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C언어
기말고사.
인생 최대의 숙적을 물리친 봄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거 아니었니?"
"요즘은 그렇지만도 않아요~."
―봄이 신났네
―정환이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인데
―아 눈치 없냐고 ㅋㅋ
―이제 봄버지 아니야?
어차피 망한 거 방송으로 돌리고 있다.
여름과의 데이트를 기대하고 온 자리에 봄덩이가 굴러 들어왔다.
'아니, 어쩔 수가 없잖아.'
봄이 데리고 노는 건 둥글레둥글레 하는 거고.
여름이랑 노는 건 샤바샤바 하는 건데 동시에 할 수가 없다.
"맛있니?"
"떡볶이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 거예요~."
"목구멍에 넘어가?"
"그런 거예요~"
대회 끝나고 주린 배를 떡볶이로 채우고 있다.
떡볶이를 안 먹으면 죽는 병에 걸린 웬수 때문에 말이다.
'물론 여자들은 떡볶이 다 좋아해.'
여름이도 잘 먹는다.
미드 탈론 교수도 여성과 떡볶이의 유전적 상관 관계에 대한 새로운 논문을 발표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또 먹고 싶은 거 있니?"
"저 공차 먹을래요!"
"공차? 공차가 뭐야?
"어휴~ 오빠는 그것도 몰라요?"
"……."
―버블티
―그것도 몰라?
―세대 차이 보소ㅋㅋㅋㅋㅋ
―그저 ^틀^
가끔은 교이쿠상이 득세한 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팔지 않는 그런 세상.
─볼빨간갱년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세종대왕님은 공차를 더 좋아하실 거 같은데?
"휴먼, 이해 못할 언어로 지껄이지 마라."
"꾸웨엑……."
그렇지 않은 현재 세상에는 미쳐 날뛴다.
봄이와 방송을 진행하면 불가피하게 만담쇼가 돼버린다.
'어우, 진짜!'
똑같이 떡볶이를 먹더라도.
뜨거워? 내가 호호 불어줄게.
어묵 국물도 떠주면서 교감을 할 수가 있는데.
"호호 불면서 먹으면 안되는 거예요."
"왜? Why?"
"이렇게 양쪽으로 기울여야 돼요. 그러면 떡볶이가 식으면서도 소스가 고르게 묻어요."
"알겠다! 알겠다!"
떡법관께서 하나하나 정정해주신다.
그 이전에 교육에 안 좋은 짓을 애 앞에서 할 수가 없잖아.
'왜 친하게 지내 가지고 증말.'
집들이를 했을 때 연락처를 교환한 모양이다.
사적인 연락을 주고 받으며 친분이 생겼고 오늘 이 자리에도 불렀다.
"봄이야."
"봄이에요."
"아직 방학 안 한 거 아니었니?"
"단축 수업이에요!"
"그래."
"후후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전 이제 자유에요!"
"그렇구나."
―안 좋아하는 거 같은데?
―오빠 데이트 할 거니까 빨리 가라곸ㅋㅋㅋㅋㅋㅋ
―응 봄이 못 막아
―봄이 is free!
고등학교에서의 1년이 그렇게 뜻깊지 않았던 듯싶다.
앞으로 남은 2년은 유익하기를 바랄 뿐이다.
'논 자유의 모미 아냐.'
우리 봄이가 몸도 마음도 쑥쑥 클 수 있기를.
봄버지로서 애타게 바랬던 미래가 어쩌면 코앞까지 다가온 걸지도 모른다.
"가만 보면 오빠는 절 너무 아이 취급하는 거 같아요."
"그걸 이제 알았어?"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 째려본다.
도토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아기 다람쥐의 표정이다. 본인으로서는 나름 필사적인 모양이지만.
"꾸웨엑―!"
"어우, 진짜 식감만 좋아져 가지고."
"아파요. 너무 아파요."
"아프라고 깨문 거야."
"저 이제 단호히 거부할 거예요!"
―단호박?
―봄이 사춘기 왔다!
―머리를 왜 깨물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정상 반응 아님?
다람쥐가 노려본다고 어떻게 되는 맹수는 없다.
이번 만큼은 봄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각오를 단단히 다진다.
"저 강력히 주장할 거예요!"
"학교에서 토론하고 왔니?"
"요즘 수업 분위기가 토론을 장려하고 있어요."
"장려 받고 있구나?"
"그런 거예요."
과도기 정도는 온 걸 수도 있다.
* * *
오정환팀의 승리.
러너리그 32강의 단 한 경기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떠들썩한 화두다.
─원딜 워모프 괜찮은데?
