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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440화 (440/846)

440화

뒷세계

캐리력.

롤 유저라면 누구나 하고 있지만, 사실은 굉장히 모호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자신 대신에 프로게이머가 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한 것 이상으로 딜량을 뽑았을 것이다.

그 불 보듯 뻔한 예상이 같은 프로게이머 입장에서는 복잡하다.

─코물쥐패러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원딜 바꾸고 싶었으면 오른쪽 눈을 깜빡여주세요!

"아, 집에 먼지가 너무 많네. 공기 청정기를 바꿔야 되나."

"……."

?또?

?그놈의 먼지

?어쩔 수 없지 이건 ㅋ

?공개 청문회인가요?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코물쥐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

그 본질적인 이유도 여기서 기인된다.

'물론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지.'

실력만 따지는 게 아니라 스타일 차이까지 고려해야 한다.

박지성 선수가 골은 못 넣더라도 희생적인 플레이를 하듯이 말이다.

"왜 하필 해버지랑 비교를 해서……."

"지난 일은 깨끗이 잊으시고."

"저한테는 현재인데요?!"

"일단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셔야죠."

"아……, 죄송합니다."

"히히."

그것이 전문가들의 시선에는 다르게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과 희생의 가치도 높게 책정된다.

글로벌뉴스? 「"묵묵히 제몫" 박지성이 진짜 영웅…… 맨유 역대 '언성히어로' 선정」

실제로 말이다.

전문가들의 판단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골 한 방의 임팩트가 훨씬 와 닿는다.

"코망이가 롤 선생님을 찾고 있거든."

"네."

"난 오빠가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귀찮게 하지 마."

"둘이 혹시 엄청 친해요?"

"얘가 제 팬카페 회장이어가지고."

"아……."

?ㄹㅇ 찐팬이었지

?코물쥐 실망한 거 봨ㅋㅋㅋㅋㅋㅋㅋ

?정환이 냉정하네

?응 어차피 안돼^^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어디까지나 BJ.

프로게이머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시청자와 소통이 가능하다.

'양학 좀 하다 보면 민심 되찾는 건 금방이지.'

양학 콘텐츠.

롤판 초기에 가장 잘 먹혔던 방식이다.

로이갓이 이거 하나로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밋밋하다.

이미 롤판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여캠과의 합방을 통해 스토리텔링까지 이어나간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게임은 수월하게 진행된다.

아무리 만년 다딱이에 버스충 소리를 들어도 천상계 유저는 천상계 유저.

"와, 잘하신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라인전 이겼어."

"……."

"말 좀 해."

"부끄러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가 빨개지는데?

?줘도 못 먹누

?가르치라니까 양학을 하고 있네

무난하게 이겨 나간다.

스토리텔링도 걱정하지 않는다.

코물쥐가 못한다 해도, 서은이가 알아서 잘할 것이다.

'그렇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양학은 어디까지나 양학.

종지부를 찍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캐리력의 부재는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이밀 수 있다.

─팩트폭격기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잘하긴 잘하는데 코돈빈처럼 겁나게 사리네

"……."

"코?"

"그런 선수가 한 명 있어."

?갑분코?

?돈빈이형은 ㅇㅈ이지

?스졸렬 ㅋㅋ

?'코'들끼리는 공통점이 있구나!

코돈빈.

KTX 롤스터 B팀의 원딜러다.

안정감면에서는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다.

'KDA 15.8을 자랑하는 생존왕이지.'

캐리력과 상반된 개념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는 건 정말 탑급의 선수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코물쥐가 목표해야 할 길.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처럼 양학으로 숨을 돌리는 것도 의미는 있다.

"이름이 지완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딱딱해요. 동갑이던데. 말 놓자!"

"그, 그럴까?"

크루의 성장에도 말이다.

* * *

최근 인방판.

꼴꼴꼴

황금빛 액체가 락 글래스에 가득 채워진다.

액체가 가진 도수를 생각하면 의아한 일.

"물 따르냐? 소주 따르냐?"

"상남자잖아요 흐흐."

"이런 건 조금씩 따라서 먹는 거지……."

