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숟가락을 다루는 법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마라말았탕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버스로 다1 찍는 건 에바 이님?
"무슨 버스에요. 버스는 내가 타고 있지."
―네?
―에반데
―ㄹㅇㅋㅋ만 치라고
―어그로 끄는 놈들 강퇴 좀요!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여름이 버스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는 루머.
아니, 대놓고 듀오를 하고 있으니 그런 이야기가 퍼지는 것도 일리는 있다.
'근데 아니야.'
얼핏 비슷하게 보여도 전혀 다른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기껏해야 낚시대를 당길 힘이 부족할 때 보태주는 정도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일반황족님이 잘큰숟가락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 (추가 골드 : +500G)
이렇듯 말이다.
숟가락이 숟가락을 하였다.
'낮은 티어 원딜러들은 책임감이라는 게 없어서.'
팀이 이렇게 나를 몰아준다고?
이 판 빡집중해서 캐리 한 번 해야겠다!
그런 기본적인 마음가짐부터가 글러 먹었다.
[25:30] 잘큰숟가락 (이즈레알): 아
[25:32] 잘큰숟가락 (이즈레알): 나이즈 왜 안 자름?
[25:35] 잘큰숟가락 (이즈레알): 5킬을 먹어도 지네 ㅅㅂ
이는 LOL이 가진 게임 구조에서 기인하는 진지한 문제다.
미드&탑을 키워주는 건 당장 페이백이 되는데 반해, 원딜을 키워주는 건 미래를 위한 투자의 개념이다.
1, 2킬 먹는다고 당장 세지는 게 아니니까.
작은 숟가락들은 이걸 단순히 바텀갱을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볍게 행동하다가 승리 공식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의 속도!」
그럴 때 내가 나설 뿐이다.
정글링이라는 제 3의 자원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해 캐리력을 손에 넣었다.
사샤샤샥―!
파고든다.
숟가락을 분지른 나이즈.
책을 펴고 속박부터 시작하는 풀콤보는 가히 위협적이다.
'시즌3 전에는 특히 그랬지.'
하지만 메타가 변했다.
이는 결코 나쁘게만 볼 일이 아니다.
새로운 특성과 아이템을 활용한다면 말이다.
슈욱_!
몰락검을 쭈욱 빤다.
상대의 이동 속도를 빼앗으며 달라붙는다.
근접전에서 메이지와 전사의 대결에 힘을 실어준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산으로 갈 뻔했던 게임을 다시 제 궤도에 올려 놓는다.
겸사겸사 따라온 적 숟가락과 도구도 철물점으로 반품한다.
―ㅁㅊ
―역시 환스터이 ㄷㄷㄷ
―또 마이 캐리네
―버스 달달합니다~
이것이 시청자의 눈에는 캐리해주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면에서 전혀 다르다.
'바둑으로 따지면 끝내기 같은 거야.'
초보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두고 나서야 집계산을 하는데, 숙련자들은 바둑판의 반도 안 덮인 시점에서 승부를 단정 짓는다.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두기 때문이다.
이렇게 낮은 구간.
아군 숟가락처럼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운 나쁜 시행착오는 굳이 겪지 않고 넘기고 있을 뿐이다.
─아이유가뭐하는아이유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 마이가 너무 밸붕 아님?
"여기도 다이아인데요 뭐. 저만 잘해서 이길 수 있는 구간이 아니죠."
―이길 거 같은데?
―응 버스
―정환이가 작정하고 마이플스토리 하면 예티들이 상대가 되냐ㅋㅋㅋㅋㅋㅋ―흠……
여름도 잘해주고 있다.
방금만 해도 와드 위치가 시원했으며, 올라오는 적 바텀 듀오를 잠시 묶어두었다.
'그래서 트리플 킬까지 연결이 됐던 건데.'
설명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을 믿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시청자들은 자극적인 화제에 이끌린다.
땅따먹기식 시야 싸움보다 화끈한 교전 한 방이 훨씬 인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안 그래도 슬슬 다음 진도를 나갈 생각이었다.
"여보."
<낭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멋있다!>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오정환이 오고야 말리니."
<?>
―니가 왜 와 X발앜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자기?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거 같은데
―위로해주는 척 꼬시려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심심치 않다.
파프리카TV의 뒷면에서는 말이다.
