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짝의 애프터.
그 후일담을 가장 관심 가지고 지켜본 이는 다름이 아니다.
"운영팀에서 커뮤니티와 SNS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본 결과……."
"그거밖에 할 게 없나?"
"운영팀 인력은 땅 파서 나오는 줄 알아?!"
"……."
장연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브리핑을 하고 있다.
지난 돈슨 페스티벌의 정산.
그중에서도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한 부분이다.
'X발.'
대기업의 파벌 싸움.
반대쪽 라인에서 꼬투리를 잡았다.
애들도 모이는 자리에서 썸이라니? 소재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냐?
"그 점에 관해서도 충분히 심사숙고를 해본 게, 지난 10년간 단풍잎스토리의 평균 연령층이 올라갔습니다. 여기 그래프를 보시면."
정말 별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감정적으로 대처하면 안된다.
깔끔하게 PPT로 정리한 그래프가 임원들의 이목을 끈다.
'철두철미한 거 보소.'
'골리는 맛이 없어. 골리는 맛이.'
'짬도 없는 새끼가 대가리는 잘 굴리네.'
실제 정치와 마찬가지로 사내 정치도 옳고 그르고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면 반대파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다.
장연수의 완벽한 대처. 더 이상 초딩 게임이 아니다. 지난 시리우스 사태 이후 10대 후반과 20대 유저가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검색 키워드와 베스트 코멘트들을 보시면 선정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서양녀가 한복 입고 떡 치는 사진은 어떻게 설명한 겐가?"
"……."
그 설명이 어렵지 않다.
서양녀가 한복을 입고 열심히 떡을 치는 동영상을 보며 돈슨의 임원진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 처자가 떡을 치는 모습도 좋지만, 서양 처자가 떡을 치는 모습도 나쁘지 않구만.'
'자세가 아주 바람직해.'
'오늘은 서양물이야!'
꼬투리를 잡는 쪽도 억지 논리를 펼칠 수는 없다.
역풍을 맞으면 본말전도니까.
무엇보다 강경파인 임원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예, 장하권 이사님!"
"BJ를 섭외한 것에 대해 색안경을 낀 분들도 있겠지만, 저도 작년부터 유심히 지켜봐 왔거든요?"
사람을 해부라도 할 것처럼 살벌한 눈초리를 가진 장하권 이사가 임원진을 한 번 쭉 훑어보자 금세 이견이 쏙 들어간다.
색안경.
BJ 섭외의 부작용에 대한 일침은 접어두라는 이야기다.
"전년도보다 행사 규모가 특별히 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파급력은 20배! 물론 포털 사이트와 SNS 등에서의 검색 빈도수로 측정한 결과지만 대부분 호평이고, 실제 접속자 수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다소의 물의.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내다.
그 리스크에 비해 리턴이 한없이 달달하면 문제 삼을 것이 못 된다.
'이만하면 됐지.'
이러한 상황.
장연수도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 한두 번 당한 게 아닌데 설마 사고가 안 터질까?
그런 안이한 생각 자체를 안 했다.
더 큰일이 벌어져도 대응할 수 있도록 철꾸라지 간장 마시듯 긴장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몇 위지? 점유율 말일세."
"1위를 탈환했습니다!"
"야호!"
사내 서열 2위 고동빈 전무이사까지 동의한다.
단풍잎스토리의 점유율이 2위로 밀려나게 된 걸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것이 해결된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다.
바보처럼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에 다른 임원들도 납득한다.
'내 커리어에 빛나는 한 줄이 더 그였다고 봐도 되겠지.'
적은 비용으로 최선의 결과.
아니, 그 이상의 초대박을 냈다.
브리핑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완벽 그 이상이다.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 * *
민속촌에서의 시간.
행복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는 말처럼 금세 지나갔다.
"재밌었어?"
"재밌다! 재밌다"
"우리 다음에 와서 또 떡 칠까?"
"떡 치고 싶다 낭군!"
―미친놈아
―모른다고 막 지르네
―이거 문제 안됨?
―벌써 SNS에 퍼짐ㅋㅋㅋㅋㅋㅋ
우리 조상님들은 어렸을 때부터 떡을 쳐왔다.
할머니댁 가면 절구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어?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껴 가지고.'
오해를 하는 일부 시청자가 있다.
전체적으로 방송 분위기가 흡족하다. 하지만 계속 있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든 곳이다.
─내게와줘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데이트 끝인가요? ㅠㅠ
"아닙니다. 제가 여름이랑 떡을 너무 치다 보니 힘들어서, 정기가 다 빨려 가지고 좀 쉴 수 있는 장소에 가보려고 합니다."
