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세간의 논란.
BJ를 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겪는 일이다.
'원래 그래.'
세상에 팩트는 없다.
보이는 시점만 있을 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건 정보화 사회가 될수록 와닿는 격언이다.
딩동?♪
나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간혹 생긴다.
BJ라는 특수한 직종에서 종사하다 보면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이를 해결해야만 한다.
사건의 당사자로부터 말이다.
겸사겸사 마음의 상처도 달래본다.
"……."
"들어와."
얼마 전 합방을 했던 BJ.
현관문을 열자 하린이가 어색하게 서있다.
대꾸도 안 하고 쌀쌀맞게 안으로 들어온다.
거실 쇼파에 적당히 앉힌다.
보글보글
그리고 드립 커피를 끓인다.
원두 본연의 맛이 우러나게 천천히 기다린다.
커피를 들고 거실로 돌아간다.
하린이 정말 미동도 없이 얼음 조각처럼 앉아있다.
"마셔."
"됐어요."
"여기다 둘게."
"저한테 뭐 할 말 없어요?"
말투 또한.
처음 만날 때부터 친근감 넘쳤던 그녀는 온데간데없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시가 박혀있다.
'소름 끼치게 재밌다.'
여러 가지 근황을 늘어놓는다.
그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말이다.
소위 말하는 신세 한탄.
"저 말씀드렸는데."
"뭘?"
"처음, 처음이라고요!"
"키스가?"
"오빠한텐 별거 아닐지 몰라도…… 하아, 하아."
입을 열고나자 감정이 북받친다는 듯 호흡이 거칠다.
그리고 뭐라뭐라 쏼라쏼라 하는데 잘 들리지도 않고, 내용도 별 의미는 없다.
'한껏 예쁘게 꾸미고 와서 화난 척해봤자.'
이미 다 속마음이 보인다.
적당히 진지한 태도로 들어준다.
여자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의도를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먼저 연락도 없고 사람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렇긴 했네."
"제 이야기 진지하게 듣는 거…… 맞죠?"
"음."
"음?"
"오늘 코디 잘 어울리네."
"아, 아니 갑자기 딴 소리 하지 말고;;"
대화의 목적은 상대와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조율하는 것이다.
제스처는 물론, 의미 없는 잡담도 결과만 같으면 하등 문제가 없다.
"화가 많이 났어?"
"오빠가, 오빠가 저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니까……."
"음."
"저, 저는……! 오빠가 그런 게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때 방송에서도 저 안중에도 없었고, 연락도 안 하시고 하니까……."
귀를 타고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어준다.
자연스럽게 올라간 손이 귀를 만지자 얼굴이 점점 벌겋게 된다.
'여자들이 다 기분 문제지.'
그리고 오해와 편견.
요 며칠간 방치를 하자 상상의 나래를 펼친 모양이다.
그것을 다분 의도하기도 했다.
"왜 울어 갑자기. 응? 오빠 때문에 우는 거 아니지?"
"이런 말하기 좀 그런데요……."
친구들하고도 어색해졌다.
처음을 허락하게 부추겨 놓고 자신을 소외한 채 대화를 진행한 게 말이다.
배신감이 들 만도 하다.
세 명 중 한 명의 포지션이 되면 으레 그러하다.
특히 외모가 가장 눈에 띄면.
쪼옥
대화를 진행하며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고개를 숙여 입술을 살짝 빤다.
깜짝 놀란 눈동자를 마주 본다.
'냄새부터가 달라.'
진짜 어린 애는 신선하다.
냄새가 안 난다, 좋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갓 건져 올린 스트레스 하나도 안 받고 대양에서 큰 물고기처럼.
쫘압?
입술을 조금 더 크게 벌려 먹는다.
3초간 허락.
하지만 간신히 붙어있는 이성의 끈이 반항을 시킨다.
덧없는 행동이다.
파닥파닥 싱싱하기만 하다.
익숙해진 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이내 얌전해진다.
"이제 두 번째니까 상관없지?"
"그, 그러니까 아흐……."
"오빠가 싫어?"
"아, 아뇨 저 오빠 좋아요. 진지한데……, 오빠는 진지하게 생각 안 할까 봐서."
이미 예정된 반응이다.
집에 들어온 시점에서 말이다.
그전부터 친구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간 것 또한.
'그런 애들은 멀리 하는 게 좋아.'
그 시점이 조금 당겨졌을 뿐이다.
세 명 중 가장 예쁘고, 순박하고, 방송까지 하고 있으니 질투를 받는다.
"살이 쏙 빠졌네."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정말 억울하고 힘들어서."
