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화
진행되는 결승전.
와아아아아─!
오아아아아~!
또다시 희비가 교차한다.
두 번째 세트의 결과도 앞선 세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세트와 거의 비슷한 흐름 아니었나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밴픽 자체가 상당 부분 겹치는 부분이 있다 보니…….>
김서준 해설이 1, 2세트를 복기한다.
진용준 캐스터가 짚은 대로 경기의 흐름이 큰 틀에서 유사했다.
─분석) 씨지맥 이 새끼 무승귀신 들린 건 ㄹㅇ임
무슨 도사님 소리 꺼내려는 게 아님
[정규시즌 1라운드 팀 오정환 밴픽. jpg]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없음?
조합이 전체적으로 비슷함
심지어 인게임 플레이도 판박이임
[정규시즌 2라운드 팀 오정환 밴픽. jpg]
조합 색깔 바뀐 거 딱 보이지?
씨지맥은 틀려도 지 생각을 안 바꾸니까 연패할 수밖에 없는 거 └분석추
└무승귀신 들린 건 맞눜ㅋㅋㅋㅋㅋㅋ
└진짜 뭔 자신감이지?
└대단한 내가 짠 조합이 틀릴 리가 있겠냐구!
커뮤니티에서도 이야기가 나온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어째서 실패한 시도를 또 하는 거지?
<밴픽 고집은 강팀의 특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유.
김서준 해설이 감상을 늘어놓는다.
팀 오정환의 입장에서 최대한 대변해준다.
<기껏 연습을 해왔는데 실패하면 억울하잖아요.>
<분명 자신이 있어서 꺼낸 조합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다를 수 있고, 그 점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고 있다.
차라리 첫 시도면 모를까.
이미 두 번의 대처를 해버린 마당이다.
<아~ 정말 안타까운 게 4강, 8강에서는 정말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줬거든요~!>
<지금 팀 오정환은 자신이 공부한 부분에서 시험이 출제되길 원하는 학생으로 보여요. 그 고집이 3세트에서 꺾일지 기대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고집 ㅋㅋ
?강팀준 개빡쳤네
?조용히 패네
?딜 미터기 터지겠눜ㅋㅋㅋㅋㅋㅋㅋ
전략.
프로팀들은 각자의 색깔을 가진다.
이는 명확한 승리 공식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자칫 분석을 당할 우려를 내포한다.
결승전 정도의 자리에 올라왔다면 오히려 당연하다.
지금까지 써온 방법이 안 먹힐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얘들아 다시 한번!"
"또, 또요?"
"아니, 그래도 이번에는 바꾸는 게 낫지 않나;;"
"우리는!"
""우, 우리는…….""
그것이 싫다.
자신이 만든 완벽한 팀.
그리고 갈고 닦아온 합으로 우승을 거머쥔다.
'우리 실수만 줄이면 돼.'
초반 스노우볼.
스피드 있는 게임과, 주도권을 바탕으로 여는 오브젝트 한타를 지향한다.
팀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딱딱 굴러가면 가능하다.
그것이 안 되니 방금 전처럼 무너지고 만 것이다.
앞서 두 번을 실패했다.
세 번째인 지금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
패패승승승의 기적을 써 내리는 시발점이 된다.
<어? 피드백이 꽤 격하게 진행되는 모양인데요?>
<경기 시작에 앞서 전략을 수정……해서 꼭 반전을 노리면 좋겠습니다.>
?'꼭'
?또 하는 거 아님?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 이럴 거 같은뎈ㅋㅋㅋㅋㅋㅋㅋㅋ? 씨지맥이면 모른다……
전광판.
3세트를 준비하는 선수들이 비춰지고 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시청자들로서는 불안하다.
막다른 절벽에 몰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지면 그대로 결승전이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씨지맥 입모양 찍어서 분석해봤음. jpg
[씨지맥 캡처 1~9.jpg]
"우" "리" "는" "틀" "리" "지" "않" "았" "다"
롤갤러들은 안심하고 경기 보도록 ㅇㅇ
└우틀않ㅋㅋㅋㅋㅋㅋㅋㅋ
└이왜진?
└아니 제발 주작이라고 해줘
└으악 무승귀신이다!
