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요지는 결국 실력이 아니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준 거니까.'
당장은 물고기가 없다.
결과는 시간이 지나봐야 나오는 것이다.
지금 한두 마디 더 한다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뽀옹!
코르크 따는 소리.
위스키는 아니다.
와인을 작은 디저트 와인 잔에 졸졸 따른다.
"마셔봐요. 조금만."
"콜록콜록! 이거 너무 독하잖아요!"
―?
―와인도 못 마셔?
―약한 척 에반데
―아니 무슨 소주도 아니고 와인 가지고 ㅋㅋㅋㅋㅋ
한 모금 마신 유민이 사레들린 듯 기침을 내뱉는다.
동시에 채팅창에서 갈고리가 수집되고 있다.
'내가 괜히 디저트 와인 잔을 쓴 게 아니야.'
조금만 마셔야 하니까.
와인은 와인이지만 조금 독한 와인이다.
주정강화 와인이라고 한다.
「KOPKE 20YEARS OLD TAWNY」
브랜디를 넣어서 숙성시킨 포트 와인.
도수가 20도에 달해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면 독하다고 느낄 수 있다.
─rkfqlxkd50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20년짜리 술을 펑펑 여네 ㄷㄷ
"알면 좀 더 쏴주세요. 본전 좀 뽑게."
―와 20년
―발렌타인도 21년이면 엄청 비쌀 텐데
―신기한 술 많네
―저거 맛남?
물론 그렇게 비싼 건 아니다.
위스키나 브랜디처럼 숙성 조금만 시켜도 가격이 하늘을 뚫지 않는다.
'적어도 30년은 돼야 고숙성으로 쳐주거든.'
20년이면 K―주세를 처맞지 않는 이상 5만 원 안팎으로 구한다.
그러면서도 그럴듯한 술이라 생색내기 좋다.
"맛있긴 하다 이거. 와……."
"입맛에 맞아요?"
"근데 조금 달아요."
"얼음 좀 타줄까요?"
"와인인데 얼음 타도 되는 거예요??"
신기한 듯 물어본다.
다소 기가 죽는 감도 있다.
서양술에 대해 환상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뭔가 격식 차려서 마셔야 될 것 같잖아.'
사실은 별거 없는데.
우리나라가 치맥 하듯이 그쪽은 그쪽 나름대로 방법이 있을 뿐이다.
"이게 원래 디저트 와인이거든요."
"네."
"굉장히 단 편이라 얼음을 타면 단맛도 덜해지고, 마시기도 편해져서 좋아요."
"오~"
그냥 여자들이 좋아해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술이라 내왔다.
와인이라는 게 분위기 잡기도 좋은 편이다.
'사실 작업주이긴 해.'
레이디 킬러.
달고 예쁘지만, 도수가 높아서 자기도 모르게 취하게 만드는 술.
주정강화 와인도 그러한 특성을 지녔다.
숙성이 20년 된 술이라 알코올도 거의 튀지 않는다.
얼음까지 타면 주스처럼 술술 들어가서 금세 취한다.
찌익!
술안주도.
적당히 시킨 이자카야 꼬치구이.
물어서 빼낸 대파와 닭고기를 거칠게 삼킨다.
─연애훈수둠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안주 너무 느낌 없는데 ㅋㅋ
"싫어요?"
"아뇨, 맛있기만 한데."
"본인이 좋다는데 왜 오지랖이야."
―와인에 닭꼬치ㅋㅋㅋㅋㅋ
―여자들 저런 거 싫어하지 않나
―맞춰주는 거지
―불편충 쳐내!
조금 와일드한 음식.
첫 만남에서는 신경 쓰일 수 있다.
시청자들도 그런 기류를 읽은 거고.
"이빨 보이는 게 좀 신경 쓰이는 정도?"
"하나도 신경 안 써요."
"아, 네."
"하얗고 치열도 골라서 이쁘던데."
"아 보고 있었잖아요!"
쑥스러운 듯 음료를 연신 들이켠다.
아무리 얼음을 탔어도 도수가 좀 있는 편인데 걱정된다.
'자기가 원하는 걸 아는 여자를 본 적이 있어? 난 살면서 본 적이 없어.'
기본적으로 기분파다.
그리고 케바케가 심하다.
한국 사람들이 착해서 맞춰주는데 보통은 안 맞춰준다.
왜?
의미가 없으니까.
사실은 지들도 잘 모른다.
그냥 재밌어할 만한 거 적당히 해주는 게 정답이다.
물론 신경을 써주면 좋은 남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상적인 남자는 될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지론이다.
─술좋아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번엔 위스키는 안 깜?
"위스키는 독해서 못 마시죠."
"그 여름이란 분하고는 마셨어요?"
"위스키는 쥬아랑 마셨지."
