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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226화 (226/846)

226화

판교.

분당과 맞닿아있는 신도시다.

일반 지하철보다 2배 빠른 신분당선 등 교통 요건이 매우 좋다.

'결정적인 건 계획 도시라는 거지.'

BJ 입장에서 사생활은 굉장히 골치 아픈 부분이다.

내가 겪은 일은 거의 애교로 느껴지는 사건들이 왕왕 터진다.

집 근처에 숨어있다던가.

방송 중에 난입을 한다던가.

문앞에 이상한 메세지를 놓고 가는 등.

보편적인 기준에서 하면 안 되는 짓이다.

그렇게 딱 잘라 조심해주면 좋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원하는 대로 풀릴 리가 없다.

"안녕하세요. 집 보러 왔는데요."

"몇호시죠?"

"902호입니다. 안에 계시다고 듣고 왔거든요?"

"예, 연락해보겠습니다~."

경비원이 무뚝뚝하게 버튼을 몇 번 두들긴다.

30초 가량 지나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다는 허락을 듣는다.

'고급 아파트들은 보안이 철저하지.'

거주자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다.

들여보내도 되겠습니까?

이런 귀찮은 절차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도 있다.

특권 인식이라거나.

안 좋은 케이스도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사생활이 매우 중요한 직업도 분명 존재한다.

"올라가죠."

"야."

"응?"

"여기."

그렇기에 BJ에게는 필요하다.

사생활이 확실히 보호되는 보금자리로서 말이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아, 방문객용 엘리베이터.'

쥬아의 경우 익숙한 모양이다.

그냥 엘리베이터를 쓸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듯 2차·3차로 검증이 철저하기도 하다.

위이잉……!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담배 대신 막대 사탕으로 심심한 입을 달래고 있는 쥬아의 침소리가 유난히 귀를 간지럽힌다.

"왜 함 빨아줘?"

"딱히 쥬지가 아프진 않거든요?"

"농담이야 마."

저질스러운 섹드립과 달리 쿨하게 차려 입었다.

처음 만난 이후, 몇달 사이에 가장 이미지가 변한 건 그녀다.

'퇴폐미는 여전하지만.'

딱 달라붙는 검은색의 정장 바지가 딱 도시 여자라는 느낌이다.

머리도 검은색으로 내리고, 선글라스까지 섹시하게 얹었다.

흠이 될 수 있는 문신.

지워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일부 시청자들은 아쉬워하고 있지만 그녀의 결정을 존중한다.

"두 분이서 오신 거예요? 혹시 관계가……."

"누나입니다."

"아~! 예,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기나긴 입국 과정을 거쳐 보기로 한 집에 들어온다.

60평 크기로 상당히 크다.

혼자 살다가는 밤에 귀신 나올까 걱정될 수준으로 말이다.

'그 정도는 필요하지.'

단순히 먹고 자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도 해야 되고, 손님 대기실도 있어야 되고, 방음 처리하면 면적이 좁아지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전망 좋다."

"음."

"발코니에서 떡치면 죽여주겠는데?"

"……."

물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사적으로 활용하기에도 넓은 편이 좋다.

당연히 청소 등 귀찮은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그것도 행복한 고민이다.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동네니까 투자라고 생각해도 되고.'

적어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나중에 돈 못 갚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은 뚝 붙들어 놓아도 된다.

"근데."

"음?"

"이런데 사람 너무 들락거리면 민원 오지 않을까?"

"그도 그렇네요."

쥬아가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스카니아 고레벨들에게 민폐를 끼친 펑이조 등 BJ처럼 현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본말전도지 그럼.'

외부에서 스캔들이 안 터지고, 내부에서 터지게 될 뿐이다. 철와대처럼 시끌벅적하게 쓰기에는 아무래도 제한된다.

안 그래도 고심을 하고 있었다. 쥬아가 아니었다면 예산도 훨씬 적었을 테고 말이다.

조금 더 작은 곳을 잡고, 방송이 커지면 스튜디오를 따로 차리자.

"또 입국 심사 치러야 되네?"

"네, 뭐."

"그전에……, 함 뺄래?"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알 것 같은 노골적인 시선을 보내온다.

진홍색의 립스틱을 두껍게 바른 입술 안에서 사탕을 요리조리 굴리고 있다.

'진짜 잘하긴 하지.'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간다.