―네???
―진짜 개또라인가
―기정사실 만들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뇌절을 해버리네
실제로 떡을 치는 걸 매우 좋아했다.
거의 한 시간은 그냥 떡! 떡! 떡! 떡! 떡!
'진짜 허리 빠지는 줄 알았어.'
그럴 만도 하다.
산 아랫마을에 떡 치는 퀘스트가 워낙 많다.
어디 가서 말하면 단풍잎스토리가 19금 게임이 될까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콩쥐도 치고 팥쥐도 치고 막 그런다. 햇님달님 어머님은 떡 장사하러 갔다가 실종됐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고.
특히 토끼가 떡 치는 모습이 굉장히 귀엽다.
"직접 쳐보니까 어땠어 여보?"
"사실 몰랐다."
"응?"
"토끼 야구 하는 줄 알았다."
ㅋㅋ
야구 방망이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요즘 잼린이들도 절구공이 한 번 못 들어봤을 텐데 순수 미국인 입장에서는 모를 만도 하다.
'아 또 치고 싶다.'
아무튼 원 없이 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한국 문화가 재미있고, 친숙해져서 다행이다.
다음 행선지도 본인만 원하면 충분히 칠 수 있는 곳이다.
─기억의습작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진짜 미침? 발정 남?
"아 왜 그렇게 삐딱한 시선으로 보세요."
―이 새끼 사춘기 옴?
―모텔은 X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좀……
―이건 드립이 아닌데
드립 치려고 온 곳이 아니다.
데이트 코스는 처음부터 밝혔듯 게이머 커플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다.
'물론 모든 커플들이 다 좋아하긴 하는데.'
모텔에 왔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고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글로벌적인 시선으로는 그냥 숙박 업소다.
혹시 1박 2일을 하고 싶어서?
당일치기의 단순한 힐링이다.
딱 그 정도의 의미로 알맞다.
"낭군! 낭군!"
"왜 여보?"
"It's like……, Small PC방!"
흔히 PC텔이라고 부른다.
지금 온 곳은 커플룸이지만 찾아보면 단체 투숙객을 위한 진짜 작은 PC방도 있다.
'커플들끼리 와서 게임 즐기기 딱 좋아.'
일반 PC방에도 커플석 정도는 있다.
손님들이 많다 보니 데이트를 즐기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다.
─사랑의바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니가 이겼단다
"100개 감사합니다."
―승리한 병신콘이 보이는데?
―와 여기 개좋네
―데이트 장소 ㅇㅈ
―하루 자고 가면 레전듴ㅋㅋㅋㅋㅋㅋ
물론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방송을 하다 보니 졸립고, 졸리면 자고, 자다 보면 다른 것도 하고 싶고 그럴 수 있겠지만.
'일단은.'
당연히 데이트를 즐기러 왔다.
민속촌에서의 피로도 풀며 달달한 분위기도 이어나간다.
"낭군! 낭군!"
"응?"
"나 배고프다."
"소고기국밥 먹고도?"
"떡 치는 거 힘들다."
"크흠! 그럼 어쩔 수 없지."
PC방보다 훨씬 고급지다.
그에 반해 단점도 분명 있다.
톡톡톡! 누르면 음식이 짜잔~! 하고 배달되는 서비스가 없다.
'무슨 호텔처럼 룸서비스가 있지도 않을 테고.'
모텔은 어디까지나 모텔.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따라붙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다.
─BJ우마이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낙원아구찜 맛있스므니다
"혹시 여기 근처 사시는 분들 계시면 배달되는 맛집 추천…… 아 BJ우마이님 500개 감사합니다! 바로 시켜볼게요."
―저분 먹방BJ에요!
―우마이 추천이면 ㅇㅈ이지ㅋㅋㅋㅋㅋ
―캬 아구찜
―근데 매울 텐데 먹을 수 있나?
전화 한 통이면 가볍게 시켜 먹을 수 있다.
하물며 데이트.
기왕이면 간단한 음식보다 제대로 된 식사가 어울린다.
'아구찜이 은근히 호불호 안 갈려.'
외관상으로는 무슨 양념 치킨 같다.
실제로 뼈가 있어서 생선처럼 안 느껴진다.
매운맛은 뼈해장국도 먹을 정도니 문제 없다.
딩동♩
짧은 초인종 소리와 함께 도착한다.
中자로 시킨 아구찜과 밥 2공기, 그리고 혹시 몰라 시킨 맥주와 소주.
