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화
일기토.
특히 암살자 간의 싸움은 피지컬이 좋고, 숙련도가 높고 이전에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
글자 그대로 한 끗 차이로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구오오……!
순진하다.
자드가 궁극기를 사용해온다.
감정적인 판단 이전에 근거는 있을 것이다.
'W가 빠지고 Q를 썼으니까.'
르풀랑의 R은 마지막으로 사용한 스킬을 복사한다.
즉, 이동기를 다시 쓸 수 없다.
나머지 딜만 때려 박아도 킬각.
암살자간의 교전은 정말 사소한 차이로 정해진다.
사앗……!
그렇기에 경험이 중요하다.
자드가 나타나는 타이밍에 맞춰 사슬을 잇는다.
그리고 왜곡을 재사용하자.
서걱!
화락!
쫓아온다.
처음 깔아 놓은 그림자.
침묵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맞대응을 해온다.
파앗!
이를 한 번 더 밟는다.
다시 왜곡을 재사용해 상대와의 거리를 억만년까지 유지한다.
톡!
치지직……!
적어도 상대 입장에서는 그런 느낌이다.
1.5초가 지나며 속박.
돌진기도 전부 빠진 자드에게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오정환님이 학살 중입니다!
평타와 점화로 괴롭혀 마무리한다.
상대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딱 뛰고 싶은 상황이겠지만.
'단순한 트릭이지.'
처음 사용했던 왜곡.
W가 아닌 R로 모방한 것이다.
상대가 들어오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아니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도 걸릴 만한 트릭이다.
0.5초 단위로 생사가 오가는 상황에서는 판단력이 더욱 흐려진다.
─적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물론 WQE를 빼놓은 무빙 심리전이 밑바탕된 것이지만 말이다.
자드를 잡고 휑하니 비어버린 탑 2차를 부순다.
사이드의 솔킬.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약간의 골드만이 아니다.
게임의 전체적인 주도권을 가져오게 된다.
* * *
네 번째 세트.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
?와 ㅅㅂ
?엄피컨 등판ㅋㅋㅋㅋㅋㅋㅋ
?파이어 펀치! 파이어 펀치! 파이어 펀치! 파이어 펀치! 파이어 펀치!
?강민은 엄피컨밖에 리액션이 없음?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강민철 해설의 목청이 높아질 만도 하다.
모두가 기대했던 일기토.
최상의 컨디션에서 치러진 순수한 1대1 매치의 승자가 정해졌다.
<이거 난리 났어요. 난리 났습니다!>
<르풀랑 이제 어떻게 막나요~!>
<르풀랑의 성장도 성장이지만 자드가 스플릿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게 커요. 너무 큽니다!>
그 의미.
짧고 직관적인 해설을 자랑하는 강민철을 대신해 김서준이 마이크를 잡는다.
현재 게임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서걱!
서걱!
고기 썰리는 소리.
자드의 패시브가 가진 효과음이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일부 시청자들의 PTSD를 불러일으켰다.
전혀 위압감이 들지 않는다.
그 느낌이 게임의 상황을 대변한다.
암살자 자드가 가지는 운영적 의미가 완전히 퇴색됐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선 갤럭시 화이트를 응원하는 팬석에서 목소리가 높아진다.
다대기는 분명 팀의 스타 선수이긴 하지만.
데구르…!
챵!
가장 높은 지표를 받는 것은 항상 바텀이었다.
임프트의 배인이 무서운 속도로 적을 향해 굴러간다.
궁극기의 효과.
은신과 더불어 이동 속도를 상승시킨다.
깜짝 놀란 토이치가 독병을 던져 깨트린다.
쨍그랑!
슈욱…!
그와 동시에 몰락을 빤다.
속도를 전혀 누그러뜨리지 않고 자신감 있게 무빙을 밟으며.
챵! 타앙!
터엉!
딜을 박는다.
그 간단한 행위를 프로 무대, 그것도 결승전이란 자리에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데, 데미지가…….>
<토이치 점멸 빠졌어요?! 방금 벽꿍각 나왔으면 죽을 뻔했는데요?!!>
?살벌하네;;
?이게 배인이지!
?방금 점멸 안 썼으면 죽은 거?
?ㅇㄷㅊㅇ
시청자들에게 가시적으로 전해진다.
