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봄이세스 메이커
LCK의 결승전.
그 피 말리는 항쟁도 어쩌면 별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끼익?
두꺼운 현관문이 열린다.
조금씩 벌어지는 틈새 사이로 사나운 생물이 나타난다.
"봄이가 왔어?"
"아직 오지 않은 거예요."
봄이의 작은 뒷발이 현관문에 브레이크를 건다.
철문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이 벌어진다.
'우리 봄이도 머리가 많이 컸지.'
작은 대가리는 여전하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조금쯤 변화가 생겼다.
드디어 트릭을 알아채고 만 것이다.
작은 두 앞발을 머리에 올리고 있다.
깍지를 끼고 마치 헬멧처럼 단단하게 가드한다.
배그로 따지면 뚝배기 1호 정도.
"저는 알아버린 거예요."
"그래."
"이렇게 머리를 가리면 깨물릴 일이 없다는 사실을!"
"그렇구나."
깨부수는 건 간단하다.
뭣하면 뚝배기째로 깨물어도 내 이빨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든든하기는커녕 국수 면발 같은 손가락.
가늘고 앏아 오독오독 씹힐 것 같은 느낌이다.
"진정하고 손을 천천히 내려."
"전 더 이상 당하고만 살지 않을 거예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ㅋㅋ
북풍처럼 몰아붙이는 것보다 태양처럼 꼬드기는 게 더 재미있기도 하다.
어차피 결과는 매한가지겠지만 말이다.
봄이의 머리 방어 태세.
나그네의 코트처럼 손까지를 단단히 끼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알아따따. 오빠가 미안해.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맛있는 거!"
"오빠랑 화해해야지."
"화해할게요!"
"오냐."
"꾸웨엑……."
따뜻한 햇빛 정책뿐이다.
실제로 성공을 거두었는지, 효과가 있었는지 몰라도 눈앞의 대상은 쉽게 대가리를 내준다.
'남북 관계도 이렇게 풀릴 수만 있으면 좋겠네.'
우리 봄이가 커봤자 결국 봄이.
깨물린 부위를 두 앞발로 꼭 감싼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머, 머리가 너무 아파요."
"깨물렸으니까 당연히 아프지."
"아니에요. 안도 속도 다 아파요. 오빠 때문에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오!"
ㅋㅋ
한 여자를 울려버린 모양이다.
잔뜩 신경질을 내며 앙칼지게 올려다본다.
'아우 구여워 정말.'
깨물리는 이유가 있다.
그런 봄이에게도 나름대로 진지한, 객관적으로도 그럴듯한 고민이 있었다.
─피자매니아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봄이 왜 이렇게 화가 잔뜩 났어?
"정말이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야……
?사춘기 왔어?
?우리 왤케 봄이 커여워!
방송 콘텐츠.
오랜만에 시청자 앞에 서기가 무섭게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이미 짐작을 하고 있던 부분이다.
'쑥쑥 컸잖아.'
내 눈에는 여전히 귀엽다.
완전히 애새끼가 따로 없다.
하지만 동년배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후우~"
우리 봄이의 깊은 한숨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별로 의미는 없겠지만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헐
?봄이 힘들었겠네
?하긴 봄이 외모면 주위에서 안 놔두지 ㅇㅇ;
?봄이가 헌팅이라니!
지난 대가리 파동.
사냥감으로 전락했던 앙증맞은 봄이가 아니다.
한 꺼풀 벗어던지며 보다 강력해졌다.
'근데 그 사냥이라는 게 꼭 씹어 먹는 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
다른 쪽의 취식거리를 원하는 놈팽이들도 있다.
우리 봄이도 슬슬 어른의 세계에 눈을 뜰 시기가 온 걸지도 모른다.
"저 깨달은 거예요."
"그래."
"저는 죄 많은 여자였던 거예요~"
"그렇구나."
ㅋㅋ
아님 말고.
드라마를 많이 봐서 알 만큼은 안다.
신데렐라 속성에 남자가 꼬이는 히로인상 말이다.
'우리 봄이 정도면 몰입할 만도 해.'
이쁘장하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은 정말 인형이 따로 없다.
최근 화장이 일상화되며 여성으로서 매력이 피어올랐다.
"친구들이랑 놀러 가면 자꾸 대학생 오빠들이 말을 거는 거예요."
"……."
"정말이지 귀찮기만 한 거예요~"
?오정환 빡쳤는데?
