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이사
오정환과 여름의 케미.
커뮤니티와 SNS 양쪽에서 숱한 화제를 만들며 큰 이목을 끌었다.
─오정환 오정환이지만 여름도 대단하네
오정환 고자밈 있긴 해도
은근히 여캠 울리고 다니는데
노골적으로 대쉬해도 턴 한 번도 안 줌ㄷㄷ
└?
└뺨 때리면 당연히 울지 ㅄ아
└급 떨어진다고 하니깤ㅋㅋㅋㅋㅋㅋㅋ
└천연인 듯?
우연한 만남으로 촉발하여, 짝이라는 대형 콘텐츠로 이어지고, 둘만의 일일 데이트로 피어올랐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던 한 유학생.
팔로워가 3만에 가까워진 중견BJ에, 어지간한 연예인에 준하는 인지도를 갖게 된 것이다.
─오정환은 사심 만땅 같던데 둘이 사귀면
여름 그냥 한 번에 대기업각 아님?
오정환이 대놓고 밀어주면 ㅅㅂ
└ㅈ 작아서 안됨
└눈꼴 시려서 그 꼴 못 보지
└네 다음 ^꿈^
└작은 놈도 안 사귀는데 없는 놈은 사귀겠냐?
둘 사이의 연애 감정 또한.
대놓고 썸을 주제로 콘텐츠를 진행했으니 당연하다.
극히 드문 오정환의 사심 표출도 팬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이를 받아치는 여름도 제법이었다.
서양 사람이니 엄청 깨가 쏟아지지 않을까?
의외로 비슷했던 보수적인 정서가 친숙하게 스며들었다.
─서양은 무조건 오픈 마인드인 줄 알았는데
묘하게 보수적이네
그것도 우리 부모님 세대급으로
└유타주면 몰몬교 많아서 그럴 만도 함
글쓴이― 그게 뭔데
└유교에 준할 정도로 보수적인 종파 있음
└The 유교는 ㅇㅈ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국 사람인데 한국 사람 같다?
진입 장벽이 낮으니 외모가 가진 어드밴티지와 희소성만이 남는다.
그렇게 흥행했던 둘의 케미다.
어디까지나 과거형.
일일 데이트 이후 언급이 없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도가 나가는 듯했던 둘의 사이는.
─열렙강아지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여름이랑 언제 또 합방해요??
"100개 감사합니다. 예정 없습니다."
―여름이는 하고 싶은 눈치던데
―이 새끼 왜 쿨찐짓?
―이러다 또 풀발함
―풀발 7cm이라 까인 듯ㅋ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지지부진이 아닌 정지 상태가 돼버렸다.
그런 일이 있었나? 수준으로 돌아가며 서먹서먹해진 남남.
둘의 사이가 좁혀진 건 오정환의 대쉬가 시발점이었다. 그게 없어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껄쩍대다 갑자기?
그 이유에 대해 커뮤니티에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오간다.
─둘이 그냥 비즈니스 아님?
보라BJ 새끼들 원래 지인 소개 많이 해주잖아
└여름도 지인이라고 밝히긴 했지ㅇㅇ
└그건 아님
└그랬으면 뜬금없이 파탄 날 이유가 없지 ㅄ아
└방송 끝나고 싸운 거 같은데
개인 방송 갤러리에서는 흔한 일이다.
화젯거리가 없어도 만들어내는 곳인데, 대형 떡밥이 던져졌으니 가만히 있기엔 좀이 쑤시다.
─리아좌 '그 사건' 시즌2 같은데?
존나 대쉬하는데 안 넘어오니까
지 혼자 식고
엿 먹이려고 계획 짠 거지 ㄹㅇ
└그 사건이 뭔데?
└설명 X발아!
└요즘 애들은 그 사건 모르지
└나도 그 사건 시즌2라고 본다ㅋㅋㅋ
심기를 건드렸다!
급이 떨어졌다!
껄떡대다 선 그였다 기타 등등.
결과를 정해 놓고 짜맞추니 온갖 추측이 다 나온다.
그렇게 쏟아지는 뇌피셜 사이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건.
─방종각 잡기 전부터 심상찮다고 느끼긴 했음
[ㅈ정환 정색하는 짤. jpg]
여름이 자기 친구 이야기 꺼낼 때ㅇㅇ
딱 그 표정 나오더라
└??? : 여자가 귀찮다
└들린다 들려……
└왜 들리누
└뭐지? 혹시 흑역사 들켰나?
