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질투
BJ라는 직업이 특수하다.
야방을 하는 일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택근무가 일상이다.
"음식점 음식이라는 게 먹다 보면 질려."
"?"
"결국 다 그게 그거거든."
"???"
?띠용
?모르겠다는데?
?표정 ㅋㅋ
?딴 거 시키면 되잖아~~
그 점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우리 봄이가 상상하는 행복한 일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점심으로 치킨 먹고, 저녁으로 족발 먹는다고 행복하진 않다고.'
배만 더부룩하지.
처음 몇 달 정도는 재밌을 수 있지만, 일상이라는 건 지속성이 중요하다.
"아니에요오! 피자도 있고 짜장면도 있고, 초밥도 있고, 떡볶이도 있고, 신전 떡볶이도 있고, 엽기 떡볶이도 있는 거예요!"
"떡볶이가 좀 많지 않아?"
"그런 거예요~"
ㅋㅋ
결국 칼칼한 된장찌개로 회귀하게 돼있다.
맛집이다 뭐다 찾아 가는 것도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또 배달 음식은 기름지고 MSG를 많이 쳐가지고.'
평소에 심심한 집밥만 먹다가 가끔씩 외식을 하니까 맛있는 거지.
그 역이 돼버리면 혀가 지친다.
아무 맛도 안 느껴진다.
"세상에 맛있는 게 많은 거예요!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한 거예요!"
"아닐 수도 있지."
"오빠는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거예요?"
?흥분했어ㅋㅋㅋㅋㅋㅋ
?이건 이해 못 하지 ㅋ
?봄이한텐 먹는 게 전부인데……
?봄이) 오정환 나가 뒤지라고 전해 ^^
그러한 사실.
나도 BJ를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집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일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지.'
얼핏 배부른 고민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고민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가르치고 싶다.
진로라는 건 정말 신중의 신중을 기해도 부족하다.
혼자 있다 보면 히스테릭해지고 외로움을 탄다.
BJ들끼리 괜히 친목질을 하는 게 아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오빠한테 시집 오면 되는 거야."
"그건 좀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아요~"
"……."
아직 고등학교 2학년.
자신의 미래가 상상되지 않을 나이다.
충분히 더 고심을 해보고 정해도 늦지 않다.
'내가 뭐 책임을 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미 엄청난 인지도를 구가하고 있다.
BJ로의 전업은 사실상 확정이 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신경 써서 영재 교육을 시킨다.
"그럼 저는 쳇바퀴를 돌리러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
"혹시 저녁도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그렇구나."
?쳇바퀴래
?진짜 쳇바퀴라 하네 ㅋㅋ
?저녁 먹으면 또 얼마나 돌아야 하는 거야!
?봄이 운동 갠방 하나요??
배부르게 먹은 봄이가 베란다의 홈트 공간으로 아장아장 걸어간다.
이따금 진행하는 봄이와의 방송은 별건 없지만.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그래서 연어 하나도 안 먹은 거임??
?그러게
?봄이 먹는 거 보기만 함
?먹고 켰겠지
?헐??? 그러고 보니 볼 때마다 안 먹음
사실 무지하게 번거롭다.
애청자 중 몇몇이 그것을 눈치챘는지 채팅창이 시끄럽다.
'놀려 먹는 것도 많은 준비가 필요해서.'
메뉴 정하는 것만 해도 일이다.
맛도 맛이지만 방송 콘텐츠로서의 효용성도 고려해야 한다.
"뭘 먹어도 맛이 똑같아. 나는 그냥 봄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지."
?봄이는 맨날 맛있게 먹는데
?헝 ㅠㅠ
?BJ도 힘들구나
?역시 원조 봄버지 ㅇㅈ합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 쉽지 않다.
나야 뭐 해온 게 있다 보니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 또 아니다.
─하와와회장님, 별풍선 5000개 감사합니다!
방송 좀 쉬더라도 맛있는 거 먹어 ㅠㅠ
"봄이방 회장님 감사합니다! 저는 못 먹어도 봄이는 먹여야죠."
그래도 쉬운 것도 아니다.
고생하는 걸 알아주는 것만큼 BJ 입장에서 보람 있고 감사한 게 없다.
'이런 게 방송하는 맛이지.'
이를 테면 유튜브.