?감히 봄이를 건드네
?봄이도 다 컸구나
?대학생 오빠 ㅗㅜㅑ
조금 우려가 될 정도로 말이다.
화장을 안 시켜도 사냥당하지만, 시켜도 사냥을 당하니 참 문제다.
"남자는 다 늑대야, 알겠어?"
"그런 거예요?"
"그런 거야."
"그럼 오빠도 늑대인 거예요?"
"……."
스스로 가드를 올릴 줄 알아야 한다.
아직 세상을 꽃밭으로 보고 있는 봄이가 저항력을 가질 수 있을지.
"저 조금 뿌듯한 거예요!"
"어째서?"
"옛날에는 친구들한테만 말을 걸었어요. 요즘은 제가 더 빈도수가 높아진 거예요~"
"……."
?봄이 신났는데?
?표정 심각한 거 봐 ㅋㅋㅋㅋ
?절대 좋은 일이 아닌데……
?↑↑늑대
매우 이르다고 판단한다.
보호자로서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꾸엑……."
찹쌀떡처럼 늘어나는 볼따구.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한 가지가 다르다.
손가락에 하얀 분이 묻어난다.
우리 봄이도 나름대로 예쁘게 꾸미고 다닌다.
'그래 봤자 올리브영 마일리지가 3000Point를 돌파한 정도지만.'
고등학교 급식들한테는 충분히 먹히고도 남는다.
도내 최상위 랭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식 수준에서는 말이다.
성인 새끼들이 어리다고 만만히 보고 말을 거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보라) 오정환. 봄이세스 메이커」_ ?18, 920명 시청
금일 방송을 기획한 이유다.
봄이에게 꼬이는 날파리들을 퇴치할 근본적인 방법.
─줄넘기마스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봄이세스 메이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봄이도 드디어 화장을 합니다."
"헐~ 저 하고 있는데요?"
?화장을 한다고?
?역시 거의 어른 ㄷㄷ
?본인이 했다는데 뭥미
?저건 화장이 아니지 ㅋ
괜히 올리브영 단골이 된 게 아니다.
뭔가 바르고 있기도 하고, 대가리를 깨물면 좋은 냄새도 난다.
'그걸 보통 화장이라고 안 해. 쌩얼이라고 하지.'
한국에서 '쌩얼'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풀메가 아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쌩얼 메이크업이라는 게 존재할 정도이니 말 다 했다.
화장은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쌩얼, 자연스러운 화장, 풀메.
우리 봄이가 하고 있는 수준은 쌩얼에 가깝다.
딩동?!
한 단계 발전할 때도 되었다.
K? 뷰티라 칭송받는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메이크업을 전수받는다.
"오빠 저 왔어요♡"
"그래, 잘 지냈어?"
"히힛."
그 전문가를 불렀다.
하린이.
나름 꾸미고 다닐 줄도 알고, 봄이와도 가장 가까운 나이대다.
'리아나 예빈이를 부르는 건 아직 이르니까.'
풋풋한 애들끼리 붙여 놓을 생각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하린이는 한층 발랄하고 예뻐져 있다.
쏙 품에 안겨 오자 향긋한 향기가 난다.
하루밖에 안 안은 거의 새삥이나 다름없는 과일이다.
"둘이 인사해."
"헐~"
"안녕하세요. 저 BJ빵숙이라고 하거든요."
?캬
?커여운 것들끼리 만나네
?너무 귀엽다
?봄이 쫄았어 ㅋㅋ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니 말이 통할 것이다.
봄이 입장에서 보면 상급생 같을지도 모르겠다.
'생긴 것부터가.'
당연히 교복을 입고 오라고 시켰다.
아니, 일상복이 된 느낌이라 평소에도 그렇게 다닌다.
일찐 누나 컨셉을 소화하기 위함이다.
외관뿐만 아니라 행동거지까지 자연스럽게 배어난다.
급식계의 최상위 포식자.
잔뜩 쫄은 봄이가 덜덜덜 떨며 진동 모드가 될 만도 하다.
"봄이 왜 이렇게 겁먹었어?"
"무서운 언니인 거 같아요."
"괜찮아. 봄이 친구들도 이렇게 하고 다니잖아."
"그치만, 그치만 제 친구들은 착한 거예요."
"이 언니도 착해."
"그런 거예요?
진한 아이라인.
터질 듯한 와이셔츠와 살짝 풀어놓은 셔츠 단추는 그 자체만으로도 불량하다.
미니스커트 수준으로 쫄인 치마는 위압감이 있다.
