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260화 (260/846)

260화

마이크로칩 탑재한 플라스틱 숟가락

커뮤니티에서는 다시 화제가 된다.

─코물쥐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아가리 터는 거임?

저 실력으로 남탓을 하네

└팩트) 숟가락 평균이다

└지가 정말로 잘하는지 아는가 보지

글쓴이― 진짜로???

└너는 안 그런 줄 아냐ㅋㅋㅋ

사실 별일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궤리. 특히 롤에서는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는 일이 드물다.

대놓고 대리를 받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렇지 않은 코물쥐는 챌린저라는 부푼 꿈이 가슴 한 켠에 있었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대가 잘하면 질 수도 있지.

그 져버린 장면이 워낙 임팩트가 있어서 문제다.

─코물쥐가 반인륜적 원딜러가 된 이유를. Araboza

[오정환팀 대 원딜킹팀 한타 장면. jpg]

오정환팀

탑― 코물쥐한테 궁 써주고 사망

정글― 코물쥐 살리려다 사망

미드― 코물쥐 엄호하다 사망

서포터― 스킬 다 맞아주고 사망

원딜킹팀

탑― 코물쥐한테 맞고 사망

정글― 코물쥐 물려다 사망

미드― 코물쥐 잡다가 사망

서포터― 코물쥐 비비다 사망

한타에서 혼자 8킬함

└피아를 가리질 않누……

└제2차 세계대전형 원딜러 ㄷㄷ

└옥타킬 시벌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실력이 형편없어서 아니었음?

특별한 일일수록 기억에 잘 남는다.

이전까지 행해온 밉살스러운 행동까지 더해지며 또다시 커뮤니티의 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방향성.

최초에 워낙 부정적이었다.

또다시 사고를 친 격이 되자 단순히 놀림 받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코물쥐 이 새끼는 진짜 개씨발 노답인 게

다이아1 정글임

코물쥐 팀에 걸리면 그냥 닷지함

적으로 만나면 개씹땡큐

바텀갱만 주구장창 파면 멘탈 나가서 계속 죽어주는 점수 자판기 새끼임└자판기ㅋㅋㅋㅋ└그 정도임?

└그래도 한타는 잘하지 않냐?

글쓴이― 팀원 고혈 빨아먹고 캐뤼~ 이 X랄 하는 거 보면 지건 존나 마려워서 닷지가 편함^^

업보 또한 많다.

다이아1 유저라면 적이 있는 게 드물지도 않지만, 스트리머 저격을 일삼다 보니 일반 유저들에게도 평판이 나쁘다.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융단폭격이 떨어진다.

일련의 사실을 본인이라고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남탓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니가 행복롤 할 동안 미드탑이 얼마나 힘든지 모름?

"억까 지리네! 나는 그럼 안 힘드냐? 적 다섯이 나만 노리는데? 나를 범인으로 모는 게 웃기다니까?"

―명탐정 '코'난 입갤ㅋㅋㅋㅋㅋㅋ

―진짜 자존심만 남았네

―변명할 시간에 연습이나 하지

―어휴 ㅉㅉ

방송 활동을 이어나간다.

야단이 나던 말던 내 할 일 하겠다.

커뮤니티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는 보라BJ와는 다르다.

게임BJ는 게임만 해도 된다.

부정적인 반응은 어그로로 치부한다.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 * *

팀랭크.

솔로랭크만큼 진지하게 임하진 않지만 엄연히 티어가 세분화된 경쟁 시스템이다.

하물며 러너리그.

그 연습을 위해 하고 있는 팀들이 많다.

당연히 챌린저를 목표로 돌리지 다이아 구간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같은 상대를 조우하게 될 수 있다.

원딜킹팀.

벌써 세 번째 만나는 것으로 어제 했던 두 게임은 전부 패배했다.

<이거 잡았으면 아……, 좋았는데.>

"약간 무리긴 했어요."

<저도 알긴 아는데 잡기만 하면 너무 대박이라서.>

그리고 세 번째 게임.

전보다 나아지기는 커녕 상황이 안 좋다.

라인전 단계부터 삐걱삐걱 실점을 허용하고 있다.

―개에바였는데ㅋㅋ

―ㅈ됐네

―ㅁㄷㅊㅇ

―원딜킹팀은 그냥 상성인가 봐

유리하게 가도 후반 가면 진다.

