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262화 (262/846)

262화

코물쥐는 못하는 원딜러가 아니다.

'생각보다 잘한다니까?'

생각보다 잘해서 문제지.

다른 원딜러들은 그냥 잘하는데.

그 애매하기 짝이 없는 실력은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아!

용 한타.

상대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구도다.

팀 랭크에서 세 번이나 패착을 맛보았다 보니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데 반해.

―예언) 그 코 물려 뒤짐

―반인륜적 원딜러

―코틀러가 캐리한다!

―옥타킬 씹거눙ㅋㅋㅋㅋㅋㅋㅋㅋ

패배의 그림은 쉽게 그려진다.

채팅창의 야단법석은 팀원들이라고 느끼지 않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한타를 이기면."

<바론 볼 거예요?>

"게임을 이기겠지. 그러면 승리 회식을 하겠지? 밥을 먹다 보면 친해지고 프로포즈 같은 이야기도 오가고 나는 아들, 딸 하나면 되는데."

―?

―환소리 ON

―카카시도 거기까진 안 해……

―오정환 넌 확실히 강해졌다. 나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야

트라우마.

사람이 같은 실수를 하는 건 필연인 측면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금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

하아!

이렇듯 말이다.

클끼리류 포킹학파 리심인 척 음파만 던지다 빈틈을 노려 접근한다.

직선 경로에 덫을 깔아둔 상대의 대비는 훌륭하지만.

'코너킥이라는 게 수백 수천 번도 더 해봤을 뻔한 구도인데 항상 변수가 일어나는 이유가 있어.'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갑자기 들어간다고 반응을 못 할 리 없다.

하지만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는 분명 있다.

이~쿠우!

완전히 들어가기 직전에 점멸로 각도를 틀며 당구.

전부 다 나를 보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진영이 뭉친다.

차낸 초가트가 날아가며 두 명의 적이 꼬치처럼 꿰인다.

대치 구도의 정적을 깨고 와드 방호로 빠져 나온다.

―갑자기?

―말 좀 하고 들어가!

―와

―일단 대박인데

들어갑니다~ 하고 들어가면 상대도 어서오십쇼~ 한다.

이니시각은 초단위로 변하고, 일일이 말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구도.

상대는 신경 쓸 게 많다.

호응해 들어오는 아군도, 측면을 잡고 있는 내 위치도.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분산된 신경은 빈틈을 만든다.

은신해 숨어있던 토이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원거리에서 쏟아내는 일방적인 포격.

─코물쥐님이 학살 중입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원딜을 지키기 위해 뭉쳐있던 적들은 그대로 뒤집어쓴다.

토이치의 프리딜이 한타를 종결시킨다.

―역시 코틀러!

―가차 없네

―홀로코스트 대학살ㄷㄷㄷ

―적팀만 학살하면 ㅇㅈ이지

시청자들의 반응도 180도 뒤집힌다.

놀리기 위해 만든 멸칭이 긍정적인 별명으로 변하는 일은 롤판에서 드물지도 않다.

'성령좌만 해도 그렇잖아.'

프로게이머 고스트.

혼자 죽거나(유령) 팀을 다 죽인다고(학살) 홀로고스트라 불렸다.

실력이 꽃 피우기 시작하자 홀로고스트가 홀리고스트가 되며 성령이라 읽히게 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도망가는 잔당을 마무리.

측면에서 상대의 퇴로를 꽉 잡고 있었다.

트라우마까지 되었던 용 한타가 깔끔한 대승으로 끝이 난다.

<와 X발 캐뤼~!!>

<대화하다 갑자기 걸려 가지고 깜짝 놀랐네;>

<아니, 무슨 농담하다가 이니시를……. 적까지 속이는 큰 그림 같은 건가?>

"농담 아닌데?"

바텀 갱킹으로 유리한 시작을 열었다.

한타까지 이겼다는 건 게임이 거의 넘어왔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큰 건 승리 공식.

'우연일 리가 없잖아.'

폐급 원딜러가 갑자기 각성을 한다?

만화나 소설에서는 흔히 나오는 클리셰지만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다.

그런 것도 가능성이 보일 때나 되는 거지.

뜬금없이 잘해진 데는 당연히 이유가 따른다.

고스트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벤치마 하였다.

「살금살금!」

애매하기 짝이 없는 스펙.

무엇 하나 강점으로 내세울 게 없다.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무능한 원딜러라 하더라도.