"낭군! 낭군!"
"왜 여보?"
"이거 맛있는 거!"
"먹어봤어?"
"친구랑 먹었다."
"친구 있구나?"
"있다! 있다!!"
그래도 혹시 몰랐는데 다행히 경험이 있다고 한다.
정말 친구랑 먹었을지는 몰라도 혼밥을 하기 쉽지 않은 메뉴인 건 사실이다.
─대한미국놈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우리 여름좌 친구 없나요? ㅠㅠ
"부족하다. 나 안 좋아한다. 슬프다."
"천사처럼 예쁘다고 천사개 감사합니다! 왜?"
"모르겠다……."
―뭐긴 뭐야 그거지
―우린 알겠는데 ㅋㅋ
―여무무
―빼박 예쁘다고 따 당한 거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 고충을 나는 이해한다.
너무 예쁘면 사는 게 오히려 고달파진다. 앞으로는 나와 먹으면 해결되는 일이다.
살을 발라서 플라스틱 접시에 올려주자 맛있게 먹는다.
"맛있다! 맛있다!"
"맛있겠다."
―???
―어딜 보고 이야기하는 거죠 ㅡㅡ
―여름님 저 새끼 뺨 좀 때려주세요
―입술 부은 것 봐ㅋㅋㅋㅋㅋ
살코기에 아삭아삭한 콩나물 줄기를 싸서 해치운다.
여름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정말로.'
워낙 매콤하다.
무리하게 먹다 보니 입술과 주변 피부가 일어났다.
벌겋게 부은 입술이 매혹적이다.
"맥주 한 캔 때릴래?"
"우웅~ 싫다!"
"못 마셔?"
"우리 음주 안 한다. 안 좋다."
알코올이 빠지는 게 섭하지만 말이다.
알딸딸 해서 피부까지 달아오르면 정말 보기 좋을 텐데.
─블루베리스무디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진짜 맛있게 먹네 차세대 먹방 스타?
"200개 감사합니다. 본인이 원하면 할 수도 있겠죠."
"먹방? 모르겠다."
―지금 하고 있는 거요!
―먹으면서 방송하는 게 먹방임ㅋㅋㅋㅋ
―외국엔 먹방이 없나?
―아 너무 졸귀
외국에는 먹방이 없다.
워낙 독특한 개념이라 Mukbang이라고 한국어 발음 그대로 표기한다.
'그런 게 뭐 대수겠어.'
내가 이렇게 행복한데.
커플 PC텔.
딱 동거하는 느낌이라 공기가 굉장히 달달하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묘한 느낌.
방송 초보인 여름은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맵다! 맵다!"
"너무 매웠다?"
"맛있다! 괜찮다! 근데……."
"응?"
"땀 났다 hehe."
몸으로 느끼니 상관없다.
아무리 쌀쌀한 가을이라도 야외 활동을 했다.
벌건 대낮에 떡까지 신명나게 쳤으니 땀이 흥건하다.
'그리고 좁은 방안에 둘이 있으면.'
점점 신경이 쓰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남녀 관계다.
그리고 이곳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쏴아아아─!
PC방이면서 모텔이니까.
얇은 문 건너편에서 여름이 샤워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님들아. 응원 좀 해주세요. 저도 장가 가야죠."
―이 새끼갘ㅋㅋㅋㅋㅋㅋㅋ
―응 ㄴㅇㅁ~
―진짜 찐임?
―일단 Wls은 맞는 듯
방송적 콘텐츠를 빌미로 친해지는 것.
내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것이다.
'참아, 잔다르칸.'
그렇게 사적으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조금 도움을 받고 싶을 뿐이다. 문화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계기.
거의 하루를 꼬박 진행하는 긴긴 데이트가 끝나면 나에 대한 마음이 싹틀 것이다.
이후로도 시간을 들여 접근한다면 쇄국 정책의 철폐도 꿈이 아니다.
덜컥!
샤워실의 문이 열리고 여름이 나온다.
안타깝게도 옷을 챙겨 입고 나왔지만 비누 냄새나는 수증기만으로도 충분히 설렌다.
"쩡환!"
"낭군."
"낭군! 낭군!"
"여보 왜?"
"나 기억났다! 친구!"
갓 샤워를 마친 뽀송뽀송한 피부를 실물로 영접한다.
마치 찐한 관계가 이어져 동거를 하고 있는 연인 사이의 느낌.
"친구 말했다!"
"뭐라고?"
"보고 싶다. 쩡환 귀엽다. You!"
"……."
그런 사람이 나도 한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