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고전파를 이기는 법
LCK에 준하는 관심이 쏠리게 된 러너리그의 결승전.
그 부담감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없다.
<오정환님도 오정환님이지만 여름님이 정말 주목 받고 있잖아요?>
"예."
<근데……, 아이디가 여름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시청자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고 있습니다!>
"그거요? 처음 한국 왔을 때 한국말은 말끝에 '다'를 붙여야 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
―진짜로?
―여름이다가 아니라 여름다ㅋㅋㅋㅋㅋ
―외국인들 한국말 들으면 '다'밖에 안 들린다고 하더라 ―쓰울말은 말끝만 올리면 되는 거 모르∼니?
그렇다고 어금니 꽉 깨물고 다큐를 찍을 필요도 없다.
팀원들의 긴장도 괜시리 오르고 말이다.
'사실 나는 별로 상관없는데.'
그런 게 좀 있다.
BJ들의 직업병 같은 느낌이다.
스탠다드, 평소의 상태가 관심을 받는 것이다.
관심을 안 받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실제로 인기가 떨어진 BJ들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이 직업병 탓이 적지 않다.
<상대가 고전파에요 고전파!>
"예."
<저희가 방금 시청자 투표를 했는데 고전파팀에게 거의 9할이 나왔더라고요. 그 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심을 받고, 부담감을 짊어지는 것이 좋다.
상대팀의 말도 안되는 전력. 세간에서 쏟아지는 의심.
'그 정도는 있어야 재미가 있는 거지.'
타고 났다기 보다는 단련된 강심장이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져도 딱히 쪽팔린 일이 아니다.
딱 1년만 존버하면.
고전파가 LCK 먹고 롤드컵 우승할 텐데 그때쯤 되면 쪽팔린 게 아니라 방송 콘텐츠 하나 나오는 거지.
"저희는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연습을 안 하셨다고 들어 가지고. 저희는 연습을 빡세게 했기 때문에 무조건 이깁니다."
<근데 그러고 지면 더 쪽팔릴 수도 있는데. 아, 아닙니다!>
"……."
―진짜 연습도 안 했대ㅋㅋㅋ
―오정환팀은 영혼 갈아 넣었지
―연습까지 했으면 밸붕이야……
―졌잘싸만 하자 형
당연하게도 이기는 편이 더 좋다.
승산을 논하는 건 BJ로서의 쇼맨쉽이나 허언증이 아니다.
'진짜로.'
팀게임에서 연습의 유무는 엄청나게 크다.
단순히 무력이 센 다섯이 뭉친 것과, 하나의 팀은 전혀 다른 것이니까.
<오정환님, 저 클끼리거든요?>
"예, 들었습니다. 결승 해설로 오셨다고."
<다름이 아니라 화제가 됐던 리심 플레이에 관해서…….>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팀이 가진 특수성.
정글러인 나의 캐리 지분이 높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말이다.
'상대 정글이 잘할수록.'
라이너 차이를 이용할 줄 안다.
정글은 라이너빨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되는 상황이 나온다.
─숙성도미회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클끼리 쿨한 척하더니 겁나 의식하나 보네ㅋㅋㅋㅋㅋ
"현역 프로한테 칭찬도 듣고 영광이네요."
―리심 포킹챔 아니었냐고~
―진짜 프로도 신기하나 봐
―갓정환 리심은 ㅇㅈ이지
―에욱
정글 캐리의 근원은 성장이다.
라이너가 버티지 못하면 정글 시야를 먹히면서 갱킹은 커녕 정글링조차 고통 받는다.
못 큰 리심으로 슈퍼 플레이?
불구덩이에 섶을 지고 뛰어드는 꼴이다.
불나방처럼 발차기 자세 그대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대회에서 하기에는 리스크가 큰 플레이인 게 맞잖아요?>
"그렇죠."
<그런 슈퍼 플레이가 또 나온다면 저는 오정환팀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게임이란 것이 해봐야 안다.
아무리 그런 말이 있어도, 솔랭 딱 돌렸을 때 아군 아이디가 믿음직하지 못하면 닷지 마려운 게 사실이다.
'최악의 상황도 상정을 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어지간한 상황은 전부 연습해두었다.
그간의 노고가 빛을 발할 순간이 왔다.
"우리 한번 화이팅 해보죠."