토이치도 결코 못난 원딜이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격이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급발진 하지 말라고!"
"아니, 방금 킬각이었잖아;;"
"됐고, 레고 밟으면 뒤진다. 진짜."
"……."
물론 선수들 입장에서는 다르다.
상대 시야를 완벽히 알 수는 없고, 변수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기 때문이다.
마따의 입장에서 임프트는 존나 뛰어다니는 유치원생 같다.
언제 어떻게 고꾸라져 울음을 터트릴지 모른다.
'아이씨, 지도 밟았으면서…….'
임프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게임이 이토록 불리해진 이유.
다대기 탓도 있지만, 시야 장악 중에 잘린 인원도 적지 않다.
당연히 알고 있다.
자신이 밟은 것과 서포터가 밟은 것은 천지 차이다.
지금 이 게임은 자신이 한 번이라도 죽는 순간 패배한다.
크롸라라라?!
드래곤 타이밍.
사이드 주도권을 잃은 삼선 화이트의 유일한 돌파구다.
오브젝트를 건 한타에서 대승을 거둬야만 한다.
"토이치 점멸 빠졌으니까 자드가 토이치 한 번만 잡아주면 돼."
"오케이……."
"나머지는 앞라인만 봐. 풀발하면 뒤진다. 진짜."
그 한타에 앞서 적 원딜러의 점멸을 빼놨다.
배인의 궁극기는 쿨타임이 짧기 때문에 조금만 대치하고 있어도 돌아온다.
마따의 오더에 따라 진영을 갖춰나간다.
LoL은 한타 게임이고, 한타 이해도에 따라 성장 차이를 충분히 뒤집고도 남는다.
<삼선 화이트가 날개를 접었습니다. 자드가 올라오고 있고, 드래곤 시야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건 한타를 할 생각입니다.>
<지금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요?!>
<배인이잖아요.>
<배인!>
<배에 힘 꽉 주면서 프리딜 구도 한 번만 만들어주면 또 모르는 게 배인이란 챔피언입니다.>
조합까지 받쳐준다면 더더욱.
삼선 화이트가 결승전까지 올라온 가장 큰 뒷심은 강팀들을 상대로도 쐐기를 박은 한타력이다.
상대가 약팀이라면?
불리한 상황에서도 비비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전 세트와 달리 미드를 제외한 조합 파괴력도 막강하다.
?후반은 결국 원딜 게임이지
?원딜 ㅈ망겜
?응 니네팀 원딜 코물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진다고?
그리고 기세.
무려 결승전이다.
한 번만 더 삐끗하면 그대로 지는 팀 오정환은 심리적으로 위축돼있다.
그에 반해 스코어를 앞서고 있고, 프로팀이기도 한 삼선 화이트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바둑 혹은 오델로의 돌을 먹히듯 시야를 점점 뺏긴다.
이쿠, 이쿠!
조바심을 느낀다.
팀 오정환도 뒤늦게 수복에 나선다.
잘 큰 앞라인을 앞세워 와드를 지우려고 하지만.
데구르…!
챵! 터엉! 타앙!
배인의 갑작스러운 앞구르기.
이어지는 평E평의 파괴력은 절대적이다.
%데미지는 단단한 탱커조차 허리를 숙이게 만든다.
<와 데미지가!>
<이래서 배인, 배인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리심 방금 섬뜩했겠는데요!>
이미 구도부터가 불리하다.
주요 포인트의 시야를 장악했고, 임프트의 날카로운 딜각은 그 의미를 100% 활용한다.
향후 한타의 향방에 불리한 그림이 그려지게 만들었는데.
─오정환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화면이 일순간 번쩍인다.
그것으로 파생된 결과가 화면의 메시지로 나타난다.
관중과 시청자는 물론 해설진마저 벙쪄있을 때 강민철 해설만이 입을 연다.
<베인의 치명적인 단점 중의 하나는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 죽는다는 거거든요!>
?헐
?그런 약점을 가졌다니 ㅠㅠ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 죽는다 메모……
?와 몰랐던 사실이에요!
배인의 DPS는 모든 원딜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런 주제에 브루저 입장에서 물기도 까다롭다.
그 두 가지 장점에 상응하는 리스크.
