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06화 (406/846)

406화

째깍! 째깍!

이유는 모른다.

평소에는 전혀 거슬리지 않던 시계 소리가 유난히 고막에 똑똑히 울릴 때가 있다.

"아……."

"응?"

"아, 아뇨 그게…… 일어나셨어요."

잠에서 깨자마자 뒤척이던 손.

부드럽게 걸린 살덩이를 잡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소 빈약하다.

엊그제 가지고 놀던 년보다 말이다.

하지만 피부의 부드러움이나 모양은 훨씬 좋다.

'깬 반응은 아니고……, 깨있었나 보네.'

취해있지는 않다 보니 민감하다.

살짝만 움직여도 자지러들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깨우는 것도 고역이니 오히려 다행이다.

"오, 오빠."

"왜."

"꼭 만지셔야 돼요? 그……, 밤도 아닌데."

"왜? 안 돼?"

"마음대로 하셔도 되긴 되는데. 아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우물쭈물 댄다.

그러면서도 전혀 거부감은 내비치지 않고 순종적이다.

'대개 첫 남자한테 그러더라고.'

리아만 해도 그렇다.

나쁜 남자를 만나면 큰일 날 수도 있다.

나는 아프지 않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게 즐거움을 가르쳐줬다.

"하린아."

"네……."

"뭐, 감흥 같은 거 없어? 일어났더니 옆에 모르는 남자랑 있어서 놀랐다든가."

"어젯밤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어서 그렇지 않아요."

"그래, 닳고 달았으니까."

"오빠 때문이에요."

처음을 굉장히 신경 쓰는 눈치길래 그럴 일이 없도록 해줬다.

낮에 분위기 탔을 때 경험을 시키고, 이곳저곳 몸을 확실하게 풀어줬다.

'두 번째는 본인 의사지만.'

밥도 먹이고, 목욕도 시켜서 심신을 회복시켜 줬다.

그다음 맨 정신에서 물어봤고, 본인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친구집에서 자고 올게요~

뻔한 변명까지 하며 말이다.

넓은 의미에서 친구가 맞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오빠가 싫어졌어?"

"저 오빠 원래 팬이었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고, 어젯밤에도 기분 좋았어요."

"벌써?"

"뭐……, 그랬어요."

솔직한 아이다.

선입견의 벽을 무너뜨리니 이후부터는 진도를 잘 따라온다.

'그 이전에 상당히 좋아하고 있지.'

첫 만남부터 팬이라고 했다.

나와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큰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오빠, 근데요."

"응?"

"오빠 일어날 때까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전 오빠의 뭐인 걸까요?"

"……."

그래서 더 복잡한 측면도 생겨버려서 문제다.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물어오면 곤란하다.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위로 덮인다.

"야, 오빠가 화가 잔뜩 났거든?"

"어? 왜요?"

"아래쪽이."

"아……."

"잠깐 괜찮지?"

"네, 오빠."

창가의 햇살이 얇은 이불을 꿰뚫는다.

서로 보일 건 다 보이지만 분위기라는 건 중요하다.

'요즘 애들은 정말 빨라.'

벌써 자세 잡을 줄을 안다.

아침의 텐트를 해소하는 과정이 상당히 편해진다.

쏴아아아아─!

그리고 샤워를 한다.

따듯한 물로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욕탕에 들어가 피로까지 녹인다.

"아 좋다."

"마음에 들어?"

"어제도 생각했지만 목욕탕 좋네요. 크고."

"신경 좀 썼지."

"혹시 여자 자주 와요?"

"……."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혼자 사는데 어째서 큰 욕탕을 만들었는지 쓸모없는 질문을 던져온다.

쪼옥

입을 막는다.

그리고 다른 질문을 답해준다.

슬슬 남자 손이 익숙해졌는지 오므린다거나 하지 않는다.

"아! 아아……."

"여기지?"

"오빠, 좀 더 아래 만져주세요."

"여기라고?"

"아파서."

"……."

이제 처음은커녕 두 번째도 아니지만, 경험일로 따지면 채 스무 시간도 안 됐다.

하체 부분의 이질감이 엄청날 만도 하다.

"지금은 조금 괜찮은데 일어났을 때는 엄청 욱신거렸어요."

"음."

"잠도 그래서 깬 거거든요."

"아프면 말하지 그랬어?"

"안기고 싶었어요."

"왜?

"왤까요?"

화장실의 밝은 조명.