역으로 밀리기까지 하고 있으니 팀 분위기도, 채팅창도 술렁일 만하다.

'근데 이게 생각의 순서를 바꿔서 생각해야 돼.'

내가 프로게이머도, 코치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바가 많다.

많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팀 게임의 기본적인 메커니즘도 미드 탈론 교수님의 저서를 참고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원딜을 키우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반에 이득을 봐야 돼.

왜? 안 그러면 원딜 차이로 지니까.

그 급박한 마음이 실수를 만든다. 의진맨의 르풀랑이 또 죽는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결국은 그 연장선이다.

'한 마디로 원딜 새끼가 사람이 아니니까 나라도 잘해서 이겨보자. 그러다가 실수가 나온 거지.'

커뮤니티 반응만 ㅈ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팀원들이 다 괜찮다, 다음에 잘해보자, 그렇게 말을 해도 속마음은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본심이든 아니든 말이다.

시청자의 민심이 머릿속에 파고든다.

BJ 본인의 생각이 달라도 흔들리게 돼있다.

서브리미널 같은 무의식 광고 수법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심지어 채팅으로 대놓고 보이는데 신경을 안 쓰는 게 더 힘들다.

<미드 또 잘렸어?>

<좀 말렸습니다.>

<이러면 한타때 자드가 나한테 궁 박으면 무조건 죽는데. 자드 너무 키웠는데.>

<안 써도 어차피 죽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팀까지 다 죽여~

―지금부터 의카콜라가 팩트폭격 들어간다

―코물쥐 빡쳤네ㅋㅋ

엇갈린 생각은 내분으로 이어진다.

절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솔로랭크에서도 팀원끼리 싸울지언데, 팀 게임에서는 그런 감정의 골이 더 깊게 파인다.

<鼻ムルジュウィゴミ.>

<이이잉~ 기모링~!>

<竹島は日本の領土.>

"음 독도는 우리땅."

그리고 이는 한일 관계의 악화로까지 번질 수 있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다.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입장에서 고작 게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문제다.

'사실 이런 재미긴 하지.'

BJ들의 대회.

정치하고, 싸우고, 스토리 엮고, 그런 쪽이 메인이지 경기력 같은 건 오히려 부차적이다.

포기한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다.

하기 싫다는 사람 잡고서 해야 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자식 낳아도 안 할 짓을 굳이 하고 싶지 않다.

나로서는 한 가지만 시켜도 족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주제 파악.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는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눈치가 없지 않는 이상 시간 문제다.

방종을 하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볼 것이다.

바보가 맞다고 치더라도 민심을 무기로 충분히 팀 내의 발언권을 빼앗을 수 있다.

「정환님」

「잠깐 통화 가능하세요?」

굳이 미드 탈론 센세가 아니더라도 알고 있다.

숱하게 해온 멸망전의 과정에서 말이다.

물론 한일 관계의 악화는 진귀한 경험이지만 분쟁 자체는 워낙 흔하다.

"무슨 일이시죠?"

<아니 그게……, 오늘 수고하셨구나 해서.>

"예, 코물쥐님도 수고하셨습니다."

BJ들의 대회는 원래 이런 식이다.

서로 으쌰으쌰하는 프로씬과는 다르다.

아마추어라는 점을 제외해도 대회 수준이 높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럼 끊을게요."

<잠깐!! 잠깐만요!>

"네."

<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저 잘해지고 싶어요.>

하지만 간혹 있다.

정말 진지하게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이.

자신을 채찍질 해서라도 팀 게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가짐은 훌륭하다.

<진짜 잘해지고 싶어요. 저 진짜 절실합니다.>

"아, 네."

<물론 알고 있어요! 저도 솔로랭크만 하다가 팀게임을 처음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이렇게 사석에서 상담까지 하는 게 기특한 건 맞다.

방송적 소스가 아닌 순수한 실력 증진의 욕구.

그것과는 별개로 현실성이 없어서 문제다.

<여름님 이렇게 단기간에 실력이 상승한 게……, 솔직히 재능만 가지고는 안되는 일이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정환님 덕분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 고쳐볼 테니 조언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없는 실력이 바닥에서 솟아날 리가 없다.

물론 여름이라는 특이 케이스가 있고, 말을 잘 듣는다면 건설적인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근데 넌 부족한 부분밖에 없다니까?'

여름은 공격성이라는 베이스 위에 운영이라는 디테일을 칠한 것이다.

