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봄식당은 매 시즌 새롭게 단장한다.
시즌1이 요리였고, 시즌2가 배달이었다면.
"오늘부터 시작하는 시즌3은 와일드하게 갈 예정입니다."
"고통의 시간이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식당을 빙자한 봄이 놀리기 방송
―악질이야
―봄이는 햄보칼 수가 업서!
당연하게도 중요하다.
시청자들이 재밌다고, 최고다고 말을 해준다고 방송이 백년해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BJ는 정체하는 순간 끝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정말로 늦는다.
1세대 BJ라고 반드시 퇴물이 되는 게 아니고, 롱런을 하는 부류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자다.
혹은 앉은 자리가 금땅이었거나.
운빨로 잘 나가는 이들도 분명 있지만 내 인생을 한낱 운이 좌우하게 두고 싶지 않다.
"고기! 고기가 엄청 많아요!"
"그래."
"저는 이걸 추천해요~ 때깔이 고와요."
"그렇구나."
"하지만 오빠는 가장 맛없는 고기를 고르겠죠."
―시무룩한 거봐ㅋㅋ
―봄이도 알고 있구나?
―현실적인 봄버지
―안돼 안 바꿔줘 바꿔줄 생각 없어 돌아가!
정육 코너.
포장된 고기를 집어 든 봄이의 얼굴이 5초만에 역변한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1++한우 채끝살 600g을 다시 내려놓는다.
'사실 엄마한테 떼썼어도 등짝 스매쉬각이긴 해.'
동정 여론을 활용해 사리사욕을 챙길 만큼 많이 컸다.
우리 봄이의 잔머리를 오늘 하루 허용한다.
─봄이사랑№1님, 별풍선 8282개 감사합니다!
그러지 마라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5000개 감사합니다!
아 제발 ㅡㅡ
─봄버지망생님, 별풍선 10000개 감사합니다!
선 넘네?
"별풍선 감사합니다. 시즌3쯤 되니까 압박이 장난 아닌데?"
―니가 뭘 할지 아니까
―별풍 쏟아지는 거봨ㅋㅋㅋㅋㅋㅋㅋ
―별풍으로 협박하네
―오정환 막아!
딱히 시청자들 때문이 아니다.
원래부터 특별한 식사를 준비할 목적으로 마트에 들린 것이다.
"오빠 저 이거 먹고 싶어요!"
"그래, 마음껏 골라."
우리 봄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
기대에 찬 눈동자로 초롱초롱 바라본다. 진열대 안의 포장된 고기팩들을 말이다.
─BJ우마이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안심은 중앙 부위를 고르는 게 조스므니다
"100개 감사합니다."
"우헤헤 저는 아무래도 좋아요."
―저분 전문가에요!
―우마이는 ㅇㅈ이지
―고기 고르는 법이 있다던데
―안심 머리 부분은 근막이 있어서 샤토브리앙에 가까운 부위를 사는 게 좋습니다^^
사실 스테이크인 이상 일단 맛있고, 뭘 먹여도 침을 질질 흘리겠지만 보다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게 부모님의 마음이다.
'그런 것도 있지.'
고기 고르는 법.
같은 등급이라 하더라도, 같은 부위라 하더라도 조금씩 차이가 존재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양산품이 아니니 당연하다.
"오빠 저는 이게 좋은 거 같아요. 시청자들도 그렇다고 해요~."
"그렇구나."
우리 봄이가 시청자들의 조언을 받으며 찾아낸다.
카트에 1++한우 채끝살 600g과 1++한우 안심 500g을 차곡차곡 쌓는다.
'안심하긴 아직 이르단다.'
어떤 학습 만화처럼 말이다.
주먹을 드는 대신 봄이가 초이스한 포장 고기 두 개를 진열대에 돌려놓는다.
―미친 새끼얔ㅋㅋㅋㅋㅋㅋ
―선 넘지 말라고
―내다버린 2만 개
―민심 감당 가능?
채팅창이 다소 시끄러워진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오해를 한다면 서글픈 노릇이다.
"보세요. 진열돼있는 고기들은 커팅이 얇아요. 이런 거 구워봤자 씹는 맛도 안 난다고."
제 의사도 물어봐 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봄이 뿔났어
―싼 거 사주고 2만 개 꿀꺽하려고?
의사는 병원 가서 찾고.
우리 봄이가 삐뽀삐뽀 실려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착한 오빠의 말을 듣는 게 좋다.