불안한 징조가 엿보인다.
설마 하던 일이 일어나려고 한다.
현장은 물론 채팅창과 커뮤니티까지 터질 수밖에 없는 이유.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 우리 한 번 더 한다
─미쳐버린 거신갘ㅋㅋㅋㅋㅋㅋㅋㅋ
─도사님께 빨리 1억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개추 +69 [74]
─이쯤 되면 진짜 귀신 있는 거 아니냐? [2] +17
.
.
.
해설진까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낼 정도다.
이대로 경기가 시작하면 십중팔구 패배하지 않을지.
씨지맥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틀렸어 이 새끼야!"
오정환이었다.
* * *
누군가 말한다.
준우승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것이라고.
'그보다 더 대단한 건 4연 준우승이 아닐까?'
무관귀신.
차후 씨지맥에게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이곳저곳 팀도 옮기고, 선수들을 바꿔 써도 준우승이 한계다.
빡!
그 귀신을 제령하기 위함이다.
전력을 담은 수도로 씨지맥의 대갈통을 후려친다.
"어, 어?!"
"머호 형 괜찮아요?"
"아니, 정환이 형 언제 왔어요? 갑자기 뭐에요!"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스 안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딱히 상정하지 못한 반응은 아니다.
'원래 위기 상황에서는 때려도 돼.'
그 정도가 아니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도 가혹 행위 규정은 엄격하지만, 실전 훈련 중에는 예외로 적용한다.
"너무 진심으로 때린 거 아니에요?"
"개아프겠다……."
"아무리 무승귀신 대갈통을 후려쳐서 빠개버리고 싶어도 그렇죠!"
"귀신 들린 거 같아서 떼낸 거야."
""아하!""
이렇듯 말이다.
귀신 들린 사람은 한 대 때려서 깨우는 것이 공포 영화의 국룰이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심취하면 틀린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걸어갈 때가 있어.'
평소의 자신을 믿는다.
굉장히 멋있는 말이긴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적용될 수는 없다.
하물며 결승전.
자신 있는 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가장 롤 잘하는, 잘 아는 사람들의 매치업이다.
"아니, 내가 틀렸다는 거야?"
"어."
"대체 어떤 점이? 설명을 해봐!"
"맞았으면 이겼겠지."
"……."
본인도 딱히 개의치 않는다.
육체의 고통보다 정신적인 충격에 온 신경이 집중돼있다.
자신의 전략이 부정 받았다.
어째서 틀렸는지 설명해봐라.
그것을 전부 다 알고 있는 입장이다.
씨지맥이 4연 준우승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써 내린 원인.
지나친 자기 과신에 있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다시 한번 해서 완벽하게 해내면 되잖아!"
"그것부터가 착각이라고."
"……."
"세상에 완벽이라는 게 어디 있어."
굳이 LoL로 한정하지 않아도 대전 게임에서는 당연한 이론이다.
누군가 엄청난 전략을 들고 와서 우승해도, 다음 시즌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파훼법이 나온다.
'대회 기간이 긴 LoL은 특히 그렇다고 하지.'
미드 탈론 교수님이 2022년에 출판한 저서 '홍진호도 기겁한 무관귀신'에 수록된 내용이다.
어째서 씨지맥 감독이 이끄는 팀은 우승을 못 하는지.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먹혔어!"
"그야 그렇겠지."
"한 번 더 해보면 또 모르는 거잖아?"
"결승전이 아니니까."
"……."
정규 시즌에는 전략이 필요 없다.
아니, 거추장스럽다는 표현이 옳다.
애초에 전략은 팀합이 맞는다는 전제하에 짤 수 있는 것이다.
'효율면에서도 낭비고.'
특정팀을 대항한 전략을 준비한다는 건, 나머지 팀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진다의 동의어다.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말이다.
원패턴.
하지만 체급만 높이면 모든 팀을 상대로 먹힐 수 있다.
정규 시즌 기간에는 씨지맥의 방식이 정답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완벽한 가위를 내도 상대가 주먹을 내면 질 수밖에 없어."
"아."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밴픽부터 지고 들어가는 느낌?"
"……."
상대팀은 팀합이 완벽하지 않다.
