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348화 (348/846)

348화

뒷광고를 하는 이유

송용준으로서는 난감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BJ가 알맞는 대우를 받길 바랬던 마음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

'후우…….'

이다윤의 연배를 생각하면 BJ에 대해 잘 모를 텐데도 인터넷 방송의 생태계를 꿰뚫고 있다.

그의 통찰력을 우습게 보다간 큰코다친다.

"이 일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니가?"

"예, 저번에 일 맡았을 때 방송을 조금 봤거든요. 교섭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봤던 건 아니고?"

"……."

애가 탄다.

BJ하와와가 잘됐으면 좋겠다.

최소한 자신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요즘 애들이 그럼 그렇지.'

부하 직원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다윤은 척 보기만 해도 파악한다.

좋아하는 걸 말할 때는 눈빛부터가 다르다.

인터넷 방송계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사업 계획을 수립한 후로는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젊은 애들이 많이 본다. 유명BJ들은 파급력이 있다.

자신이 처음 생각한 것 이상으로 꿀을 빨 만한 곳이다.

"그냥 좀 아는 정도……."

"알면 잘 교섭해봐. 대기업BJ지?"

"예?"

"잘 나가는 BJ를 그렇게 부른다던데."

"예, 맞습니다!

광고비는 광고 효과에 따라 차등을 둔다.

블로그만 해도 일일 접속자와 판매량 변화 추이를 따지니 당연하다.

이는 BJ업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것이다.

일반BJ는 기껏해야 샘플이지만, 대기업BJ면 대우를 받을 만하다.

'유튜브인지 뭔지도 하고 있고.'

이다윤은 하와와를 눈여겨보고 있다.

먹방판의 1인자.

시청자는 수천 명이며, 유튜브에서도 조회수가 상당히 나온다.

업계 분석이 아직 덜 끝나긴 했어도 꿀냄새는 티가 나는 법이다.

나이도 어려서 입맛대로 굴릴 수 있다.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광고 효과가 좋으면 실적을 바탕으로 페이가 개선될 수도 있는 거니까……."

"저, 정말입니까?"

"그래."

"최대한 노력해서 교섭을 진행해보겠습니다!"

오정환.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기를 넘어 차단까지 해놓은 괘씸한 놈팽이가 보호자를 자처한다.

'누가 이기지는 보자고.'

광고계에서 하루이틀 있었던 게 아니다.

지가 뭐라도 된다는 듯 기고만장한 녀석이 가끔씩 있다.

그런 녀석일수록 길들이는 맛도 있다.

돈맛을 보고, 업계 구조를 알아가면 알아서 설설 기게 된다.

입장이 180도 역전.

협상의 주도권을 마음껏 쥐고 흔들며 업계 시세보다 저렴하게 부려 먹는다.

오정환도 필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 사자가 될 부하 직원이 자신의 자리로 서둘러 뛰어간다.

* *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사회 시간마다 선생님과 합의하에 잤다고 해도 한 번쯤은 들어보는 이야기다.

'솔직히 와닿지는 않지.'

이미 승자에 의해 왜곡이 돼버린 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 한 짓거리에 대해 간간히 듣는다.

그와 마찬가지인 일.

BJ업계에서 일상이라는 것은 보라판에 비해서 그렇게 별일까진 아닐지도 모른다.

─BJ하와와님 팬입니다 꼭 읽어주세요!

평소 방송 애청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요즘 콘텐츠 진행하시면서 불편한 점 없으세요?

있죠~~

맨날 배달앱 음식 중에서 골라 시킨다고 일부 시청자들이 불평을 하잖아요ㅠㅠ하와와님도 여러가지 다른 음식들도 먹어보고 싶으실 거고요!!

그래서 저희가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데

.

.

.

광고 쪽지.

많으면 하루에 10개씩도 온다.

워낙 거슬리게 썼다 보니 역으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정말 맞춤형으로 잘 써놨네.'

내가 아닌 봄이의 계정이다.

키&몸무게는 물론 민증 뒷자리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밀번호 정도는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쪽지의 내용.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뒷광고를 제안했는지, 우리 봄이의 능지를 고려하면 깜빡 속아 넘어갈지도 모른다.