'나만큼 봄이를 아껴주는 사람이 어딨다고.'
이게 다 봄이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복어 마냥 볼따구가 터지려고 하지만 이내 표정에서 생기를 되찾는다.
"안녕하세요. 한우 안심살 사려고 하는데요. 5cm 정도 두툼하게 부탁드릴게요."
―이걸?
―헐
―썰어 달라면 썰어주는 거였음? 첨 알았네
―ㅁㅊ 5cmㅋㅋㅋㅋㅋㅋㅋ
2세대 먹방은 임팩트다.
SKT T1의 탑이나 하늘섬의 다이얼을 말하는 게 아닌 글자 그대로의 일이다.
'특별한 걸 먹는 거지.'
시각적으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 두툼하고 큼직한 스테이크는 선망의 대상이다. 우리 봄이의 눈썹이 부르르르 떨릴 만도 하다.
"저 믿기지가 않아요."
"그래."
"제가 상상치도 못할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그렇구나."
―신뢰를 못 받눜ㅋㅋㅋㅋㅋ
―응 우리도 못 믿어
―저걸로 김치찌개 끓이는 거 아님?
―갈아서 햄버그 만들면 레전드ㅋ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잘해줬는데!
마음 같아서는 대가리를 깨물어주고 싶지만 원활한 콘텐츠 진행을 위해 참는다.
'고기가 우리 봄이 대가리만 해.'
기타 재료를 카트에 가득 싣고 나가는 과정까지 생생히 담는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중요하다.
생방송으로 보면 다소 루즈할 수 있는 과정을 편집할 수 있으니까.
끼익―!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장바구니를 낑낑거리며 옮기는 봄이의 모습은 기특하면서도 한 편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같이 살고 있으면 심심할 날이 없어요."
―이게 딸 키우는 기분인가?
―안 밉지
―ㅋㅋㅋㅋㅋㅋㅋ
―봄이는 커여워서 ㄱㅊ아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마음.
어떤 의미에서는 프로 정신이다.
먹방의 프로라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여하튼.'
2세대 먹방은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또한 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쉽게 접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쿠웅!
도마 위에 내려놓는다.
정말 만화에서나 볼 법한 고깃덩이가 시청자들과 봄이의 눈까지 땡그랗게 만든다.
"저, 정말 커요. 저 살아생전에 이렇게 큰 고기를 본 적이 없어요!"
"그렇구나."
―살아 생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나 살았다고!
―봄이 머리보다 큰데?
―진짜 개귀여웤ㅋㅋㅋ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은근히 현실성이 없어서 그렇지.
통고기를 한입에 베어무는 광경.
'비싸.'
2세대 먹방의 차별화된 점이다.
먹방에 비현실성(?)을 더한다.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것.
"오빠 저도 고기를 구워보고 싶어요."
"웃기지 마."
"힝……."
"너는 먹방이라는 숭고한 의무가 있어."
"저 먹는 것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어요!"
우리 봄이도 예외가 아니다.
땡그란 눈알 안쪽에 지글지글 불타고 있는 욕망이 엿보인다.
서걱─
이를 실현시켜 주는 방법.
까놓고 말해서 어렵지는 않다. 잘 드는 칼로 튀어나온 지방을 제거해준다.
'애초에 요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해온 가장 보편적인 조리 방식이다.
고기를 불에 굽는다.
농경 사회에 접어들며 고기의 가치가 천정부지 솟아올랐다.
그렇기에 기회가 적을 뿐이다. 난이도 자체는 일반 요리보다 쉽다.
적당히 보다 많이 오일을 뿌려 고기를 주물럭댄다.
"오빠 고기는 찰흙이 아니에요!"
"이렇게 해야 맛있어지는 거야."
"그런 거예요?"
―그런 거예요!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소금 안 뿌림?
―후추 안 뿌림?
고기에 소금간이 배려면 최소 40분 전에는 해둬야 한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봄이가 도저히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이다.
치지직……!
아름다운 소리와 함께 불판의 한 면과 고기가 맞닿는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에 우르르 훈수 메세지가 떠오른다.
―처음은 강불에 해야 하는데
―불 온도 어떰?
―고기는 한 번만 뒤집어야 함!
―방구석 고든 램지들 많눜ㅋㅋㅋㅋㅋ
마치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처럼 흔하게 있는 오해다.
식객에서 '육즙 가두기'라는 연출을 본 영향도 크다.
