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298화 (298/846)

298화

"오빠 봄이에요! 봄이가 왔다구요!"

"그래."

"꾸웨엑……."

오랜만에 만난 봄이와 교감을 나눈다.

여전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듯 쫀득쫀득하다.

쭈욱─

볼살도.

꽉 잡아서 땡기자 정말 고무고무열매라도 먹은 듯 쭉쭉 늘어난다.

"너무 아파요. 볼따구 떨어질 것 같아요!"

"그렇구나."

ㅋㅋㅋ

부들부들 떨며 빨갛게 상기된 자신의 볼을 만지작거린다. 오랜만에 만나도 봄이는 봄이였다.

'이런 아이지.'

겨울방학을 맞아 놀러 왔다.

평소처럼 잠깐 놀다 돌아가는, 식생활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편법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봄이네 부모님의 금실이 좋으시다.

"저만 빼놓고 둘이 여행을 갔어요. 정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부모님도 힐링을 하고 싶을 때가 있는 거지."

"저도 같이 힐링을 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게 있어."

"?"

같이 가면 할 수 없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굉장히 참하시다 보니 아버님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안타깝게도.'

낙동강 오리알이 신세가 되었다.

혼자 남은 봄이는 어머님과 나의 밀약에 의해 한동안 우리집에서 맡을 예정이다.

"짐 들어줄까?"

"후~ 여자의 비밀이에요."

"그래."

"저도 이제 숙녀에요."

"그렇구나."

ㅋㅋㅋ

예전처럼 작은 단칸방이 아니다.

4인 가구가 살아도 넉넉한 크기의 집이고, 봄이를 위해서 방 하나쯤 충분히 빌려줄 수 있다.

'약간 사적으로 이용하는 방이긴 한데.'

손님방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리아나, 쥬아가 자주 왔다 간다.

그런 방에 봄이가 머무는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헐!"

"별로면 오빠방에서 같이 잘까?"

"후~ 어린 애도 아니고 밤에 무서워 할 나이는 지났어요."

어린 애가 아니면 큰일 날 수도 있다.

이 방의 쓰임새가 썩 건전한 쪽은 아니었다.

"방이 엄청 커요!"

"마음에 들어?"

"완전 공주님이 된 기분이에요!"

ㅋㅋㅋ

약간 공주기사 느낌?

오크를 만나면 전투력이 하락할지도 모른다.

'방은 정말 좋아.'

벽을 허물어서 방 두 개를 하나로 합쳤다.

크기는 내 방보다 훨씬 크고, 인테리어도 훨씬 세련되게 꾸몄다.

불가항력으로 말이다.

손님들이 잔소리가 많다.

남자방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거 TV에요?"

"빔 프로젝터야. 영화관에서 알지?"

"헐~ 혹시 저도 봐도 되는 걸까요?"

"당연하지."

"히히히."

TV가 아니라 아예 고화질 빔 프로젝터를 샀다.

침대 위에 누워서 딱 보면 영화관이 따로 없다.

'에로 영화긴 한데.'

불 끄고 만지작거리면서.

그런 사생활이 좀 있었다.

하지만 영화라는 건 예술 작품이고, 선정적인 시선으로만 볼 게 아니다.

까톡!

까톡! 까톡!

우리 봄이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까톡이 온 자신의 폰을 물끄러미 체크하던 봄이의 눈썹이 ↗자 모양으로 올라간다.

"엄마가 자꾸 맛있는 거 먹었다고 저에게 사진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

"우리도 질 수 없어요!"

ㅋㅋㅋ

승부욕을 불태운다.

아직은 식욕이 앞설 나이인 듯싶다.

"오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맛있는 거! 헉……."

"왜?"

"전부터 신경 쓰였는데 오빠는 절 너무 아이 취급하는 거 같아요."

"그걸 이제 알았어?"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 째려본다.

도토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하는 아기 다람쥐의 표정.

'단호박 거부한다고 했었지.'

학교에서 토론 수업을 장려 받는다고도 했다.

확실히 나도 고등학교때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오빠 저는 이제 다 큰 거예요."

"그래?"

"그렇게 시큰둥하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렇구나."

우리 봄이에게도 사춘기가 오는 모양이다.

* * *

겨울방학.

빠르면 12월 중순, 늦으면 1월 말에 시작되는 학생들의 해피 타임이다.

─아니 X발 간만에 PC방 갔는데 ㅡㅡ

초글링 드글드글대서 바로 Run함

└초글링?

글쓴이― 초글링을 몰라?

└요즘은 다 롤 하지

└아재요ㅋㅋㅋ 스타 끄쇼

그리고 세상에 종말이 찾아오는 시기.

