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결승전이 끝났다.
그 의미는 차후 10년은 우려먹을 자랑거리를 획득한 걸로 끝이 아니다.
"여보."
"낭군.'
"여보~."
"후……, 귀찮다."
―귀찮아ㅋㅋㅋ
―낭군 ㅇㅈㄹ
―아니 여름이 이제 한글 다 안다고!
―억지 프레임 오지게 미네 ㅉㅉ
근 2주 동안 열심히 달려왔다.
팀플레이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게임 내적인 부분도 여러가지 가르쳐줬다.
'사실 그래서 쉬운 것도 있었지.'
게임을 가르친다는 게 당연히 쉬울 리가 없다.
막말로 그게 가능했으면 수백, 수천 써서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줄을 선다.
정말로.
사교육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보편적이다.
특히 게임 실력은 남들이 닦아 놓은 길이 없다 보니 훨씬 난해하다.
"쩡환 게임 친구로는 정말 좋다."
"갑자기 고백은 좀……."
"아니다! 아니다!"
본인의 의지에 달린 부분이 크다.
그 점에 있어서 여름은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게임 지식이 아예 전무했다는 것도 한몫했다.
'어설프게 알면 괜히 선입견만 생겨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게 있는데?
이렇게 안 하면 큰일 날 거 같은데?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의 지식과 충돌하면서 벽을 세운다.
마치 알레르기 반응처럼.
여름의 경우 원래부터 나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고, 게임 지식도 백지 상태다 보니 가르치는 게 쉬웠다.
─배럭에서나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저래 봬도 대회때 정환이가 여름이 신경 많이 써줌!
"100개 감사합니다. 제가 뭘요. 다 여름이 잘한 거죠."
―겸손한 척 에반데
―입꼬리 봐ㅋㅋ
―이번 대회에 최고의 이변이 여름좌긴 했지
―찐텐임?
게임이든 공부든 배울 때는 짜증 나는 법이다.
하지만 땀 삐질삐질 흘리며 올라간 산 정상에서 '올라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해내고 나면 몇 배나 되는 보람이 들잖아.'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러너리그에 참가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티어가 낮다는 이유로 비난도 받았고, 실력을 증명한 후에도 의심이 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보람이 있다.
힘든 과정을 함께 하면서 여름과 나와의 사이는 전보다 훨씬 끈끈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 한다 게임!"
"그래, 스포츠보단 낫지."
그런 의미에서 놀러 왔다.
이전에도 왔었던 PC텔.
별 건 아니고 가볍게 놀자는 취지에서 말이다.
'딱히 본인이 연애 감정이 없어서.'
샤이 트럼프답게 보수적이다. 가끔씩 떠봐도 영 미적지근하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태양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스타게이트출신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롤 듀오각임? ㅋㅋ
"에이, 오늘까지 롤하는 건 좀 그렇고."
"Maple! Maple!"
"면제겜을 하고 싶다고 하네요."
―?
―이 새끼 겜하기 싫었누ㅋㅋㅋㅋㅋㅋ
―데이트각 오졌는데
―응 안돼~
메이플스토리.
나와 그녀의 인연이 시작된 매개체다.
가끔씩 즐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게임 자체가 워낙 가벼워서.'
사실 RPG쪽 장르는 마니아층 아니면 파악하기 힘들다.
대체 저 새끼가 뭐 하고 있는지.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2D 횡스크롤인 메이플은 방송 게임으로 가치가 있다.
『이 직업군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데이트용으로도.
실제 여성 게이머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게임이다.
가볍게 즐기기에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RPG는 없을 것이다.
"옛날 기억나? 메이플 아이디 만들 때 주사위 4/4 띄울 때까지 계속 돌리고."
"?"
"운 좋으면 5분만에 뜨는데 운 나쁘면 진짜 1시간씩도 걸려."
―아 그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때는 말이야~
―모르는 거 같은데?
―혼자만 아는 이야기누
한국 서버에 캐릭터를 생성해서 1렙부터 무자본으로 키우기로 했다.
메이플이 정말 개씹ㅈ망 노가다 게임이긴 해도 초반에는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옛날에는 그 초반도 시작하기 힘들었지.'
빅뱅 이전에는 말이다.
캐릭터의 스탯이 이렇게 따라락 있는데.