<와드 여기에요 여기.>

<오~ 확인.>

<쟤네 블루 지키려고 하는 거 같은데.>

<뺏자! 우리 싸우면 무조건 이겨!>

―코물쥐 오더 보소

―우리 물쥐가 달라졌어요!

―날카롭네

―코물쥐 왜 갑자기 잘해짐?

딱 한 발, 남들보다 앞설 수 있는 순간 달라진다.

파라미터가 한 단계씩 상승하며 모든 걸 잘하는 유능한 원딜러로.

'보통 원딜러들이 수동적이야.'

주도적으로 하기에는 제한되는 측면이 많다.

그냥 판 깔아주는 것에 숟가락 딱! 그래서 숟가락이라 불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게 문제냐?

전혀 그렇지 않다.

딜만 잘 넣으면 그 수동적이라는 게 안정적이라고 해석이 돼서 그냥 잘하는 원딜러가 된다.

─코물쥐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안 하는 주도적인 플레이를 한다.

그것은 위험 부담을 수반하지만 그만한 리턴도 함께 따라온다.

'어려운 걸 해야 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용기.

이미 완성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난해하다.

지금 방식으로도 충분한데?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한테는 아무리 말을 해도 우이독경이다.

그래서 몰아붙였다.

스스로 사고해서 판단을 내렸다.

그런 감동적인 성장 드라마와는 전혀 별개로.

─아군이 당했습니다!

오쿠님이 코물쥐님의 대량 학살을 종결시켰습니다! (추가 골드 : +500G)

남들이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기 몸 사리기도 힘든 원딜러가 시시콜콜 참견하고 다니면 한눈 팔기 딱 좋지.

이~쿠우!

당연하게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리가 없다.

여름의 성장을 보조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뒷바라지를 전제로 한다.

<와 인섹킥!>

<제압 줘서 비벼지나 했는데 다행이다.>

<네이스~!>

―코물쥐가 그럼 그렇지ㅋㅋ

―이걸 이기네

―네이스는 뭐야?

―네이스형 원딜러 ㄷㄷ

딱히 캐리를 하는 게 아니다.

상대가 코물쥐를 의식하게 됐다.

이 말인즉, 나에 대한 신경이 옅어진다는 뜻이다.

'그토록 못 잡던 딜각을 잡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

상대가 다~ 자신만 본다.

일거수일투족이 주목 당할 때 잡는 딜각과, 편한 상황에서 잡는 딜각의 난이도는 전혀 다르다.

단순히 후자라면 버스에 불과하다.

스스로 만들어냈기에 의미가 있다.

코물쥐에게 요구되는 플레이다.

'남들은 금제, 은제 삐까번쩍한 숟가락인데 자기는 플라스틱이야. 그럼 최소한 마이크로칩이라도 하나 번듯한 거 탑재해야지.'

양심이 있으면.

지금까지는 없었다. 앞으로는 있을 예정이다.

본래라면 수동적이어야 할 숟가락.

한 명의 유저로서 자아를 가지자 상대 입장에서 대비해야 할 변수가 많아진다.

이 또한 거시적인 관점에서 팀 플레이다.

독선적이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원딜 캐리팀은 상상치도 못할 부류다.

* * *

이변.

스포츠팬들을 반드시 흥분시키는 두 글자.

「시궁창 맛 좀 봐라!」

그렇기에 더욱 보기 드물 수밖에 없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케이클린! 케이클린 터졌어요! 원딜 캐리팀인데 원딜이 죽으면 와 이거……."

―끝났지

―아니

―식사도구 차이 미쳤네

―토이치가 원딜킹임?

충분히 있을 만도 하다.

아니, 예견돼있었다.

챌린저 10워권 원딜러인 오쿠를 보유한 원딜킹팀에 반해, 오정환팀의 원딜러 코물쥐는 보잘것없는 실력을 가졌다.

─더블 킬!

코물쥐님이 학살 중입니다!

오쿠가 토이치라면.

위화감이 전혀 없는 상황이지만 그 반대다.

코물쥐의 토이치가 한타를 역으로 박살 내고 있다.

─코봉이와코물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원딜 차이 ㅇㅈ?

"이런 말하기 좀 그런데 확실히 원딜 차이 난다. 형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만 그렇게 보는 게 아니었네."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실버 티어에 지나지 않는 러너맨으로서는 입을 놀리기 신중했다.

분명 티어만 보면 오쿠가 압도적으로 높다. 연습 경기에서도 크게 발렸다고 한다.

