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221화 (221/846)

221화

단풍잎스토리 페스티벌.

2009년 이후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주목적은 패치 공개와 간담회라는 이름의 유저 소통이다.

"돈슨은 돈을 밝혀서 돈슨입니까?"

"아닙니다! 다음 질문~."

성황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수백 명의 참가자들에게 게임 디렉터가 직접 질문을 받는다.

기자와 관계자도 있지만, 응모에 당첨된 불특정 다수의 일반 유저들도 있다 보니.

'하, X발.'

별의별 개소리까지 다 들어야 한다.

매년 찾아오는 간담회의 자리는 고문이 따로 없다.

장연수는 벌써 두 병째의 생수를 마시며 Q&A를 받고 있다.

"돈슨은 돈을……."

"아, 안 밝힌다니까요?"

"크흠! 유저들의 돈을 너무 착취하는 방향으로 패치 방향을 잡는 게 아닌지. 매년 늘어가는 평균 캐시 소비량이 우려가 되어 드리는 질문입니다."

"……."

잼민이 유저가 아닌 기자의 질문이었다.

간담회 좌석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창피함에 얼굴이 벌게져서도 기죽지 않고 답변을 이어나간다.

"단풍잎스토리는 2003년도에 출시해 벌써 10년 가까이 유저분들의 사랑을 받아온 게임입니다."

"그래서 봐달라는 건가요?"

""키키키킥!""

"그 시간이 결코 짧지 않고! 짜장면 한 그릇도 5천원이 당연하게 된 요즘 시대에 게임 내 물가가 올라가는 것도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그리고……."

더 높은 만족도를 원하는 유저들이 생겼다.

다른 유저들은 가지지 못하는 차별성을 말이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 명품이 있는 것처럼 비싸도 성능 좋은 캐시템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럴 듯한 개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핵심이다.

당연히 예상 답변을 준비해서 가지만, 현장 상황이라는 게 임기응변을 요할 때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짬처리를 하고 싶다. 실제로 개발부 부장 시절 당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금일 간담회에 직접 나온 이유는.

"성의 있는 답변 잘 들었습니다."

"납득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이번 간담회의 질의 내용은 부디 차후에 논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키키키킥!""

"……."

걸린 바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다.

이전에 진행한 간담회의 질의 내용 중 일부가 문제시되어 큰 사건이 터진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X발.'

그 당사자다.

그래놓고 부하 직원에게 맡기기도 뭣하다.

장연수 자신으로서도 직접 하는 것이 마음에 놓인다.

"돈슨은 돈을 밝혀서 돈슨인 게 정말로 아닙니까?!"

"……정말 아닙니다."

또다시 진땀을 빼는 일이 없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같잖은 질문들도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답변하며 성공적으로 간담회를 진행해나간다.

"와 팬이에요 팬! 사인해주세요!"

"펑이! 펑이!"

그사이, 바깥에서는 다른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간담회는 페스티벌의 극히 일부로,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에 참가하지 못한다.

수천 명씩 모아 놓고 질의를 받으면 중구난방이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다.

응모에 당첨되지 못한 절대 다수의 유저들은 이벤트 부스를 돌아다닌다.

"와~ 진짜 빻남선녀네!"

"정말 대놓고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야!"

그러다 보면 이따금 마주친다.

커플 데이트.

아무리 게임 페스티벌이라고 해도, 페스티벌은 페스티벌이고 관람 목적으로 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주황 버섯 쿠션]

[핑크린 머그컵]

[단풍잎 마우스패드]

[타락 시리우스 여제 피규어]

실제로 말이다.

단풍잎스토리 굿즈를 파는 가게에는 특히 사람들이 붐빈다.

상품을 구매한 가격에 따라 보너스로 게임 쿠폰도 나눠주다 보니 단체 손님들이 많다.

"이 슬라임 이쁘다……."

"사시게요?"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제, 제가 사드릴게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뇨, 아뇨. 저 이거까지 사면 딱 5만원이라 어차피 게임 쿠폰도 얻어야 되고~."

―그냥 사주고 싶다고 말해!

―아우 진짜

―호9왔능가

―집도 사줄 기세눜ㅋㅋㅋㅋㅋㅋ

예상된 인원보다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커플이 주위의 시선을 자연스레 이끈다.

펑이조와 동피누는 데이트를 하고 있다. 둘이 눈이 맞았다기 보다는 콘텐츠의 일환이다.

개인 방송으로도 진행하던 짝의.