외로운 여캠들을 꼬시는 것이 시청자들의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런 고얀 놈들도 있더라고.'
내가 중심이 된 BJ 사회에서는 결코 반복되지 않을 과오다.
아무튼 시청자들의 생각 이상으로 착실하게 쌓여가고 있다.
여름의 기본기.
와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아직 딱딱한 감은 있지만 한 명의 서포터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시스템 가동. 준비 완료.」
이제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질 때다.
챔피언 픽소리가 들려온다.
원딜러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소리가.
* * *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치솟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으니 당연하다.
─이쯤에서 보고 가는 흡낫컷 명언. txt
로쿠도쿠: 잘하는 여자 게이머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임캐리: 뭔데?
로쿠도쿠: 대리게이머ㅋ
꼬치 : 아! 뭔 소리야! 아 진짜~!! 아 진짜 왜 그래
└저거 심지어 생방이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캐리는 진짜 전설이다……
└꼬치 실직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발버둥ㅋㅋㅋㅋㅋ
└팩트) 꼬치 대리한 거 놀리려고 한 말이다
여성 게이머.
이미지가 썩 좋지 않은 것은 LOL도 마찬가지다.
아니, 메이플스토리 등 RPG에서 곪고 곪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피해를 본다.
RPG에서 다른 유저의 실력 때문에 손해를 보는 건 레이드 등 극소수의 경우밖에 없지만, LOL은 팀원이 한 명만 못해도 티가 안 날 수가 없는 게임이다.
─근데 진짜 버스 받는 거 맞지 않음?
막말로 마이 갱 올 때마다 WQ 박는 거 누가 못함
└응 브실은 WQ도 실패해
글쓴이― 아 방생은 에바고
└진지하게 플래까진 ㅇㅈ함
└솔직히 별로 하는 거 없긴 하더라ㅋㅋ
하물며 프로게이머.
잘하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잘하고, 유명하기까지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커뮤니티의 여론이 기울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한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건.
'오자마자 이런 재밌는 일이 생기네?'
로쿠도쿠.
前얼밤 출신 프로게이머.
해외에서의 짧은 이적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본의치 않게 사건을 일으켰다.
그냥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생방송 진행 중에 무심코 말해버릴 정도로 말이다.
방통위에서 경고까지 먹은 아찔한 경험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여자가 다이아면 뻔하지. 대리 아니면 버스.'
진심이니까.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남들보다 솔직할 뿐이고, 그것이 세상에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만큼 답답한 게 없다.
이번 기회에 증명을 한다면 속시원한 일이다.
여혐이다, 억측이다 쌓여온 누명을 벗는다.
"아~ 들려요? Ah~ fuck it forget it! 들리던가 말던가."
―헐
―진짜 로쿠도쿠임?
―멘트 치는 거 보니까 빼박이네
―역시 빠꾸 없눜ㅋㅋㅋㅋㅋ
개인 방송.
간간히 취미삼아 진행했다.
반년만에 돌아온 파프리카TV는 전보다 훨씬 활성화되어있다.
'오~ 재밌는데? Interesting해.'
듣는 귀가 많을수록 어그로를 끄는 보람이 생긴다.
관종 기질이 있는 로쿠도쿠는 지금의 상황이 한없이 즐겁다.
아니,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시 팀을 구해야 한다.
프로게이머인 그에게는 진지한 문제다.
"내가 방송을 켠 이유가 뭐냐고? 일단 팀 구합니다. 관심 있는 팀은 쪽지를 넣어주세요. 다른 거 넣지 마시고."
―다른 거ㅋㅋㅋ
―이 새끼 게이 드립 준나 좋아함
―로쿠도쿠 진짜 한국 복귀함?
―어그로 끄는 거 보소
세간의 관심.
쏟아지면 쏟아질수록 유리하다.
자신이 Free하다는 사실을 한국의 프로팀들이 알게 만든다.
─충신지빡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친정팀 복귀 어떰?
"Get out! 꺼져!"
―꺼졐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얼밤은 못 참지
―저 새끼 선 넘네
―닥쳐 정의 집행하러 왔다고~
반드시 좋은 팀을 구해 성적을 내고 싶다.
로쿠도쿠에게 LCK 복귀는 단순한 선수 생활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가벼운 여흥 정도는 되겠는데.'