양주를 센 척하려고 마시는 놈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김군은 짭꾸라지의 술잔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찬다.

'아깝게시리 진짜.'

발렌타인 30년.

잘 나갈 때는 소주처럼 시켰다.

한 병에 100만 원씩 나가는 가격은 오히려 자랑이었다.

유흥주점에서 자신의 입지를 상승시켜 주니까.

얼마나 잘 나가는 인간인지 테이블 위의 양주 양과 질이 대변해준다.

"크아~!"

"무슨 양주를 소주 마시는 것처럼 마시냐."

"저 양주 잘 마십니다. 맥주도 안 타고 마셔요!"

"맥주가 문제가 아니라……."

폭탄주.

한국에서 위스키를 음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발렌타인 30년으로 할 짓을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이런 새끼 맥이려고 이 좋은 술을 시켰다니.'

과거의 자신이 생각 나서 부끄럽다.

술맛도 모르고 비싼 거라고 시켜서 소주처럼 마셔댔던 경험이 있다.

알게 된 이후로는 천천히 음미한다.

그리고 대충 마시는 애들이 한심해 보인다.

그 마음을 억누르고 대화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너도 알겠지만."

"……."

"술이 목구멍에 넘어가냐?"

"저 요즘 발렌 30은 오랜만이라 헤헤."

짭꾸라지를 만난 이유.

지난번 작당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힘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감이 있었다.

'아오, 내가 이런 근본도 없는 짜가 새끼를 데리고.'

그래도 팬덤을 계승하고 있다.

철빡이들이 얼마나 악질적인 놈들인지.

같은 삼대장으로 투닥거린 김군이 누구보다 잘 안다.

과거의 일이다.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발렌타인 30년 한 병 시키는 것도 목에 걸린다.

수입이 줄자 유흥비가 가장 타격받는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며 한 말이 뭔지 알아?"

"뭔데요, 오빠?"

"뭔데, 뭔데?"

"내 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군!"

그것은 짭꾸라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룸녀들과 멍청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당연히 돈이 든다.

'그놈의 롤인지 뭣인지.'

롤프리카.

파프리카TV의 추세가 변한 것도 한몫한다.

보라판의 비중이 작아진 바람에 방송이 힘들다.

김군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오정환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야, 지금 술 마시고 여자 주무르러 왔나?"

"뭐 말씀하셨나요?"

"집중을 하라고."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 듣고 있어요~!"

"……."

이런 덜떨어진 새끼를 믿어도 될지.

말을 하면서도 정말 내키지가 않는다.

'철꾸라지는 겉으로는 븅신 같아도 속은 능구렁이 같은 놈이었는데.'

생김새만 비슷할 뿐이다.

하는 짓은 하늘과 땅 차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놈과 어설프게 판을 벌였다가는 일만 더 복잡해진다.

머릿속 떠오른 예감을 실행으로 옮기려던 찰나.

"오랜만입니다."

"응?"

"저랑 이야기하시죠. 이 새끼는 들어내시고."

"뭐, 뭐야? 여기가 어디라고……."

서비스가 나온 줄 알았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가 갑분싸를 만들고 있다.

순간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시야를 믿기가 힘들다.

그도 그럴 게 짭꾸라지가 두 마리.

'아니, 설마.'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김군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앉아."

"환영해주시니 다행입니다."

"할 말 있으면 하자고."

"할 말 많죠. 형도 그러실 테고. 근데 그전에."

"응?"

짭꾸라지에게 시선이 쏟아진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내팽개친다.

우당탕!

문밖으로 말이다.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짭꾸라지가 겁에 질려 네 발로 도망가며 허무하게 종료된다.

"뭐야, 뭔 일이야?"

"헐~ 도플갱어다!"

"저 사람 사칭이었어요? 말 좀 해줘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룸녀들만이 어리둥절하다.

대신 앉은 남자가 김군의 잔에 술을 따른다.

"그래, 이 정도 따라야 적당하지."

"입맛에 맞으십니까? 제가 따른 건."

"음, 괜찮아 맛이."

철꾸라지.

