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정글러의 캐리력.
그런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백정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지.'
숟가락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별명이 생긴 게 우연일 수는 있어도 정착하는 건 필연이 따른다.
특유의 저성장.
갱킹 루트의 비효율성.
그 외에도 정글러는 피지컬이 빈약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승리 축하드립니다! POG도 축하드리고요!>
"당연한 걸 했을 뿐인데요 뭐."
<네?>
똥을 우장창창 싸재끼는 어떤 분으로 말미암았다.
클끼리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전자두뇌의 임팩트가 워낙 컸다.
<정글러 하면 전자두뇌! 피지컬보다는 뇌지컬 쪽에 초점이 맞춰지잖아요? 근데 완전히 피지컬이 폭발하셨어요!>
"요즘 누가 전자 그런 걸 해요?"
<오~ 이제 한물 갔다?>
"전자 어쩌고 쓴 건 급식때 전자 사전이 마지막인데."
그러다 보니 정글러들이 클끼리의 플레이를 목표로 삼았다.
피지컬적인 플레이는 배제된 측면이 있다.
'정글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게 된 거지.'
그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물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시즌2에는 그것도 맞는 플레이였지만 옛날의 정석을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다.
<물론 플레이 방식에 왕도는 없죠~,>
"예."
<정말 예상치 못한! 그러면서도 임팩트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셔서! 시청자분들이 반응이 엄~청 좋아요.>
정글 차이로 게임을 박살 내고 인터뷰를 한다.
팀의 주장으로서 수고스러운 뒤처리가 따른다.
<코물쥐 선수도.>
"예."
<1세트는 자신의 주력픽인 토이치로 캐리를 하고, 2세트는 단단한 느낌의 게임을 했잖아요? 특히 아이템까지!>
1세트 POG인 코물쥐의 입장도 대신해서.
2세트에서는 숟가락이긴 했지만 적어도 똥은 싸지 않았다.
<어떻게 원딜러가 워모프를…….>
"롤챔스 안 보세요?"
<아 보죠. 보고 있는데 왜 그러시죠?>
"얼밤에 거눙 선수가 워모프 많이 가더라고요. 워낙 코물쥐님이 많이 물리다 보니 참고했죠."
<아~! 요즘 메타가 그래요?>
그러기도 힘든 아이템트리를 갔기 때문이다.
프리시즌에 들어 상향된 워모프의 갑옷.
체력을 무려 1000이나 뻥튀기 해준다.
'게다가 체젠이 은근히 좋아서.'
대치 구도에서 상당히 쏠쏠하다. 특히 코물쥐처럼 사고 많이 치는 애들은 잘 컸을 때 3코어로 추천된다.
절대 예능템으로 볼 게 아니다. 그 당시에 특정 메타가 형성됐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반드시 따른다.
<모른다고 시청자형들이 뭐라고 하네. 한 수 배웠습니다!>
"하하."
<진짜 게임 보는 눈이 다르시다~ 그래서 저는 사실 해설을 같이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아무리 내가 회귀를 했다고 한들.
메타는 대회를 참고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기기 위해 누구보다 피똥 싸는 프로들인데 당연하다.
팀원에게 피드백 해주는 내용이라면 더더욱이다.
프로가 했다고 하면 조금 이상해도 받아들인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가 쉽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한 팀의 팀장이기 때문에."
<그렇죠. 경기에 집중하셔야죠. 오늘 경기로 다크호스라는 평가까지 받게 되셨잖아요?>
"근데 저희는 다크호스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승 후보라는 사실을 이제부터 시청자분들에게 각인시켜드릴 겁니다."
<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오정환팀의 팀장 BJ오정환님이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다.
마지막은 뻔한 멘트긴 했지만 필요하다.
롤판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는 말이다.
'예능 시청자만 있는 건 아니니까.'
진지한 게임을 지향하는 이.
오히려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첫 걸음으로서는 충분하다.
러너맨과의 전화 통화가 끝난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의 얼음을 푼다.
―왜 얼려
―아
―드디어 ㅅㅂ
―말좀하자! 말좀하자! 말좀하자! 말좀하자! 말좀하자!
주르륵 올라온다.