저 입술을 마음대로 쓰는 광경을 상상한다.

매력적인 유혹이지만 내가 그 정도로 파렴치하진 않다.

돈 빌리고.

몸까지 먹고.

이용해 먹는다는 느낌이잖아.

꼭 안아주는 포옹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누나 향수 바꿨어요?"

"응."

"이거 좋다. 앞으로 이거 써요."

"그럴……까?"

리아나 서은처럼 은은한타입은 아니다. 나이대에 걸맞게 코끝을 자극할 정도로 약간 세다.

이런 치정 행위.

불가피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또한 들추고 싶지 않은 사생활이다.

'그래서 판교가 좋아.'

비싼 아파트들은 기본적으로 다 보안이 좋다.

여기보다도 훨씬 빡세고, 무서운 곳들도 존재한다.

그런 곳도 있다.

입주민 외에는 아예 출입 자체가 불가능.

사설 보안 업체가 24시간 지키고, 택배나 배달도 직원이 직접 가져다준다.

물론 관리비도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게 꽉 막힌 데서 살고 싶지도 않다.

보안면에서 나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뿐이지.

"누나는 어디 살 거예요? 옆집?"

"난 그렇게 넓은데 안 살지."

"누나집부터 가봐요."

그럼에도 판교를 선택한 이유.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판교의 아파트 중 상당수는 지하 주차장이 서로 연계가 된다.

'현대 백화점 같은 곳도 그대로 갈 수 있고.'

주민들의 편의를 위함이다.

잘만 활용하면 사생활을 지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리아가 쫄래쫄래 우리집에 오면 지하 주차장→주민 엘리베이터로 지상을 안 거치는 게 가능하다.

분명히 아예 다른 아파트에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멀찍이 떨어져 살기에 스캔들이 날 우려도 없고, 그러면서 여차할 때 만나기가 너무 편하다.

"오피스텔이면 돼요?"

"보통 방에만 있어. 너처럼 다른 걸 하는 것도 아니고."

쥬아를 시작으로 하나둘 입주할 것이다.

나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수많은 BJ가 모여 사는 도시.

회귀 전, 한창 방송을 할 때는 이렇게 불렸다.

'환교신도시라.'

판교궁 등.

여러가지 이명이 있었다.

과거의 이야기지만 다시 한번 재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집에 자주 놀러 와야 돼요? 나 심심하니까."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응?"

20평 규모의 오피스텔.

지상 6층에 있으며 3층 아래에는 상가 건물이 있다.

생활도 편리하고, 마찬가지로 지하 주차장이 현대 백화점쪽과 연결됐다.

마음에 들은 듯 계약을 하기로 했다.

한 번 더 둘러보기로 하고 부동산 업자를 내려보냈다.

둘만 있게 된 집 안에서 애틋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 나쁜놈아. 일부러 이러는 거지?"

"뭐가요?"

두꺼운 정장.

하지만 몸매 라인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 손을 잡아 배 위에 올리자 가늘게 떨리는 피부의 미동도.

"꼭 말을 하게 하려고……. 하게 해줘. 지금 당장이든 어디든 좋으니까."

"……."

조금 어울려줘야 하는 모양이다.

* * *

오정환의 갑작스러운 휴방.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시계는 돌아간다.

「PC방 점유율 종합게임순위」

1. 로드 오브 레전드 AOS △1

2. 단풍잎스토리 RPG ▼1

3. 블레이드 & 소울 RPG ―

4. 피파온라인3 Sports △5

5. 디아블로3 RPG ―

단풍잎스토리의 맹추격으로 따라잡았던 순위표에 변동이 생긴다.

로드 오브 레전드가 언제 그랬냐는 듯 1위 자리로 다시 치고 올라왔다.

─요즘 롤이 ㄹㅇ 대세겜이긴 하네

오정환이 멱살 캐리로 단풍잎 1위에 올렸는데

그냥 시간 지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따라잡힘 ㄷㄷ

└내 친구들도 다 롤하더라

└일단 단풍잎이 질림

└요즘 노가다 ㅈ망겜을 누가 함ㅋㅋㅋㅋㅋㅋㅋ

└와 동접 134명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한 번 화제가 되었던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되지 않겠냐?

그럼에도 여론이 기울어지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풍잎스토리 페스티벌.

