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24화 (424/846)

424화

앞선 세트의 패배.

"우실줄! 우실줄!"

"줄건줘! 줄건줘!"

여유 있게 응원하는 코치진과 달리 선수들의 표정에는 긴장이 역력하다.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상대.

'다대기 이 새끼…….'

'너는 우승해도 회식으로 혼자 순댓국 먹어야 돼. 진짜!'

혹시나 했던 예감이 적중한다.

같은 팀이라는 것은 그만큼 잘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플레이 스타일은 물론이고 성격까지 말이다.

상대 선수에게 지는 것을 자존심 상해한다.

프로게이머 중에서는 그렇게 드문 타입도 아니다.

그런 만큼 대처법도 고심을 해두었다.

"공포 걸리면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연계해. 나 Q선마야."

"3초 지속이지?"

확정 CC기.

그중에서도 끠들스틱은 독보적이다.

타겟팅 공포가 무려 3초나 지속된다.

'미드똥 치워야지. 에혀.'

선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항이다.

밴카드를 조정할 수는 없었지만, 픽 권한 정도는 있다.

칼을 갈고 준비한 조커 카드.

끠들스틱은 딜러 하나를 확실하게 봉쇄할 수 있는 안티 캐리력을 지녔다.

르풀랑에게 특히 유효하다.

앞선 게임처럼 건방진 짓을 하면 골로 보내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파앗!

들어온다.

이미 말을 맞춰두었고 CC기 지속 시간도 기니 넉넉하게 연계하면 된다.

'아니, 씹!'

평소처럼 육두문자를 내뱉을 뻔했다.

공포의 짧은 캐스팅.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상대가 사라졌다.

왜곡을 재사용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워낙 간발의 차이였기에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다.

파앗!

터억!

사앗……!

그것이 되풀이된다.

얄밉게 표식과 사슬만 싸악 긁고 빠져 나간다.

"저놈 저저 당체 무슨."

"확 회쳐벌라!"

드래곤 직전 대치 상황.

르풀랑이 얄밉게 스킬만 던지고 물려줄 생각을 안 한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항상 신경을 써야 하니 시야 장악에도 차질이 생긴다.

'입도 뻥긋 못 하게 도륙을 내버리고 싶은데.'

삼선 화이트의 정글러 대디.

이전 세트는 탈주하고 싶을 정도로 당했고, 이번 세트도 그나마 사정이 나을 뿐이다.

정글을 미친 듯이 괴롭힌다.

경기가 끝나면 왜 갱킹 한 번 못 가냐?

코치진들이 닦달을 할 테지만 자신도 변명거리가 있다.

파앗!

저 르풀랑 때문이다.

정글 어디에 와드가 박혀있을지 모르고, 강가로 나갔다가는 암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선택한 챔피언.

뀨웅!

퍼엉!

던져 놓은 묘목이 터진다.

앞선 게임의 교훈은 마따만 느낀 게 아니다.

확정 CC기와 한 턴 버틸 수 있는 탱킹이 절실하다.

'사거리에 들어오기만 하면……, 오?'

나무카이는 최근 메타픽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프로 레벨에서는 기용 가치가 충분하다.

한타 위주의 조합을 짜는 삼선에서는 환영받는다.

팀을 위한 희생픽.

그런 고상한 이유일 리 없다.

목적은 딱 하나, 르풀랑의 얄미운 줄타기에 태클을 거는 것뿐인데.

슈루룩?!

기회가 온다.

묘목을 밟고 느려진 르풀랑.

아슬아슬하게 안 주던 사거리에 드디어 들어온 것이다.

"르풀랑 물었다. 아?"

"미친놈아!"

그조차 작은 심리전에 불과했다.

* * *

르풀랑의 줄타기.

'상대가 붕이류 챔피언만 해주면 좋겠지만.'

가랜으로 대표되는 둔하고 굼뜬 챔피언들 말이다.

당연하게도 그런 멍청하고 띨빵한 픽만 골라서 해주지 않는다.

"이거 잘못 들어가면 죽겠는데?"

"끠들 공포! 공포 겁~나 길어요."

오히려 카운터 치려고 한다.

르풀랑이 대세픽이었을 때 많이 나온 구도.

'줄타기'라는 별칭은 글자 그대로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대회에서도 사고가 자주 터졌지.'

해설들도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직접 하는 입장에서는 욕심이 난다.