렉 때문에 순간순간 멈출 정도로.
대회에서의 활약 후 터져 나오는 반응은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다.
─높은곳으로비상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이이잉 기모링~!
─안전자산ㅈ망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즈●님, 별풍선 2000개 감사합니다!
이걸 이기네 ㅡㅡ
.
.
.
미션풍 또한.
대회 중에는 불가피하게 막아 놓는다.
방해가 되기도 하고, 짓궂은 시청자들도 있다.
'사실 이런 건 다 시행착오를 거치는 건데.'
차후 멸망전 등에서 말이다.
적어도 실력 지향적 대회는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게 게이머로서의 마음가짐이다.
─리오레아재님, 별풍선 5000개 감사합니다!
상대 챌린저인데 대단혀 ㄷㄷ
"5천 개 감사합니다 회장님! 저를 믿고 미션을 걸어주신 시청자분들에게도 승리의 영광을 돌립니다."
―안 믿었는데?
―안 믿었으니까 걸었지 슈발앜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걸……
―전력 차가 이렇게 나는데
물론 대회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팀원들도 생각 이상으로 잘해줬고, 특히 코물쥐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수금하고 있을 테고.'
진지한 스토리.
진짜 팬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대회는 그런 것을 이루기에 최적의 장이다.
─오정환식 RPG 미쳤네 ㄷㄷㄷ
─토이치로 마이플스토리 한 거 맞냐?
─면제겜탑>>>챌린저 10위 원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팀 예능이라 볼 게 아닌데
.
.
.
팬이 아닌 일반 유저들의 민심도 사로잡을 수 있다.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채팅창은 팬들의 반응이지만 커뮤니티는 중립적인 여론이잖아.'
BJ이기 전에 한 명의 게이머로서 듣는 평가.
걸러지지 않은 거친 표현이기에 더욱 와 닿는다.
일부 유저들의 어그로에 과민반응만 안 하면 된다.
─저격) 오정환팀 탑솔러 자이스키 극우 논란. real
"한국이 계속 일본 식민지였으면 더 발전했을 것이다."
"조선 것들은 맞아야 한다."
니코니코동화 생방 中
전형적인 넷우익임
└황국신민 부심 미쳤눜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인간조무사 자이스키
└저 새끼 한국 오면 맞아 죽는다
└진짜 못 배운 티가 팍팍 나네 ㅉㅉ
해야 될 것도 있어서 문제다.
인지도가 올라가다 보면 과거 발언 등이 재점화가 될 때가 이따금 생긴다.
─X물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자꾸 다케시마 발언하는 이유가 있었네!
"그러게요. 이건 좀 충격인데."
―ㅁㅊ
―말로만 듣던 넷우익이네
―일본어라 잘 몰랐는데 그런 말이었어?
―탑똥 지리던데 이번 기회에 빼죠
코물쥐가 데려온 탑솔러.
그와 절친한 친분이 있다는 자이스키가 반인륜적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정말 골치가 아프지.'
마음 같아서는 바로 손절하고, 다른 탑솔러 구해서 대회를 진행하고 싶다.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뿐이다.
탑은 어디서 구해?
대회니까 동의도 받아야 돼.
팀 합도 다시 맞춰야 되고, 코물쥐가 친하니까 편들 수도 있다.
그 본인 뿐만 아니라 팬덤까지.
괜히 애꿎은 나만 한쪽에서 욕을 먹는다.
모두가 만족하는 해결책을 짜내는 게 리더의 고충이다.
"코물쥐님 통역 좀 되시죠?"
<저 페이트 제로랑 강철의 연금술사 3번 봤어요!>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명작이죠."
마찬가지로 동전의 양면.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이어져 있는 걸지도 모른다.
'비정상회담 같은 거 보면 그래서 재밌잖아.'
100% 맞다고 생각한 게 잠자코 들어보면 반대쪽 입장도 일리가 있는 거지.
넷우익 하는 애들도 알고 보면 사정이 불쌍하다.
<제가 방금 말을 해봤는데요!>
"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징병제를 부활시키려 해서 이제 동조 안 한다고 하네요.>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징병제는 못 참지
―신념을 버려?