STR ― 9
DEX ― 8
INT ― 4
LUK ― 4
보통 특정 직업군에게 필요한 스탯은 두 가지다.
전사의 경우 INT와 LUK은 쓸 구석이 없다.
그래서 최소 수치인 4로 맞추고 싶다.
필요 없는 스탯이 4/4가 나올 때까지 주사위를 돌리곤 했다.
"그러다 가끔 마우스 클릭 잘못해서 지나치면 마우스 집어던지고~."
"모른다. GMS는 없다."
"……."
―공감대 조성 실패ㅋ
―추하다……
―와 진짜 옛날에는 그렇게 캐릭 만들었음?
―아 그저 ^틀^
메이플이 괜히 노가다 게임의 대명사로 불린 게 아니다. 캐릭터 생성부터 시작해 초보자 구간까지 악명이 자자했다.
'마법사 직업군이 가장 많은 이유이기도 했지.'
직업 전직이 가능한 10렙 찍는 게 존나 어려웠다.
특히 8~10 레벨업이 거의 지옥과도 같아서 수많은 유저들을 좌절케 만들었다.
그런데 마법사는 8렙부터 전직이 가능하다고?
다른 직업 하려고 시작했다가 그 솔깃한 유혹에 빠지는 일이 빈번했다.
"It's real! 나 그랬다! 그랬다!"
"여보도 고생이 많았네."
물론 옛날 이야기다.
빅뱅 이후로는 그냥 퀘스트만 깨도 어느새 10렙에 도달해있다.
'나 때는 그랬다고.'
여름이 때도 말이다.
올드 게이머들은 공감대가 있다.
옛날 이야기 하다 보면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낭군! 나 9렙이다!"
"그래? 난 이제 9렙 중반인데."
"Oh~."
―벌써?
―여름이 두고 가지 마!
―이 새끼 메이플도 빡겜 하누ㅋㅋㅋ
―둘 다 만렙 출신이라 빠르네
뇌 비우고 하기 좋기 때문이다.
마야가 샐러드를 먹든, 알렉스가 가출을 하든 NPC들의 사정은 솔직히 알 바가 아니다.
'원래 게임할 때 말 걸면 싫잖아.'
워낙 가벼운 게임이다 보니 대화가 막힘이 없다.
1렙 캐릭을 생성해 1차 전직을 하고, 2차 전직을 바라보는 30렙까지 달린다.
─오정환밀어줌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 같은 남자랑 사귈 마음 있다 Yes or No
"Suddenly?"
지루하다.
RPG 게임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
초반에는 팍팍 올라가다 가도 어느 순간 보면 카사딘 16레벨 찍는 거마냥 요원해진다.
'그때 재밌는 떡밥을 푸는 거지.'
분위기가 달달하다.
평소에는 나오기 힘든 화두도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할 만해진다.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
"이런 질문은 Yes or No로 대답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 거야."
"Um……."
―응 아니야
―기대하지 마 다쳐
―왜 고민하는데?
―살고 싶다고 말해!
개인 방송은 원하는 흐름이라는 게 있다.
틀을 정하지 않고 진행하다 보면 오디오를 채우는 게 난감해진다.
'그 틀이 아니라.'
방송에 협조하는 직원을 뒀다.
봄이와 현대 백화점에서 놀던 사진이 유출된 것도 직원에게 명령을 하달한 결과.
아무래도 필요하다.
예능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다. 대본이라는 게 지나치면 주작이지만, 적당한 선에서는 안정감을 더한다.
─존맛탱쭈꾸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랑 사귀면 키스할 수 있다 Yes or No
"Kiss? Hmm……."
"나 잘해."
―그건 좀
―나 잘해 ㅇㅈㄹㅋㅋㅋㅋㅋ
―이 새끼 Yes 한 번 들었다고 자신감 찬 거봐
―아ㅋㅋ 어림도 없지
여름도 방송 경력이 꽤나 찼다.
방송은 어디까지나 방송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좋은 느낌의 진행.
콘텐츠의 다각화 측면도 고려했다.
롤은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긴 하지만.
'포커스가 너무 게임에만 쏠려서.'
가벼운 방송용 게임도 하나쯤 있으면 좋다.
나라는 BJ의 근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보니 버리기도 뭣하다.
GM페이몬 : 안녕하세요 오정환님^^ 혹시 육성에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가감 없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갑자기?
―뭔데
―진짜 GM이야??