아주 조금만 스킬을 더 연계하면 킬각이니까.

파앗!

이렇듯 말이다.

왜곡으로 들어가자 끠들스틱이 보인다.

표식을 던지며 사슬만 긋고 빠져 나온다.

'QRE를 하면 분명 죽일 수는 있어.'

점화까지 얹으면 딜 계산도 필요 없다.

그 과정에서 역관광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해서 문제지.

찰나에 불과하지만 존재한다.

약간 멈칫하는 수준의 캐스팅 시간이 상대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줄타기를 할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

그조차 완숙의 경지에 접어들면 역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파앗!

파앗!

들어간다.

WR로 삽시간에 접근하여 QE를 긋고 빠져 나온다.

마치 그러한 느낌.

배인을 지키고 있는 나무카이 바로 옆에서 말이다.

타겟팅의 확정 CC기는 아무래도 위협적이다.

'근데 게임사가 바보도 아니고.'

직관적이고, 사용 난이도가 낮은 스킬.

그만한 단점 또한 따라붙기 마련이다.

피할 수는 없어도 대처는 된다.

슈루룩?!

그러한 스킬은 기본적으로 사거리가 짧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아슬아슬 안 주면 상대 입장에서 애가 탄다.

기회가 왔을 때 고민조차 안 하고 질러버린다.

그것이 함정이라는 사실은 당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르풀랑의 왜곡.

재사용시 원위치로 되돌아간다.

궁극기로 복사까지 하면 그 거리는.

"와 대박이다!"

"이거 노린 거야……?"

"가끔 바보들이 걸려들어."

나무카이의 확정 속박은 상대를 우주 끝까지 추적하는 효과가 있다.

타겟팅이 된 즉시 돌아가 아군 진영에 배달을 해줬다.

'이것까지 포함해서 줄타기를 하는 거지.'

상대의 스킬을 충분히 고려하면 안 될 것도 없다.

결국 반응 문제이기 때문에 인지하고 있으면 해내기 쉽다.

─아군이 드래곤을 처치했습니다!

그러한 부담감을 얼마나 더 짊어지냐.

르풀랑의 실력을 평가하는 부분이다.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닌 일.

'진짜 괴물들은 보고도 반응한다는데.'

전성기 고전파나 레전설 등.

나로서는 그 정도로 간이 크진 않다.

하지만 오래한 만큼 알 만한 건 알고 있고.

파앗!

조금 간 큰 짓도 할 수 있다.

분명 르풀랑의 Q도, 끠들스틱의 공포도 타겟팅 스킬이지만.

'사거리 차이가 은근히 나거든.'

최대 사거리.

그리고 침묵을 먼저 넣는다는 전제하에 해볼 만하다.

여전히 공격적으로 시야를 장악하는 끠들스틱을 향해.

터억!

퍼엉!

QR을 박고 사슬을 잇는다.

거리 조절이 성공한 시점에서 확실하게 거두는 목숨.

─적을 처치했습니다!

상대의 노림수는 역이용할 수 있다.

물론 그조차 역역이용이 있을 수 있지만, 거기까지 고민하는 건 기우인 시점이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더 급하다.

사이드 라인.

씨지맥의 앨리스가 그만 방심했다.

"내가 표창을 피한 다음에 대포 미니언에 거미줄을 타고 내려왔으면……."

아니, 필연.

슈퍼 플레이 욕심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

씨지맥이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무어라 후회를 곱씹는다.

'근데 그게 됐으면 감독이 아니라 선수를 하고 있었겠지.'

게임을 아무리 잘 봐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자드와의 일기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그 이전에 터질 만도 했던 사고.

자드는 현 시점에서는 혁신적인 스킬 구조를 가진 챔피언이다.

당하는 입장에서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느낌이 든다.

"자드 내가 마크 할게."

"아, 미안 킬 줘서……."

"괜찮아. 그것만 미안한 건 아니잖아."

"……."

차후에는 그렇게 드문 구조도 아니게 된다.

그 이상으로 지랄병이 난 챔피언들이 우후죽순 쏟아진다.

넌 내가 있으라는 곳에 있게 될 거다!

별의별 미친 판정이 다 나오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자드의 그림자놀이는 양심이 있는 수준.

'아무리 잘 커봤자 자드는 자드지.'

고전파의 자드도 격파한 마당이다.

* * *

서걱!

서걱!

고기 썰리는 소리와 함께 미니언이 수거된다.