주요 엑기스만 딱 잘라서 보여준다.
재미가 축약되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생략되는 것도 많다.
실시간 방송이기에 공유할 수 있는 감정선도 있다.
훨씬 더 사람 사는 재미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럼 오늘은 방송 좀 일찍 종료하겠습니다."
?맛있는 거 먹어!
?봄이랑 고기 먹으러 가셈!
?착한 방종각 ㅇㅈ
?정환이도 쉴 때 쉬어야지
훈훈한 분위기.
여론 관리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BJ가 힘든 부분을 알아야 쉬는 이유도 이해를 해준다.
'정말 휴방각 잡는 게 의외로 많이 힘들어.'
방송 켜서 수다만 떨면 돈이 들어오는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도 많기 때문이다.
어쩌다 휴방 한 번 한다고 하면 난리가 난다.
까톡!
BJ에게도 사생활이 있다.
먹고 싶은 취향도 제각각 갈린다.
'꼭 음식만 먹을 필요는 없지.'
다른 걸 먹을 시간이다.
* * *
한순간의 실수.
엎질러진 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유민은 짜증이 일 수밖에 없었다.
'왜 보내기 취소 버튼이 없는 거야. 이 망할 카톡은?'
정말로 보낼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손이 미끄러진 탓에 메시지가 전송되었고, 강제로 이야기를 진전시켜야만 했다.
?왜 저 결승전에 초대 안 해주신 거예요? 잊은 거예요? 까먹은 거예요?
「?」
「미안」
「내가 신경을 못 썼네」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좀 그래서
화끈하게.
실수로 보냈다고 둘러댈 수도 있었지만, 그래서야 더 어색해질 게 분명하다.
'그냥 미친 척하고…….'
질렀다.
마음속에 담아둔 것.
꺼내면 꺼낼수록 솔직하게 어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저 우승 축하한다고 카톡도 보냈는데
「그러네」
「답장을 했어야 했는데」
?바쁘시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근데 저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 같아서 화가 났어요
기세로 몰아붙였다.
뒷일을 생각 안 하고 말이다.
엎질러진 물이 차라리 나았다고 후회를 곱씹고 있다.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강제 진도.
카톡으로 풀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자연스럽게 약속을 잡게 됐고, 카페에서 기다리는 중이다.
끼익?!
창밖에 택시가 도착한다.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내린다.
오정환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안녕하세요."
"화가 많이 났다고 해서 각오했는데."
"아뇨, 그게…… 그렇게 화난 건 아니고요."
응어리가 남아있다.
결국 제대로 된 대답은 듣지 못했고, 카톡으로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나 까먹은 건 아니었구나.'
하지만 당사자를 만나자 신기할 정도로 화가 누그러진다.
오해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빠 많이 바빴을 텐데 제가 억지 부렸죠?"
"사실 좀 바쁘긴 했어 솔직히!"
"축하 카톡도 많이 왔었을 테고."
"알면 좀 봐주지 그랬어~"
"죄송해요."
이해를 해준다.
분위기가 금세 풀린다.
하나의 화제가 일단락되자 다른 것이 생각난다.
'나 오늘 괜찮게 입고 나왔지?'
남녀 간의 사이.
딱 두 살 위의 연상이다.
아무리 방송이었다고 해도 키스까지 나눴다.
의식을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오정환에게 호의가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의식한다.
"유민아."
"네."
"미안하니까 오빠가 한 턱 쏠까? 오늘 시간 괜찮아?"
"네, 시간은……, 네."
오정환도 그럴지 모른다.
이래 봬도 외모에는 자신이 있다.
남자는 사귈 마음만 생기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오만이 아니다.
학과에서도 엄청나게 인기가 있고, 타 대학에서 소개팅 제의도 자주 온다.
고백을 받은 적도 수두룩하다.
'말도 내가 더 잘 통할 테고.'
물론 외모는 부수적인 것.
유민은 의식하고 있다.
오정환의 주위에 다른 여캠들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반반하다.
특히 몇몇은 거의 연예인 급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경쟁자는 아닐 테고, 추려본다면 빵숙 정도다.
"어디 가는 거예요?"
"바."
"아~"
"알아?"
"네, 술 마시는 곳 아니에요?"
"그렇지."
"위스키 맛있었는데."
