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그냥 공감해
호가호위.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뜻으로 주위에서 접하는 일이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이거 사실상 내 캐리야.>
"네?"
<서포터가 병신인 데도 꾹 참고 게임했잖아. 원딜은 이것만으로도 이미 캐리지.>
―?
―사실상도르ㄷㄷ
―쪽팔려서 말하는 거겠지……??
―아직도 코물쥐를 모르네ㅋㅋ
특히 LOL에서는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과 사고방식을 달리하는 유저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런 거 있잖아.'
「사고방식 자체가 우리와는 다릅니다.」
「훔치면 되는데 왜 돈을 주고 사느냐는 식이죠.」
「범죄가 곧 생활 방식입니다.」
어디서 한 번은 본 듯한 인터넷 짤방.
그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이해는 못 해도 납득은 된다.
<어떻게 1킬 5데스로 시작해도, 5데스 대줘도 게임 못 이기네 애들이.>
"네."
<빨리 올라가야겠네 정말.>
"어서 가세요. 어울리는 곳으로."
딱히 지옥으로 떨어지라고 저주하는 소리가 아니다.
솔로랭크에서 우연히 만났고, 힘든 과정을 거쳐 이긴 기념으로 디코를 했다.
'잘 지내나 보네.'
기운이 있는 편이, 씩씩한 편이 낫다.
적어도 시무룩한 편보다는 나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아 저 팀운 때문에 너무 고통 받고 있어요.>
"저도 그래요."
<오정환 님도? 진짜 이 구간 정상적인 새끼가 너무 보기 힘들다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포인트가 엇나간 거 같은데?
―너 때문에 이 자식아!
―보기 힘들긴 하지 ㅎㅎ
아닐 수도 있고.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게 옳다.
'저런 캐릭터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가끔 좋아하는 만화에 개똥 같은 캐릭터 나와서 죽여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작가의 의도가 있거나 예쁜 여캐였을 확률도 있다.
마찬가지로 코물쥐도 나름의 철학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전판 진짜 너무 에바였어.>
"네."
<탑이 서폿 걸렸으면 도움 되는 챔피언 하던가 개똥 같은 거 해가지고 킬까지 주니까 바텀 지옥이잖아요.>
"너도 원딜인데 도움 안 되잖아."
<…….>
"라고 채팅창에서 자꾸 어그로 끄네요. 바로 강퇴할게요."
―??
―위로 올려서 확인해봤는데 아무도 그런 말 안 함
―속마음이 새어 나와도 ㅇㅈ이지
―나 아님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아닐 수도 있고.
아무래도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보니 이해가 불가능한 부분도 있다.
'원딜 레퍼토리는 너무 뻔해.'
서폿 때문에 힘들다!
정글이 갱을 안 와준다!
탑은 왜 맞텔 안 타주냐?
미드는 미아핑 찍을 생각이 없냐?
이 4개 중에서 돌려막기하는 식이다.
만족인 부분이 있으면, 불만족인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막말로 미드를 내가 해주는데.
마음 같아서는 머리털을 뽑아서 콧구멍에 이식해주고 싶지만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은 부분이다.
<저도 알아요.>
"서태지와 아이들도 아니고 뭘 알아요."
<아니……, 첫 데스했을 때부터 멘탈이 너무 나가있었어. 무조건 이겨야 되는 판이었는데.>
―변명이 많네
―멘탈 안 나가있는 판도 있었누
―이건 좀……
―너무 틀인데?
물론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이는 꼭 게임 내적인 부분에 한정되지 않는다.
'뭐, 채팅창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천상계에서는 드물지도 않다.
사이가 나쁜 유저.
코물쥐는 킹혐식이라는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새끼는 진짜 개악질이에요!>
"님보다?"
<…….>
―도찐개찐
―찐적찐 ㄷㄷ
―이젠 그냥 돌직구로 박아버림ㅋㅋㅋㅋㅋㅋ
―솔랭 돌리면 둘만 만났으면 좋겠다
LOL에 도타처럼 트롤촌이 있다면 자강두천 했을 두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끈끈한 인연이 생기는 일은 아무래도 요원해 보인다.
'VS 놀이 같아서 신박하긴 하네.'