"저도 마셔보고 싶어요."
"……."
―엄청 독할 텐데
―맥여보잨ㅋㅋㅋㅋㅋㅋㅋㅋ
―질투 ㄷㄷ
―취한 거 아님?
조금 특별한 경험.
평소에는 하지 못할 만한 일.
방송 중에는 와닿는 정도가 더욱 민감하다.
찌이익!
한 잔 정도는 선물해줄 수 있다.
뚜껑에 감아 놓은 파라필름을 둘둘 풀어 글렌캐런 잔에 조심스레 쏟는다.
"뭐예요?"
"위스키죠."
"이런, 이런 병 같은 게 아니라?"
"옮겨 놓은 거예요."
"……."
바이알.
학교 과학실에 흔하게 있는 작은 병이다.
위스키를 한 병 딸 때마다 일부 덜어 놓고 있다.
'다 마시고 갔단 말이야 그 X발련이.'
나도 데일리로는 못 여는 건데.
그렇다고 또 열기는 아까우니까 맛만 보고 싶을 때 바이알을 활용한다.
─큰집식혜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탈모가 째째한 게 선입견이 아니었네……
"진~짜 탈몬가 보다. 소문인 줄 알았는데."
"……."
―장래희망 스쿠루지
―너무하다
―그 정도로 아까움?
―이해는 하는데 이건 좀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오히려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스탠다드한 방식이다.
'병 단위는 비싸니까 여러 가지 마실 수 없잖아.'
그래서 바이알에 담아서 팔거나 교환하기도 한다.
구하기 어려운 술을 다시 한번 맛볼 때도 좋고.
"탈모 아니면 머리카락 뽑아봐도 돼요?"
"아니, 그 소리를 보는 사람마다 듣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머리털을 계속 뽑히면 멀쩡한 사람도 탈모 소리 듣겠다."
"멀쩡한 사람이 아니세요?"
"……."
"아, 아니 혹시 진짜 아프신가 해서;;"
절대 아끼는 것이 아니다.
낭비를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은 관점이다.
'요즘 애들은 Flex다 뭐다 해서 낭비하는 게 자랑인 줄 알아.'
나 때는 더위사냥도 반으로 쪼개서 먹고 다녔는데.
300원짜리 2개 안 사고 500원짜리 하나 샀다고.
"맛이 어때요?"
"콜록콜록! 콜록콜록!"
"말했잖아요. 마시기 힘들다고."
"아닌데요? 마실 만한데요?"
―목이 타들어가지
―자존심 겁나 세네 ㅋㅋ
―쥬아는 벌컥벌컥 마시던데
―얼음 좀 타줘라
그리고 이는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다.
다른 여자한테는 해줬다며?
'여자들은 특별 취급받는 걸 좋아해서.'
적어도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못 참는다.
별거 아닌 밀당의 한 종류다.
"그냥 마시기 좀 독하죠?"
"괜찮은데."
"물을 좀 타면 즐기기 편할 거예요. 원래 그렇게 마셔요."
"얼음이 아니라요?"
"얼음은 비추예요."
"오~"
상대가 나의 세계에 들어오게 만든다.
남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냥 불편해서도 있고.'
온도가 낮아지면 섬세한 향이 죽는다.
특히 고숙성 셰리는 그냥 마시는 게 낫다.
"위스키 키스? 그게 뭐예영?"
"……."
"왜요? 나도 알 만한 거 다 아는 나인뎅."
"취했네."
―혀 돌아갔누
―독하다니까
―말투 귀여워졌엌ㅋㅋㅋㅋㅋㅋ
―이러다 사고 치는 거 아님?
반대로 온도가 높아지면.
실제로 그런 음용 방법이 있고, 경험 또한 꽤 풍부한 편이다.
"잠깐."
"네? 아……."
턱을 잡아당겨 입술을 살며시 먹는다.
가볍게 훑으며 벌어진 입술 틈새로 액체를 침투시킨다.
자연스럽게 같이 들어간 혀가 밀어 넣는 데 도움을 준다.
고개를 젖히자 침과 함께 식도로 넘겨진다.
"이런 거예요."
"딸꾹!"
"맛있어요?"
"아 그러니까 맛이……."
―이걸 진짜 해?
―ㅓㅜㅑ
―맛이 없었나 보네
―아무튼 맛없음! 아무튼 맛없음! 아무튼 맛없음!
어떻게 위스키를 마시는지 대략 알려준다.
고작해야 두 모금 분량이지만, ml로 환산하면 40이 넘는다.
'위스키 한 잔이 보통 30ml고.'
소주 2잔을 원샷 때린 셈이다.
독할 만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머리가 헤롱헤롱한 듯 제정신이 아니다.
"와인 마셔서 입가심해요."
"아, 네."