'소설이나 만화는 어쩔 수가 없어.'
연출을 위해 팩트를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전문가 시점에서는 그것까지 보이지만, 어설프게 안다면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 쉽다.
요지는 한 번만 뒤집는 게 아니다.
육즙을 가두어야 한다는 부분이지. 현실에서는 폼이 안 나도 맛있게 구워지기만 하면 된다.
"너, 너무 뒤집는 거 아닐까요?"
"어차피 내가 먹는 거 아니야."
"히잉……."
―ㅋㅋㅋㅋㅋㅋㅋㅋ
―히잉!
―우리 봄이 애간장 타요
―근데 맛있겠다
자주 뒤집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 맞다.
그래야 접촉면이 오버쿡이 안되고, 고기가 균일하게 익을 수 있다.
촤아악─
그리고 베이스팅.
고기와 같이 사온 허브 등의 시즈닝과 버터를 잔뜩 녹인다.
고기가 살짝 잠길 정도로 말이다.
"탕을 끓이는 건가요?"
"그래."
―탕ㅋㅋㅋㅋ
―버터탕ㅋㅋㅋㅋㅋㅋ
―저거 좀 컬쳐 쇼크긴 하지ㅋ
―봄이야……
ㅋㅋㅋ
우리 봄이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이 눈썹 근처의 중력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아기 사슴처럼 작은 손에 숟가락을 쥐어준다.
'그 숟가락 말고.'
녹은 버터탕을 스테이크 위에 끼얹어준다.
고기의 풍미를 올리는 작업으로, 간단하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즐긴다.
"짜파게티 요리사는 해봤지만 스테이크 요리사는 처음이에요!"
"그렇구나."
ㅋㅋㅋ
장난감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숟가락을 빼앗는다. 조금 시무룩하지만 이내 환한 얼굴을 되찾는다.
─BJ우마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말 잘 구웠스므니다!
―오
―우마이좌 인증을 받넼ㅋㅋㅋㅋㅋ
―ㄹㅇ 괜찮은데?
―와 제대로다
우리 봄이의 콧구멍이 벌렁벌렁한다.
내가 없었다면 고깃덩이를 두 손으로 집어서 와구와구 물어 뜯어도 이상하지 않다.
'어림도 없지.'
은색 호일로 가둔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진 스테이크.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봄이의 볼따구가 터지려고 한다.
"레스팅을 하면서 우리 봄이를 놀려봅시다."
"저는 먹을 수만 있으면 어떤 수모도 감수할 수 있어요."
―저건 진심이야……
―아ㅋㅋㅋㅋㅋㅋ
―짜파구리 위에 얹어주죠
―짜파구리에 스테이크 넣자는 거 관종이냐?
약 5분의 시간.
우리 봄이가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했다면 반드시 실패했을 거란 사실을 알고 간다.
'물론 잘못된 실험이지.'
아이의 장래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 봄이도.
"저, 저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그래."
아닐 수도 있고.
호일에 쌓인 스테이크를 개봉한다.
레스팅의 과정을 거치면 소위 말하는 '육즙 가두기'가 제대로 된다.
구운 정도는 미디엄―웰던.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봄이 대가리만 한 크기다.
그 위용에 전율을 할 만도 하다.
서걱―! 서걱―!
레스팅을 거쳤기 때문에 육즙이 새어 나오지 않는다.
마치 깍두기처럼 썰리는 스테이크에 봄이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다.
─레어충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미디엄 웰던 불편한데 ㅡㅡ
"우리 봄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먹을 수 있는지 생각해주세요."
"저 육회랑 산낙지는 잘 먹어요!"
└육회랑은 다르짘ㅋㅋㅋㅋㅋㅋㅋ
└ㅇㅈㅇㅈ 씹인정
└레어충들 역겹다
└스타도 레어까지만 올릴 새끼들 ㅉㅉ
차후에는 보편화된다.
굳이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유튜브 등을 통해서 본 게 많기 때문이다.
'근데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디엄―웰던을 제일 좋아했어.'
처음 먹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봄이의 눈동자가 더 커지기 전에 한 조각 짚는다.
손맛까지 더하며 입속에 쏙 넣어준다.
"허억!"
"어때?"
"이건,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천상의 맛이에요."
―그 브금이 들린다!
―미미(美味)
―봄이 행복해
―진짜 고통에서 해방되나요?
우리 봄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의 진정한 하지마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