지난 영구정지 사태 이후 처음 만난다.

그것도 벌써 1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시간이 오래도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여기까지 찾아오진 않았을 테지.'

짭꾸라지와는 영 답답했다.

대화의 진도도 안 나가고, 대화를 해도 수확이 안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진짜는 다르다.

방송의 영향력도, BJ로서의 기량도 말이다.

사실 보라판이 쇠퇴한 가장 큰 계기는 그가 영구정지를 당했기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 인방 수준 많이 떨어졌지 않습니까?"

'백분 동의하지."

"이년들도 수준 떨어지는데 나가게 하죠."

"네?"

"갑자기 왜요? 우리 가만히 있었는데!"

자숙?

아니,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분위기 망치는 년들을 내보내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계획은?"

"다 방법이 있습니다. 확정이 된 것이니 온 거고."

"음~, 그래. 그렇다고 치자. 목적은?"

"그야 당연히……."

겹친다.

오정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

파프리카TV의 대통령이라 불리다 하루아침에 나앉게 되었으니까.

'아주 믿음직해.'

그럼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철빡이라는 콘크리트 팬덤이 있기에 멍청한 가짜도 인기BJ 행세를 할 수 있었다.

진짜가 돌아온다면 새 바람이 분다.

기존의 판을 뒤엎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바람이 분명.

"분위기가 좀 딱딱한데요?"

"그러게. 너 감 잡는데 시간 좀 걸리겠어."

"마아아아아아?!!"

"그래, 그거지 크킄."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보다 반반한 년이나 부르죠."

당장 조급해할 것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과 철꾸라지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뭉치는 것이다.

'우리 둘만 손을 잡을 수 있다면야.'

삼대장이 무려 둘이다.

오정환 하나 어찌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이 좋은 날에 지갑 조금 여는 게 대수일까?

덜컥!

문이 열린다.

새로운 여자가 들어온다.

룸살롱이니만큼 당연히 급이 나뉜다.

"어, 오빠!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잘 지냈으니까 또 오지. 그때는 서운했다?"

"미안해~ 나은이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에이스 중에서도 에이스다.

더 상위의 업소에서 일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야무진 몸을 가졌다.

'고년 막판에 튕기긴. 재주도 좋아.'

실장에게 듣기로 가끔씩만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목적은 보나 마나 돈.

그렇다면 매상을 올려주는 것보다.

"오빠 통 큰 거 알지? 팁도 잘 꽂아주는데."

"갑자기?"

"우리 사이에 뭘 흐흐흐."

개인 팁을 주는 게 잘 먹힌다는 계산도 섰다.

대타로 오는 년들은 자신의 수익을 가장 신경 쓸 테니 말이다.

"아는 년이에요?"

"말이 잘 통하더라고~"

"아~ 씨. 아까 보니까 반반한 년들 없던데 여기."

"다른 년 찾아. 이년은 오늘 내가 전세니까."

바로 쓱 어깨에 손을 둘러도 저항이 없다.

오히려 편하게 파고들며 안주를 주워 먹는 게 보통내기가 아니다.

'가슴은 볼 때마다 더 커지는 것 같네.'

몸매도 피부도 광택이 돈다.

성격도 유순하니 같이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여자일수록 경쟁도 심하다.

철꾸라지의 눈치가 심상치 않다.

잔뜩 폼을 잡고 왔지만 결국은 남자.

자숙 기간 동안 굶주렸을 테니 더더욱일 것이다.

"나 오늘 생리 터져서 2차는 무린데. 앙~"

"앙. 뭐? 그럼 왜 나왔어??"

"나은이가 미안해! 대신 오빠 둘이랑 진득하게 놀 테니까 응? 안 될까?"

"크흠……."

"저도 재미 좀 보겠습니다. 흐흐."

철꾸라지와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양보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김군에게 나름대로 괜찮은 결론이 도출된다.

'뭐, 두 짝씩이나 달려있는데.'

딱히 마음을 준 년도 아니고 하룻밤 재미 보기에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

예쁜 년의 망가진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 이러면 되겠지?'

나은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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