―5252 네 녀석 '면제'였던 거냐구~?
너무 우울하다.
지구가 멸망했으면 좋겠다.
그것의 찌질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 하나씩은 있어.'
한국의 일&페, 러시아의 스킨헤드, 독일의 네오 나치, 미국의 KKK 등.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외 집단의 극단화다.
막 정치적 신념이 있다!
그런 이유로 사상에 물든 게 아니라 너무 우울하니까 같이 ㅈ돼보자는 심리라는 게 안타까운 점이다.
"자이스키님."
<하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해주셔야 저희와 함께 할 수 있고 상금도 받아가실 수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므니다.>
―?
―왜 너네 땅인뎈ㅋㅋㅋㅋㅋㅋ
―독도 일본 거였누
―너 사실 한국말 알지?
당연하게도 덜떨어졌기에 선동 당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변호사 협회의 넷우익 인실ㅈ 사건 등에서 저학력·무직임이 드러났다.
'자이스키 저분도 스폰지밥 징징이 닮아 가지고 잘 속게 생겼잖아.'
멍청하고 띨빵한 게 죄다.
여기서 망신을 주면 늙어 죽을 때까지 칙쇼오오~!! 하면서 넷우익 한다.
그런 바보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면 큰 문제다.
아주 영락하기 전에 세상이 따듯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본인도 다른 길을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를테면 넷우익 변절자라던지.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서는 커뮤니티에 따로 사과글을 게재하도록 조치 시키겠습니다. 제가 자이스키님의 입장을 지지한다기 보다는 일단 팀장으로서 팀이 터지는 걸 막아야 하니까."
―어휴
―정환이만 고생이네
―진짜 외국인이라서 함 봐준다
―친한파 일본인 됨?
사건·사고라는 게 없으면 좋겠지만 BJ업계에서는 워낙 비일비재하다.
마치 코로나처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최선이다.
'여하튼.'
경기의 승리.
팀원의 성장이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그래봤자 아직 32강에 지나지 않아서 그렇지.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2500개 감사합니다!
일하다 왔는데 진짜 이겼네……
"먹튀님 2500개 감사합니다! 근데 무슨 우승한 것처럼 축하 받고 있네."
―ㅋㅋㄹㅇ
―아무도 이길 줄 몰라서……
―수금 오졌다
―심지어 준우승도 아니고 32강임ㅋㅋㅋㅋㅋㅋㅋ
조금 정신 차린 정도로 잘해진다?
그런 게 될 만큼 만만한 게임이 아니라는 건 롤을 해본 유저들이 더 잘 안다.
'뭐, 알아서 잘해야지.'
잔소리를 한다고 잘해지는 게임이 아닌 것도.
괜히 팀한테 뭐라고 하고, 핑을 찍는다고 없는 실력이 생기지 않는다.
"커뮤니티에서 좌표 찍혀서 온 시청자분들도 많고, 고작 1승인데 너무 떠들썩할 수는 없으니까 이쯤에서 방종각 잡도록 하겠습니다."
롤은 결국 자신이 절실해야 한다.
한 번의 승리로 오만해지지 말자.
그렇게 열성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를 짓고.
―여보
「(정색하는 이모티콘. jpg)」
「(마음에 안 드는 이모티콘. jpg)」
―(♡♡♡ 이모티콘. jpg)
진짜를 하러 간다.
경기 시작 전에 말했던 대로 승리 회식은 나와 여름 둘이서 한다.
'나머지 팀원들이 하고 싶다고 말을 안 했잖아.'
침묵은 암묵적인 동의.
여름의 성격상 정말 싫었으면 똑 부러지게 말한다.
트럼프 지지자인 그녀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나간다.
이번 대회 동안 천천히 말이다.
안 넘어올 것 같으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변화가 설레이게 만든다.
달칵―!
잊고 있던 첫 연애의 느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백 번 찍으면 그만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달음에 약속 장소에 도착한다.
'응?'
그녀가 보인다.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검은 머리의 인파들 속 홀로 하얗고 금발이긴 한데.
"오빠! 오빠!"
"……."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그래."
"어째서 반가워하지 않는 거예요?"
"그렇구나."
다른 계절이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