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정글 캐리
대회의 절반은 밴픽.
두 번 들으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뻔한 소리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다.
'뻔하다는 건 뻔해진 과정이 있다는 소리니까.'
현재는 그 과도기가 시작되기도 전이다.
토이치를 선픽.
정글로 돌리는 스왑 전략은 훌륭하게 먹혀들고 있다.
타다당!
크레이브즈의 산탄샷이 불을 뿜는다.
즉발 광역기로, 라인 푸쉬와 딜교환이 동시에 되는 사기 스킬의 면모를 가졌다.
'대신 유통기한 원딜로 쓰이던 시절인데.'
포지션 스왑 심리전.
토이치 원딜 선픽인 척하고 크레이브즈로 선회했다.
파루스로 라인전 재미를 보려던 상대는 픽의 의도를 잃고 만다.
그런 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무슨 프로씬도 아니고.
밴픽 꼬이는 것도 빠듯하게 챔피언 티어 정리해서 맞춤형 전략을 준비해왔을 때나 의미가 있다.
─오정환 (토이치)님이 드래곤을 처치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바텀이 똥을 질질 흘리지 않는다.
라인전 구도가 팽팽한 덕분에 솔용을 마칠 수 있었다.
―헐
―드래곤을 바보 만드넼ㅋㅋㅋㅋㅋㅋㅋ
―저게 됨?
―정글 토이치를 왜 하나 했더니
그리고 약간의 잡기술.
회귀를 했다는 이점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아쉬울 것이다.
'별건 아니고.'
초기 LOL의 정글러.
주류 정글픽 중에 원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무조건 근접 챔피언이 정글을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스템도 그에 맞춰서 짜여졌다.
정글 몬스터를 상대로 카이팅을 할 거라고는 게임사가 상정을 안 했다.
"여기 얍시 자리에서 때리면 안 맞고서 잡을 수 있더라고요."
―천잰가?
―아니, 드래곤 사거리가 안 닿는구나
―이러면 토이치 할 만하지!
―이걸 솔용을 해버리네
물론 부수적인 것이다.
바텀 주도권이 없었다면 애초에 트라이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코물쥐는 코물쥐야.'
노오오오력을 한다고 챌린저 원딜러처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쩌다가 한 번 캐리하니까 의표를 찌르는 거지.
매번 하려고 하면 예측이 된다.
코물쥐에 대한 경계심이 올라간다.
그때 내가 캐리픽을 들고, 코물쥐가 숟가락을 얹는다면.
「시궁창 맛 좀 봐라!」
바텀 갱킹.
정직하기 짝이 없는 직선 동선이다.
무차별 학살의 압도적인 사거리 덕에 겨우 시도나 해볼 수 있다.
당연하게도 턱도 없다.
아이템도 안 나온 토이치의 딜만으로는 말이다.
여름의 광우스타가 점멸로 들어가 일단 휘젓고.
타다당!
쿠앙―!
크레이브즈가 앞점멸 대쉬로 QR.
대충 박아도 아플 수밖에 없는 광역딜이 적들을 집어삼킨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독과 점화의 잔여딜에 어찌저찌 마무리가 된다.
상대 입장에서 아다리가 안 맞은 아쉬운 상황일 수 있지만.
'다 설계를 한 거지.'
솔용.
성공한 시점에서 상대는 게임 운영이 꼬인다.
바텀 주도권의 의미가 사라지고, 한타를 할 근거 하나를 잃게 된다.
정글러도 어딜 봐야 하지?
바텀 봐봤자 용도 못 먹는데.
역갱의 위험이 적은 타이밍을 노리기 수월해졌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물론 이는 반대쪽이 위험할 수 있다의 동의어다.
사리면 좋았겠지만 라인 상황에 따라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아 바텀 땄는데~."
<이이잉~ 기모링~!>
<竹島は日本の領土.>
"대각선의 법칙 좀 지켜주시지. 독도는 우리땅."
―?
―무슨 게임에서 법칙까지ㄷㄷ
―대각선의 법칙 아시는구나! 반대쪽에서 이득을 봐야 한다는 개념으로 겁.나.어.렵.습.니. 다 ―한일 관계는 아직인가?
승리 공식.
라인전부터 찍어 눌렀던 전 판과 다르다.
탑라인과 한일 관계의 악화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인다.
'그래서 애매하지.'
원딜러가 코물쥐인 건 말이다.
광대짓만 할 줄 알지 제대로 뭐 할 줄 아는 게 없다.
후반에 갈수록 적 원딜러와 차이가 점점 극심해진다.