정말 화가 난다. 나쁜 사람들이다.

그보다 더 답답한 건 오히려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는 현실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 거신 분이 누구신지 좀.>

"BJ오정환이라고 합니다. 쪽지 보고 연락 드렸거든요?"

<아! 아아! 예, 저 바론광고기획 송용준이라고 합니다;;>

회사 이름은 낯이 익다.

다만 연락처가 달라 혹시나 했는데 다른 직원인 모양이다.

20대 중반 정도의 남자.

굉장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썩 경계를 할 만한 대상은 아니어 보인다.

"쪽지 내용을 봤는데요."

<아, 예!>

"어린아이 구슬리듯이 잘 쓰셨던데."

<아, 죄송합니다! 그게 저 그러니까…….>

용의주도했던 쪽지의 내용과는 달리 말이다.

그 이유에 대해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던 것이 맞았다.

<제가 사실 오정환님 방송도 즐겨 보거든요.>

"그래요?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요즘 하와와님 방송이 슬럼프인 거 같더라고요. 저희와 협업을 하면 커뮤니티에서 올라오는 안 좋은 이야기들도 수그러들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BJ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만난다. 알고 보니 내 팬.

'그래서 일이 잘 풀리는 경험이 제법 있었지.'

대충 들어보면 안다.

팬을 빙자해서 접근하는 건지, 아니면 의도만큼은 순수한지.

개인적인 감으로는 후자.

다소 과장돼있긴 하지만 틀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팬으로 걱정될 만도 하다.

그래서 오지랖을 부리는 업계 관계자가 실제로 종종 있다.

"아무튼 나쁜 의도로 한 제안이 아니라는 건 알겠습니다."

<아, 예! 광고 효과가 검증되면 페이도 재협상이 가능하고, 제가 하와와님 팬인 만큼 최대한 신경을 쓸 테니까.>

"근데 결국 뒷광고잖아요."

<…….>

어린 직원이다.

그보다 나이 든 직원이 깽판을 쳤던 만큼 어떤 사정이 있었을지는 소설 한 편 쓸 수 있다.

'꿩 대신 닭이라도 먹으려 했겠지.'

괜한 지레짐작이 아니다.

먹방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로 차후에 터지는 뒷광고 사태가 바로 그 연장선이다.

어? 그렇게나 많았어?

유명 먹방 크리에이터들 열에 아홉은 걸려든다.

안 한 사람을 찾는 게 숨바꼭질 수준이다.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유명 먹방 크리에이터들이 다 그렇다기보다는, 그 짓을 했기 때문에 유명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광고라고 밝히면 시청자들도 별로 안 좋아하고, 광고 효과도 미미해서 업계에서 그런 관행이 좀 있긴 합니다.>

"네."

<먹방BJ분들 뿐만 아니라 블로그에서도 하고 있고, 다른 분들도 다 하니까 그렇게 개의치 않으셔도…….>

반대로 안 하는 크리에이터는 묻힌다.

시청자들에게 퇴물이다, 방송 콘텐츠에 돈 아낀다, 별별 소리 다 들으며 잊혀지게 된다.

'착하고 순진한 BJ들은 어지간히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닌 이상 힘들지.'

먹방이라는 게 까놓고 돈빨이 반이다.

돈이 부족하면 콘텐츠 퀄리티가 떨어지고, 시청자 호응이 적을까 항상 노심초사한다.

그에 반해 뒷광고 받는 크리에이터들.

돈지랄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 경쟁 구도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저기요."

<예, 예!>

"저는 대기업BJ잖아요."

<아……, 예 뭐 그렇죠. 저도 오정환 님 팬이라 알지만 인기가 많으시니까.>

"상사분과 통화를 해야 될 거 같거든요? 괜찮으시죠?"

<어……, 알겠습니다! 바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승자들만이 살아남은 역사다.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불매 운동 정도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이 제의를 거절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뒷광고를 폭로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주 잠깐 소란은 일어나겠지만 결국 유야무야 묻힌다.

