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시상식장.
우승팀 선수들이 나란히 선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이는 따로 있을 수밖에 없다.
<우승 축하드립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정말 특수한 경우라 저도 짐작이 잘 안 되거든요~!>
진용준 캐스터가 마이크를 건넨다.
담담하게 받아든 오정환의 입이 열린다.
딱히 오열을 쏟아내거나 흥분에 가득 차있진 않았다.
<일단 기쁘죠.>
<그렇겠죠 당연히!>
<우승 상금도 많이 받았고, 방송도 하다가 급하게 와 가지고 솔직히 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 방송! BJ이니까~!>
?BJ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용준좌 이걸 받아 넘기네
?역시 방송짬 ㄷㄷ
?아 별풍 쏴야지 이건ㅋㅋㅋㅋㅋㅋㅋ
그냥 평범하다.
그렇기에 더 주목받는다.
우승 상금은 어지간한 직장인의 연봉에 해당한다.
그것은 분명히 맞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는 사실은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다.
이 자리의 엄숙함을 모를 리도 없다.
<정말 쉬운 경기가 아니었잖아요?>
<네.>
<저희가 원래는 마이크도 감독부터 드리거든요. 한국이 장유유서의 나라니까~! 그런데 선수들끼리, 그것도 BJ들끼리 뭉쳐서 우승을 해내셨단 말이에요!!>
너무나도 예상을 벗어나는 대답이다.
진용준 캐스터가 텐션을 끌어올리며 억지로 인터뷰를 진행시킨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껄렁껄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잘 비빈 것 같습니다.>
<저희도 경기를 봤지만 손에 땀을 쥐는 풀세트 접전이지 않았습니까? 엄청 힘들었을 텐데!>
<제가 벤치따리라 3경기밖에 안 했다 보니 힘들진 않았네요.>
<…….>
?벤치따맄ㅋㅋㅋㅋㅋㅋㅋㅋ
?뿌슝빠슝! 벤치가 최강인 팀이 있다?
?용준좌 말문을 막히게 만드네 ㄷㄷ
?'용준'한 것도 서러운데
땀방울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기진맥진해있는 팀원들과 달리 생생하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진용준 캐스터가 더 힘들어 보일 지경이다.
여유가 넘치는 이미지.
그 모습이 더욱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대체 어디 사는 누구길래 진용준 캐스터를 쩔쩔매게 만드는지.
"오정환이 누구야?"
"무승귀신 전문 퇴치사래!"
"어쩐지 행동거지부터가 영험하더라~"
모르는 사람도 많을 수밖에 없다.
경기를 내내 지켜본 현장팬들 중에서도 어리둥절하는 이들이 보인다.
라이트팬들이 대다수인 만큼 당연하다.
LCK 우승을 계기로 인지도의 벽이 한 단계 허물어질 예정이다.
<아! 이 질문은 꼭 드려야죠~ 짧지만 굵은 활약을 하셨잖아요! 앞으로 프로 계획이 있으신지. 지켜보고 계신 프로 관계자분들도 귀가 솔깃할 것 같거든요~?!>
진용준 캐스터가 힘을 잔뜩 준 화제 전환과 동시에 현장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진다.
오정환에 대해 잘 아는, 잘 모르는 팬들 모두 궁금증이 사무치는 부분.
BJ로 이루어진 아마추어팀이다.
앞으로 더 프로 생활을 할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특히 패패승승승의 일등공신인 오정환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팀원들은 생각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군요~! 그럼 오정환 선수 본인은?>
<없습니다.>
<네에?!>
????
?이 새끼 밀당하누
?여기 파프리카TV 아니라고 미친 새끼얔ㅋㅋㅋㅋㅋㅋㅋ? 튕기는 거겠지 ㅋ
폭탄선언이 떨어진다.
워낙 담백하게 대답하다 보니 도리어 장난 같다.
현장의 팬들도, 시청자들도, 진용준 캐스터도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잇지 못하고 있던 찰나.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데뷔도 한 적이 없긴 하지만 오늘 이 시간부로 은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핵폭탄선언이 떨어진다.
* * *
프로게이머.
누군가에게는 로망일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는 일이다.
'내 로망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전혀 미련이 없다.