이번 화제는 그 발판이 된다.
롤유저들이 궁금해 마지않는 논란을 해결해준다.
타닥, 탁!
마침 그러기 쉬운 여건이 조성돼있다.
솔로랭크.
프로게이머인 자신의 아이디는 당연히 최상위 구간에 위치한다.
'한국 서버는 안 한 지 좀 됐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랭크가 강등된다.
휴먼 강등이라는 시스템이 있고, 로쿠도쿠의 아이디는 플래티넘까지 떨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저격이 충분히 가능하다.
마침 시간도 인간이 가장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잔인해질 수 있다는 새벽 2시.
누구 하나 끝장을 내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을 것 같다.
쿠웅!
이는 신빙성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한다.
한국 경찰청에 따르면 강력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각은 밤 8시부터 새벽 3시다.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랭크 게임의 큐가 잡힌다.
─전설의7화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상대팀 오정환&여름 듀오 걸림ㅋㅋㅋㅋㅋ
―ㄹㅇ?
―진짜네
―이게 한 번에 성공하넼ㅋㅋㅋㅋㅋㅋㅋ
―롤갤 터지겠다
물론 약간의 요행이 필요하다.
새벽 2시라는 밤늦은 시간은 그 가능성을 최대로 상승시킨다.
그럼에도 설마 하던 상황.
현실이 되니 실소가 나오지만 어차피 상대는 다이아 티어의 일반인이다.
"What the fuck!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챔피언 나왔네."
―매라신 입갤ㅋㅋㅋㅋㅋ
―하필 블츸ㅋㅋㅋㅋㅋㅋㅋㅋ
―아는 거 같은데?
―로쿠도쿠 하드 카운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볍게 농락해줄 생각이었다.
풀리츠크랭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정팀 복귀 소리에 괜히 이를 간 것이 아니니까.
'혜지나 할 것이지 정신 못 차려?'
자신의 前파트너가 하던 주력 픽이다.
상대가 이를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자신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게 중요하다.
「이 사건은 내가 맡죠.」
풀리츠의 상대법은 누구보다 잘 안다.
가장 무난한 선픽 카드이며, 실력 차이로 찍어 누르기 좋은 케이클린을 가져온다.
─지금 로쿠도쿠 방송 미쳤닼ㅋㅋㅋㅋㅋㅋ
상대가 풀리츠 꺼내니까
바로 케잉 꺼내서 응징 들어감
└"풀리츠를 절대로 하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강의 해주겠다"
글쓴이― 개웃김 진짜ㅋㅋㅋㅋㅋㅋ
└아 풀리츠는 못 참지ㅋ
└매라신 생각 나서 PTSD 왔나 보네
커뮤니티의 반응도 뜨겁게 불타오른다.
그도 그럴게 스토리텔링.
로쿠도쿠와 풀리츠크랭커의 특별한 인연을 모르는 롤팬이 없다.
「LOL) 오정환. 천상계에서의 오붓한 신혼 여행」_ ?26, 974명 시청
「LOL) 로쿠도쿠. 잘하는 여자 게이머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
_ ?11, 892명 시청
소문을 듣고 시청자가 속속들이 몰려온다.
방송 어그로를 바랬던 로쿠도쿠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다.
'체력적으로도 슬슬 힘들 때지.'
로쿠도쿠는 계획적인 성격이다.
이 시간에 방송을 킨 것은 고작 잔학성과 저격 확률 때문만이 아니다.
여성 게이머.
그들의 근본적인 한계를 안다.
상대는 방송을 시작한지 벌써 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여성 게이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무시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 판을 통해 보여줄게."
―프로 여혐러 ㄷㄷ
―역시 원조 또라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돼 여름좌 괴롭히지 마……
―근데 진짜 궁금하긴 하다
빈약한 체력.
의존적인 플레이.
두 가지 약점이 삐걱대고 있을 거라는 게 눈에 선하다.
'롤알못 새끼들은 대놓고 보여줘야 믿잖아. 지들도 사실 다 알면서.'
단순히 못한 판이라고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말이다.
아주 처절하게 증명할 수 있는 자리가 되도록 판을 깔았다.
그동안 쌓인 억울함.
앞으로 해나갈 일자리.
프로게이머라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경종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