<이이잉~ 기모링~!>
<ファイト!>
아닐 수도 있고.
* * *
오정환팀의 상황.
고전파팀에도 그대로 전달이 되고 있다.
<상대팀이 엄청 연습을 해왔다는데? 특히 리심은 클끼리도……, 아니 클끼리 선수도 격찬을 했대.>
<어디서 들어 그런 걸?>
<내 시청자들이 말해주고 있어.>
관심은 없지만 말이다.
디스코드.
고전파팀 거의 대부분이 모여 회의하고 있는 내용은 다름이 아니다.
「나 이거 이기면 부상으로 주는 그래픽 카드 주면 안됨?」
<난 상관없어.>
<되팔렘 할 것도 아니고 나도 딱히? 근데 왜?>
「롤할 때 렉걸림」
<어휴 급식 새끼.>
<렉걸리는 컴퓨터로 랭킹 1위는 잘도 찍었네>
「ㅇㅇ」
러너리그의 우승 상금.
총 1천만 원으로 n빵 하면 각자 200만 원 가량을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대회의 MVP에게는 최신 그래픽 카드가 쥐어진다.
─롤시청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고전파님은 원래 과묵하시나요?
<아 걔는 디스코드 안 해요. 마이크가 없대.>
―그냥 겜만 하는 거임?
―그래서 채팅으로 얘기하는구나
―연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솔랭 마인드네ㅋㅋ
―누가 하나 좀 사줘
이미 우승 이후를 논하고 있다. 세간의 숱한 화제에도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팀의 분위기.
'당연한 거지.'
끠글렛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은 대한민국에 50명밖에 안되는 천상계 중의 천상계 챌린저다.
같은 챌린저가 아니면 경쟁자로조차 보지 않는다.
이 여유로움이야말로 강자에게만 허락된 품격.
─매드무비충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리심 한타때 원딜만 집요하게 노리던데ㅋㅋ
<…….>
같은 챌린저, 아니 프로게이머도 당했다.
로쿠도쿠가 4강에서 떨어진 건 끠글렛도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기껏 세대 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려고 했는데.'
자신의 실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
프로게이머로 데뷔해 전부 씹어먹을 생각이다.
러너리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상대가 현역 프로 선수라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개맥주팀을 떨어뜨리고 올라온 오정환팀도 나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들었다.
<우리 뭐 밴할 거야?>
<그냥 OP 위주로 잘라. 우리 안 하는 거.>
시작하는 첫 번째 세트의 밴픽.
팀원들의 대화를 듣고도 묵묵히 있는다.
자신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방송도 안 하고, 상대팀 정보에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로쿠도쿠는 퇴물이라 반응 못 하는 거고.'
기묘한 플레이를 한다고 들었다.
점멸로 차서 당구를 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래봤자 자신이라면 충분히 반응할 수 있다.
반응만 하는 순간 역대박이다. 리심의 앞점멸은 패착이 되고, 자신은 신의 반응 속도라 칭송 받는다.
─소환자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한 미래.
끠글렛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반쯤 기정사실화되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떨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라있다.
'라인전도 진짜 팰 맛 나는 새끼고.'
코물쥐.
아주 악명이 자자하다.
지건 한 대 날리고 싶다는 지인을 주위에서 한 트럭 봤다.
고귀한 원딜러의 위신을 손상시켰다.
서포터를 도구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광대 같은 놈이 버스 타고 결승까지 올라오다니.
데구르―!
챵!
대신하여 날려준다.
끠글렛의 배인이 사선으로 구르며 토이치의 콧구멍에 화살을 박아 넣는다.
<이거 좀 더 패면 다이브각 나올 것 같은데?>
<쳐줘?>
<우리끼리도 칠 수 있긴 해. 오면 무조건 잡고.>
그 의미는 시답잖은 다딱이들의 라인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고 있는 게임은 같지만, 보고 있는 시야는 완전히 다를 게 분명하다.
'지건 딱 대!'
자신의 지건이 가장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킬각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포탑에 숨어 콧구멍만 벌렁거리고 있다.
<뭐지? 없는데?>
<은신해서 쥐새끼 마냥 숨어있겠지. 다이브각이나 좁혀.>
대포 웨이브를 몰아서 다이브각을 잡는다.
급습하기 위해 서포터인 꽃게랑이 삼거리를 빙 돌아온다.
'어?'