재밌는 경험 한 번 해봤으면 된 거지.
BJ의 일에 더욱 전념할 수 있게 되어 좋을 뿐이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아니 내 만 개 먹튀임? ㅡㅡ
"만 개 정말 감사합니다. 개꿀띠로 잘 먹었고요. 아니, 근데 경기를 나가겠다고 한 거지 프로를 하겠다는 건 아니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꿀띠~
?아ㅋㅋ 만 개로 안 된다고요
?우승 인터뷰도 레전드 찍었네…….
그것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사람 생각이라는 게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취향이라능. 존중해 주라능.'
나의 생각도 말이다.
아무래도 다소 논란이 인다.
참견이기는 하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BJ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
과몰입이라는 것은 그다지 유별날 것도 없는 반응이다.
"진짜 할 생각이 없어요, 형?"
"진짜는 진짜인데. 진짜의 진짜의 진짜까지 말해야 돼?"
"아니, 이해는 했는데……, 저도 그렇고 시청자분들도 그렇고 아까워서 그렇죠;;"
돌아가는 봉고차 안.
뒤풀이 방송을 하고 있다.
시달리게 될 거란 건 딱히 예상까지 안 해도 되는 일이었다.
"진짜 맛있는 걸 사주지 않으면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봄이 혼자 고민이 없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네 ㅋㅋㅋ
?봄이는 아무고토 몰라요
?롤은 하면 안 돼……
우리 봄이에게도 말이다.
리아와 서은을 포함한 다섯 명은 택시를 타고 쫓아오고 있다.
봄이만이 본인의 강력 희망으로 봉고차에 동석하게 되었다.
'이런 땀내 나는 곳에 태우고 싶지 않았는데.'
굉장히 고달팠던 모양이다.
여섯 명의 여캠 시어머니들에게 들들 볶여서 진이 아주 쏙 빠졌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봄이 맛있는 거 먹어야지 ㅠㅠ
"헐~~ 감사합니다! 꿈은 이루어질 거예요!"
?똘망똘망 쳐다보는데?
?만 개 줄 땐 가만히 있더니
?꿈이 작아……
?별풍을 이렇게 받는데 프로 하겠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에너지가 부족하다.
한 끼 거하게 먹지 않으면 불량 봄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건 그거대로 재미가 있겠지만.'
그래도 먹을 것은 먹이고 굴려야 한다.
우승까지 했으니 뒤풀이를 안 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
끼익?!
도착한다.
일전에 왔던 고깃집.
회장님이 추천해 주신 돈값은 하는 곳이다.
다른 맛집들도 물론 있지만 회식이다.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는 메뉴 선정은 대화를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된다.
"와 여기 또!"
"진짜 비싼 곳이던데……."
"내 생에 이런 소고기를 또 먹게 되네."
"형이 쏘는 거예요?"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단가.
대체 얼마나 먹어 치울지 짐작도 안 간다.
오늘 받은 별풍선을 전부 털어도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내 돈도 아니니까.'
소위 말하는 법카는 이럴 때 긁는 것이다.
광고비에서 남은 것이 있고, 운영비 명목으로 써버린다.
어차피 잔금은 세금으로 다 털리기 때문에 팍팍 쓰는 편이 낫다.
"고생하셨습니다."
"……."
팀원들과 봄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봉고차와 운전사 아저씨와도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과묵하게 목례를 하시고 매연만을 남긴 채 떠나가신다.
'재밌는 경험이었지.'
나로서도 미련이 제로라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인생도 아니고, 방향성을 못 잡을 만큼 유유부단하지도 않다.
끼익?!
끼익?!
그보다 재밌는 경험들이 기다린다.
두 대의 택시가 경쟁을 하듯 도착한다.
타고 있는 사람들은 익숙한 얼굴뿐이다.
"오빠!"
"전화했는데……."
"방송 중인데 어떻게 받아."
"그도 그렇네요. 히힛."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우승 시 여캠과의 미팅.
엄밀히 따지면 지킬 이유는 없지만 말이다.
경기력이 썩 좋지 못했다.
초반 스코어도 2 대 0으로 뒤졌다.
대가를 요구하기엔 뻔뻔한 게 아닌지.