─펑이조×동피누 단풍잎스토어에 있다ㄱㄱㄱㄱㄱ

[동피누 뒷태짤. jpg]

직관 온 사람 오셈ㅋㅋ

└이왜진?

└몰카충 검거

└찐따 새끼 몰래 찍는 거봐

└응 리아좌 아니면 안 가

현장에서 제 2편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인상 선택에 이어 다음 차례는 복불복 데이트.

앞선 선택과 무관하게 짝 지어진 4쌍의 남녀가 데이트를 즐긴다.

행사장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말이다.

「보라) 오정환. 떡볶이녀 시즌3」_ ?17, 892명 시청

「보라) 펑이조. 펑이×동피누 데이트 하고 있읍니다」_ ?5, 643명 시청

「보라) 네글자. 네글자×리아 글자야 장가 가야지……」

_ ?4, 232명 시청.

.

.

이는 파프리카TV에 고스란히 송출된다.

시청자들은 각각 자신이 응원하는, 혹은 관심이 가는 커플을 찾아볼 수 있다.

─리아사랑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펑이는 동피누한테 비싼 인형도 사주던데

"아 진짜? 저도 뭐 사드릴까요?"

"집 사주세요!"

"……."

―사줘 ㅄ아 빨리

―집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주면 결혼 가능?

―신포각 쓰면 1억 땡길 수 있다!

네글자와 리아 커플.

외모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데이트를 하는 장본인이 부담감에 억눌려있는 것이 재미를 자아낸다.

'별풍 받은 거랑 대출 최대한 땡기면 그래도 신혼집은 마련할 수 있는데…….'

나머지 커플들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팬덤과 스토리가 있다 보니 화제가 마르기도 힘들다.

말라도 다른 쪽에서 화제가 피어난다.

불이 옮겨 붙기도 하니 화제가 끊이지 않는다.

성대하게 번지며 흥행 가도는 상승 곡선을 그린다.

"그렇다고 합니다."

"그래?"

"예, 딱히 걱정했던 사태는 없는 것 같고…… 약간 썸 같은 분위기는 있긴 한데 딱 예상했던 정도."

간신히 간담회를 끝낸 장연수에게도 보고가 들어간다.

이번 페스티벌의 총책임자라는 입장인 만큼 신경이 곤두서있다.

'기우였나?'

아무래도 지금까지 당한 게 있다.

하늘에서 막 캐시가 터지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의견을 적극 반영해줬고, BJ들도 한층 흥이 나서 협조한다.

그렇게 별일 없이 진행되던 방송이었다.

* * *

현장에서의 방송.

그렇게 별다른 느낌은 아니다.

이전에도 한 번 진행했던 그것이다.

"오빠, 오빠! 저기서 제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나요!"

"그래."

"저 더 이상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요!"

"그렇구나."

―ㅋㅋㅋㅋㅋㅋㅋ

―하도 겪어서 덤덤하네

―봄이야……

―떡볶이녀가 아니라 떡볶이 귀신이었눜ㅋㅋㅋㅋㅋㅋ

돈슨 페스티벌 당시 말이다.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이벤트 부스의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연장선이다.

그때보다 훨씬 행사 규모도 작으니 쉽다.

자연스러운 마케팅 전략이다.

"와 이거 봐봐. 우리 봄이만 하네."

"아니에요! 저 이거보다 훨씬 훨씬 커요!"

새롭게 나올 신규 직업의 아크릴 등신대가 세워져 있다.

단풍잎스토리 캐릭터 아니랄까 봐 대가리가 매우 크다.

─치즈●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 1.5배 봄이 5배는 되는 거 같네 머리 크기가ㅋㅋㅋㅋ

"아 눈깔 사시에요? 무슨 1.5배야!"

―500개 쏘고도 욕먹누ㅋㅋㅋㅋㅋ

―진정해 열혈이야

―아니 근데 ㄹㅇ인데?

―와 봄이 머리 크기 ㄷㄷ

그에 반해 매우 작다.

오른손으로 꽉 쥐면 무슨 인형 뽑기 크레인 마냥 몸까지 번쩍 들릴 기세다.

'내가 평소에 곱씹어준 보람이 있는 거지.'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아직 한참은 더 커야 하지만 장래가 유망한 것은 두말해서 야 입만 아프다.

―저기 어디임?

―신규 직업 부스네

―엘프 누님 ㅗㅜㅑ

―진짜 엘프 눈나는 팬아트 부스에 있음ㅋㅋㅋㅋㅋ

이렇듯 화제성을 조명시킨다.