약한 라인전과 짧은 사거리다.
방어 관련 스킬도 없어 누커에게 일방적으로 노출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수 있다.
파앗!
파앗!
리플레이가 송출된다.
모두가 배인의 3타딜에 한눈이 팔린 사이 시야 저편에서 르풀랑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터억!
사앗…!
치지직……!
구르기가 빠진 배인.
짧은 순간에 그어진 르풀랑의 딜에 대응하지 못했다.
표식과 함께 사슬이 그어지고, 남겨진 점화가 배인의 숨통을 마무리한다.
"점멸 쓰기 좀 애매해서……."
원딜이 끊겼다.
한타는 당연히 할 수가 없다.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임프트를 마따는 닦달하지 못한다.
'아니, 판정이 씨발.'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도 캐치가 아주 잠깐 늦었고, 공포를 걸기는 했지만 동시에 원위치로 돌아가 버렸다.
─적이 드래곤을 처치했습니다!
무엇보다 불리하다.
안 그래도 멘탈이 약한 임프트를 더 쪼면 역전의 여지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대신하여.
"들어올 거 알잖아? 오면 바로 물으라고."
"내가?"
"그럼 너 말고 더 있냐?"
"아니……, 아까 빨려 들어가 가지고;;"
정글러를 갈군다.
LoL이란 게임은 팀탓 게임이고, 누구 한 명이 아쉬운 역할을 해줘야 나머지의 멘탈이 온전해진다.
'그래, 만만한 게 정글러지.'
대디도 그 사실을 인지한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상대는 위험 부담이 매우 높은 플레이를 반복한다.
딱 한 번만 태클을 걸면 제압킬은 물론, 바론까지 이어지며 역전의 계기가 된다.
「바론 백작의 도움」
주문력 +40
공격력 +40
5초마다 3%의 체력을 회복합니다.
5초마다 1%의 체력을 회복합니다.
현재의 바론 버프.
미니언을 강화시키지 않는 대신 회복 효과가 있으며 지속 시간이 4분으로 상당히 길다.
르풀랑의 장난질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파앗!
기회는 어렵지 않게 찾아온다.
아니, 제 집 드나들 듯이 해댄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점멸로 물 수 있을 정도.
'이 겁대가리 상실한 새끼…….'
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한 번 실패를 한 경험이 있다.
나무카이의 지나치게 좋은 판정이 역으로 자충수가 되었다.
파앗!
그 점까지 고려한다.
상대도 상당한 무리를 하고 있고, 기다리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다.
'아!'
바로 지금.
르풀랑과 수풀에서 마주친다.
상대도 자신을 보고 놀랐는지 바로 왜곡으로 도망친다.
아쉬움을 삼킨다.
망설임이 판단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기회가 다시 한번 주어진다면.
사앗…!
르풀랑이 되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슬을 잇는다.
체력이라도 빼볼 속셈이겠지만 사슬은 즉발이 아니다.
슈루룩?!
점멸 뒤틀린 속박.
르풀랑을 묶고 Q로 아군을 향해 밀쳐내면 필킬이라 확신했는데.
파앗!
빠진 줄 알았던 왜곡을 다시 한 번 쓴다.
그리고 순간 떠올린 섬뜩한 상상이 그만 실현되고 말았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점멸.
대디의 나무카이가 환영 받지 못하는 곳에 도착한다.
아군이 호응하기에는 구도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정환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무카이 오열
?저건 좀 불쌍한데
?인디안밥 졸라 처맞네 ㅋㅋ
적진 한복판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그 의미는 단순한 1킬 정도의 값어치가 아니었다.
─레드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불리한 상황.
유일한 탱커가 죽었으니 한타 구도도 잡을 수 없다.
심지어 정글러이다 보니 강타 싸움의 여지마저 사라진다.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동의합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지만 패패승승……, 그 다음의 그림이 얼핏 보이고 있습니다. 그게 중요해요!>
?설마
?전설의 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패패승승승 쓰리런ㅋㅋㅋㅋㅋㅋ
?이걸 진짜로 해낸다고??
밀고 들어온다.
역력해진 전력 차에 바론 버프가 더해진다.
그리고 파훼법을 찾지 못한 르풀랑의 줄타기까지.
─오정환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결승전의 이변을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