안 그래도 똘망똘망한 하린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1mm도 돌리지 않고 쳐다보는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난 나쁜 짓을 한 게 없는데.'

알 만큼 아는 나이다.

본인도 많은 생각을 해봤을 테고, 원래부터 나를 좋아했다고 하니 거부감도 딱히 없다.

"안도감."

"응?"

"오빠가 저를 제대로 여자로 봐주는 게 맞구나 해서."

"봤으니까 안았겠지."

"그래도 남자는 성욕에 휘둘린다고 들었으니까……."

할 말이 끊겼는지 반쯤 입수를 한다.

입술을 욕탕 물 아래에 잠그고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키고 있다.

작은 머리.

건강하고 밝은 피부.

무엇보다 비율이 좋고, 골반이 꽤 벌어져 있다.

'이런 애들이 잘만 키우면 엄청 섹스러워지지.'

반대로 잘못하면 아줌마 체형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인재를 알아보고, 체계적으로 키우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오빠."

"왜."

"고자라는 건 컨셉?"

"……."

그것이 녹록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BJ세계로 입문을 시키는 것.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인 것도 사실이다.

"욕탕 큰 것도 수상하고."

"너 궁금한 게 많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많이 알고 싶은 건 이상한가요?"

"음."

순수한 호기심.

충족시키는 것이 어려운 건 아니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단계라는 게 있다.

'적어도 그루피는 아닌 것 같네.'

처음 느낀 감부터 아니라고는 생각했다.

심신이 맑은 아이고, 문제될 소지도 딱히 없어 보인다.

"오빠는 저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아요?"

"알고 싶지."

"건성으로 말고."

"어디가 약한지라든가."

"아, 아니 그런 거 말고 아흐……."

새하얀 눈밭.

첫 발자국을 남기는 건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다.

어제 하루로 꽤 알기는 했지만, 아직 알아갈 구석이 더 많은 아이다.

"그건 오빠 마음대로 하고요."

"마음대로? 정말?"

"으……, 그러니까!"

갑자기 대담하게 일어선다.

물방울이 튀기는 것이 전혀 개의치 않을 만한 풍경.

그대로 다시 내 무릎 위에 앉는다.

방향을 바꿔서.

"여기도? 여기도?"

"아, 거긴 더러운데. 아, 자꾸 왜 그런 델……."

"마음대로 하라며."

"마음대로 하세요."

"엄청 야한 몸으로 만들어줘야지~"

"해주세요."

"오?"

"오빠는 가볍게 말하는 걸 수도 있지만……, 전 지금 정말 머리 터질 것 같은데 억지로 참고 있는 거예요."

똑바로 마주 봐오는 눈동자.

그 안에 두려움을 비롯한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서야 보인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한두세네 번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개개인에게는 각자 다른 사정이 존재한다.

"저 사실 대학생 아니에요."

"고등학생?"

"재수 하고 있어요. 친구들은 다 지망하던 곳에 합격을 했는데……."

흔한 이야기다.

수험을 막 마친 스무 살.

사회적 기준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지게 된다.

'처음 실패를 맛보면 콤플렉스가 생기지.'

친구들 간의 대화에도 겉돌게 된다.

심한 경우 얕보여져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허세.

방어 기재로 쌓아 놓는 경우가 있다.

재수 정도는 귀엽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다.

"실망 안 했어."

"정말요?"

"충분히 매력적이야."

"정말요?"

"오빠 아무나 안 안아."

"그럼 저 책임져주시는 거예요?"

"……."

"농담이에요."

오히려 좋다.

학생이 아니라면 BJ 일에 보다 전념할 수 있다.

머리도 똘똘하고, 눈치도 빨라서 가르칠 맛도 난다.

나로서는 편한 일이다.

본인으로서는 고민이 많고,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어서 문제지.

"예를 들어서 무섭게 생겼는데 사실은 순한 남자가 있어."

"오빠요?"

"아니, 있다고 쳐봐."

때문에 필요한 건 목표와 버팀목.

크루원들에게도 늘상 해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사람마다 케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괜히 안은 게 아니야.'

내가 그렇게 성욕에 찌들지 않았다.

하린이가 나아갈 목표로 삼을 BJ상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알고 보니 착하네? 지인으로서는 나쁘지 않을 수 있겠지."

"우리 반에도 그런 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름 알아?"

"글쎄요?"