2020년의 유튜브 뒷광고 사태처럼 말이다.

기업들은 용의주도하게 발을 쓱 뺄 준비를 하고 있다.

<오정환 님~! 저 저번에 전화 먼저 끊으셔서 너무 서운했습니다.>

"그러셨어요? 제가 죄송합니다."

당시에도 기업은 대행사를, 대행사는 계약 사항을 빌미로 손절을 쳤다.

어지간해선 끊어지지 않는 악폐습이다.

방법이 있다면 단 하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지.'

내가 가장 잘하는 특기를 발휘할 시간이다.

* * *

바론광고기획.

굵직한 대형 광고 업무도 진행하지만,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무래도 대행이다.

「식품 광고 대행 List」

1. 암팩토링 │레몬청

2. 고기조아 │1등급 육우

3. 마블링몰 │1+등급 한우

4. 생선光  │과매기

5. 꿀맛식품 │김가네 연어장

.

.

.

자신의 상품을 어디서 어떻게 광고해야 할까?

일반 업자들은 모를 수밖에 없고, 노하우를 가진 대행사에게 맡기게 된다.

<리스트 1번부터 27번까지 싹 다 보내주세요.>

"싸, 싹 다요……? 전부는 좀;"

즉, 중개업자의 성격을 띈다.

자고로 중개업이란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잘 떼어먹느냐가 수익성을 좌우한다.

'이걸 다 하겠다고?'

오정환의 제안.

이다윤으로서는 환영이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이 해준다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 리가 없다.

광고 효율도 낮아질 테고, 시청자가 눈치라도 채면 보통 일이 아니다.

<저는 대기업이에요 대기업. 소화할 수 있는 기량의 단위가 다르다고요. 시청자 수도 단위부터가 다른 거 아시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납득이 간다.

첫 통화 때와는 달리 이다윤도 인터넷 방송 업계가 어떤지 이제는 안다.

'하긴 시청자 천 명 남짓한 BJ들도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데.'

5천 명의 하와와, 1만 명이 넘어가는 오정환이라면?

단순히 5배, 10배 정도가 아니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도 전부는 좀 많지 않을까요?"

<제가 다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단 물건을 보려고요.>

"아~."

<방송이라는 게 소품을 직접 보면서 준비해야 돼요. 물건이 없으면 감이 안 와.>

100만원으로 만족하지 못할 만도 했다.

물론 갑자기 천만 원, 2천만 원을 요구한다면 협상 주도권 때문에라도 거부하겠지만.

'샘플만? 그건 전혀 상관없지!'

다행히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오정환도 첫 대면의 무례를 의식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유도 들어보니 납득이 간다. 꼴에 방송인이라는데 자존심 정도는 얼마든지 세워줄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쪽으로 장점만 어필하면 되는 거죠?>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방송에 잘 녹여주시는 편이 좋지만요. ~."

물론 양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구두 계약도 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때문에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한다.

'혹시 또 모르잖아.'

만약 뒷광고를 했다는 사실이 까발려진다면?

적어도 회사에는 손해가 없어야 하고, 자신이 말을 고르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허위 광고를 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

BJ가 멋대로 떠들었을 뿐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모호하게 만들기 위한 단어 선택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물건 받아보는 대로 최대한 빨리 방송 진행해볼게요.>

"그럼 감사하죠~ 아무튼 저희는 정환님만 믿겠습니다!"

그걸 알 리가 없는 애송이.

하지만 자신들도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는 않다.

세상사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인 법이다.

"부장님, 리스트 물품 전부 발주했습니다."

"회사로?"

"오정환 자택에 바로 연결시켰는데 문제 있을까요?"

"아니, 없지. 다만 고생 좀 하겠네 흐흐."

"네?"

수십 개의 택배가 전쟁처럼 도착할 테니 말이다.

업계의 스케일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진짜 큰 돈을 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기업BJ쯤 되면 머리가 돌아가겠지.'

100만 원 정도로 꿈쩍 안 해도 0이 하나나 둘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게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 인간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첫 대면부터 건방지던 오정환.

그가 살가운 강아지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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