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말년 봄이의 역습
기간제 이벤트가 카운트 다운.
봄이의 방송이 다소 활력이 떨어지는 건 필연이었다.
〔BJ하와와님의 방송국〕
─요즘 봄이 뭔 일 있음? [2] +1
─방송 텐션 떨어지는 건 킹쩔 수 없지 [5] +5
─과몰입 작작해! [8] +10
─혹시 오정환이 요즘 굶기나요? [1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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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가장 싫어하는 순간이다.
두 달간 접어두었던 고민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온다.
하물며 왕처럼 지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세상이 반쯤은 이루어졌다.
그런 봄이가 다소 땡깡을 부리는 건 이해할 만하지만.
─봄이 볼따구를 보셈
나도 웬만하면 개청자들 호들갑이라고 하고 싶은데 이건 진짜야 무언가 고민이 있는 볼따구가 확실하다니까?
└볼따구 기분설ㅋㅋㅋㅋㅋㅋ
└피해자의 볼따구가 증거입니다
└이건 좀 끄덕 했다
└드립 거르고 침울해 보이긴 해
그 정도가 깊어 보인다.
일부 애청자들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던 여론.
―봄이야……
―오정환에게 학대를 받고 있다면 왼쪽 눈을 두 번 깜빡여주세요!
―그냥 기분이 안 좋은 거 같은데
―굶기고 있는 게 맞다니까?
방송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드물지도 않다.
하지만 봄이.
걱정이라곤 없을 것 같은 그녀이기에 시청자들의 의구심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후우……."
그리고 이는 지레짐작이 아니었다.
봄이의 볼따구가 괜히 건드린 복어처럼 큼지막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내 뱉어내는 깊은 한숨은 얼핏 봐도 심상치 않다.
아직 어리디어린 그녀가 짊어지기에는 큰 짊이었다.
결국 결심한다.
마음속 고민을 시청자들에게 털어놓기로 말이다.
그날 자신이 봤던 충격적인 광경.
"그런 거예요……."
―그런 거구나
―진짜라고?
―흠터레스팅;;
―봄이가 장난으로 이런 말할 아이는 아닌데
순간적으로 차오른 반항심이 방아쇠를 당겼다.
오정환의 방에 처음으로 작은 앞발을 내디뎠다.
큰마음 먹은 것치곤 별일은 없었다.
방 안에도 별것이 없었다.
하지만 의학 드라마를 재밌게 본 기억은 있다.
─qorhvk12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약통이 엄청 많았다고?
"오빠는 사실 아팠던 거예요. 저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예요……."
침대 옆의 작은 협탁.
약통이 하나, 둘, 셋…… 세는 걸 포기해야 할 정도로 무척 많았다.
드라마에서 본 한 장면처럼 말이다.
반드시 복선처럼 작용하여 주인공의 지인이 아프게 된다.
"제가 철이 없었어요. 오빠는 매일매일 약을 먹으며 아픔을 달래고 있었던 거예요……."
―??
―정환이가 시키드나?
―진짜 진지한 거 같은데
―말투가 웃겨서 집중이 안 돼 ㅋㅋㅋ
봄이로서는 심각하다.
그도 그럴 게 애청자다.
의학 드라마는 반드시 챙겨본다.
2010년 전후는 의학 드라마의 전성기였다.
하얀거탑, 뉴하트 등.
얼마 전에도 골든타임을 완결까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시청했다.
─망고가얼망고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그냥 정환이가 장난치는 거 같은데 ㅋㅋ
"그치만, 그치만……, 새 약통이 아니었어요. 먹던 흔적이 있었어요. 오빠는 많이 아픈 게 틀림없어요."
드라마에서도 꼭 그러하다.
안 아프다고 하다가, 매일 약을 챙겨 먹다가, 갑자기 쓰러지고 삐뽀삐뽀!
주인공이 수술을 해서 살려준다.
안타깝게도 자신은 아직 의사가 되지 못했다.
"저 결심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할 거예요. 그래서 의사가 될 거예요!"
―응?
―결말이 이상한데
―의사 봄이 ㅋㅋㅋㅋㅋㅋㅋㅋ
―만약 정말 아픈 거면 전문의 달기 전에 뒤지지 않을까?