그렇기에 고른 캐리형 정글픽이다.
* * *
원딜킹팀의 일방적인 양학.
그렇게 끝나리라 예상되었던 두 팀의 경기에 이변이 일어났다.
"솔직히 형들도 이렇게 박빙일 거라고 예상 못 했지? 특히 바텀이."
―ㅇㅇ
―원딜킹팀 바텀 제일 세다고 평가 받았음!
―여름좌가 잘해
―역시 대회는 솔랭이랑 다른가?
오정환팀이기에 더욱 이목이 쏠린다.
예능팀 아니었어?
그런 프레임이 없지 않아 있을 수밖에 없다.
─오정환팀 서포터는 정체가 뭐임?
여캠에
외국인에
롤 천상계 유저라니 ㄷㄷ
└역대급 천재 괴물이지
글쓴이― 뭐야 그 웃기는 짬뽕 같은 작명은?
└스타성 미치긴 함ㅋㅋㅋ
└난 오정환이 미친 줄
팀 자체가 해괴하다.
다국적팀에 성별도 혼합이고, 도덕적으로 해이한 팀원도 섞여있다.
실력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3전 2선승제의 첫 세트를 이겼음에도 불구.
커뮤니티의 여론은 여전히 정배쪽에 시선이 치우쳐져 있다.
─오정환팀 조합 너무 미래 없지 않나?
지금 살짝 앞섰다고 좋아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롤잘알
└너무 유통기한 조합임
└파루스도 유통기한 아닌가?
글쓴이― 쟤넨 원딜 시팅이 지리잖아
롤이라는 게임은 라인전이 끝이 아니다.
게임을 마무리할 결정타가 필요하고, 오정환팀의 승산이 낮게 점쳐졌던 이유다.
쿠루룩!
촤락―!
그에 반해 원딜킹팀.
원딜러가 챌린저다.
그 한 마디가 팀의 색깔과 캐리력을 완전히 보증하고 있다.
<형 3코어 몇 골드 남았어?>
"좀 많이."
<이번 용 포기하자.>
<줄 건 줘~!>
이는 메타의 특성상 훨씬 두드러진다.
용이 가진 가치는 190Gold × 5.
주더라도 아쉬운 정도지 게임 터졌다~ 그런 소리가 나오진 않는다.
'……코어 완성될 때까지만 두고 보자.'
물론 글로벌 골드 차이는 의미가 있다. 서로의 실력이 비등하다면 말이다. 자신이 압도적으로 우위라고 확신한다.
다소의 골드 차이? 실력으로 무마하면 그만이다.
챔피언이 가진 캐리력 차이까지 생각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하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원딜 캐리팀.
그 특성에 걸맞게 시간 끄는 법을 알고 있다.
탑 라인의 우세는 게임 운영의 윤활유가 되어준다.
<적팀 탑 자이스키 저 새끼 쪽발이인 거 알아?>
"요즘 세상에 무슨 쪽발이야. 그거 인종 차별이야."
<나도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한국이 계속 일본 식민지였으면 더 발전했을 거라는 망언을 하더라니까?>
"진짜?"
<그건 좀 선 넘었네.>
<일본 넷우익이라고 하더라고 쯧쯧!>
애국심 또한.
한국인으로서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된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필사적으로 집중한 보람이 있다.
찰칵!
오쿠의 3코어가 갖춰진다.
라인까지 몰아 먹은 값어치를 한다.
치명타 시너지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27:10] 명품도구 (랄라): 드래곤 ― 0:41 후 재생성
[27:11] 명품도구 (랄라): 드래곤 ― 0:40 후 재생성
랄라의 보조를 받고 카이팅을 한다면 비비지 못할 것도 없다.
크레이브즈와 자신은 리치 차이가 역력하다.
─러너맨파이팅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글 토이치 저거 스노우볼이 아니라 파이어볼 챔피언임
"파이어볼? 타들어간다는 거야? 아~그렇네! 형들이 자꾸 왜 싸움 안 하냐고 하는 이유가 있었네."
―저거 탱도 못함
―ㄹㅇ 초반에 다 터트려도 후반 가면 짐
―원딜킹팀이 영리하게 잘 사린 거지
―그나마 점멸 들어서 모르긴 한데……
그리고 조합적인 차이.
정글 토이치는 굉장히 극단적인 픽이다.
은신 갱킹의 장점은 확실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가 이만저만 하지 않다.
어떻게든 초반에 터트려야 이긴다.
점멸 대신 점화를 드는 장인 유저가 흔할 정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글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애매해지기 때문인데.
꾸웡!
그 원딜이 물리고 시작한다.