코물쥐 쓰는 거 보고 올렸더니 ㅆㅅㅌㅊ
└워모프 자체가 OP임
글쓴이― 그래도 원딜이 갈 생각은 보통 안 하잖아
└원조는 거눙이지
└거눙 걔는 란두힌도 올리는 탱원딜인뎈ㅋㅋㅋㅋㅋㅋ
과도기.
시즌3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리 메타가 달라져도 익숙한 맛이 좋은 게 사람의 본능이다.
「워모프의 갑옷」 ― 2650 Gold
체력 +1000
5초마다 최대 체력의 1.5%가 회복됩니다.
원딜러가 탱템을?
단단해지면 당연히 좋지만 필연적으로 딜로스도 따른다.
특이한 선수의 기행 정도로 생각되던 템트리가 입증되었다.
─코물쥐 워모프가 신의 한 수였던 게
[콜라베어한테 물린 장면. jpg]
존나 잘 물었는데
원딜 체력이 거의 3천임ㅋㅋㅋㅋㅋㅋ
└탱원딜ㅋㅋㅋㅋㅋㅋ
└심지어 크레이브즈라 방마저도 높음
└어디서 많이 보던 플레인데?
└거눙식 원딜 이니시 ㄷㄷ
무리한 포지셔닝으로 팀원들을 죽인다.
한 끗 차이로 살자, 대신 딜해줄 팀원이 있자 구도가 전혀 달라진다.
엄청 못해 보이던 유저를 잘해 보이게 만들었다.
정말 OP템트리 아니냐?
커뮤니티에서 실효성 논란이 뜨거울 만도 하다.
─원딜 템트리 이거 어떰?
인피 팬댄에 워모프 올리고
하트마에 얼망까지 올려서 시너지 극대화하는 거임ㄷㄷ└원딜이 워트마 ㅅㅂㅋㅋㅋㅋㅋㅋ└딜은 누가 넣고?
글쓴이― 정글이
└아 백정이 넣어주면 ㅇㅈ이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정글 캐리라는 상상치도 못한 플레이를 보았다.
백정이 당연한 시대라도 솔로랭크에서는 이따금 있지만.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
어디까지나 킬을 많이 먹고 설치는 것이다.
그것도 중반까지 징검다리 역할.
한타 캐리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게 세간의 정설이다.
"if( 0x80000000 == ―0x80000000 ) printf("s")else printf("ex")."
―아하!
―확실히 그렇긴 함
―나만 씨언어 알아듣기 힘드냐?
―역시 생각이 깊네
씨지맥의 방송.
오정환팀 경기의 리플레이를 돌려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해서 보고 있는 장면은.
─펜타 킬!
마무리……!
경기에 쐐기를 박은 한타.
토이치의 공격적인 프리딜이 쓸어 담았다.
자칫 반대로 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찔한 상황에서 말이다.
비슷한 구도는 1세트에서도 있었다.
코물쥐의 캐리도 훌륭하긴 했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전혀 다르다는 점을 씨지맥은 캐치했다.
"우리가 덮밥을 먹을 때는 숟가락을 어떻게 써도 비슷한 맛이 나잖아? 그런데 비빔밥을 먹을 때는 항상 숟가락 각도를 바꿔 가면서 비비는 이유가 뭐겠어? 그게 그……, 어떤 느낌인지 알겠지?"
―아 알지! 알지!
―난 참기름 좀 많이 넣는 편임
―원딜 = 숟가락 발언 ㄷㄷ
―그냥 컴퓨터 용어로 말해……
마치 덮밥과 비빔밥처럼 말이다.
비빔밥을 비빌 때는 야채도 숟가락 날로 썰어야 되고,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엎고, 나물도 갈라지게 해야 하는 등 신경 쓸 게 많다.
─포고스턱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점멸로 화살 피한 거 말하는 거임?
"어 음……."
―그거 지리긴 했지
―ㄹㅇ 맞았으면 스택 터지고 죽었음ㅋㅋㅋㅋ
―판단 진짜 침착함
―피지컬이 원딜러급ㄷㄷ
커뮤니티에서도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챔피언은 같지만 포지션이 다르다.
딜각도 훨씬 공격적이었다.
'어째서 비유를 해줘도 모르는 거지?'
하지만 씨지맥이 생각하는 바는 그게 아니다.
그런 뻔한 이야기를 굳이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지 않다.
"애들아 봐봐. 덮밥은 밥 위에 반찬을 얹어 먹는 요리잖아. 따로 비빌 필요가 없다고. 숟가락이 토이치라고 생각하면……."