―헐 뭐지
그쪽에서도 말이다.
최근 메이플스토리의 성세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한다.
'뭐 자업자득이지.'
유저를 돈으로 보는 패치를 그토록 연발했다.
경쟁 게임인 LOL이 부상하며 배째라식 장사가 불가능해졌다.
본래의 역사와 똑같다.
나로 인해 조금 지체됐을 뿐.
내가 떠난 빈자리가 돈슨도 그리웠던 모양이다.
"아 별건 아니고 초보 유저들을 위해 1~3차 직업 밸런스 패치를 하는데 자문을 좀 받았습니다."
"Wow! Really?"
―오~
―여름좌가 제일 놀라는데?
―운영자와 인맥 ㄷㄷ
―처음으로 정환이한테 흥미 생겼누
현실은 보다 처절하다.
장연수 씨.
최근 메이플스토리 성적이 곤두박질침에 따라 회사 내에서 입지가 모호해졌다.
부장 시절이면 모를까. 총괄 디렉터라는 자리는 감투만이 아니다.
부정적인 사건이 생기면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있다.
'뭐 어쩌겠어.'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민하를 통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잘린다고 메이플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대가리인 편이 낫다.
여름이다 : 나 GMS 한다
GM페이몬 : 네 모험가님
여름이다 : 중국 사람들 매크로 한다
여름이다 : 돈이 싸진다 문제다
GM페이몬 : 특정 민족이나 문화에 대한 비방 등 게임과 관계없는 글을 지속적으로 게시할 경우 운영 방침에 의거, 분란 조장으로 제재될 수 있습니다 여름이다 : ??
여름이도 좋아하고.
GMS에서 만렙까지 찍은 유저다.
그리고 메이플 유저 중에 돈슨을 좋아하는 인간은 있을 수가 없다.
'게임이라는 게 하다 보면 불만은 생길 수밖에 없기도 하고.'
이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대상.
평소에는 기껏해야 커뮤니티 게시판이다.
운영자가 떡하니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운영자 안 한다 운영!"
"원래 안 해."
"?"
―그게 바로 돈슨이야
―한국에서는 이렇게 한단 말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네;
―돈슨 ㅉㅉ
본래는 들어줄 리가 없다. 매크로 답변만 줄기차게 해댄다. 하지만 나와 함께라면 의견 표출이 가능하다.
'얼마나 좋아.'
돈슨 측에서도 나쁠 게 없다.
BJ를 활용한 마케팅.
그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여름도 러너리그를 거치며 인지도가 굉장히 상승했다.
한국말을 하는 서양녀라는 치트키격 컨셉은 두고두고 유효하다.
GM페이몬 : 유저분들과 소통의 창구가 되어주시는 오정환님의 역할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여름이다님의 의견도 담당 부서로 전달하여 적절한 개선 방안 검토토록 진행하겠습니다.
―해석) 너 없으니 안되겠더라
―저거 검토만 하는 거잖아?
―돈슨……
―정환이 메이플에서도 아직 안 죽었누 ㄷㄷ
여러가지 이벤트 추진을 도와주기로 했다.
물론 합리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한다는 약속은 받았다. 그걸 지킬지는 또 모르는 일이지만.
'어느 한쪽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나는 BJ.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정의 구현에 힘쓰는 정치인도 아니다.
방송 콘텐츠는 많은 편이 유익하다.
시청자들의 민심이 허락하는 선에서 말이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돈슨 눈치를 봐야 하는 메이플BJ가 아니라는 점이다.
─메이플BJ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정환님~ 일전에 같이 시리우스 여제 공략할 때 뵀었는데 ㅎㅎ
"아, 예 안녕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죠. 근데 무슨 일이시죠?"
그러한 생각.
나만 하는 게 아니라서 문제다.
갑작스레 올라온 팬가입+후원 메세지 하나가 방송을 뒤집는다.
─구해조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롤 친추 가능할까요?
─펑이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저 롤 시작하는데 듀오 좀
─네글자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메이플BJ들 롤에서 뭉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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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데이트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 가는 그대로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뭐임? 찐임?
―숨어있던 메비들 갑툭튀 ㄷㄷ
―메비들도 롤하나?
―메이플 향우회 조직하겠누ㅋㅋㅋㅋㅋㅋ
LOL의 현역 대상자 비율이 낮아지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