콜라베어의 점멸 뒤집기.
앞포지션을 잡고 있던 크레이브즈가 배달 당하는 최악의 한타가 열리고 만다.
―홀로코스트 ON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인륜적 포지셔닝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일 코틀러!
―코물쥐 폼 바로 돌아왔눜ㅋㅋㅋㅋㅋㅋ
일부 시청자들의 격한 반응을 이끌어낼 만큼.
후반 한타에서 원딜러가 물린다?
그 자체만으로도 게임을 말아 먹을 수 있는 대형 사고다.
꽈아아앙―!
물론 이는 마찬가지다.
똑같이 원딜을 물 수 있다면?
자이스키의 말화이트가 궁극기로 파루스를 박는다.
콰라락―!
타악! 타악!
이를 보란 듯이 피해낸다.
한 치의 당황도 느껴지지 않는 점멸 반응과 물 흐르듯 이어지는 속박&카이팅.
원딜러로서 격의 차이를 과시한다.
크레이브즈는 도망가기 바쁘다.
말화이트는 허무하게 죽고, 콜라베어는 다 맞고 유유히 살아 나온다.
팀원을 죽인다는 점에서 최악의 원딜인 건 맞지만.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미끼 역할로는 훌륭했다.
측면.
난데없이 튀어나온 토이치가 쏘아대는 평타 한 방, 한 방은 정글러의 데미지가 아니다.
「커져라~♬」
타악! 타악!
그래봤자 정글러.
원딜 챔피언의 숙련도가 다르다.
포커싱을 바꾸는 판단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말화이트를 으깨고 패시브로 공격 속도가 빨라진 파루스가 맞딜을 박는다.
그에 맞춰 포커싱 하는 팀원도, 짧게 끊어치는 화살까지.
─오정환님이 학살 중입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쿼드라 킬!
맞았다면 180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한순간의 판단으로 한타의 승패가 갈리는 아찔한 상황에서 결코 꿀리는 부분이 없다.
─펜타 킬!
마무리……!
광역 평타.
위협이 곧 기회가 되어 호응하던 팀원까지 전부 쓸려 나간다.
최악의 구도로 시작됐던 한타를 오정환의 토이치가 단 7초만에 정리해버린다.
―?
―와
―오정환 씹캐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물쥐보다 토이치 잘하눜ㅋㅋㅋㅋㅋㅋ
―딜각 X발
―정글러 펜타킬 처음 보네 ㅎㄷㄷ
.
.
.
채팅창 반응이 폭발적으로 올라온다.
딱 한 끗 차이.
반대가 될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
오쿠의 입장에서는 아니지만.
무시할 만했다.
아니, 무시하는 게 당연했다.
백정 따위가 감히?
토이치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던 게 아니다.
나타나면 그냥 바로 찍어 터트릴 작정이었다.
같은 원딜러끼리도 서열 정리를 해버린 마당에 정글러 따위가 대수로울 리 없다.
머릿속에서 그렸던 한타 캐리가 상대의 판단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이거 아……, 어떡하죠?>
<바론은 일단 무조건 나갔고 용도 우리 게 아니야.>
<이거 솔직히 게임 간 거 같은데;;>
지고 있는 상황은 똑같다.
그럼에도 명백히 침체된 분위기.
단순히 펜타 킬을 허용해서가 아니다. 상대의 캐리력이 상상 이상이다.
원딜 캐리라는 보증을 믿고 버티는 것이 답이 아니게 된 것이다.
'진짜 아 내가 1초만 더 살았어도.'
그렇게 판단할 만도 했다.
정글러들이 가진 피지컬.
백정, 백정 소리 들을 만큼 낮은 것이 당연했다.
캐리력 대결에서 졌으니 충격이다.
그 이전에 걸린 것이 많다. 프로 데뷔의 꿈도, 정의 구현이라는 목표도.
"저런 쓰레기 같은 BJ들한테 지는 게 천추의 한이다……."
<근데 형 BJ는 왜요?>
<자이스키는 니코니코동화라 BJ가 아닐 걸요?>
온갖 패악질과 악행을 일삼는다.
천상계 유저들이 BJ를 괜히 싫어하는 게 아니다.
"패드립 안 해? 탈주도 안 해? 그런 BJ가 있다고?"
<오정환은 원래 롤BJ도 아니고 게임 클린하게 하던데요.>
<서포터분은 진짜 예쁘시고 헤헤.>
"수요 웹툰 헬퍼도 안 봐?"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미워할 이유도 없다.
원딜킹팀의 서렌으로 오정환팀이 승리를 확정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