기억해보려는 듯 미간에 힘을 준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정도의 인상이라는 것이다.

'연예인들도 많이 겪는 직업병이지.'

자신을 보여주는 직업이 아니다.

시청자가 원하는 걸 보여주는 직업이다.

그것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희귀 케이스.

대부분은 맞추고 있다.

방송용 캐릭터가 실제 자신과 달라서 고충을 토로하는 것은 연예계에서는 일반적이다.

"이게 연예인들은 크게 상관이 없어."

"왜요?"

"어차피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이 짧잖아."

"으응~"

물론 상관은 있다.

인기 연예인의 두 얼굴!

심심하면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릴 만한 기사 제목이다.

'그거야 지가 병신짓을 한 거고.'

기자들이 워낙 극성으로 쫓아다니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BJ는 그 정도로 사생활 침해에 시달리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서만 잘하면 된다.

그 시간이 길어도 너무 긴 게 문제지.

편집도 없기 때문에 연기를 하게 되면 피로하다.

"평소 자신을 만들어나가야 돼."

"으응~"

"하린이는 약간 섹시하게, 은꼴 쪽으로 가는 게 잘 먹혀."

"그래서 가르쳐준 거예요?"

"……."

나만 좋자고 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색기는 몸에 배였을 때 자연스럽게 새어 나온다.

'요즘 애들은 정말 어른 말씀하시는데 말대꾸 꼬박꼬박 하고.'

목욕 가운을 입히고 거실로 나온다.

가장 큰 방으로 들어간다.

얼마 전까지 봄이가 서식했던 그 방.

"이거 BJ하와와 거예요?"

"아니. 걔 거는 졸이지도 않았어."

"그러네. 혹시?"

"응?"

"오빠 그런 취향이셨군요."

옷걸이에 걸려있는 교복을 자신한테 맞춰보며 배시시 웃는다.

일전의 합방 때도 조금 재미를 보았던 입장이다.

'싫어하는 남자가 어딨겠어.'

같은 맥락이다.

시청자들도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 컨셉을 밀고 나가면 안 먹히기도 힘들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

시청자의 욕망을 잘 읽어내는 것이 특히 여캠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걸 미리 사두신 거예요? 이렇게 될 줄 알고?"

"싫어?"

"절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좋아요. 히……."

마음에 들었다는 듯 바로 착의를 시작한다.

장난삼아 시켰던 일찐 누나 컨셉을 보다 여유롭게 소화해낸다.

"담배도 필까요?"

"아니, 컨셉은 어디까지나 컨셉이니까. 그 적절한 선이라는 게 중요하거든."

"으응~"

"그보다 혼자 야한 짓 해?"

"안 해요."

딱히 부끄러워서 하는 거짓말은 아닌 듯 보인다.

솔직하고, 직구에 가까운 말투를 생각하면 십중팔구.

"앞으로 자주 해."

"오빠랑만 하고 싶은데."

"명령이야."

"알았어요."

"매일 아침이랑 밤에 하고 검사 맡아."

"검사까지?"

어차피 알 만한 나이 되면 시작하게 돼있다.

리아도 처음부터 그렇게 발랑 까지진 않았으니 말이다.

순조롭다.

내가 정해주는 목표를 수행하는 건.

자신만의 고집도 있는 편이 개성을 녹여낼 수 있다.

"오빠, 역시 저 재수 할래요."

"BJ는 하기 싫고?"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교복 하면 학생이고, 학생 하면 공부잖아요?"

얘가 똘똘하다.

컨설팅은 어디까지나 참견.

알아서 잘한다면 그것만큼 환영인 게 없다.

"그러니까……."

"응?"

"저 나쁜 아이로 만들어주세요. 연기잖아요?"

거부할 수 없는 유혹도 환영이다.

막 샤워를 마친 스무 살의 향기.

아침 텐트를 식혔음에도 그다음을 일으켜 세운다.

"연기 지도를 해줄까?"

"연기…죠?"

"그래, 다 연기니까 깨끗하고 순결한 몸이야."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

재미삼아 던진 농담.

본인으로서는 나름 진지한 문제인 듯 생각을 곱씹고 있다.

그도 그럴 게 첫경험이다.

외간 남자한테 빼앗겼다.

그 남자가 책임져줄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보다는 좋은 쪽의 해석이 날 때도 있으니까.'

딱히 거짓말도 아니고 말이다.

항상 깨끗하고 순결한 몸을 맛보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