당일 방송의 마무리.
그 이전까지는 정말이지 달달했다.
시청자들이 오정환의 달라진 행보를 주시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형광등을 꺼버린 방안처럼 갑작스레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 원인이라 보이는 장면에 대한 해석이 날이 갈수록 깊어진다.
─인증有) 여름좌 학교 알아냈다
[오정환, 여름 처음 만난 PC방. jpg]
[한국대 대학로 근처 PC방. jpg]
이 근처에 대학교 한국대 하나밖에 없음ㅇㅇ
└오 좋은데 다니네
글쓴이― 원래 외국 유학생들은 껌으로 오긴 함
└감안해도 ㅆㅅㅌㅊ 아님?
└아니 그럼 오정환도 한국대라는 건데
그 정도로 멈추는 커뮤니티가 아니다.
보라BJ들이 항상 예의주시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은 이따금 안 좋은 방향으로 터진다.
집단 지성.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정보의 분석력이 달라진다.
사실상 시간 문제였던 일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면 위로 드러난다.
─개추요청) 오정환집 찾았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갠붕이 오정환집 찾음. jpg]
가끔 야방할 때 긴가민가 했는데
우리집 근처였눜ㅋㅋㅋㅋㅋ
└대학생이라 근처에 자취하나 보네
└진짜 한국대생인가? ㄷㄷ
└지금은 휴학?
└철꾸라지는 똥푸산 대학교인데 이 새끼는 왜 가방끈 기누
유명인의 신상을 턴다.
그다지 드문 종류의 화제도 아니다.
오정환이 워낙 철두철미하다 보니 그 진척이 늦었다.
하지만 몇 사람 건너면 지인이 되는 좁은 세상에서 언제까지 가릴 수는 없다.
근 1년, 파프리카TV의 중심이 되었던 그이기에 더더욱이다.
─사고 치고 자퇴했나 보네 ㅉㅉ [7] +12
─학력 위조 스멜 안 나냐? [3]
─그래서 여름좌 어쩔 건데 ㅡㅡ [5] +1
─오정환 이 새끼 또 빌드업 짜는 거라고 ㅄ들앜ㅋㅋㅋㅋㅋㅋㅋㅋ [2] +2.
.
.
게시판의 화제는 계속 불탄다.
개중에는 단순히 호기심이 많은 유저도 있지만, 정말 악의적으로 해코지를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악의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무심코 던진 돌에 맞아 죽을 수가 있다.
살고 있는 곳을 누군가가 지켜본다는 것만큼 소름 끼치는 일은 없다.
"오정환이 사는 곳을 알아냈다고? 대체 어디서?!"
"갠방갤 수사대입니다!"
"……."
특히 보라판의 업체들.
오정환과 연을 만들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금전이나 미끼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차하면 강압적인 수단도 서슴지 않는다.
협박 혹은 사생활 침해.
리스크를 지고도 남는 장사라 생각될 만큼 최근 오정환의 기세는 대단하다.
그렇기에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다.
공지― 『휴방』
합니다
짤막한 오피셜 하나가 화제를 종결시킨다.
* * *
상당히 오래 살았다.
8평 남짓한 작은 원룸은 10년 가까이 나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정말로.'
회귀 전후를 합치면 그 정도 된다.
익숙하기도 하고, 입지도 괜찮고, 방 자체가 상당히 꿀매물이다.
애초에 이사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찮고 번거롭다.
그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뤄왔지만 슬슬 때가 됐다.
딩동―♪
툭! 툭!
초인종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확신하건데 절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것이다.
'여기 올 남자는 택배 아저씨밖에 없지.'
그마저도 문앞에 놔두고 조용히 가신다.
문을 두들긴 정체 불명의 남자가 누구인지는 대략 추측이 간다.
─오정환집 가서 만나면 추천글 올려주냐?
ㄹㅇ?
함 해?
└ㄱㄱ
└니 인생인데 뭐
└각도기 조심해
글쓴이― 그냥 만나고만 올 건데 뭐ㅋㅋㅋㅋㅋ
개인 방송 갤러리.
이런 류의 글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로 올라와 있다.
팬을 만나는 게 힘든 것도 아니고, 충분히 해줄 수 있는 것이지만.
'집에 찾아오는 건 이야기가 다르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언젠가 터질 만한 사고였다.
딱히 누군가를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 해결법이 매우 간단하기도 하다.
「오빠가 오라면 당연히 가죠♡」
「와」
「거기 비쌀 텐데……」
「저는 학식이라 생각만 할게요ㅎㅎ」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다.