패드립 하지만 1인분 하는 팀원 VS 패드립 안 하는데 남탓 심한 팀원.
소위 말하는 황밸을 이뤘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나로서는 둘 다 사양이다.
주위에 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개판 싸움에 엮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혼종팟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방금 방송 중에 혐식이가 님한테 패드립침……
그 대상이 내가 된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긴 한다.
* * *
커뮤니티에서는 화제가 안 된다.
─쥬지 17cm vs 키 185cm [5]
─파란 정수 vs 빨간 제파 [1]
─미드 앰비션 vs 고전파 [27] +21
─씨지맥이 프로 데뷔하면 고전파 씹바르는 거 아니냐?
.
.
.
평범하기 그지없는 떡밥.
롤 커뮤니티의 일상이다.
특히 비시즌 기간에는 무료하기 그지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의도적인 논란을 일으키던 세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까까오팟TV의 팟수들은 해당 화제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짜팟게티님, 쿠키 10개 감사합니다!
혐식이는 실력도 안 좋은데 멘탈도 쓰레기누~
"그래서 너 티어 어디야아―!!!! 나보다 낮으면 니 M이 내가 @&$$##$%."
―이걸 팩폭한다고?
―응 말차하 밴하면 내가 너보다 잘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이잉~ 기모링~!
그 여파.
킹혐식의 방송은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
이전에 하던 막장 방송을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팟수 새끼들 X랄병 도졌을 때는 몇놈 골라서 패드립을 먹이면 정신 차리지.'
잘 먹히던 방식이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한다.
혐식도 그 점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과장스럽게 하고 있는데.
─혐식이는 이제 한물 다 간 거 같은데?
요즘 방송 억텐인 게 보임
희생양 잡아서 패드립 박는 것도 더 이상 못 웃겠더라 └실력도 별론데 쌍욕 원툴이야
└나만 느낀 게 아니네
└오정환한테 털리는 거 보고 정 떨어짐
└백정한테 미드빵 털리는 게 말이 되냐곸ㅋㅋㅋㅋㅋ
그럼에도 팟수들은 등을 돌렸다.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송인의 특성상 드문 일도 아니지만, 너무 갑자기 변해버린 데는 이유가 따른다.
시청자는 BJ에게 동경심을 품는다.
해당 방송에 매료되는 가장 큰 이유다.
그것이 근본부터 무너져 내린 것이 원인.
「킹혐식은 지기만 해서 노잼임」
「변명만 존나 많지」
「불리하다 싶으면 팀원이나 시청자 한 명 잡아서 조리돌림함ㅋㅋㅋㅋㅋ」
「ㄹㅇ 욕도 이기고 해야 ㅇㅈ이지」
오정환에게 패배한 영향은 짙게 남아있다.
시청자들은 고구마를 먹기 싫다.
강자의 편에 서길 원한다.
유명인한테 패드립을 하다니?
킹혐식의 방송이 인기를 끌게 된 비결이기도 했다.
「혐식이 꼭 네임드만 만나면 입 터는 거 추하지 않냐?」
「아 그러네」
「꼭 상대팀에 프로 있으면 ㅈㄹ함」
「고전파한테도 패드립 박았지」
「말차하 원챔충 주제에 ㅋㅋ뤀ㅋㅋ」
쓰레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간혹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멋진 악당.
삼류 악당.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밑바닥이 드러났냐, 드러나지 않았냐로 갈리게 된다.
'…….'
킹혐식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는다.
시청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거니와, 채팅창 반응도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수입.
통장 잔고가 마르기 시작한다.
패드립까지 쳐가며 방송하는 건 겨우 스트레스 해소 때문이 아니다.
─평범팟수님, 쿠키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을 다시 저격하는 건 어떰?
"겨우 10개 받고? 니 M이도 10개로는 먹을 수가 없던데~."
―어머 상처 받았어ㅠㅠ
―말이 좀 심하다 쓰니야……
―걱정돼서 하는 말이잖아
―ㄹㅇ 폼 회복해야지
물론 그것도 없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목적은 후원과 인기를 위해서다.
'이미지 갖다 박았으면 돈이라도 잘 벌어야 수지타산이 맞지.'
인기가 줄어들었을 뿐.
