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해설 따라잡기
「열정을 잃은 아이의 나이는 스물셋! 진심을 담은 눈빛은 그 빛을 잃었네~」
고막을 타고 명곡이 흘러나온다.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벨소리를 듣게 된 사유는 다름이 아니다.
<여보세요?>
"예, 쪽지 보고 연락드리는 오정환이라고 하는데요."
<아! 잠깐만, 잠깐. 지금 쓰레기 분리 수거하고 있어서.>
스피커 너머로 쓰레기 냄새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갑작스런 쪽지.
흥미를 느껴 전화를 걸게 되었다.
'유명인사지.'
현 시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차후에는 소리만 지를 줄 아는 쓰레기 냄새 나는 아저씨, 그런 인식이 있지만 현재 클끼리는 프로게이머다.
그것도 초―인기팀에 소속된.
롤드컵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둔지도 얼마 안됐다.
그만한 인물이 연락처를 남긴 건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아 바로 전화 올 줄 몰라 가지고. 이야기 좀 길어지는데 괜찮아요?>
"예, 괜찮습니다. 말씀 놓으세요. 평소 팬이어 가지고."
<그래? 그럼 나도 편하지!>
아니나 다를까.
생각보다 조금 일렀을 뿐이다.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보니 당황스럽지는 않다.
<시청자들은 너가 마이플스토리 한다고 단순하게 말하는데 나 정도 경지에 오르면 보이거든.>
"네, 그럴 만하죠."
<너도 나와 같은 맹수과라는 걸.>
"……."
이런 거 말고.
실력에 대한 칭찬.
첫 빌드업부터 뻔한 이야기다.
<빠른 레벨링이 동선 최적화를 했기 때문인데 이건 단순히 갱킹을 안 가는 거랑은 다른 거거든.>
"네, 그렇죠."
<우리 같은 맹수들은 먹지 않으면 미쳐 날뛸 수 없지.>
"……."
동선 최적화.
그렇게 드문 개념도 아니다.
옛날이라고 게임 수준이 낮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클끼리가 왜 전자 두뇌라 불렸겠어.'
여러가지 게임 개념 자체가 선구자들의 플레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클끼리는 나의 플레이 방식을 이해하고 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초식 맹수잖아. 육중하고 무거운. 하지만 너는 날렵한 육식 맹수지.>
"예, 알고 있죠."
<정말 이해하고 하는 말이야?>
"그래서 똥을 우장창창 싼다고."
<…….>
단순한 빠른 성장에 그칠 것이냐.
그 힘을 바탕으로 게임을 캐리할 수 있는 것이냐.
'이론을 바탕으로 창조하는 것은 한 차원 다른 이야기긴 하지.'
아인슈타인이 E=mc²한다고 핵폭탄이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전성기 시절에도 음파로 포킹하던 클끼리에게는 요원하다.
<내가 이거 어디 가서 말하지도 않은 건데.>
"네."
<진지하게 들어. 나는 너가 나를 대신해서 얼밤의 정글러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해!>
자신에게 없는 피지컬.
이를 갖추고 있는 내가 얼밤에 들어와 줬으면 좋겠다.
확정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할 생각은 없지만.'
그도 그럴 게 당연하다.
미래에서 왔는데.
실력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자부하다.
일련의 고민을 해본 적이 있어서 문제지.
"굉장히 영광스럽긴 한데요."
<어, 그래!>
"제가 프로에 뜻이 없습니다."
<…….>
현실적인 이유다.
현재 프로게이머의 연봉?
과장 없이 아르바이트 하는 것보다 못한 수준이다.
'역대급 유망주라 불리던 페이커가 월급 150만원으로 들어갔으니 말 다했지.'
그냥 유망주인 마린은 100만원 받았다.
15년도까지 국내 프로게이머 최고 연봉자가 1억이 안됐다.
<아니, 대체 왜?! 연습생으로 오라는 게 아니라니까?>
"자기 객관화를 했을 때 제가 그 정도는 안되는 거 같습니다."
<아직 다이아 티어라 자신감이 없나 본데……. KT에 코돈빈이라는 애 알지?>
"네, 코가 대단한 분."
<걔는 계정 만렙 찍기도 전에 프로팀 입단부터 했어.>
물론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초대 프로게이머 중 하나로 업적을 남긴다면 재미도 있을 테고, 영광스럽기도 하다.