본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입도 벙끗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필요하다
'결국 시청률을 유지시키는 것은 여자야.'
야 술 먹냐?
그래서 여자 누구 오냐?
남자들끼리 술 먹을 때 괜히 다 아는 물음을 건네는 게 아니다.
축하라는 것을 하루 종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흥분을 지속시킬 무언가가 필요하고, 여캠은 이에 안성맞춤이다.
"오빠~"
"왜."
"진짜 밥만 먹어요?"
"고기도 먹지."
"저 오늘 다른 것이 먹고 싶은데……♡"
리아가 쓸데없이 요염하게 손가락을 핥는다.
단백질이 부족하다면 바로 뒤의 고깃집에서 배 터지게 먹으면 된다.
'이중에서 리아가 가장 돋보이긴 하지.'
크루원 사이에서 대장 노릇을 한다.
의상도 그렇고, 여캠짬과 농밀함도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여자라는 생물은 취향을 타기 마련이다.
반드시 몸매가 좋고, 섹시하고, 가슴이 크다고 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닌 글자 그대로의 이야기.
와아아아아─!!
결승전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재현된다.
6+1 여캠이 고깃집 3층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시끄럽다. 쫓겨난다."
"사장님한테 쫓겨나면 안 되지~!"
"다 닥쳐! 여캠분들 불편해 하시잖아!"
?믿고 있었다고 젠장!
?여캠들 다 집에 간 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봄이만 믿고 있었는데
?봄이 코인 떡락이야?
큰 환영을 받는다.
그것을 위해 부탁까지 해왔다.
꿈을 이루는 자리하고는 거리가 멀겠지만 말이다.
"형 이제 와서라는 느낌은 있는데……."
"싫어? 따로 따로 앉을까?"
"아뇨, 아뇨, 아뇨, 아뇨!! 그게 그 걱정이 돼서 헤헤."
물론 꿈을 꾸는 건 자유다.
^꿈^하면 유명하신 권위자가 바로 옆에서 강의 중이기도 하다.
"으악 무승귀신이다!!"
"꺄아악?! 저리 가 이 무승귀신!!!"
"히히 못 가."
키즈존이 있는 식당 3층.
동심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는 씨지맥과 달리 나머지 팀원들은 기대하고 있다.
"혹시 싫어하실까 봐."
"여캠들 눈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
"오~~~!! 가능성이 있을까요 저도?"
"글쎄."
"좀 구체적으로 좀!"
?안다고 통하겠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는데……
?알려줘서 됐으면 ㅎㅎ
?정환이는 어케 통함?
그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나하고의 관계 이전에 보편적인 상식선에서 그러하다.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깔끔하게는 하고 다녀야지.'
깔끔하다는 게 별 게 아니다.
털 좀 뜯고, 눈썹 정리 좀 하고, 머리도 한 번 다시 보고, 한마디로 씻고 다니라는 소리다.
기본 중의 기본이긴 한데 게이머 중에서는 안 지키는 애들이 수두룩하다.
그냥 LCK 켜서 선수 부스 한 번만 둘러봐도 대량 검거된다.
"아 저를 아세요?!"
"네, LCK 자주 보거든요~"
"그, 그러시구나. 흐흐……."
그래도 즐거운 자리 정도는 될 것이다.
회식이란 건 떠들썩한 편이 좋다.
교육도 된 애들이라 분위기는 손쉽게 맞춰준다.
'여러모로.'
하룻밤 꿈이 될지도 모른다.
방송 텐션은 달아오르고 있다.
우리 봄이도 내 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맛있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거예요!"
"많이 먹어."
"엄청 먹을 거예요. 엄청 먹어 해치울 거예요!"
?엄청 잘 먹네
?고기 구워주기 담당ㅋㅋㅋㅋㅋㅋㅋㅋ
?둘만의 공간이누
?'봄버지'
철판에 고기가 익는 족족 흡입한다.
평소에도 잘 먹지만 오늘은 특히 유난하다.
배가 아주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고생했지.'
멀리 있는 꿈을 잡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가까이 있는 행복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세간에서 떠들어대는 결과와 성적.
그보다 내 실생활에 당장 와닿는 것을 소중히 하고 싶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