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무관의 이유
밴픽을 보면 인게임 내용이 보인다.
'그렇게 드문 이야기도 아니지.'
차후에는 일반 유저들도 개나 소나 한다.
게임을 잘 안다면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어나는 참사도 함께 따라와서 문제지.
어흥!
어흥!
씨지맥의 랭가.
최근 탑 1티어 챔피언 중 하나다.
라인 주도권을 잡고 설치기 시작하면 정말 짜증 나는 부류다.
'정글에 기어들어 오기 시작해봐.'
부쉬에서 갑자기 어흥!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심장에 안 좋다.
내가 중심인 우리팀에 카운터가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진!」
「눈도 깜짝 안 한다!」
그전에 조져버린다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가붕이가 점멸Q를 찍고 빙글빙글 돈다.
거슬리는 미니언이 처리되며 논타겟 스킬을 박을 각이 보인다.
터억!
점멸 고치.
1.5초의 스턴 이후 이어지는 풀콤보는 상대로 하여금 생존의 고민을 덜게 해준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3렙 탑갱.
어찌 보면 뻔한 동선이다.
당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씨지맥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오히려 이용했다.
당하는 척 갱승각을 노렸을 거라는 게 대강 추측이 된다.
'부쉬 점프하면서 시간 끌고 아군 정글 불러서 쓸어담는 큰 그림 말이야.'
다른 정글이었다면 가능했을지 모른다.
정글 앨리스를 상대로는 삐끗 하는 순간 그대로 끝이다.
―와
―이걸 이렇게 잡네
―딜 미쳤는데?
―앨리스를 정글로 쓸 수 있었구나 ㄷㄷ
거의 강제적인 갱킹이 가능하다.
이러한 앨리스가 출시 초기에는 탑으로만 쓰였다.
'물론 탑앨리스도 좋아.'
Q짤을 하다가 거미폼으로 맞딜 하는 AP나르 같은 느낌.
Q스킬의 마나 소모량이 증가하기 전에는 충분히 파괴적이었다.
하지만 정글로 쓸 때 진가를 발휘한다.
방금처럼 CC기 연계만 성공하면 3렙부터 갱킹력이 말이 안되는 수준이다.
찰칵!
앞으로는 더더욱.
선취점으로 얻은 400골드를 더하자 살 수 있다.
기동력의 신발은 정글러의 초반 갱킹에 힘을 이빠이 실어준다.
'밴픽을 꼰 것도 꼰 건데.'
가장 큰 건 씨지맥 본인이다.
단 한 번의 실수.
다른 유저들과 달리 엄청난 스노우볼이 굴러가 버린다.
「진영을 무너뜨려라~!」
씨지맥이 원하는 구도와는 전혀 다르다.
가랜이 탑라인 주도권을 잡고 선푸쉬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약간이다.
실력 차를 바탕으로 다시 제 궤도에 올릴 수 있다.
그럴 시간을 주지 않고 아주 박살을 내놓는다.
터억!
퍼엉―!
탑 다이브.
고치를 던지며 폭탄 거미를 푼다.
첫 갱에서 점멸이 안 빠졌고, 체력 관리도 제법 준수하지만.
'그래도 안 돼.'
앨리스다.
다이브 세상에서 제일 잘 치는 챔피언이다.
먼저 포탑 어그로를 끌며 적당히 스킬쿨을 돌린다.
「눈도 깜짝 안 한다!」
거미줄을 타고 솟구치며 바톤 터치.
실력과 머리는 조금 부족할지언정 아이템 하나는 단단하게 간다.
가랜이 든든하게 포탑에 몸을 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흔히 생다이브라고 한다.
거의 풀피인 상대를 잡는 것.
정글 앨리스는 억지갱의 대가로 불린다.
'진짜 억울하지.'
당하는 입장에서 불가항력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똥 밟았다 치고 아군 버스 탈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씨지맥은 다르다. 천재라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그가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터억!
순진하게 걸어서 복귀한다.
수풀에 숨어서 고치.
스턴을 맞히고, 가랜의 QE가 연계되자 그대로 안락사한다.
─오정환님이 학살 중입니다!
어떻게 보면 집요하지만, 어떻게 보면 뻔하다.
심지어 팀게임인데.
잠복해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그걸 하기가 싫을걸?'
천재과의 씨지맥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이렇게 완벽한 게임 구도를 짜서 왔는데 첫 단추부터 무너진다고?