장래희망의 꿈이 새롭게 정립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의 조언으로 알게 된다.
'사실 저도 공부하기 싫어요.'
마음만 불태웠다.
어차피 의미가 없다는 시점에서 빠르게 식어버렸다.
이상과 현실의 궤리는 쉽지 않은 문제다.
─까망쿠키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요즘 정환이 굉장히 건강해 보여서 문제없을 거 같은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치만, 그치만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많은 약을 먹진 않을 거예요."
―존나 건강하던데;;
―하반신 열일 하더만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설명할 수가 없잖아 ㅡㅡ
―봄이 화이팅!
시청자들로서도 답답하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확실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봄이의 진심 어린 걱정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편이 재밌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내마음이그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항암치료제 아닐까? 약을 한 움큼씩 먹는 병이면 달리 없음
"어떡해요 우리 오빠. 흐허헝……."
―미친놈아!
―봄이 운다
―선 넘네
―매니저 안 쳐내?
봄이로서는 한없이 진지하다.
그도 그럴 게 직접 목격했다.
의학 드라마로 쌓은 지식들도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많이 아픈 거예요. 정말 많이 아픈 거예요…….'
설사 당장 위급하지 않더라도 큰일이 난 것은 확실하다.
시청자들이 놀림을 들으며 확신이 더더욱 강해진다.
그렇게 수많은 약들을 먹는 이유!
달리 짐작 가는 바가 없는 봄이의 머릿속에는 최악의 상상이 떠오른다.
드라마에서 봤던 한 장면 말이다.
─현직약사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직 약사입니다. 인증 가능하구…… 어떤 약인지 알면 소견 말씀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 방송.
수많은 시청자들이 본다.
개중에는 '능력자'라 부를 만한 이들도 존재한다.
그것도 BJ의 충실한 팬이다.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자신의 전문 지식을 선뜻 빌려준다.
"엄청 많았던 것만 기억해요.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었어요."
―가서 보면 되잖아
―바로 옆방 아님?
―가져오자!
―비아그라면 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ㅋ
약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삭할 약사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
시작은 사소한 반항이었을지언정 이제 봄이의 마음속에 있는 건 걱정뿐이다.
끼익―!
용기를 얻어 방문을 연다.
거실의 컴퓨터 앞에서 오정환은 방송 중이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도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천천히 지나간다.
화장실을 가는 척 자연스럽게 코너를 돌아 오정환의 방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다.
"후우……. 무서웠던 거예요. 들키면 엄청 혼났을 거예요."
―갔다 왔어?
―미션 성공 ㄷㄷ
―봄이의 프리즌 브레이킄ㅋㅋㅋㅋㅋㅋ
―약통 어딨는데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힘들다.
콜라 한 캔만 더 빼가도 귀신같이 검문에 들어간다.
한 달이 넘게 같이 사는 동안 봄이도 깨달은 바가 있다.
토독, 톡!
그래서 사진으로 찍어왔다.
작은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톡톡 두들겨 사진 폴더를 연다.
캠 앞에 들이대면 당연히 안 보인다.
―?
―안 보여요
―너무 뿌한데
―와 진짜 많긴 하네 약이
초점이 흐려지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알겠다.
많다.
협탁 위에 놓여진 약통이 대충 잡아도 열 댓개.
이윽고 초점이 맞춰진다.
오정환이 어떤 약을 복용하는지.
봄이에 의해 만천하에 밝혀지게 된다.
─현직약사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진짜 오래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ㅠㅠ
"허허헝……, 우리 오빠 살려줘요."
―안돼 이건 못 살려
―현대 의료 기술로도 불가능하지
―아ㅋㅋㅋㅋㅋㅋ
―이미 죽은 거 아니야? (모근이)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 * *
─적에게 당했습니다!
한 롤BJ의 방송 화면.
적에게 그만 당하고 만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에는 갈고리가 수집된다.
―?
―점멸 왜 안 써?
―악 똥손
―방금은 좀 심했다ㅋㅋㅋㅋㅋㅋ
브실골BJ의 방송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바보 같은 실수로 시청자의 눈을 썩게 만드는 사고.
<아 진짜 훈수 너무 심해. 매니저님 빡세게 관리 좀 해주세요!>
물론 BJ 입장에서도 할 말이 있다.