오정환이 잡은 딜각.
스킬을 피한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진짜는 상대가 자신을 보게 만들어, 능동적으로 딜각을 확장시켰다.
─씨지맥피해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씨지맥님 같은 팀 쏘나인데 들어와 주시면 안되나요? ㅠㅠ
"내가 이 얘기를 왜 하게 됐더라……. 맞다! 게임 터져서 수요 웹툰 헬퍼 보다가 최신 편까지 다 봐 가지고."
―진짜 쏘나임?
―팀원들 불쌍하다
―팩트) 탑만 터짐
―탈주맥……
물론 때때로 사람은 자신부터 돌아봐야 할 때가 있다.
솔로랭크를 하다 여유가 생긴 씨지맥은 두 번째로 고민하던 화두를 방송 주제로 꺼냈다.
'사람들이 자꾸 의자를 냉장고로 보니까.'
단순히 피지컬이 뛰어난 것과는 전혀 다르다.
게임 경험이 받쳐지지 않으면 이렇게 상대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듯이 할 수 없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시청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뿐.
씨지맥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씨지맥피해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지금이라도 들어오면 할 만하다니까요? 방송하는 사람이 아 ㅡㅡ
"죄송 죄송. 다음 판에 잘할게요.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역시 ㅈㅅ맥
―쏘나 더 빡칠 듯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하면 게임을 하라고!!
―ㅈㅅ에 영혼이 단 하나도 안 담겨 있음ㅋㅋㅋㅋㅋ
별일은 아니다.
씨지맥의 방송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 문제의 결론을 내는 것. 케케묵은 원한이나 정의 구현에는 뜻이 없다.
그저 자신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다. 그럴 만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오정환팀은 어떻게 된 게 대진운이
[러너리그 대진표. jpg]
챌린저 원딜팀 잡고 올라왔더니
씨지맥팀을 만나버리네ㅋ
└러너가 일부러 맥였네
└이건 킹리적 갓심 들 만하지ㅋㅋㅋ
└ㄴㄴ 네이버 대진 랜덤 돌린 거라 주작일 수가 없음└씨지맥이 아주 칼을 갈던데
32강의 토너먼트 대진.
올라간다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시기는 조금 앞당겨질 수도 있다.
오정환팀의 예상치 못한 승리가 스노우볼로 굴러간다.
원딜킹팀과 씨지맥팀의 챌린저 접전이 예상됐던 16강이 기묘해졌다.
─오정환팀 전력으로 씨지맥팀 상대가 가능?
미드, 탑이 무려 챌린전데
└원딜킹팀도 잡았는데 뭐
글쓴이― 이번에 둘이잖아
└오쿠=챌린저 10위 씨지맥, 로랜= 챌린저 턱걸이 (탑레딸 X)
└체급은 비슷한데 라인전이 훨씬 강하지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난리다.
오정환팀의 화제성과도 맞물리며 승산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 오가고 있다.
─씨언어마스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진짜 독특한 육식 정글 스타일이던데 ㄷㄷ
"int main(int argc, char** argv) { printf("Hello, world! \n"); return 0;}."
―뭔가 좀 특이하긴 함
―진짜 인섹 스타일도 아니고 클끼리 스타일도 아니고 독특함―예측이 안됨 ㄷㄷㄷ
―차라리 C언어가 낫네
씨지맥으로서는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
그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기 보다는 자신의 마음속 답답함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유저들이 내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는 권위의 법칙이 필요해.'
의자와 냉장고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믿게 만들 수 있는 사람.
롤에서는 단 하나, 바로 실력이 있는 고수 뿐이다.
챌린저로도 부족하다?
러너리그의 우승을 다시 한 번 차지한다.
지난 시즌1의 우승자인 씨지맥은 자신감이 차고 넘친다.
"너희들은 오정환팀과 원딜킹팀의 승부처가 어디에서 갈렸다고 생각해? 피지컬? 피지컬은 원딜킹팀도 충분해. 실제로 팀랭크에서는 압승을 하기도 했고.'
그 시절보다 훨씬 발전하기도 했다.
냉장고에 불과했던 자신이 이제는 명품 의자로서 의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
─매직박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조합 차이 아님?
"조합도 조합인데 바로 밴픽이야. 나는 밴픽만 봐도 게임 승패를 예상할 수 있어. 내가 밴픽만으로 게임 끝내는 법 보여줄게."
―오
―밴픽만으로 그게 가능해?
―일단 게임부터 들어와 주세요 씨지맥님 제발……
―씨지맥의 밴픽이라니 기대된다!
차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방아쇠를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