잘하는 부분이 있어야 그걸 기반으로 레벨업이 가능하다.

"님."

<네! 네네!!>

"혹시 라인전이 센 타입이세요?"

<아니, 저 라인전은 솔직히 좀…….>

"그럼 무난하게 커서 캐리할 수 있으세요?"

<아, 그게 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저희 정글 싸움할 때 적 원딜보다 빠르게 합류할 수 있어요?"

<노력은 해보겠는데 반드시는 좀.>

"상체가 캐리할 동안 바텀에서 사리는 건 어때요?"

<원딜 특성상 한 발만 삐끗해도 터져버려서;;>

"잘하는 게 대체 뭐예요?"

<…….>

조금 신기할 정도로 어느 것 하나도 해당 사항이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자각시켰다.

데리고 게임하기도 막막하다.

이런 원딜러를 잘하게 만든다?

악화된 한일 관계를 푸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해도 안 돼요?>

"어떻게 해도 안 돼요."

<그럼 저는 평생 이 실력이에요?>

"네 평생 그 실력이에요."

한일 관계는 명확한 쟁점이라도 있지.

코물쥐의 실력은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싸맨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그렇잖아.'

코물쥐는 나름 노력파다.

차후 대기업 스트리머가 된 이후로도 실력 욕심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정진한다.

챌린저나 프로들에게 조언까지 받으며 말이다.

그렇게 10년이 넘도록 노력했음에도 꾸준히 성과가 없다.

<아니, 진짜 진지하게 드리는 말이에요.>

"저도 진지한데."

<저 진짜 절실해요. 하라는 거 뭐든 할 자신 있어요. 안 자라면 안 자고, 챔피언 연습하라면 다 할 수 있으니까…….>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

<…….>

게임에 대한 태도는 정말 좋다.

근데 어떤 유명 프로게이머가 말을 했듯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할 때도 있다.

'누군 열심히 안 해본 줄 알아?'

챌린저쯤 되면 프로 제의가 오고, 누구나 한 번씩은 고민을 해본다. 내가 안 한 이유는 고작 절실해지는 정도로 잘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력을 한다고 게임을 잘해진다?

노력해서 SKY 간다는 거랑 다를 게 없다.

괜한 희망 고문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럼 저는 뭘 해야 돼요?>

"님이 알겠죠."

<라인전도, 한타도, 운영도, 하다 못해 깍두기 역할도 수행할 수 없는 폐급 원딜러잖아요?>

"잘 아시네요."

10년째 고시 준비하는 고시 낭인.

주위에서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오는 그들은 왜 다음 도전을 할까?

'노력하는 자신으로 있고 싶은 거지.'

안 되는 것에 계속 머리를 부딪힌다.

캐리력 없는 원딜러가 캐리에 목을 매는 코물쥐의 상황과 겹쳐 보인다.

<저는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잘해질 수 없는 거예요?>

"네."

<단언할 수 있어요?>

"네."

<평생?>

"네."

미래를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BJ이기 전에 한 명의 롤유저로서 그를 존중한다.

향후 10년이 넘도록 쓰잘데기없는 노력을 안 했으면 좋겠다.

'이참에 롤을 접는 것도 나쁘지 않고.'

롤 실력으로 뜬 스트리머가 아니라면 방송적 역량을 살리는데 올인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비록 잔인할지라도 내가 이것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다.

<그게 정환님의 진심이에요?>

"네."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아요?>

"네."

<그럼 저는 어차피 아무것도 잘할 수 없으니까!!>

"네."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세간의 비난.

관종인 그가 커뮤니티의 글들을 체크하지 않았을 리 없다. 채팅창도 애써 무시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감정이 북받친다.

또옥― 떨어지는 액체 파음과 함께 덜덜 떨리는 입을 연다.

자신의 꿈을, 이상을 포기한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다.

<아무것도 못하지 않는 원딜러를……, 하는 것도 안 될까요?>

"알겠습니다."

<제가……, 목표로 삼아도 될까요?>

"네, 해보죠."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꺼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미 절반이다.

제3자인 나로서는 어떻게 해도 채울 수 없는 그 첫 걸음을 스스로 내디뎠다.

나머지 절반을 채울 수 있을지.

경험해보지 않은 미래는 나도 모른다.

다만, 프로씬에도 똑같은 이유로 폐급 쓰레기 취급 받은 원딜이 한 명 있다.

'고스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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