자드의 패시브에 의해 추가딜이 터질 때의 효과음.

<다대기!>

<다대기!>

<다대기 장군님 아니겠습니까~? 뭐 하나 보여줄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장군님!

?믿고 있었다고 젠장!

?그 무승귀신 죽어주는 거 보솤ㅋㅋㅋㅋㅋㅋㅋ

?국물도 얼큰하네

위압감이 있다.

일부 유저들은 PTSD가 올 정도로 말이다.

1대1로 자드를 마주한다는 건 굉장히 어렵다.

<앨리스가 방심했어요. 어, 나 잘 컸는데? 자드 망한 거 같은데? 그런데 방템을 두른 건 아니잖아요.>

그 외 데이터적으로 보더라도 승산이 높지 않았다.

람블과의 맞라인전.

앨리스는 마법 저항력을 올렸고, AD인 자드를 상대로 무의미하다.

화락!

챠라락?!

라인전 단계에서 완전히 망했던 자드.

킬을 먹고, 사이드 CS를 쓸어 담으며 유의미한 복구를 이룬다.

<미드가 2레벨 차이까지 났었는데 레벨링을 따라잡았어요. 이건 꽤 의미가 큰데요?>

<어떤 의미가 있죠?!>

<자드가 유통기한이 안 오는 경우가 딱 하나 있습니다. 사이드에서 1대1을 이길 때!>

사이드 관리를 맡고 있던 앨리스를 잡았다.

앞으로도 만날 때마다 잡거나 압박을 넣을 수 있다는 소리고, 이는 운영적으로 큰 영향이 있다.

'그래, 한 번만 이기면 돼.'

다대기도 그 사실을 인지한다.

르풀랑을 상대로 생각보다 안 풀렸다.

아니, 고전하고 만 탓에 게임이 기울어지고 말았다.

찰칵!

하지만 결자해지.

프로로서의 마인드를 잊은 적이 없다.

게임을 포기하지 않았고,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르풀랑만 잡으면 돼.'

어치피 한 끗 싸움이다.

스킬샷을 누가 더 잘 맞추냐에 달렸다.

자드의 숙련도에 있어 다대기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본대는 우리가 할 만한 한 것 같은데……."

"내가 사이드는 뚫거나 반드시 묶어둘게."

자드를 잘한다는 건 단순히 라인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자드의 꽃은 스플릿.

운영 단계의 이해도도 깊다.

터억!

파앗!

그 시점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르풀랑이 사이드 라인에 나타났다.

앨리스를 대신해 자신을 마크하겠다.

'흠…….'

아이템부터 확인한다.

조냐의 모래시계가 없다.

자드 입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카운터이기 때문에 그 유무는 중요하다.

상대의 방심을 뜻하기도 하니까.

일기토가 열리고, 그때 한 번만 잘하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실수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화락!

챠라락?!

그 조급함.

성과를 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WQE가 르풀랑의 코앞에서 빗나가고 말았다.

파앗!

하지만 실수를 한 건 자신만이 아니다.

스킬이 빠졌다.

그 하나의 근거를 가지고 르풀랑이 사지로 들어온다.

'조냐가 없는 르풀랑 따위.'

붙기만 하면 종잇장처럼 찢어진다.

르풀랑이 알아서 들어오며 Q를 던진다.

그와 동시에 자드의 궁극기가 타겟팅된다.

구오오……!

똑같이 스킬을 피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의 선고는 르풀랑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W가 빠졌다는 건.'

앞으로 생존기는 왜곡의 재사용과 점멸뿐이다.

가장 거슬리는 침묵은 궁극기 판정으로 흡수했다.

R로 모방해서 던져도 마찬가지.

절대 즉발인 스킬이 아니고, 그 안에 숨통을 끊을 수 있는데.

사앗……!

무언가 이상하다.

적의 배후를 잡음과 동시에 사슬이 이어진다.

그 정도면 반응이 빠르구나.

서걱!

화락!

왜곡 재사용으로 돌아간 르풀랑을 그림자로 쫓아간다.

사슬이 팽팽해지기 전에 점멸과 궁극기 그림자로 따라붙어 마무리한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르풀랑이 한번 더 장난질을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놀아나는 사이에.

'어?'

1.5초가 지난다.

적에게 붙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바닥난다.

근접 뚜벅이가 돼버린 자드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적이 학살 중입니다!

게임의 판도가 굳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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