"원래 체이서라고 해서 물이나 약한 술로 환기하는 거예요."
"그렇구나."
정신이 반쯤 나가 있다.
딱히 내 잘못은 아닌 게 본인이 원하니까 해준 거다.
'귀엽네.'
리아나 쥬아 같은 모델급도 재미가 있지만, 일반인은 일반인다운 풋풋함이 있다.
여성 이전에 BJ로서 말이다.
롤여캠은 앞으로 더 생길 것이다.
경쟁력이 있는 애들을 물색해서 키워두면 적어도 중박 이상은 보장된다.
쪼옥─
남은 위스키를 입에 털어 넣고 다시 한번 입을 맞춘다.
모이를 받아먹는 아기새처럼 얌전히 침으로 희석된 액체를 삼킨다.
입을 떼자 뿜어져 나오는 향기.
먼젓번과 달리 닭꼬치의 기름기도 씻겨졌다.
위스키가 가진 고유의 향이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맛있…어요!"
"입술이?"
"아니, 아니, 아니;; 그 술이요."
"나는 둘 다 맛있던데."
―그렇게 맛남?
―진짜 졸라 맛있긴 하겠다…… 물론 술이
―유민아 ㅠㅠ
―첫 만남에 키스까지 ㄷㄷ
어느 정도 기틀이 닦인 여캠은 과한 스킨십이 역효과다.
기존 팬층에게 큰 반발을 살 수 있다.
쥬아 같은 특이 케이스를 빼면.
'근데 뭐 하꼬니까.'
살짝 마음대로 색을 입혀도 될 것이다.
본인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빈 잔의 잔향을 맡는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와인이랑 맛이 비슷한 것 같아요. 너무 생뚱맞은 소린가?"
"맞아요."
"그냥 해본 소린데."
"뿌리가 같거든요. 와인을 숙성시킨 오크통에 위스키를 숙성시켜서 향을 입힌 거예요."
"오~"
엄밀히 따지면 다르긴 하다.
하지만 큰 줄기에서 따졌을 때 일리가 있는 감상인 것도 사실이다.
'보드카 마시는 것마냥 인상 쓰면서 해치우면 좋은 술 먹이는 보람이 없지.'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진도도 제법 빼서 정신이 돌아오면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오빠."
"응?"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러던가."
"정환 오빠♡"
―애교 뭐야
―진짜 꽐라된 거 같은뎈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철벽 깔더니 무너지네
―술 깨면 쪽팔리겠다 ㅎㅎ
아니, 뭐 흔하다.
술 마시고 흑역사를 적립하는 BJ.
이 정도면 오히려 귀여운 수준으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쳐도 된다.
'물론 실수 정도로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나쁜 BJ에게 걸리면 말이다.
그대로 먹히는 것은 당연하고, 사진이 찍혀서 협박당할 수도 있다.
술에 떡이 됐으니 반항할 수도 없다.
방송에서의 분위기를 근거로 화간을 주장하면 할 말도 없다.
"저도 술 까주세요. 맛 알 것 같은뎅."
"다음에."
"다음에요? 약속하신 거에용?"
"그래, 그래 착하지."
이렇듯 말이다.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 사례도 워낙 많아서 중립 기어를 박는 게 추세라는 걸 이용한다.
'그리고 방송을 하다 보면 사람이 흥분하게 돼서.'
벗겨 놓으면 대부분 축축하게 젖어있다.
자기도 자기 기분이 어떤지 모른다.
머리도 알코올에 절어져서 안 돌아간다.
저질러버린 후에는 똥 밟았다 치고 잊으려는 경우가 열이면 열이다.
만에 하나가 있어도 파장을 생각하면 섣불리 못 터트린다.
여캠쪽이 잃을 게 많기 때문.
그러한 심리를 악용하는 나쁜 BJ들이 있기도 하지만 다행히 지금의 나는 해당하지 않는다.
"침대로 갈까?"
"침대용? 왜용?"
"……농담이야."
"저 졸려요."
―이걸실?
―오정환 사건/사고……
―선 넘네
―유민이도 좋아하는구만 무슨ㅋㅋㅋㅋㅋㅋ
할 거면 훨씬 교묘한 방법도 있으니까.
그런 애들 같은 짓은 할 나이도 아니다.
'여하튼.'
롤여캠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피니시까지.
그럭저럭 괜찮게 한 편의 방송을 마친다.
─유민♡카츠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좋은 말할 때 유민이 곱게 보내라……
"와 무섭네. 민이 열혈이신가? 택시 태워서 보낼 테니 걱정 마세요."
―열혈 딥빡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심충ㅋㅋㅋㅋㅋㅋㅋ
―롤여캠도 사심충 있음?
―ㄹㅇ 찐협박이라 쫄았다
누군가에겐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