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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232화 (232/846)

232화

내가 본격적으로 BJ를 시작한 건 2015년 이후.

그 이전에는 한 명의 유저로서 가볍게 게임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싹튼 오해가 있었지.'

상당히 진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한테는 말이다.

브실골 유저들은 정말 실존하는 걸까?

"보황형은 어떻게 실버가 될 수 있었어요?"

"별 거 아니여 그냥~ 배치에서 5승 5패만 해도 되는데 해보면 알겠지만 배치 막판쯤 가면 게임 수준이 올라가서 이기기 힘들긴 혀!"

―부심 보소

―부릴 만하지ㅋㅋㅋㅋㅋ

―롤린이 광광 울어욧!

―게임 수준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방송을 하지 않았다는 건, 시청자들에게 물어볼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의 난관으로 포기할 내가 아니다.

'직접 물어보고 다녔지.'

노말 게임, 혹은 부캐로.

브실골 유저들에게 고견을 구했다.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훌륭한 브실골이 될 수 있습니까?

오정환 : 수천판을 하고도 골드에 있으신 이유가 뭐예요?

롤붕이 : 니애미

그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다.

절반은 무시, 나머지 절반은 니애미.

롤에서 패드립이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건 좀 이상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같은 대답만 한다고?'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다.

음모론을 떠올리게 된 것도 자연스럽다.

당시 알파고도 핫했거니와 구글에서 ai를 개발한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형처럼 이렇게 친절한 사람 처음이에요. 저도 몇판 해봤는데 이상한 사람들 많더라고요."

"롤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여~ 너도 하다 보면 알아."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볼 이야기다.

사람인 이상 학습 능력이라는 게 있는데 수천 판을 하고도 브실골이다?

이건 빼박 사람이 아니지.

'물론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아.'

그렇다 하더라도 브실골이 전체 유저의 90%라는 건 말이 안된다.

그래서 나는 음모론을 꽤 진지하게 믿었고, 그 검증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또 모르잖아?

내가 스카이넷의 비밀을 파헤치게 될지.

터미네이터 후속작도 개봉을 앞둔 시기라 가슴이 부풀었다.

─벌써가을이구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바로 배치부터 본다고? 후회할 텐데……

"혼자 보기는 좀 쫄리는데 보황형이 있으니까."

"나만 믿어 나만! 보페 잡으면 스무스하게 캐리혀~."

―보페는 ㅇㅈ이지

―보황 신났네

―배치 구간 캐리 가능?

―시청자한테 못한다고 욕 먹다가 롤린이 만났는데 당연히 신나짘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과거의 일이다.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아직도 믿을 리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진지했고, 나의 가설이 틀리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기한 건 아니지.'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이과 졸업생으로서 반드시 증명하고 싶었다.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검증된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소환자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보람을 실천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라도, 검증이 받쳐주지 않으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르곳따먹고싶다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보황이 캐리할 테니 탑에서 파밍만ㄱㄱㄱ

"파밍이 그 미니언만 먹는 거 맞죠?"

―ㅇㅇ

―진짜 롤린이네

―그게 제일 어려운 건뎈ㅋㅋㅋㅋㅋㅋㅋ

―보황 빡치면 ㄹㅈㄷ

보황과 PC방을 왔다.

그대로 듀오 콘텐츠를 진행한다.

배치고사를 첫판부터 쭉 해보기로 했다.

'최소 7패는 해야 안정적으로 브론즈에 갈 수 있는데.'

지기만 하면 되지 뭐가 어렵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신이 재능충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기만이다.

브실골은 지고 싶다고 질 수 있는 구간이 아니다.

막말로 탈주를 해도 이긴다. 캐리해주는 사람도 많아서 버스를 못 타기도 힘들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우려하던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다.

미드 라인.

보황의 트페가 텔론을 무려 솔킬 따는데 성공한다.

"파랑이 좋겠어~! 지금 채팅창에 골카 안 뽑았냐고 하는 롤알못 검거 들어갑니다."

"파랑이 더 좋은 거예요?"

"파랑이 데미지가 더 세! 아~ 이런 거까지 설명을 해야 되네."

―보글벙글

―그냥 실수 같은뎈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땄음!

