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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285화 (285/846)

285화

점멸은 국 끓여 먹는 용이 아니다.

'존나 당연한 소리고, 핀잔 주는 소리로도 들릴 수 있는데.'

의외로 상당수의 원딜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한타의 피날레?

긴급 탈출 버튼?

점멸의 의미를 이 두 가지로 제한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원딜러가 가진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이~쿠우!

바텀 갱킹.

1차 포탑 옆 벽을 와드 방호로 넘어간다.

방심하고 있던 적 미스 포텐을 뻥~ 차버린다.

샤악!

슈우웅~!

아군이 호응한다.

애씨의 다발 사격과 얼음화살.

배달된 미스 포텐을 향해 정확히 쏘아진 건 맞지만.

<아 이게 안 맞아? 이걸 살아 돌아가네…….>

"님이 살려준 거잖아요."

<아니, 진짜 선 넘네. 이것까지 내 탓을 한다고?>

닿기 직전에 점멸로 탈출했다.

코물쥐와의 듀오. 생각했던 대로 썩 순탄하지 않다.

'당연히 점멸궁 박았어야지.'

탑이나 미드 같은 경우는 앞플래시 호응하는 일이 드물지도 않다.

아니, 일정 이상 구간에서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님? 오히려 안 하는 사람이 멍청하고 띨빵한 취급 받는다.

<점멸 뺐으면 됐잖아! 너무 억까야.>

"그럼 저는 갱 실패하고 정글 돌러 가요?"

<가세요.>

"X발 새끼야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컨셉으로 싸우는 거임?

―이건 찐텐이다

―정글러면 알지 ㄹㅇ

유독 원딜러들이 선점멸 쓰면 큰일 나는 줄 안다.

생존 본능 이전에 너무 지나치게 아껴버린다.

'원딜 왕자라는 말이 왜 있겠어.'

자기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니까.

그 연장선이다.

솔로랭크에서는 별일 아닐 수 있어도 팀게임에서는 상당히 큰 문제다.

『패배!』

아니, 그냥 솔랭에서도 문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바깥에서도 존나 주르륵 새는 법이다.

<이걸 탑이 터져서 지네~ 우리팀 탑은 맨날 져. 이 빌어먹을 상체 게임!>

저런 멍청하고 띨빵한 소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처음부터 바텀갱이 성공했다면.

"님아."

<네.>

"그때 앞점멸로 호응해서 미포 죽이고 서포터까지 다이브 쳤으면 바텀 먼저 터트릴 수 있었잖아요?"

<아니, 지난 일 가지고 너무 그러네.>

"개새끼야아―!!"

―코새끼야!

―정환이 왜케 빡침ㅋㅋㅋㅋ

―컨셉인지 아닌지 모르겠네

―이 듀오 좀 매콤해

아예 다른 구도가 그려졌을 것이다.

이게 숟가락들이 게임 이해도가 덜떨어지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정글러가 갱킹 가주는 게 당연한 줄 알아.'

턴을 얼마나 크게 소모하는 건데.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후반에 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딜러들은 갱호응이 밋밋한 경향이 많다.

보통은 서포터가 호응해서 상관없지만, 간혹 그것이 불가능할 때도 있다.

코물쥐의 부족한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그거 있잖아요. 이걸 점멸까지 써서 잡네를 해야 한다고요."

<님이 그럼 말을 해요. 쓰라고.>

"상대가 점멸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해봐야 아는 거지! 제가 님 엄마예요?"

오바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렇다.

점멸까지 써서 개억지로 잡는 것도 킬각의 범주다.

'특히 팀게임은 그래.'

상대가 작정하고 사리면 갱각이 안 나온다.

어쩌다 한 번 나왔을 때 잡아야 되는데 그때 호응이 아쉬우면?

방금 같은 상황이 더 심각하게 생긴다.

사실 미드나 탑이면 갱호응 빡세게 해주세요, 라고 하면 알아듣는 이야기다.

─롤방큰손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싸우지 말고 cex해!

"500개 감사합니다! 현피각 날카로웠는데 봐줄게요."

<이이잉~ 기모링~! 흐에!>

―화해풍 달달하네

―아ㅋㅋ 별풍 받으려는 쇼였던 거임

―친하니까 싸우지

―안 친하면 싸우지도 못함ㅋ

그것이 안되는 숟가락.

듀오를 하며 개념을 때려 박고 있다.

우리팀의 특성상 더욱 필요한 플레이다.