BJ들이 이루어낸 콘텐츠.

그런 대형 화제는 단풍잎스토리의 전매 특허가 아니다.

「아주부 프로스트, 3―1로 패배하며 아쉽게 ‘롤드컵’ 준우승」

「[롤드컵 결승] 아주부 프로스트, “앞으로 넘어야 할 대상 생겼다”」

「[e스포츠 칼럼] 과거의 영광? 스타에서 '짱'먹던 한국이 LOL에서는 왜?」

스케일이 다르다.

전세계 LOL프로팀들을 대상으로 열린 두 번째 롤드컵은 특히 한국 게이머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일반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로 말이다.

LOL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이머들도 이번만큼은 흥분할 수밖에 없다.

─한국 롤에선 ㅈ밥임?

─e스포츠 강국 한국이 어쩌다 이리 됐누 ㅉㅉ

─나때는 WCG에서 한국이 우승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이 말이야!

─Latte is Horse

.

.

.

그도 그럴 게 자부심이 엄청나다.

피겨 스케이팅, 수영, 역도 등 평소에 ㅈ도 관심 없는 분야도 국뽕이 차오른다 싶으면 갑자기 빨아재낀다.

이미 잘하고 있는 것?

준우승이라도 하는 순간 죽일 놈이 돼버린다.

헤엄쳐서 오라고 하고, 공항에서 계란을 던지는 등 난리도 아니다.

그런 사태가 터져버린 것이다.

─클템이 코끼리처럼 득직한 초식 정글러라고?

그래서 똥도 뿌직뿌직 싸재끼냐?

└뿌직뿌직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서

└ㄹㅇ 하루종일 정글 처먹고 한 짓이 똥 싼 것밖에 없음└쓰레기 냄새도 아니고 웬 똥 냄새가 에휴!

e스포츠 최강국의 지위.

그 당연했던 영광이 앞으로는 아닐 수 있다.

위기감이 대한민국 게이머들을 빠르게 단합시킨다.

그 결과, 한국은 대LOL 시대를 맞이한다.

골드 로저의 죽음으로 대해적시대의 막이 올랐듯, 롤드컵 준우승으로 인해 마찬가지의 기현상이 일어났다.

"어떡하죠?"

"……."

물론 이를 좌시할 리가 없다.

단풍잎스토리 사업부, 아니 돈슨 전체에 비상이 떨어졌다.

특히 장연수의 입장에서는 목이 탄다.

'오정환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갑작스러운 휴방.

생각지도 못한 여름과의 결별이 기폭제가 되었다.

그 여파는 정말이지 곤란했다. 기껏 매듭을 지어놓은 일이 다시 지펴지고 말았다.

한동안 임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쥐 죽은 듯 지내야 했다.

딱 그 정도.

별다른 사건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유야무야 덮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상황을 뒤집을 만한 변수는 역시 겨울 방학 이벤트뿐입니다."

"그렇겠지."

"또 BJ들과 협업 하는 방향으로 짜는 게 좋겠죠?"

"……."

그 장본인이 연락을 받을 생각을 안 한다.

휴방 공지를 매우 짤막하게 달랑 띄우고 잠수를 타고 있다.

하지만 사태가 사태.

그리고 BJ 한 명에게 의지해서는 모양새가 안 산다.

무엇보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오정환이라면 반드시 X랄하겠지.'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다.

퍼주는 것도 더 큰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투자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지금까지 펼친 유저 친화적 정책.

이제 슬슬 투자금을 회수할 때가 되지 않았냐? 는 압박이다.

돌아오는 겨울 방학 패치는 반드시 뽕을 뽑아야 한다.

일부 유저들이 반발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건 기획팀 관할이니까 가서 일이나 해."

"예, 알겠습니다. 그럼 보고는 여기까지인 걸로……."

성대한 흐름 하에 덮으면 된다.

신규 캐시템을 출시할 때 반발이 일어나는 걸 예상 못할 만큼 장연수는 어리석지 않다.

'오히려 기회야.'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오정환.

그런 그가 활동이 매우 뜸하다.

서둘러 패치를 진행시키면 나중에 와서 뒷북을 치긴 힘들 것이다.

일전의 페스티벌에 의한 화제는 여전히 불씨가 살아있다.

그 흐름을 이어가는 레전드급 패치!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긴다는 계략을 실행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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