그게 영 띠껍고 꼬우면 챌린저 방송 가든가?
애시당초 실력으로 보는 방송이 아니다.
브실골 방송은 친근함과 익숙함을 모토로 한다.
그래서 대부분 참지만 가끔 임계점을 넘을 때가 있다.
화가 잔뜩 난 BJ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던 차에.
─오정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뭐 어쩌라고! 지는 뭐 챌린저야? 나랑 똑같은 브실골이면서 뭘 안다고 훈수질이야. 매니저님 저런 악질은 강퇴 좀 해요 빨리!>
―하면 안될 것 같아서요 ㅠㅠ
―오정환이다
―저분 챌린저BJ에요!
―악질이긴 하지 ㅋ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후원 메세지가 올라온다.
한 놈만 걸려라.
담아둔 불만이 확 폭발하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이거지.'
여캠 탐방.
밋밋하게 얼굴만 봐도 사실 충분하지만, 약간의 사건·사고와 함께 하는 편이 자극적이다.
<정말 오정환님이에요? 사칭이 아니고? 아……, 죄송해요. 제가 방금 너무 욱해 가지고…….>
―욱하는 모습도 귀여우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이가 귀엽긴 하지
―ㅈ정환 이 새끼 발정 났누
하물며 롤.
나의 전문 분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다소의 장난은 용납받을 수 있는 위치다.
<조금만 고치면 잘해질 것 같다고요? 감사합니다! 저도 오정환님 방송 본 적 있는데 진짜 잘하시는 분이잖아요.>
―제가 다음에 맨투맨으로. 아니, 맨투걸인가? 아무튼 한번 가르쳐드리고 싶은데 혹시 생각 있으세요? ㅎㅎ―맨투걸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작업 치네
―정환이 챌린저 1위에요 민이님!
발언의 무게도 말이다.
롤여캠들은 특히 더 난이도가 낮다.
'딱히 쉽다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여캠쪽은 복잡하다.
그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이다.
하지만 롤여캠은 상업화가 덜 돼 있다.
재밌게 놀 만한 친구를 찾기가 편하다.
<직접 만나서요? 제가 딱히 정환님을 의심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같이 게임 방송을 하자는 거죠?>
―디코로만 하면 한계가 있으니까 하는 소리죠~ 만나서 말씀드리면 제가 훨씬 더 코칭하기 편하니까 ―정환아 속 보인다……
―연애 코칭이죠?
―손만 잡고 자는 거지 ㄹㅇ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또 한 명 캐치한다.
다음 달 스케줄이 굉장히 빡빡하게 채워지고 있다.
─한국대물소킹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도대체 몇 명째 꼬시는 거야 ㄷㄷ
"니들이 나보고 고자라며. 이상형 한 분 찾아서 정착하면 그런 소리 안 나올 거 아니야."
―정착ㅋㅋㅋㅋㅋㅋㅋㅋ
―고자가 아니었어……?
―ㄹㅇ 고자 탈출하자
―이렇게 여자 잘 꼬시는 고자 봤냐고 ㅋㅋㅋ
다소 과한 감은 있지만 말이다.
작업이라는 게 너무 문어발로 하면 진실성이 떨어진다.
'그래서야.'
안전한 오빠라는 이미지는 분명 좋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착한 것과 호구는 한 끗 차이.
살짝 위험하다는 느낌도 깊이라는 면에서 추가할 만하다.
그 작업은 척척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봄이가 떠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 생각인데.
─사실안착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환님 큰 병 걸리신 거 맞았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
"뭔 개소리야 아까부터 자꾸."
다소의 어그로가 끌린다.
방송적으로 엮인 BJ가 있으면 시청자들이 전서구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봄이의 방송에서 시답잖은 화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 봤자 별일 아닐 테고, 방송 끝나고 확인해보면 되겠지.
─하이드온부띠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환님 어째서 오메가3와 비오틴을 챙겨 드시는 거죠? 조속한 해명 부탁드립니다!
"……."
―영양제 아님?
―오메가3는 챙겨 먹을 만하지
―비오틴은 처음 들어보네
―저거 탈모인들이 먹는 약이잖앜ㅋㅋㅋㅋㅋㅋ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불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