'기왕 벤치마킹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고스트 선수의 플레이 말이다.

스노우볼을 굴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팀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롤방시청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는 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겜잘알이네

"저는 원래 이래요. 메이플할 때도 공대원들한테 존나 X랄하잖아요."

미드 탈론 교수님의 저서 '담원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는가?'를 참고했다.

그리고 이런 플레이가 고스트가 최초도 아니다.

'거눙 있잖아.'

그 땅땅땅빵?

원딜탱이나 한다고 우습게 보기 쉽지만, 운이 받쳐졌더라도 실력 없는 성공은 불가능하다.

원딜러가 어그로를 끌었다.

팀이 캐리하기 편한 환경이 갖춰졌다.

차후의 시선으로 보면 그러한 해석도 된다.

[07:05] 코물쥐 (토이치)님이 적이 사라졌다고 알림!

[07:05] 코물쥐 (토이치)님이 적이 사라졌다고 알림!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고스트형 원딜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 바텀 차이!"

<바텀 웨이브 보세요. 님이 빼야지!>

"오케이. 그럼 내가 사려주면 어떤 이득이 오는지 명쾌하게 설명을 해봐요."

<…….>

일반적인 숟가락들과 달리 말이다.

미드나 탑이면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원딜러이기에 난이도가 요구된다.

'그래서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경우가 많지.'

아 됐고ㅋ

난 피지컬 개쩌니까 나만 크면 이김.

그런 캐리가 안되는 코물쥐는 남들보다 영리하게 플레이하는 길밖에 없다.

"지금 님이 안 와서 레드랑 칼부까지 다 먹히고 있거든요? 제가 쫄쫄 굶으면서 님의 시간을 벌어줬어요."

<죄송합니다…….>

"아니, 뭐라 하는 게 아니에요. 아군한테 사리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솔랭 아니잖아요? 팀게임이잖아요?"

<그, 그렇죠.>

"근데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지. 님이 가볍게 뱉은 한 마디의 무게를 알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에요."

<…….>

―존나 패네

―애 울겄다 울겄어 ㅠㅠ

―백업 한 번 안 갔다고 오체분시 당하누

―서럽다 코물쥐!

스스로 사고해야 한다.

상황에 맞춰서 플레이하는 게 아닌, 상황 자체를 예상하고 한발 빠르게 움직인다.

이전부터 요구했던 능력이다. 결승전에 앞서 더욱 성장시킨다. 본인도 그런 시련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하게 타박한다고도 보일 수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의 노력도 없이 무언가를 잘해진다?

인생을 이세계 환생한 것처럼 쉽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밖에 안된다.

현실에서는 당연히 일어날 수 없다.

힘들더라도 보람이 있는 길을 원한다.

코물쥐의 바람을 들어주며 결승전 준비를 마친다.

* * *

러너리그의 결승전.

「LOL) 러너맨. 러너리그 결승! 고전파팀 vs 오정환팀」_ ?51, 892명 시청

시작하기가 무섭게 시청자가 몰려든다.

LCK 결승전에서 언급된 파급 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시청자형들도 아시겠지만, 아니 모를 수가 없겠지만! 얼밤의 주장이자 정글러이신 클끼리님을 특별히 모셔봤습니다."

"안녕하세요 클끼리입니다."

―형이 왜 여기서ㅋㅋㅋ

―에욱

―쓰레기 냄새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그 당사자.

러너리그의 해설로 초청되었다.

파프리카TV에서 방송을 했던 그이기에 인방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다.

'에욱.'

초창기에는 그 수익으로 팀을 먹여 살렸을 정도다.

롤판이 커지고, 정식 후원을 받게 됨에 따라 활동에 제약이 생겼지만 딱히 꺼려하는 것은 아니다.

─LCK시청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리심 왜 그따구로 했음? 트롤킹 왜 했음?

"한 가지씩 물어보세요 시청자 형들;;"

"저도 그따구로 하고 싶지 않았고요. 트롤킹은……, 10개로 입을 열고 싶진 않아요."

―ㅋㅋㅋㅋㅋ

―방송을 아누

―클끼리 방송도 재밌게 봤었는데

―누가 1000개 정도 쏴봐!

언제든 복귀할 의사가 있으니까.

그리고 해설쪽도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에욱.'

육식 정글 플레이가 실패했다. 리심도 트라우마 같은 게 남았다. 더 이상 대회에서 고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영리한 토끼는 굴을 여러 개 판다.