여전히 팬덤은 있고, 방송은 굴러가고 있다.
그 이상을 원한다.
관심을 끌 콘텐츠가 필요하다.
오정환을 다시 꺾는 것?
"또 여캠이랑 놀고 있다고? 어휴~ M이 없나 보네. 고소당하면 어쩌냐고? 어머~ 난 주어 말 안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어 안 말하면 ㅇㅈ이지
―혐식이 폼 돌아왔누
―꼴받게 더 욕 박자!
그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깨달았다.
킹혐식도 천상계 유저고, 상대방의 실력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파악한다.
'내가 왜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돼.'
무엇보다 실패시의 리스크.
어느 정도인지 이미 체감한 마당이다.
어차피 팟수들은 오정환을 이겨 먹고 싶은 게 아니다. 욕을 하고 싶은 거지.
땅콩 까먹듯 스트레스 풀이에 어울려주기만 하면 된다.
욕을 박는 것은 자신이 자랑하는 특기다.
「요즘 혐식이 방송 재밌는데?」
「오정환 까기 좋음ㅋㅋㅋ」
「역시 패드립은 혐식이가 매콤하지」
「다른 PD들은 저렇게 못해」
「간이 배밖으로 나와야 꿀잼!」
그 자극적인 방송은 인기를 끈다.
팟수들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킹혐식의 방송은 다시 활력을 되찾았는데.
『출석 요구서』
제 2013―02631 호
김혐식 귀하(닉네임―킹혐식)에 대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사건(접수번호:2013―02631)에 관하여 문의할 일이 있으니 2013.02.20. 15:00에 사이버팀으로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그리 만만하진 않았다.
이름 석 자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캬ㅋㅋㅋㅋㅋㅋㅋㅋ
―너 고솤ㅋㅋㅋㅋㅋㅋㅋ
―판사님 전 웃지 않았습니다
―고양이가 했다고 해보자 ㄱㄱ
당연하게도 시청자들은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이 원해서 광대가 되었던 킹혐식으로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다.
─노련한팟수님, 쿠키 100개 감사합니다!
까려면 만만한 사람을 까야지 대기업한테 욕 박은 건 혐식이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그냥 공감해―!!"
―눈치 없게 팩트 말하면 어떡햌ㅋㅋㅋㅋㅋ
―ㅋㅋ루삥뽕!
―욕 좀 했다고 고소하는 건 너무 심했긔 ㅠㅠ
―우리가 부추긴 거 같아서 미안하긴 하네
다행히 방송 어그로.
동정심으로 얻은 후원과 지금까지 벌어 놓은 돈으로 벌금은 그럭저럭 마련한다.
'…….'
집에서는 그렇지 못할 뿐.
어린 나이에 빨간 줄이 그였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설명하기도 뭣하다.
도망치듯 군대에 입대한다.
"상병 김혐식! 소대장님 잘 못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고생 끝에 낙이 보인다.
지옥 같던 짬찌 생활이 끝나고 슬슬 군생활이 풀리려고 한다.
"우리 소대에서 무조건 한 명 보내라고 하더라고. 이건 강제야 강제."
"소대장님;; 저 말고 있잖아요. 그런 건 일병 애들이나 보내지."
"나도 그러고 싶지. 무조건 베테랑으로 보내라잖아."
충격 같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타 대대의 장기 파견 업무에 자신을 차출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이제 분대장 달고 군생활 좀 재밌게 하려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다.
지난 1년간 자신이 어떤 개고생을 하며 지냈는데 짬 대우도 못 받는 파견을 가라니?
"저, 전 진짜 안 됩니다. 공사감독병에 적합한 후임을 알아볼 테니까 그때까지만 시간을……."
"야."
"상병 김혐식."
"그냥 공감해!"
소대장님이 버럭 지른 한 마디에 정신이 번쩍 든다.
군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아, 그랬었지…….'
까까오팟TV에서 방송을 하던 시절.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소대장님 저 공사감독병 해보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갔다 오기만 하면 휴가부터 말출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
"근데 소대장님 곧 전역하시지 않습니까?"
틈만 나면 패드립하고.
말문 막히면 공감하라고 하고.
그랬던 지난 날을 반성하라고 내려준 보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