'그런 사소한 호기심으로 정당한 기회를 빼앗고 싶지 않아.'
내가 회귀를 하게 된 이유.
적어도 프로게이머를 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펑이조나 철꾸라지는 잘못이 있으니까 팬 거고, 선수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잘 생각해봐.>
"아, 예."
<우리 1세대들이 자리 잘 잡아둬서 e스포츠판도 계속 커져. 블루 오션이라니까?!>
결정적으로 시간.
e스포츠판이 커지는 건 16년도부터다.
정말 스포츠 느낌 나게 성장하는 건 18년도부터로 남아도 너무 오래 남았다.
'심지어 프로게이머는 인방도 못하게 하던 시절인데.'
그때까지 폼을 유지한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날고 기는 선수들이 많았지만, 제대로 롱―런을 한 선수가 페이커 말고는 없다.
「이상혁」
5일 전。
빨래하는 법 좀 빨리
엄청난 썩은 내 남
「이상혁」
5일 전。
오늘은 세탁기 돌리는 법을 배웠다
세탁물에서 엄청난 냄새가 동기 부여해줌ㅋㅋㅋ
페이커도 지금 이러고 있다.
어설픈 각오로 할 만한 직업이 아니다.
선점의 이점을 살려서 잘한다고 해도,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다.
"저 말고 씨지맥은 어때요?"
<그 새끼는 스킬을 대충 써서 안 돼.>
나라고 프로할 생각이 없었을까.
거물급 인사에게 직접 듣는 일까진 없어도, 챌린저쯤 되면 한 번씩은 들어본다.
'만만한 직업이 아니야.'
누구에게나 천직이 있다.
나는 내가 걸어가는 길에 자부심이 있고, 다른 사람이 인생을 건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침범하고 싶지 않다.
<당장 정하라는 게 아니니까 한번 고민해봐…….>
"예, 뭐 알겠습니다."
그러한 속마음.
굳이 말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잠깐 정도면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다소 남는다.
「벌써 가을이구나. 니가 나를 떠난 그 가을~.」
다른 쪽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 * *
러너리그.
수많은 BJ들과 천상계 네임드들이 참가한 역대급의 아마추어 리그다.
─LCK vs 러너리그 시청자 현황. Real
[지난 주 LCK 시청자 8만 명. jpg]
[러너리그 16강 시청자 10만 명. jpg]
ㅈ씨케이 발라버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지맥팀 경기네
└아니 씹 진짜 LCK 이겼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저랑 최고를 비교하면 어캄?
└아마리그가 프로리그랑 비빈다는 것 자체가 미쳤지!
실제 프로 리그에 비견되는 인기를 떨친 만큼 말이다.
시즌1 이상이 예고된 시즌2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워낙 걸출해서.
경기 수준의 생각보다 높아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건 신선함이다.
─요즘 LCK 밴픽 특. ㅇㄱㄹㅇ
블루팀 이블퀸/트페/다이아나 밴
레드팀 초가트/울라프/랭가 밴
여기서 1~2개 바뀌고
남은 걸로 서로 조합 가져감ㅋㅋㅋ
└진짜네
└웃픈데 ㄹㅇ임
└요즘 맨날 똑같은 것만 나오더라
└난 그래서 러너리그 봄ㅋ
프로 리그.
항상 비슷한 챔피언만 나오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안정감을 지향하는 대회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AP마이 같은 게 한 번 나오면 빅이슈가 된다.
그런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일어나는 고수준의 아마추어 리그는 시청자들의 니즈를 제대로 저격했다.
─코봉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형 상대 텔 있어서 안 싸운 거예요;
"아 그래? 못 봤지~! 지적 고맙다 코봉아."
―싸우면 안되는데 자꾸 싸우래ㅋㅋ
―인정하는 모습은 좋은데……
―답답하네
―골드가 해설하니까 그것도 못 보지 ㅉㅉ
충신지빡이님이 매니저(빛돌)에 의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한계는 있다.
캐스터와 해설, 그리고 옵저버까지 각각 기용하는 프로리그와 달리 중계 수준이 질적으로 떨어진다.
'아, 진짜 힘드네.'
러너맨도 일부 시청자들의 불만을 인식한다.
아니, 빙산 위의 일각이다.
커뮤니티쪽으로 가면 더 심한 이야기도 굴러다닌다.