파프리카TV의 보라BJ들은 일반적으로 모여 산다.
'철와대 같은 게 괜히 생긴 말이 아니야.'
한 대기업BJ를 중심으로 뭉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의 딱 반대로 가까이 살면 유대 관계가 쉽게 형성된다.
보라판 자체가 혼자서는 콘텐츠 진행에 무리가 있다.
그런데 가까이에 BJ에 있네?
자연스럽게 팔이 안으로 굽는다.
―오빠가 호명 하면 와
―갑자기 떼거지로 이사 하면 잘도 의심 안 받겠다
「오빠 고자 이미지라 괜춘」
「아 그거 개웃김ㅋㅋㅋ」
「ㅎㅎ」
마찬가지로 나도 슬슬 권위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 말이 철꾸라지 같은 쓰레기가 되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정말 고인물은 썩기가 쉬워.'
BJ세계.
그 소속 인원들이 전부 사이코패스만 모였을 리가 없다. 하나같이 동화가 되는 것은 이러한 뒷사정이 받침돼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최소한 멀찍이 떨어져 살아야 영향이라도 덜 받지.
가까이서 모여 살고, 틈만 나면 같이 노는데 당연히 섞인다.
내가 윗물이 되어야 한다.
나라고 착한 놈은 아니지만, 애초에 그럴 수도 없는 세계지만, 선이라는 이름의 기준점 정도는 충분히 잡아줄 수 있다.
"여보세요?"
<나야.>
"네, 누나. 왜요?"
단톡방은 나의 영향력이 닿는, 크루에 속하게 될 인원들이 모여있다.
리아, 민하, 하은 등.
같이 합방은 하지 않더라도 안면을 트기 위함이다.
그중에는 쥬아도 있다.
아무래도 연장자. 흔치 않은 커리어. 그로 인해 아직 섞여들지 못하고 있지만.
<나도 이사 가려고.>
"벌써요?"
<나야 뭐 그렇게 어그로도 안 끌리고, 계속 업체쪽에 살기도 좀 그렇고.>
"음~ 그러세요. 집 같이 볼래요?"
확실하게 내 사람이다.
몸을 섞어서, 히토미의 특정 망가 마냥 쥬지로 굴복시켜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물론 몸정이라는 게 있긴 해도 그것이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진 않는다.
진짜는 인간 대 인간의 인연이다.
<근데 너 돈 있어? 거기 비쌀 텐데.>
"그렇긴 하죠."
<내가 좀……, 해줄까?>
"돈 얘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에요."
<괜찮아. 나 어차피 쓸 데도 없고.>
화류계쪽 사람들은 특히 그런 게 있다.
기둥서방이라던지 케케묵은 이야기가 실존하는 이유다.
'내가 쥬지서방이라는 게 아니라.'
마음을 의지하고 싶은 상대.
가장 손쉬운 것이 남자일 뿐이다.
그조차 하지 못하던 쥬아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뭐. 얼마나 있으신데요?"
<한 20억 되나?>
"크흠!"
<좋아 죽겠다?>
"아니, 그 아무래도 다른 데서 빌리면 이자가 빡세니까."
BJ라는 직업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다.
카드를 만들거나 돈을 당겨야 할 때면 싫어도 체감하게 돼있다.
'안 해줘.'
진짜 억대로 버는 초인기BJ도 예외가 아니다.
BJ들이 PC방 한두 개 차리고 사업하는 이유도 사실 그거 때문이 크다.
월세로 들어갈까.
부모님께 손을 벌릴까.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도움을 준다면 고맙게 받는다.
<알겠지만 그거 깨끗한 돈은 아니니까.>
"네, 뭐."
<그거 돌려받을 때면……, 나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는 않지만 말이다.
남을 이용하고 버리는 쓰레기도 사실은 짐을 탈피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래봤자 합리화지.'
그따위 길을 결코 걷고 싶지 않다.
이번 생에서는 반드시 갈무리해낼 것이다.
그 책임감 있는 위치를 말이다.
BJ세계는 폐쇄적이다.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니 외부에서는 속사정을 절대 알 수가 없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중심이 되는 수밖에 없다.
내 크루에 속하고 싶다면 어디에 살아야 하는지. 대략적인 기준이 되는 지역을 정할 때가 온 것이다.
단칸방을 떠나 제대로 된 터전에 뿌리내린다.
'그럼 가볼까.'
그리운 판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