진짜 급식인 봄이에게는 말이다.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그냥.
─빵숙♡잇힝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요즘 빵숙이 폼 미침ㅋㅋㅋ 특히 담배 리액션
"담배도 펴?"
"히힛, 리액션으로 펴보고 있어요. 그냥 시늉만."
"헐!"
?봄이 깜놀했는데?
?무서운 언니야……
?빵숙이는 성인이라구!
?담배 피면 나쁜 아이 맞짘ㅋㅋㅋㅋㅋㅋㅋㅋ
꼴리는 요소.
재현이 리얼하면 리얼할수록 반응은 좋을 수밖에 없다.
우리 봄이의 리액션도 좋아서 문제다.
'언제까지 애새끼일 수는 없잖아.'
그런 인간은 씨지맥 하나면 충분하다.
정말 진지한 관점에서 환골탈태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오…, 오~!"
"힝……."
하린이가 흥미 넘친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봄이는 바짝 쫄아서 나한테 제발 살려 달라는 SOS를 보내고 있다.
급식의 하드 카운터는 조금 더 큰 급식.
사실 어디 내놔도 먹이 사슬 최하위인 봄이지만 유난히 더 애처롭다.
"피부 엄청 밝다. 모공도 없어! 와~~ 얼굴 존나 작아!"
"씹어도 맛이 없는 거예요……."
?역시 봄이좌!
?하린이도 작은데
?봄이 대가맄ㅋㅋㅋㅋㅋㅋㅋ
?깨물리기 딱 좋은 사이즈구나?
ㅋㅋ
딱 붙잡혀서 꼼짝도 못 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담당 일찐은 이런 것인 모양이다.
'선생님을 아주 잘 구했지.'
그대로만 따라해도 보다 강력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봄이에게 맞는 진로가 아니라 그렇지.
딸칵
그래도 한번 입혀본다.
봄이가 일찐이 되면 어떨까?
봄이세스 메이커는 이미 시동이 걸렸다.
"오빠 이거 너무 불편한 거예요."
"그래."
"다리가 너무 허전해요. 움직이면 찢어질 거 같아요."
"그렇구나."
ㅋㅋ
줄인 교복을 준비해둔 보람이 있다.
방에서 착의를 마친 봄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타난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2828개 감사합니다!
이런 봄이도 가끔은 좋네요 ㅎㅎ
"이뻐이뻐개 감사합니다, 봄이 방 부회장님. 제 방 열혈도 달아주시고."
?얼마나 쐈으면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못 참지
?일찐 봄이 ㅓㅜㅑ
?근데 태생적으로 안 어울리긴 하네 ㅋ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냥 좋다.
우리 봄이가 장래가 굉장히 유망해서 그 전조가 이곳저곳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일찐 코스프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부른 전문가이기도 하다.
"일찐 메이크업이라는 게 있거든요?"
"하긴 일찐 애들은 화장부터가 다르더라."
"저도 공부해서 안 건데 봄이한테 한번 해볼게요."
"헐!"
일찐이 된 봄이 스킨.
제대로 입히기 위해 하린이가 이곳저곳 손을 본다.
위이잉~
머리부터.
헤어드라이어와 구르프로 앞머리에 볼륨을 잔뜩 줘서 내린다.
다음은 화장.
피부톤을 인조적으로 하얗게 덧칠한다.
아이라인과 입술을 진하게 만들자 그럴듯하다.
마지막으로 옷차림.
셔츠 단추를 불량하게 푼다.
그리고 자세를 잡게 만드는 것으로 완벽하다.
"히잉……."
"우리 칠공주파!"
"삥 좀 뜯고 다녔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미파!
?제 돈 좀 가져주세요 ??
내용물 빼고 말이다.
우리 봄이만이 적응이 안 되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런 재미지.'
옷걸이가 좋은 편이다.
키는 평범하지만, 몸이 호리호리하고 비율이 좋다.
대가리도 작아서 마치 인형 같다.
피부는 무얼 칠해도 좋은 도화지.
"오빠, 오빠 저 더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마침 나도 그런 참이야."
하린이가 흥분한 듯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다.
무엇을 입혀도 어울리는 생명체가 눈앞에 있다.
'여자들이 그런 걸 워낙 좋아하더라고.'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정말 아무도 알 수 없는 백지와도 같은 상태다.
그런 새하얀 눈밭에는 발자국을 내주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다.
시동이 걸린 하린이 봄이를 더럽힌다.
봄이세스 메이커의 하지마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