그가 악명을 떨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자기 생각대로 풀릴 때는 하드 캐리하지만, 안 풀리면 완전히 트롤이다.
그냥 탈주.
아니면 10데스, 20데스 박아버리기~.
세밀하게 짜온 전략이 무너진 상실감에서 도저히 헤어나오질 못한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탑 라인.
한국인으로서 기뻐하기 애매한 상황이 연출된다.
6레벨을 찍은 가랜이 점화와 궁극기로 다이브 솔킬을 따버렸다.
―아니 벌써 4데스라고?
―챌린저 맞냐;;
―씨지맥 원래 저럼ㅋㅋㅋ
―ㄹㅇ 씨지맥 방송 보다 보면 나도 챌린저 갈 수 있을 거 같더라
그래서 생긴 별명이 대한민국 3대 탑승러다.
브실골 시청자들도 어처구니없을 만큼 못하는 게임이 흔하게 나온다.
'애초에 씨지맥의 실력이 썩 뛰어나진 않아.'
특유의 뇌지컬.
그리고 꿀챔 아이.
탑앨리스를 비롯해서 그가 발굴한 꿀챔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는 장점임과 동시에 단점이다.
생각대로 안 풀리면 다딱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니까.
내가 경기의 승리를 확신하는 이유다.
찰칵!
채 5분이 안 되어 3킬을 먹었다.
초반이 풀린 앨리스는 그냥 세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터억!
미드 갱킹.
로랜의 트페가 고치를 피하기 위해 와리가리 무빙을 친다.
아쉽게 빗나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오정환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그냥 세다.
QW를 박고 줄타기로 덮쳐 물어뜯자 터져버린다.
상대팀의 요주의 인물 두 챌린저를 전부 말리는데 성공한다.
'게임 끝났어.'
근본력 있는 챌린저들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말려도 꾸역꾸역 성장해서 한타로 비비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골치 아프다.
지난 원딜킹팀과의 경기처럼 말이다.
그에 반해 씨지맥과 로랜.
같은 챌린저여도 뇌지컬로 올라온 타입은 말리는 순간 다딱이랑 별 차이가 없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물론 운영의 변수는 있다.
멘탈이 터진 씨지맥은 그마저도 안된다.
승리를 확신하는 건 괜한 설레발이 아니다.
'선수로서 실패하고 감독으로 재기하게 된 건 미래의 시점에서 보면 필연인 것 같기도 해.'
자신의 생각하는 플레이를 펼치게 한다.
선수로서는 힘들지만, 감독으로서는 그것이 곧 일이다.
약한 멘탈과 지나친 자기 확신이 이따금 발목을 잡는 게 옥의 티일 뿐.
* * *
진행되는 결승전.
아니, 고작해야 16강에 불과하다.
착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관심이 몰리고 있다.
「LOL) 러너맨. 러너리그 결승전 같은 16강! 오정환팀 vs 씨지맥팀 과연 승자는?」
_ ?32, 135명 시청
본방 시청자 3만 명.
다른 방송까지 합치면 10만 명에 가깝다.
러너리그에서 가장 이목을 모으고 있는 두 팀의 경기이기 때문인데.
─씨지맥 10데스 채울 것 같으면 개추 [5] +21
─대회에서도 저 ㅈㄹ하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컨셉이 아니었구나? [3]
─씨지맥 : ㅈㅅㅈㅅ [1] +1
.
.
.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의 재현을 충실히 하고 있다.
팽팽 혹은 씨지맥팀의 압도적인 승리가 점쳐졌던 경기는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흘러간다.
"탑이, 탑이 이거 뭐 어떻게 하냐? 복구가 힘들 것 같지 형들?"
―ㅈ망했지
―아니 좀 사리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솔랭이랑 똑같이 하네
―이거 주작 아님?
어떻게 예상이 불가능하다.
우승 상금 1천만원이 걸린 대회.
프로리그에 준하는 격식이 있는 자리가 예능 버라이어티화 돼버린다.
어흥!
어흥!
부쉬에서 점프 점프.
무서운 호랑이 같아야 할 랭가가 한 마리의 고양이만도 못해 보인다.
미니언과 씨름하며 간신히 라인을 클리어하고 있다.
「돌격!」
그리고 멍청한 가붕이.
쫓아와서 QE 갈리는 순간 죽는다.
랭가는 점프 점프하며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지만.
─자이스키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한 웨이브 먹고 산화하는 게 고작이다.
비슷한 상황이 벌써 수도 없이 연출됐다.
시청자들의 갈고리를 오지게 수집할 만도 하다.