카운터 전략을 내도 어설플 수밖에 없고, 씨지맥의 완벽한 원패턴이 오히려 이긴다.
'근데 결승전에서도 그럴 리가 없잖아.'
실제로 씨지맥이 이끌던 팀들.
정규 시즌에는 패왕급 포스를 자랑했지만, 결승에서는 허무하리만큼 쉽게 무너지는 공통점을 보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아무리 완벽한 전략이라도 상대가 분석하고, 대응책을 짜는 순간 의미가 퇴색된다.
홍진호가 기겁할 만도 하다.
같은 무관이라도 전략적 시도를 해왔다.
씨지맥처럼 구조적으로 우승할 수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씨지맥식의 20승 0패보다 다양한 시도가 있는 12승 8패가 가치 있다고 저서는 마무리했지.'
물론 씨지맥도 바보는 아니고, 준우승을 연거푸 경험하며 깨닫게 된다.
현 시점에서는 모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필요하다.
좁아진 시야를 때려 패서라도 일깨워줄 존재.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이 팀에서 내가 가진 가장 큰 목표였다.
* * *
삼선 갤럭시 화이트의 부스 안.
"다대기."
"응?"
"진짜 칼칼하더라. 돌아갈 때 국밥 좀 포장해가자!"
"……."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다.
세워온 계획대로 일이 술술 풀리고 있으니 마음부터가 편하다.
'그래, 농담 따먹기 해도 되지.'
무려 2승을 거뒀다.
남은 3번의 세트 중 한 번만 이겨도 우승이다.
아니, 진다는 그림 자체가 그려지지 않는다.
"쟤네 멍청하게 똑같은 조합만 계속 꺼낸단 말이야."
""네!""
"불밤처럼 초반에 당해주지만 않으면 돼. 그리고 긴장해서 실수하지 말고."
상대가 하는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프로팀들과 너무 달라 처음 경기를 봤을 때는 당황했지만.
'우리가 바본 줄 아나.'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아무리 무서운 짐승이라도 앞으로 뛰어들 줄만 안다면 받아치는 것이 어렵지 않다.
팀 오정환에게 당한 팀들.
우격다짐의 돌진에 당황해서 자멸했다.
자신들은 확실히 대비했고, 이렇듯 결과로 증명한다.
와아아아아아─!
경기장이 어수선해진다.
소리와 진동을 통해 느껴진다.
상대팀 부스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팀 오정환의 엔트리가 바뀌어서 전달 드리러 왔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심판이 감독님께 전달 사항을 건넨다.
서류에 적힌 내용이 보이지는 않지만, 유추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엔트리가 바뀌었다고?'
상대팀의 출전 멤버.
기존의 다섯을 제외하면 단 한 명뿐이다.
다대기의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야, 잘됐네!"
"무지하게 의식했잖아 크크."
"의식은 무슨 겨우 아마추어한테……."
훨씬 이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애초에 우승은 와 닿지 않는 목표였다.
오정환을 박살 내고, 프로게이머로서 인정을 받자.
한참을 건너뛰어 결승전 자리에 와버렸다.
경기 시작에 앞서 마음이 붕 뜬 이유이기도 했다.
중간 단계의 목표를 건너뛴 셈이니 마음이 찝찝하다.
'호랑이 대가리에 기어들어 와준다면 나야 좋지.'
찝찝함을 날려버리는 것은 물론, 동기 부여까지 동시에 된다.
앞선 2승으로 살짝 풀려버린 긴장의 고삐를 다시 조인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현실이 된다.
소음 효과가 있는 헤드셋을 썼음에도 느껴지는 엄청난 환호성은 한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어차피 변하는 것 없어. 연습대로만 가면 돼."
""네, 감독님!""
보이는 화면 또한.
상대 선수의 닉네임이 바뀌었다.
지금 다대기의 시야에 보이는 건 그것뿐이다.
'오정환.'
당연히 어중이떠중이 취급하고 싶다.
솔로랭크에서 어쩌다 졌다고 해봤자, 기억할 정도로 연연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계속 들려온다.
프로게이머로서 가지고 싶었던 인정.
그것을 먼저 손에 넣고, 세간의 고평가를 받고 있다.
이 결승이란 자리에서 그를 깨부순다면 마땅한 위치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