"난 쏙 빠진 게 좋더라."
"다이어트 같은 게 아닌데……."
살짝 올라있던 젖살.
빠지고 선이 생기면 더 예뻐질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짜기 수월하다는 것도 눈여겨보고 있다.
'약간 색기가 붙으면 좋을 텐데.'
BJ라는 직업이 쉽지 않다.
물론 쉬운 직업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지만, BJ가 가장 어려운 건 배우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하아, 하아, 하아……."
세 번째를 마치고 나자 내뱉는 호흡 마디마디에 요염함이 깃든다.
부족한 경험.
채우고 난다면 보다 자신의 역할에 어울리는 인재가 될지 모른다.
"좀 늦게 가도 되지?"
"네……."
"하루 자고 가는 건?"
"그건 그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은데요……."
귀만 잡고 있음에도 맥박이 빨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자신이 곧 무엇을 당할지.
자각을 한 듯 움직임이 뻣뻣하게 굳는다.
망설이게 된다.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이 순간을 탈피하고 싶다는 회피 욕구가 생긴다.
'그럴 시간을 안 주면 되지.'
처음은 확실히 불타오르는 것이 있다
* * *
같은 시각.
"으악 무승귀신이다!!"
"꺄아악?! 저리 가 이 무승귀신!!"
용산 e―Sports 경기장은 붐비고 있다.
인기팀의 경기가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팀 오정환 대 Majin Sword.
양 팀 팬석이 꽉 찼을 정도로 분위기는 불타오르고 있는데.
<요즘 팀 오정환의 기세가 참~~ 뭐라고 딱 단정 지어서 말하기가 애매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KTX 롤스터전에서 첫 승을 신고하고, 강정 SKY T1 K를 꺾는 기염을 토하며 팬들에게 존재감을 확실하게 어필하긴 했지만…….>
김서준 해설의 심기가 불편하다.
강팀 판독기.
그가 신나 있으면 강팀이고, 언짢다는 표정을 지으면 약팀이라는 밈이 있다.
─지금 김서준 속마음 추측해봤다 ㄹㅇ
분명 최근 폼만 보면 ㅈ박은 게 확실한데
혹시 또 T1전처럼 역대급 경기 나올까 봐 말이 길어지고 있음ㅋㅋ└강팀준이 또 └팩트) 약팀 분류했으면 진즉에 녹음기 틀어 놓고 도망갔다 └김서준이 유일하게 판별 못하는 팀ㅋㅋ└무승귀신만 떨어지면 완벽한데……
단 한 팀.
팀 오정환만은 분석이 덜 돼있다.
아니,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퍼스트 블러드!
주사위가 말이다.
잘할 때는 아마추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잘하지만, 못할 때는 아마추어가 맞다 싶을 정도로 한숨이 나온다.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엄피컨 등장 ㄷㄷ
?오늘 강민철 텐션 미쳤네
?캬
?피닉스김 잘하는데?
오늘은 전자.
강민철 해설이 잔뜩 흥분할 만도 하다.
훌륭한 미드 솔킬이 나오며 게임의 시작을 유리하게 연다.
<미드 솔킬! 선취점 거뒀습니다! 대단한데요, 이 선수?!>
<동의합니다. 피닉스김이 출전한 오정환팀은 고점이 떨어진 게 아니냐?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김서준 해설의 언변도 리듬을 탄다.
팀 오정환의 고점 경기력.
어깨춤을 추게 할 만큼 훌륭하다는 것은 익히 증명된 바다.
"설마 우리 이겨?"
"무승귀신이 정말로?"
"무슨귀신은 씨빠! 그냥 드립이지 키키키킼."
팬들도 기대 만빵.
팬석에서 큰 환호성이 들려올 만도 하다.
라인전 단계의 유리함을 살려 화끈하게 게임을 굳히는 줄 알았는데.
─와치 (차르반 4세)님이 씨지맥 (앨리스)님을 처치했습니다!
게임이 기묘하게 비벼진다.
탑 라인에서 씨지맥의 앨리스가 갱킹을 당해 죽는다.
<어? 이렇게 되면…….>
<바텀에서 이득 안 보면 기분 많이 나쁘겠는데요 오정환팀?!>
대각선의 법칙.
프로 게임의 기본 운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해설진의 목소리를 들은 듯 팀 오정환도 행동에 들어간다.
??????
?아
?아니 이 새끼들 다이브 처음 쳐보나
?교수님 강의 시작하셨다……
그 결과가 반드시 좋을 수는 없을 뿐.