신바람이 난 급식충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파프리카TV의 시청자들은 기대가 부풀고 있다.

『BJ하와와의 방송국!』

─봄이 올 때까지 숨 참는다……

─겨울에도 봄이 오나요? ㅋ [16] +23

─봄이 방송 복귀 기원 90일차 [1]

─방학했는데 젭라 방송 좀요 ㅠㅠ [3] +2

.

.

.

BJ하와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BJ다.

본인의 학급 사정에 따라 방송 활동이 제한 당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가 빠른 업계 특성상 묻혀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녀와 케미를 이루는 한 명의 BJ가 워낙 잘 나간다.

방학마다 특별한 콘텐츠를 준비하기도 한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우리 봄이 언제 방송 복귀하나요??

"500개 감사합니다. 근데 제 동거녀에게 관심 꺼주시기 바랍니다."

―네?

―??

―선 넘네

―아청법 신고하면 ㅈ되는 거 알지? 처신 잘하라고~

이번 겨울방학도 기대에 부응할지.

팬들 사이에서는 초유의 관심사다.

그도 그럴게 최근 파프리카TV의 방송은 LOL이 90%.

「LOL) 메도우미헌터. 【욕설 없는 클린한 탑방송】」_ ?2, 172명 시청

「LOL) 롤티처. 23분 안에 듀오로 승리해주기=1000개 가자!!」

_ ?1, 595명 시청

「LOL) 러이갓. 『"본캐"』마이 1위 실력인증 갑니다^^<1억 Event>」_ ?511명 시청.

.

.

조금 과도할 정도로 몰려있다.

다른 방송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 수가 적고, 시청자 수가 적다는 건 BJ가 양질의 콘텐츠를 준비하기 어렵다의 동의어다.

─위기의 보라판을 구할 마지막 희망. jpg

[가네바야시 세이콘×오정환. jpg]

하와와 직통 전화 가능한 오정환

제발 봄이만 불러주십시오

└오모시로이한 BJ가 있다ㄷㄷ

└봄이는 먹을수록 강해진다

└봄식당 시즌3 언제하냐궄ㅋㅋㅋㅋㅋ

└믿고 있다고 쥐엔장!

오직 오정환만이 이전만 한 성세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 롤판에서도 보라판 못지 않은 활약을 이어나가며 승승장구한다.

그런 그라면 가능하다.

무너진 보라판을 다시 살리는 것.

BJ하와와와의 보증된 케미라면 그 이상을 충분히 보여줄 만하다.

─사진有) 급식여캠 BJ하와와 최신 근황 떴다

[현대 백화점 직촬. jpg]

오정환이랑 데이트 중ㅋㅋㅋ

└ㄹㅇ 동거라고?

└딱 봐도 밥 먹으러 온 거잖아ㅋㅋ

└놀러 왔나 보네

└존버각 날카롭다……

보라판은 쇠퇴했어도 먹방판은 여전히 고정 시청자층을 유지하고 있다.

BJ하와와는 먹방에 천부적인 소질을 자랑하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꽃 피울 수 있는 부류다.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낭랑 18세라 불리는 머리에 피가 마를 만한 나이가 드디어 되었다.

정말로 여성스러운 매력이 무르익어도 슬슬 이상하지 않다.

─봄이 준나 예쁘네ㅋㅋㅋㅋㅋ

─그 찐따 같던 떡볶이녀가 맞냐……? [5]

─진짜 하와와는 전설이다

─봄이 당첨된 복권이라 생각하면 개추 [17] +77

.

.

.

그런 상황에서 찌라시, 아니 반쯤 오피셜격인 자료가 올라온다.

그녀의 최신 일상이 유출됐다.

우연히 백화점에서 마주치게 된 한 시청자가 사진을 올린 것이다.

─오정환 이 새끼 동거녀 드립 친 이유가 있었네ㅋㅋㅋ진작에 봄이랑 놀고 있었구만

└이거지

└이제 집 존나 넓은데 살지 않냐?

글쓴이― 그니까

└쒸……, 불……, 여고딩이랑 동거 딱 대라

커뮤니티에 일파만파 화제가 번진다.

* * *

보라판에서는 기본적인 이야기다.

'노이즈 마케팅 말이야.'

그 기원은 고구려 벽화 수박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보다 중론으로 취급되는 것은 연예계쪽의 기류다.

장기간 휴식을 취하던 연예인이 복귀할 때 일부러 찌라시를 흘린다.

일전에도 한 번 써먹은 방법.

이제는 우연이 아닌 필연을 목표로 한다.

아무래도 나도 이제 어중간한 규모의 BJ가 아니다.

