이라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대한미국년!>
<네?>
<대한미국년이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찐텐으로 당황했네
―실화입니다……
―저거 무조건 오정환 작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작은 당연히 입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