그런데 없다.
핑크 와드까지 박았는데 말이다.
틀림없이 포탑 근처에 숨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당했습니다!
의아함이 머릿속에서 스침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알림이 떠오른다.
그것도 미드에서.
고전파의 산드라가 갱킹을 당해 죽었다.
<아 봐주고는 싶었는데 안됐다. 언제 서포터까지 올라왔대?>
아니, 3인 갱킹.
팀의 정글러 뱅기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신들이 바텀 다이브에 몰두하는 사이 적 서포터 광우스타가 어느새 올라가 버렸다.
'…….'
슬금슬금 그림자를 비추던 토이치는 아예 코빼기도 안 보인다.
대포 웨이브를 포탑에 고스란히 박을 수는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뿐이다.
「까꿍! 숨어있는지 몰랐지?!」
얄밉게 튀어나온다.
은신으로 숨어 경험치를 먹고 있던 모양이다.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끠글렛의 이성의 끈이 끊어진다.
'이 새끼가?'
툭 치면 죽을 체력으로 줄타기를 하다니.
포탑에 숨어 콧구멍 벌렁거리는 것밖에 못 하는 놈이 가소롭기 짝이 없다.
<죽일까?>
<참아!>
꽃게랑은 이성적으로 말린다.
하지만 이미 들을 상태가 아니고, 끠글렛의 눈에는 토이치의 코만 보인다.
쿵!
물론 안다.
광우스타가 미드에서 내려왔다.
날카로운 뿔로 자신을 띄우려고 하지만.
'지건 딱 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앞점멸 반응으로 피한다.
토이치가 깜짝 놀라 점멸로 도망가지만 배인은 추격전의 귀재.
─적을 처치했습니다!
범인을 쫓을 때 이동 속도가 상승한다.
오정환팀의 범인이라 할 수 있는 코물쥐에게 지건을 박아 넣는다.
'이게 바로 Q평E평이야 이 새끼야.'
자신도 포탑 공격에 맞는 위험한 상황.
선고로 밀며 평타를 한 방 더 쏴 은탄 3타로 마무리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깔끔했다.
피지컬을 과시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뇌지컬적으로는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아군이 당했습니다!
미처 시선이 쏠리지 못했다.
광우스타와 뒹굴고 있을 꽃게랑이 죽었다는 알림.
'아니, 왜?'
포탑에 한 다섯 대 맞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런 실수를 할 티어대가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오정환의 리심.
천천히 사신처럼 거리를 좁혀온다.
정확하게 쏘아진 음파가 혹시 모를 포탑 처형을 막는다.
<쟤네 그대로 내려올 수 있어서 안 하는 게 좋았는데.>
<…….>
숟가락인 끠글렛은 몰랐다.
꽃게랑이 만류하기도 전에 이미 몸이 움직였고,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X발.'
이성적이지 못한 판단이었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토이치의 시체가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찰칵!
하지만 패널티.
그 정도로 생각한다면 별 것도 아니다.
킬 한두 개 내줬다고 자신과 녀석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
'챌린저와 너희는.'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다.
끠글렛은 아이템을 사고 비장한 각오로 복귀한다.
라인전을 박살 낼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데구르―!
챵!
실제로 그렇게 된다.
토이치가 킬을 먹은 것도 아니고.
실력 차이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당연하다.
<아 진짜 라인전 지루하다 지루해. 샌드백처럼 처맞기만 해서 원딜로 탱템 올리는 건가?>
―ㅋㅋㅋㅋㅋㅋㅋ
―실력 차 심하긴 하네
―배인으로 토이치를 ㄷㄷ
―소가 너무 노는데?
챔피언 또한.
광우스타를 보고 뽑은 배인이다.
3타의 고정 피해는 탱커를 잡는 특효약일뿐더러.
쿵!
투웅!
일부러 WQ각을 내주고 선고로 밀어낸다.
피지컬 차이까지 감안한 패기의 배인 픽이다.
'평생 맞을 지건 오늘 다 맞는다고 생각해.'
원딜러의 위신을 손상시키고, 서포터와의 관계에 균열을 만드는 코물쥐에게 엄벌을 내린다.
그런 끠글렛의 부푼 마음과는 별개로.
─오정환님이 학살 중입니다!
다른 쪽 라인은 버라이어티하다.
킬을 먹은 리심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