―텔론이 너무 못한다……

이렇듯 가만히만 있어도 아군이 이겨준다.

물론 안 이겨주는 판도 있지만 확률이 거의 절반에 수렴해서 문제다.

'그리고 롤은 승률 50%만 지켜도 올라가게 되잖아.'

심지어 게임사에서 특전까지 준다.

10승 10패를 한다고 0이 아니라 0.5승 정도는 남긴다.

구조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혜자 게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실골인 유저들?

미발전 스카이넷 같아 보였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틀린 가설이었고 새로이 확립한 가설은.

이쿠, 이쿠!

아군 리심이 한가로이 정글링을 돌고 있다.

무빙으로 추측하건데 칼부를 먹고 골렘쪽으로 향하는 듯 보인다.

'그럼 적 정글은 반대쪽에 있겠지.'

챌린저처럼 동선에 기교를 부리지 않을 테니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을 민 내가 미드 로밍을 간다면?

꽈아앙―!

말화이트의 궁극기를 박는다.

처음이니까 탱커 하라고 쥐어준 것이다.

텔론을 붕―! 띄우자 보황이 헐레벌떡 뛰어와 호응한다.

'하지만 원콤은 안 나고.'

텔론은 궁극기로 도망간다.

딸피에 눈이 멀어 쫓아가게 된다.

그 사이에 십중팔구는 도착하겠지.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정글러 말이다.

아모모의 점멸 붕대가 트페를 묶는다.

앞선 솔킬에서 스펠을 다 쓴 보황은 꼼짝없이 죽는다.

"나는 살았는데 미안해요 형."

"니가 미안할 게 뭐 있어."

"그래요?"

"정글 차이지 정글 차이! 이런 걸 보고 정글 차이라고 하는 거여."

"아~ 정글 차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요."

―좋은 거 가르친닼ㅋㅋㅋㅋㅋㅋ

―우정머

―이 와중에 리심 집 가고 있네

―와 정글 왔으면 다 잡았는데

얼핏 보면 정글 차이.

하지만 상황을 엄밀히 따졌을 때 애초에 저기서 싸운 것 자체가 잘못이다.

'물론 리심이 진짜 잘하는 유저였으면 내가 내려가는 걸 보고 올라왔겠지.'

맛있는 골렘을 포기하고 말이다.

실제로 턴을 빠듯하게 쓰는 천상계에서는 그렇게 한다. 아쉽게도 이곳은 브실골이고, 브실골스러운 플레이를 서로 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이걸 무의식적으로 해낸다.

나 같은 무재능은 치밀한 계산을 통해 흉내 내는 게 고작인데 다행히 성과를 냈다.

부와아앙!

촤라라라락―!

스노우볼이 굴러간다.

적 조합이 훨씬 난이도가 낮다.

개인의 센스 플레이가 요구되는 트페&리심과 달리 아모모&텔론은 그냥 궁극기만 갖다 부어도 한타가 끝난다.

"와 이걸 지네 이걸 져! 리심 저 새끼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안 하는 거 봐."

"정글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내 말이 그거라니까!"

배치고사 첫 번째 게임을 패배한다.

자칫 아군의 캐리로 끝날 뻔했던 게임을 간신히 제 궤도에 돌려놓을 수 있었다.

'브실골 현지인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연구를 한 보람이 있어 메소드 플레이가 성공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선택 받은 자만이 갈 수 있다는 브론즈의 대지에 서기 위해서는 아직 자격이 부족하다.

─소환자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번째 판.

보황을 미드에 세워주기 위해 내가 원딜을 하게 됐다.

탑과 달리 초반 영향력이 빈약해서 게임을 지는 것이 힘들다.

'솔랭에서 원딜은 이기기도 힘들지만, 지기도 힘들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해내야 한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까지 터져버린다.

[01:20] [전체] 김정균따먹고싶다 (끠즈): 원딜 탈주 실화냐 ㅡㅡ

[01:22] [전체] 곱창마스터 (말카림): 배인 리폿 좀

"꽁승판이여 꽁승판!"

"그런 것도 있어요?"

"우리가 전판에 리심 트롤 새끼 만났잖아."

"그랬죠."