공식화가 이루어졌다는 건, 상대 입장에서 예상이 가능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하아!
이즈레알을 향해 음파가 날아간다.
엉덩이를 살짝 씰룩거리는 것으로 가볍게 피하며.
피융!
샤락!
QW를 족족 맞히며 카이팅한다.
약이 바짝 오른 리심과 쓰렉귀가 앞점멸을 쓰며 무리를 하게 된다.
샤라라락?!
타라랑~♬
이즈&쏘나의 궁극기가 면전에 작렬한다.
그 순간 폭딜에 쓰렉귀가 터지고, 리심은 버둥거리다 포탑에 맞아 죽는다.
"편하게 들어오란 말이야~"
"교수님!"
"역시 프라이형이야!"
마진 소드의 원딜러 프라이.
교수님이라 불릴 만큼 모범적인 다이브 방어로 대각선의 법칙을 깨뜨린다.
사이드에서 각각 사고가 터지며 유리했던 흐름이 무너진다.
아마추어 팀의 약점이라 거론되는 운영 단계에 들어가자.
"아오……."
"내가 뭐랬어? 무승귀신 들린 거 맞다니까?"
"이렇게 유리해도 지는 건 진짜 무승귀신 말고는 설명이 안 돼!"
팀 오정환의 팬석.
팬들로서는 낙담할 만도 하다.
경기를 패배했기 때문도 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2013 LCK 스프링 A조 순위표」
1. SKY T1 K 8승 2패
1. 불밤 8승 2패
3. Majin Sword 7승 3패
4. 팀 오정환 3승 7패
5. 삼선 갤럭시 블루 2승 8패
5. KTX Rolster A 2승 8패
정규 시즌이 끝났다.
각 조의 여섯 팀 중 상위 네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팀 오정환은 최종 성적 4위.
1라운드 0승 5패의 스타트를 끊은 것치고 선전하고 있을 뿐.
─오늘 오정환팀이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Real
[프라이 사진. jpg]
저의 강의는 만족하셨나요 아마추어 학생들?
└앗
└교수님은 못 이기짘ㅋㅋㅋㅋㅋㅋ
└학생 하드 카운터 ㄷㄷ
└고졸도 가르치는 로를 몬테 센세……
최근 연패를 박으며 경기력이 흔들리고 있다.
불밤전에 이어 마진 소드전까지 패배.
아쉬운 마무리였다는 일갈을 피할 수 없다.
SNS를 타고 급속하게 퍼지는 유행어도 한몫한다.
─이쯤 되면 진짜 무승귀신 씌인 거 아니냐?
드립 거르고
오정환 떠나자마자 계속 지는데
이건 ㄹㅇ 무승귀신 씌인 거 아니면 설명 불가
└씨지맥 뒤에 무승귀신 보이는 거 같더라
└삼선 블루는 이겼는데?
글쓴이? 그때는 귀신이 퇴치된 지 얼마 안 돼서 못 붙음└오정환이 귀신 퇴치했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기력에 대한 불안감.
커뮤니티에서 다시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다.
얼마 전의 연승 이후 팀의 인기가 치솟았기 때문도 있다.
롤팬들에게는 더 이상 가벼운 화제가 아니다.
국내 프로팀 중 단 여덟 팀만 올라갈 수 있는 LCK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엄연한 강팀이다.
"요즘 경기력이 안 좋다고?"
"그렇습니다."
"흠……, 투자를 괜히 했나. 이유가 뭐지?"
"무승귀신이 들러붙었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당장 오정환한테 연락해!"
실제 스폰서에게 투자도 받고 있다.
광고주들 입장에서는 마치 고점에서 주식이 물린 듯한 기분이다.
'무승귀신이 대체 뭔진 모르겠지만 그런 사악한 건 퇴치를 해야지 불길하게시리 뭐 하는 거야?'
플레이오프 시청자는 정규 시즌의 평균 2배.
광고 효과는 그 곱절을 충분히 기대해봄직하다.
만에 하나 우승이라도 한다면 초? 대박이다.
오정환팀에 투자자한 스폰서들도 예의주시한다.
─근데 오정환 출전해봤자 가능성이 있음?
[오정환♡BJ하린 키스 사진. jpg]
이미 이 새끼는 정신부터가 글러 먹었는데
└지 팀 연패하고 난리 났는데 혼자 뭐 하눜ㅋㅋㅋㅋㅋㅋ└역대 최악의 BJ……
└이거 완전 태만 아님? 광고주들 고소각
└아무튼 태만임!
유일한 구세주.
연패였던 팀을 구출한 구단주.
롤판에서도 오정환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