"봄이야."

"봄이에요."

"오빠랑 손 잡고 가야지. 길 잃어버려."

"후~ 전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니에요."

우리 봄이도.

어중간한 꼬맹이가 아니라는 듯 자신감을 뿜뿜한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 노래 부르신 분이 나보다 거의 10살 연상이시지.'

계산을 해보면 '성인식'이라는 곡을 발표한 것도 봄이 나이대.

어쩌면 낭랑 18세가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

─봄이의발닦개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요즘 고2면 진짜 다 큰 건데……

"저 이제 다 컸어요!"

"그럼 평생 이 키야?"

"그건……, 그건 아직 여지가 있어요."

―봄이 설득 당했어

―아ㅋㅋ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여지가 있구나?

―볼따구 터지겠네

아닐 수도 있고.

우리 봄이의 유쾌한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도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서 나름의 변화를 추구하는 모양이다.

'사실 많이 늦긴 했지.'

친구들은 이미 요즘 애들이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한눈에 시사한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않던 우리 봄이에게도 변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새봄떡국』 ― TV 프로그램 다수 출연 맛집!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었다.

그 기념으로, 라고 쓰고 핑계라고 읽는 맛있는 것을 먹는 이유.

"오늘은 좀 늦긴 했지만 새해를 맞아 떡국을 먹으러 왔습니다."

"그런 거예요."

―그런 거예요~

―여성분 누구임?

―롤충들 봄이 몰라서 허둥지둥 대죠?

―하와와 모르는 놈들은 인방 헛본 거지ㅋㅋ

물론 꾸역꾸역 먹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심정의 변화도 며칠이나 갈지 모르는 일이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떡국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생이굴떡국과 활전복떡국이라는 약간 호화스러운 메뉴.

─봄이사냥개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봄식당 시즌3로 만들 줄 알았는데……

"떡국을 만들어 먹어서 뭐해요."

새해가 되면 엄마가 막 끓여준다.

혹은 그냥 먹을 거 없을 때 끼니 때우기 편하니까.

'그냥 까놓고 말해서 김치맛으로 먹는 거잖아.'

정말 아무 맛도 안 난다.

호화스러운 재료를 넣어야 콘텐츠로 뽑을 만한데, 그러면 간 맞추기 힘들어서 아마추어가 흉내 낼 게 아니다.

"맛있어?"

"후후후!"

"그래."

"매생이와 전분이 녹아있는 사골 국물의 목넘김이 예술이에요!"

"그렇구나."

―ㅋㅋㅋㅋㅋㅋㅋ

―봄이 맛평가는 ㅇㅈ이지

―맛집 인증 받았네

―진짜 표정만 봐도 알음ㅋㅋㅋ

TV에도 나온 맛집.

아주 마음에 드는 듯 꿀떡꿀떡 잘 먹고 있다.

"저 혹시 한 그릇 더 먹어도 되는 걸까요?"

"그래."

"두 그릇 먹으면 저도 이제 어른이에요!"

ㅋㅋㅋ

누구나 한 번은 해보는 생각이다.

무럭무럭 크고 싶은 욕망이 있는 우리 봄이로서는 사뭇 진지하다.

전복이 마치 조개처럼 통으로 들어있는 떡국을 한 그릇 더 시켜서 해치운다.

먹는 모습이 복스러운 이상 섹시한 여성이 되는 것은 요원할지 모른다.

"후~ 제법 만족스러운 식사였어요."

"우리 봄이가 잘 먹어서 오빠는 기뻐."

"아니에요! 오늘은 특별히 입맛에 맞았을 뿐이에요."

―그렇게 잘 먹어 놓고?

―ㄹㅇㅋㅋ만 치라고

―우리 봄이 크는 거 보는 맛에 산다

―와 두 그릇이면 양 꽤 많은데

자신의 새로운 컨셉.

시크함이 깨졌다는 사실을 상기한 듯 휴지로 벅벅 입술을 닦으며 다소곳이 앉는다.

히끅!

하도 많이 먹어 새어 나오는 귀여운 트림과 빵빵하게 나온 배는 감출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크하고 싶은 나이다.

"오빠 저도 이제 거의 성인이에요."

"그래, 나이는."

"후~ 오빠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저 이래 봬도 학교에서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아요."

"그래, 급식들한테."

"?"

―ㄹㅇ 급식팬들ㅋㅋㅋㅋㅋㅋ

―급식 찐농도 100%ㅋㅋㅋㅋㅋㅋㅋㅋ

―고백도 받나?

―봄이 좋아하는 갠붕이들이었자너~

봄이도 화가 댓 발 날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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