"또 먹고 싶어? 입으로?"
"어떨까요?"
키스를 했던 대상.
이제 막 스무 살이라고 한다.
이야기도 잘 안 통할 테고, 술도 마실 줄 모르겠지.
'나야 뭐 걔랑 달리 어른인데.'
연애 대상으로 훨씬 더 어울린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도 마음이 없다면 이런 곳에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싸캉! 싸캉!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든다.
영화 속에서나 봤던 분위기 있는 자리.
꿈만 같다는 생각에 유민의 가슴이 콩닥대기 시작한다.
"이거 엄청 독한 거야."
"그래요?"
"여기 사장님이 롱티 엄청 독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로 유명하거든."
롱 아일랜드 아이스 티.
진, 보드카, 럼, 데킬라, 쿠앵트로에 콜라, 레몬즙, 아이스티 등을 섞어 만든 칵테일이다.
일부 바에서는 기주의 양을 늘리고 셰이킹 하여 알코올을 부드럽게 한다.
달콤하고 복잡한 향이 더해지며 음료수처럼 넘어간다.
'아, 설마.'
미친 듯이 콩닥댄다.
자신이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이성적으로는 확실히 받아들이고 있다.
"레이디 킬러 알지? 작업주."
"저 꼬시는 거예요?"
"글쎄, 마셔주면."
망설일 것도 없었다.
만만한 여자로 보이기도 싫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상관이 없다.
꿀꺽! 꿀꺽!
될 대로 되라.
큰마음을 먹고 들이킨 칵테일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게 넘어갔다.
음료수 한 캔 분량에 도수는 30도.
그럼에도 별 저항 없이 술술 마실 수 있다.
"제가 쫄 줄 알았어요?"
"오~ 잘 마시네."
"딸꾹!"
"독하지?"
"어……, 마실 때는 몰랐는데 뱃속이 엄청 뜨거워요."
취기가 올라온다.
조명은 은은하다.
대답도 이미 간접적으로 해버린 마당이다.
'나 오늘 속옷 뭐 입었지? 진짜 해버리면 어쩌지."
막상 그런 분위기가 되자 망설여진다.
데이트야 처음이 아니지만 이 다음은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
"천천히 마셔."
"네."
"모처럼인데 즐겨야지."
"어떤……, 걸요?"
"보니까 유민이 게임 열심히 했더라고."
긴장하고 있던 유민에게 익숙한 화제가 던져진다.
가뜩이나 신경 쓰고 있던 것이었다.
'아! 알아주는구나.'
말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보니 잊고 있었다.
잘 아는 주제가 나오자 입이 가볍다.
"저 플래티넘 찍었어요!"
"그래."
"벌써 3티어에요. 방학 안에 다이아 갈려고 칼 갈고 있어요."
"그렇구나."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꺼낸다.
오정환의 조언대로 전부 해내며 티어 상승을 해낸 자신을 말이다.
꿀꺽!
그리고 술이 들어간다.
몇 잔째 마셨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어느 샌가 눈이 감겼다.
"일어나."
"어……."
엉덩이에 느껴지는 타격.
이어진 목소리에 깨어난다.
유민은 자신이 졸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자길래 업어왔지."
"아, 죄송해요. 깜빡……."
"됐고, 자고 갈 거야?"
조금 기분이 묘하다.
어린애처럼 엉덩이를 맞고 깨어난 것도, 둔탁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도 이상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눈 딱 감고 저지르고 싶다.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만약 한다면 특별한 경험이 되길 바랐으니까.
"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래, 들어와."
오정환의 집에 들어간다.
두 번째다.
처음과 달리 방송 목적도 아니고 사석, 그것도 완전히 심야다.
'첫 경험, 첫 경험, 첫 경험…….'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할지.
이미 다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다.
성적인 것에 솔직하게 관심이 있기도 하다.
자신의 숨소리가 거칠어진 것도 모르고 들어간다.
오정환의 뒤를 따라 들어간 현관문 안에는.
"오빠 지금 왔어요?"
"그래."
"저 집 잘 키기고 있었어요. 칭찬해줘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이 번쩍 깬 서은의 눈에.
쪼옥?
파프리카TV 최고의 여신으로 알려진 리아와 그녀의 입술을 삼키는 오정환이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