―후지산 믹서기 ㄷㄷ
―한일전을 진다고?
―왜 죽어줘??
―천상계 3대 미스터리= 씨지맥, 토끼인간, 시간끝
의아할 수밖에 없는 판단이다.
말리면 사려야지 왜 계속 가서 죽어줘.
씨지맥의 게임 가치관이 이해 받지 못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씨지맥 말린 판 왜 10데스씩 박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라인 먹고 죽으면 이득이라 함ㅋㅋㅋㅋㅋ
└진짜 미친놈임
└이득이라고? 아닌 거 같은데
글쓴이― 나도 모름ㅋㅋ
└저렇게 해도 챌린저 단다는 게 신기함……
경기력과 별개로 엄청난 화제몰이가 된다.
유명BJ이자 천상계 네임드가 대회에서 트롤 같은 행위를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러한 씨지맥의 스타성 때문에 묻히고 있을 뿐.
일각에서는 이야기가 나온다.
생전 처음 보는 독특한 정글 챔피언 말이다.
터억!
미드 라인.
1차 포탑을 끼고 대치하고 있다. 앨리스의 고치가 라인을 밀던 배인에게 명중한다.
하지만 서포터가 있고, 트페도 사이드에서 윗무빙을 밟는다.
별 탈 없이 지나갈 단순한 해프닝이라 생각했는데.
─전설의 출현!
사라진다.
풀피였던 배인이 그대로 터진다.
뒤늦게 트페가 궁을 켜고, 쏘나가 감성센도를 긋는다.
"오! 오와~!! 배인만 쏙 잡고 빠지네! 아니……."
―뭐야?
―저게 되네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온다……
―앨리스가 챌린저 아님?
허공만을 가를 뿐이다.
거미줄로 솟구쳐 뒤에 있는 미니언을 타고 유유히 빠져 나간다.
정글러의 존재감이 게임을 집어삼킨다.
─코봉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형 게임 스포가 틀렸는데요;;
"그러게……. 그래도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게임이라는 게 말릴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럴수록 쥐구멍이 마려워진다.
호기롭게 게임의 모든 과정을 예견했지만 나뒹구는 건 자신이 되었다.
'…….'
이렇게 일방적인 게임이 될 줄이야.
지인인 씨지맥을 필사적으로 실드 치는 러너맨의 사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거 일단 서렌 치죠.>
<동의…….>
<초반에 너무 터졌어. 뒤집을 각이 안 보인다.>
이길 생각을 하고 있다.
3전 2선승제.
운 나쁘게 한 판 지더라도 다음 판에서 충분히 만회가 가능하다.
그렇다.
무언가 운이 나빴다.
검산을 해봐도 자신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변수가 하나 끼어들었을 뿐.
<우리가 블루 진영 선택하고 형 앨리스 드릴까요?>
"안돼."
<네?>
"첫 판이랑 똑같이 갈 거야."
<…….>
미드&탑을 한 번에 가져와야 성립되는 전략이다.
자신이 푸쉬챔을, 미드가 로밍챔을 해서 적 정글을 말려 죽인다.
일련의 전략이 안 먹힌 건 첫 단추가 꼬여서다.
앨리스의 갱킹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즉, 상상을 못 해서 생긴 문제다.
'상상 속의 앨리스를 추가했기 때문에 문제 없어.'
첫 갱킹만 당하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 수 있다. 그 확고한 신념을 팀원들과 함께 한다.
"내가 셋, 둘, 하나 하면 외치는 거야."
<네, 형…….>
<뭐라고요?>
"우린 틀리지 않았다!"
<<우린 틀리지 않았다?!>>
군필이자 맏형이다.
씨지맥은 팀의 동생들을 이끈다
그런 광경을 못마땅하게 듣고 있는 한 사람.
'미친 새끼들인가?'
챌린저 미드라이너.
로랜은 순수하게 상금을 위해 대회에 참가했다.
전 시즌 우승팀인 씨지맥에게 붙는 것이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승은 커녕 16강에서 떨어지게 생겼다.
한 번 통하지 않은 전략을 자기들은 틀리지 않았다며 또 쓰려는 웃기는 짬뽕 같은 짓을 해댄다.
'LCK 결승에서 그런 짓 해봐. 한 3년은 밴픽 못한다고 놀림 받지.'
러너리그라서 망정이다.
상금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질 수 없다.
어떻게든 반전의 여지가 없나 눈을 부라리던 로랜에게 이블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