관심을 느낀 시청자 일부는 행사장에 찾아오고, BJ들의 선택은 그들의 동선에 영향을 준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봄이 떡볶이 좀 사주세요……

"삼촌팬님 1004개 감사합니다! 제방에 자꾸 쏴서 부회장으로 떨어진 게 아닌지 몰라."

"저는 떡볶이를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분이 제일 좋아요!"

봄이와 데이트를 하며 지역 상권에 이바지한다.

나를 제외한 3쌍의 다른 커플들도 행사장을 거닐고 있다.

짝 콘텐츠는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이루어낸다.

분명히 홍보가 맞음에도, 시청자 입장에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혈중 떡볶이 농도가 차오르고 있어요!"

"맛있어?"

"배달 떡볶이도 맛있지만~ 포장마차에서 앉아서 먹는 것도 별미에요~."

"그래."

―맛나게도 먹네

―저 집 어디임?

―역시 먹방퀸ㄷㄷ

―사장이 장사 알았으면 바로 사진 찍을 텐데 ㄹㅇ

데이트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커플들이 어련히 잘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여하튼.'

콘텐츠는 성황리에 진행된다.

페스티벌의 흥행이라는 목표도 달성했다.

남은 것은 마무리를 짓는 것뿐이다.

"오빠 뽑아줄 거야?"

"애석하게도 오빠 말고 뽑을 사람이 없어요."

"왜 애석한데?"

"꾸웨엑……."

마무리는 정해져 있다.

최종 선택의 시간.

같은 이성을 뽑은 남녀는 맺어지고, 그렇지 못한 남녀는 커플이 되지 못한다.

'원래의 짝은 그런 치정의 매력이 있는데.'

첫인상과 데이트 과정을 비교하며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뇌피셜을 하며 보는 재미다.

당연하게도 그런 걸 행사 자리에서 하기는 무리가 있다.

"여자 1호의 선택은! 아~ 누구일까요?"

"저는요! 저는요!"

―뻔한 멘트 집어 쳐라

―오정환이겠지

―응 떡볶이 먹였어

―입떡 완료^^

4쌍의 남녀가 모인 무대 위.

마무리는 공식 방송을 통해 진행된다.

섭외된 사회자가 양측의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짝 최종 선택]

여자 1호↘   남자 1호

여자 2호 ↘  남자 2호

여자 3호  ↘ 남자 3호

여자 4호   ↘남자 4호

대형 전광판을 통해 말이다.

여자 1호가 남자 4호를 선택한다.

봄이가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 가시적으로 보인다.

'괜히 맺어지고 그러면 뒤처리 골치 아프잖아.'

남녀가 서로 같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확률 자체가 그렇게 높지 않다.

실제 짝에서도 맺어진 커플이 없는 화가 심심찮게 나온다.

애시당초 협찬 방송.

여론이 뿔나도 그럭저럭 무마시킬 수 있다.

그렇게 가벼운 흐름으로 가는 게 타당하지만.

"이제 남자분들 차례거든요? 과연 화살이 어디로 이어질지~!"

대형 전광판에 수백 명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여자들의 선택은 이미 화살표가 이어져 있다.

그것이 결실을 거둬야만 커플이 성사된다.

"아~~!"

"난 진짜 좋아했는데."

"사랑했다 신발년아……."

남자 1, 2, 3호의 선택이 어긋난다.

그들은 모르지만 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옛적에 선택이 겹치지 않도록 말을 맞춰두었다.

'그래.'

우리 봄이도 말이다.

무대 반대편에서 반갑게 손을 흔든다.

혹시 까먹을까 봐 말도 하고, 떡볶이도 먹여두었다.

맺어진 커플들은 데이트를 하고, 남은 남녀들은 뒤풀이 방송을 할 계획이다.

그렇게 예정대로 봄이와 노는 것도 분명 즐겁긴 한데.

"남자 4호분의 선택은 누구인가요?"

"저는 여자 1호를."

"와!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첫 번째 커플이 결성되겠네요!"

사회자의 호명과 함께 마이크가 쥐어진다.

사전에 정해둔 것을 말을 하는 방식으로 즉흥적인 변심이 불가능하다.

"우리 봄이!"

"네!"

"잠시 입양 좀 보내겠습니다."

"???"

애석하게도 나는 뽑고 싶은 사람이 한 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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