LCK에 해설자 수요가 있고, 간접적으로 권유도 받았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선수가 아닌 해설자로서 마음 좀 편하게 리심을 보고 싶어서도 있습니다."

"아~ 그 리심!"

"웃어?"

"아뇨;"

―클끼리가 형이누ㅋㅋㅋㅋㅋ

―클끼리 실물 포스 있네

―중앙대 일보가 우스워??

―그저 ^틀^

아마추어 리그라고는 해도 경험치는 쌓을 수 있다.

더불어 지명도를 올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에욱.'

본의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플레이에서 야기된 관심이다. 엄청난 이목이 쏠리고 있고, 놓치기에는 아까운 기회다.

궁금하기도 하다. 평범한 무대가 아닌 부담감 넘치는 자리.

오정환이 그런 슈퍼 플레이를 또다시 해낼 수 있을지.

뚜우― 뚜우― 뚜우―

그리고 고전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프로씬에서도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역대급의 유망주다.

경기 시작에 앞서 전화가 연결된다.

클끼리도 팀차원에서 그를 영입하려다 실패했기에 관심이 크다.

'이미 이룬 팀에 관심이 없다는데 어떡해.'

시즌2 말.

갑자기 랭킹 1위로 치고 올라왔다.

프로 선수 부캐라는 게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신인 아마추어.

영입 경쟁이 벌어지게 된 건 필연이다.

그런데 명문팀들의 제안을 다 걷어차고 신생팀에 들어갔다.

"여보세요? 고전파님!"

<어……, 안녕하세요. 고전파입니다.>

―와 ㅁㅊ

―고전파! 고전파! 고전파! 고전파! 고전파!

―찐전파임?

―대박이네 목소리

클끼리도 통화를 하는 건 처음이다.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는 부분이 많은 유저다 보니 궁금하다.

"고전파님, 저 러너맨님이 아니라 클끼리거든요?"

<네.>

"러너리그에 출전하셨네요? 제가 알기로 스프링 시즌부터 LCK 뛰신다고 들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드문 일이다.

자신 정도의 거물을 만나면 대부분의 신인들은 목소리톤부터 확연히 올라간다.

'요즘 애들이 원래 패기가 넘치나?'

일전의 오정환도 그렇고 말이다. 아니면 자신의 위상이 떨어진 방증일지도 모른다.

씁쓸함을 삼키며 통화를 이어나간다.

"저도 소문을 듣고 결승전 해설로 오게 된 거거든요? 거의 압도적으로 올라오셨다고."

<네.>

"양학이라는 말도 있던데 원하시던 재미를 좀 보셨나요?"

<노잼이네요.>

"……."

―노잼~

―ㄹㅇ 급식 말투네

―팩트) 급식이다

―아ㅋㅋ 솔랭에서 보여주던 패기 어디 갔냐고!

보여주고 있다.

아마추어 대회라고 해도 절대 쉬울 수가 없다.

일각에서 LCK보다 수준이 높다는 소리가 농담으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예, 러너맨입니다!"

<네.>

"이제 곧 결승전에 임하시는데 특별히 준비하고 오신 전략이 있으시나요?"

<없습니다.>

"그래도 따로 연습한 게……."

<평소 하던 대로 했던 것 같아요.>

아무런 연습도 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

사실이었다는 오피셜이 본인의 입에서 나오며 채팅창은 물론 커뮤니티까지 불타오른다.

─고피셜) 러너리그 노잼 [3] +10

─결승인데 연습을 안 했눜ㅋㅋㅋㅋㅋㅋㅋㅋ

─컨셉임? 왜 저러는지 아는 사람? [7]

─연습 안 한 경기력이었어……? +1

.

.

.

프로씬에서만 주목 받는 게 아니다.

솔랭에 민감한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도 스타급 인지도를 지녔다.

그런 고전파의 폭탄 발언.

어쩌면 결승전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

물론 가장 당황한 건 러너맨이다.

베팅을 했는데 경기를 뛰는 당사자가 의욕이 전혀 없어 보인다.

"저희 프로들 중에서도 러너리그를 보는 애들이 있는데."

"아, 네!"

"고전파팀은 거의 프로에 준하는 취급이라 경기력에 자신이 있을 만도 해요."

"아~ 그렇군요!"

하지만 고전파다. 경기력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직 프로의 입에서도 인정의 목소리가 나왔다.

「벌써 가을이구나. 니가 나를 떠난 그 가을~.」

그 상대에게 전화가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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