"그 반대도 있다는 거지!"

"아~."

―그냥 5 대 4한다고 보면 됨

―운 너무 좋은데?

―배치에서 탈주판ㅋㅋㅋㅋㅋㅋ

―아 난 꼭 우리팀이 탈주하던데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는 없다.

브실골에서 5 대 4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탑에서 솔킬이 나온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근데 가만히 있으면 팀 차이로 이기는 걸 왜 굳이 싸우다가 죽냐고.'

숫자 차이를 이용할 줄 모른다. 오히려 방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 브실골에서 탈주판의 승률은 거의 5할에 근접한다. 브론즈에 근접할수록 이기는 판이 더 많아진다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현지인의 재능을 카피하지 않으면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천천히 혀. 천천히."

"저 일단 파밍은 잘하고 있어요."

"어차피 4 대 5야. 약속의 30분만 오면 무조건 이겨!"

이렇듯 아무것도 안 한다.

4 대 5면 초반에 무조건 이득 볼 수 있는 게 엄청 많은데.

'지금 바텀에 2 대 1로 있는데 서포터가 압박을 안 해.'

기껏해야 포탑 툭툭 치는 정도.

그 템포에 맞춰 게임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미니언 웨이브를 적 포탑에 밀어 넣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서포터가 동네 똥개 마냥 따라온다.

타랑!

탕! 탕! 탕

치비르의 부메랑이 정글몹 사이를 튕긴다.

이른바 더티 파밍이라 불리는 행위다.

'이게 진짜 함부로 하면 큰일 나거든.'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함부로 건들고 있다.

칼부와 작골.

아래쪽 정글이 텅 비었다.

위쪽 정글을 먹고 있는 정글러의 동선에 영향을 준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할 게 없는 정글러?

갱킹을 가기 마련이다.

미드 라인에 가서 불리한 교전을 열어버린다.

"와 차르반 하드 캐리야! 차르반 어떻게 하는지 봤냐?"

"못 봤어요. 저 파밍 하고 있어 가지고."

"앞으로 플래쉬 해서 궁 쓰고 자빠졌네! 전판부터 정글러들 왜 이렇게 쓰레기 같은 새끼만 만나냐?"

―앞점멸궁 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상대 끠즈인데

―재롱잔치 모르는 듯?

―이게 실버지!

불리한 교전이라는 건 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세세한 실수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스킬샷 미스는 프로게이머들도 따지기 어려운 피드백이다.

브실골이 그걸 왜 따져.

애시당초 전장 선택이 잘못됐다. 잘못하게 만들었다.

지난 생에서의 피나는 노력과 연구 결과에 힘입어 현지인들의 재능을 카피하고 있다.

'한 마디로 아군 뇌절시키는 방법이지.'

마치 카피 닌자 카카시처럼 말이다.

못하기만 해서는 브실골일 수가 없다.

아군을 못하게 만드는 능력을 갖춰야 비로소 합당한 자격이 주어진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은 전설적입니다……!

상체가 터졌다.

바텀은 아무것도 안 한다.

심지어 캐리력이 높은 끠즈와 말카림이 킬을 먹어서 숫자 차이가 의미가 없다.

고전이 예상됐던 두 번째 게임.

다행히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물론 이전 생에서도 계획을 세우면 배치 10연패 정도는 가능했겠지만.

'챌린저가 10연패 하고 브론즈에서 놀면 커뮤니티 터져.'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당연하다.

이걸 뭐 어떻게 변명해. 그런 짓을 굳이 콘텐츠화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하다.

스토리텔링.

'메이플' 유저가 '롤'을 정복해나가는 컨셉의 첫 페이지로서 말이다.

최대한 양심을 지키는 선에서 자연스러운 패배를 지향한다.

일부러 갖다 던지지도 않았는데 아군이 뇌절을 하면 져도 되겠지.

"정글 새끼 진짜 사람 아니네 와……!"

"정글 차이."

"그래, 정글 차이! 내가 너무 억울해서 다음 판 정글로 캐리해줄게."

"형만 믿을게요."

"그래, 나만 믿어. 나 거의 골드까지도 가봤어!"

이번 생의 나는 브론즈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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