─러너리그는 진짜 못 보겠네
아니 경기는 재밌는데
웬 브실골 새끼가 꿱꿱 꺼려
경기 맥은 하나도 못 짚으면서
└우리 코봉이 이해 좀……
글쓴이― 이해는 X발ㅋㅋㅋ 느그 주인 새끼 감탄사만 하던지 하라고 해라 └코 큰 애들은 하나 같이 이상하다니까?
└그 관상
해설 때문에 경기를 못 보겠다!
러너맨의 입장에서는 가슴이 찢어진다.
선수들 경기력도 좋고, 시청자들 반응도 좋은데 나 때문에?
─우리집강아지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러너형 많이 발전하고 있어요 기죽지 마세요!
"고맙다 강아지야. 형들, 저도 LCK 보면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노력할 테니까 이해 좀 해주세요."
―어떤 놈이 뭐라고 했어?
―러너리그 열어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지
―가끔 심하긴 해ㅋ
―생뚱맞은 소리만 하지 말자 형
콤플렉스가 생긴다.
이는 곧 스트레스, 해설을 할 때마다 신경이 안 쓰이기도 힘들다.
'근데 진짜 내가 잘못인가?'
물론 LCK 해설들은 잘한다.
가끔 강민이 이상한 말실수를 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들을 만하다.
나도 그 정도는 하지 않나?
러너맨의 입장에서도 억울하다.
자신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데.
딩동댕~ 딩동댕♪
그렇기에 같이 진행하고 싶었다.
최근 인기가 수직 상승 중이며, 러너리그의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가 되었다.
―오정환이 왜 나와?
―뭔데
―몰래 온 손님ㄷㄷ
―러너리그에서도 보라 찍누ㅋㅋㅋ
아니, 명실상부한 우승 후보.
그렇게 불러도 할 말이 없을 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오정환팀의 리더 오정환이 러너맨의 스튜디오에 찾아왔다.
* * *
이전부터 권유는 있었다.
자신과 같이 해설을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입장상 거절하긴 했는데.'
선수로서 참가하고 싶다.
그런 표면적인 이유와 기성BJ로서의 가오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한사코 벽을 쌓겠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은 시청자형들도 익히 아시는 오정환님과 같이 해설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정환입니다."
―올
―코봉이보다 코 작네
―아니 갑자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만 하는 건가요??
러너맨의 연락을 받고 왔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모양새가 충분히 산다.
'더 이상 굴러온 돌의 입장이 아니잖아.'
방송은 이미지가 9할이다.
특히 대기업급 BJ들은 더욱.
본인이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청자들이 만드는 부분이 더 크다.
─강타의신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위대한 정글러 오정환 센세네 ㄷㄷ
"썩 마음에 드는 별명은 아니네요. 다른 걸로 부탁드립니다."
"아니, 왜? 멋지기만 한데.'
―갓정환 ㄷㄷ
―얼마 전까진 러너보다 티어 낮았는데
―러너= 1년 골드
―준우승만 할 것 같은 별명이긴 하네
최근 나의 위상.
높다고 말해도 될 지경이다.
비교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특성상 파급 효과가 크다.
'근데 이런 자잘한 승리 한 번은 금방 꺼지지.'
12시만 되면 초기화되는 분도 계실 정도다.
무의미한 과거딸 보다는 확실한 이미지를 정착해나가는 게 옳다.
─더블 킬!
트리플 킬!
고전파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경기 중계.
익히 알고 있던 대로 어버버한다.
라인전 중에는 그래도 침착하게 풀어 이야기하던 러너맨이 공황장애가 온다.
'이렇게 한타 구도가 되면 뭐부터 말해야 될지 짚기 힘들긴 해.'
특히 티어가 낮다면 말이다.
낮다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우선 순위를 몰라 중요 장면을 캐치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레드가 졌는데?
―원딜이 끊겼는뎈ㅋㅋㅋㅋㅋㅋㅋ
―한타 볼 줄 모르네
―역시 브실골 ㅉㅉ
일부 시청자들의 반응이 안 좋다.
본방에서도 이렇다는 건, 커뮤니티쪽은 볼 것도 없다.
러너맨이 가지고 있을 고민이 백분 이해된다.
그 점을 해소해주고 싶다.
해설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너무 진지하게 각 잡고 하면 오히려 안 좋다.
"괴물 나라는 괴물!"
일단 목청껏 소리치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