여론이 치우쳐져 있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찔리는 부분이 있기에 역풍도 크게 분다.

─《 롤갤 일동은 선언합니다 》

―반인륜적 원딜 코틀러―

원딜킹팀을 대학살한 코물쥐를 적극 지지합니다

일부 몰상식한 롤갤러들의 말은 무시하시면 됩니다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일동―

└일부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면 안되지 ㄹㅇ

└일부였단 말이에요 빼애애액!!

└일부가 전체 아니었누ㅋㅋㅋㅋㅋㅋㅋ

└나만 아니면 뒈에에에에엑~~!!

깐 만큼 빤다.

유서 깊은 롤갤의 문화에 힘입어 코물쥐의 지지도가 단박에 상승한다.

실시간 해설을 진행하는 러너맨의 방송에도 영향을 미친다.

"POG를 누구 줘야 하나……. 어려운 문제인데 민심을 고려 안 할 수가 없어요. 여기는 LCK가 아니고 파프리카TV니까."

―코물쥐!

―리심도 존나 잘하긴 했는데

―캐리는 결국 원딜이지 ㄹㅇ

―이이잉~ 기모링~!

Player of the Game.

해당 게임에서 가장 잘한 유저.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최다 득표자는 부상이 수여된다.

그 이전에 그냥 좋다.

롤유저 중에 캐리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이를 수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공공연하게 인정 받을 수 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그간의 불명예를 쇄신하고도 남는다.

초반 라인전 단계의 슈퍼 플레이.

녹화본을 통해 다시 한 번 송출된다.

"관전 버근가? 아무튼 리심이 전광석화처럼 케이클린 점멸을 뺐어. 근데 원딜킹 바텀도 침착하게 도주에 성공했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헐??

―뭐야 X발 저거

―그냥 점멸로 투망 피하고 와드 방호 쓴 거 같은데

―관전 버그로 배속된 듯ㅇㅇ

자칫 역관광이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토이치 장인이라는 걸 인지시키는 센스 있는 플레이가 반전을 만들었다.

「살금살금!」

은신.

사라지게 되는 찰나의 순간에 수풀로 들어갔다.

상대의 인식을 의도적으로 저해시켜 자신의 위치를 숨겼다.

─민트초코혐오자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진짜 쥐새끼처럼 야비하게 했네

"민트초코혐오자형 100개 감사합니다! 아 근데 쥐새끼는 좀 그렇지. 영리하게 잘하시긴 했어. 난 이거 뭔가 했는데 이렇게 하셨구나!"

―ㄹㅇ 쥐새끼 그 자체

―쥐새낔ㅋㅋㅋㅋㅋㅋㅋㅋ

―코물쥐새끼 맞지

―이건 챌린저도 당할 만하지!

그리고 앞점멸로 생존기가 빠진 케이클린을 컷.

엄호하던 랄라도 같이 죽고, 백업 왔던 정글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POG 선정에 이견이 갈리지 않는다.

명백한 원딜 차이로 게임을 승리했다.

일련의 상황이 기분 좋을 수가 없는 한 사람.

<아……, 이번 판 너무 말렸다.>

<쟤네한테 지는 거 에반데. 이거 그냥 토이치만 밴했으면 꽁승인데.>

"뭐?"

<아니, 그…… 코물쥐 저 새끼 닉대로 토이치밖에 못하는 새낀데 밴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서요.>

원딜킹팀으로서는 너무나도 예상을 벗어났다.

커뮤니티의 여론 이상으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

명확한 목적까지.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오쿠로서는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되는 대회이지만.

"그냥 열어."

<형 이번 판 지면 3세트도 못 가는 거 아시죠?>

"야."

<아, 아니 그냥 좀 걱정돼서;;>

"열고 카운터 치면 되지. 형이 프로 준비하는 사람인데 그 정도도 모르겠냐?"

<역시~.>

<알죠! 알죠! 형인데.>

자존심이 용납을 안 한다.

팀이 졌으면 모를까.

원딜 차이라는 말을 듣고, POG까지 뺏기고,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를 취할 수 없다.

'개박살을 내줘야지.'

전 판 같은 방심은 저지르지 않는다.

더욱 철저하게 피도 눈물도 없이 라인전을 말려 죽인다.

진정한 원딜 차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는데.

<뭐지? 쟤네 왜 원딜을 또 박아?>

<설마…….>

BJ들의 대회도 엄연히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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