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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442화 (442/846)

442화

"잘 나가고 있나 봐?"

"아무렴요. 형도 아시겠지만 일단 불러만 모으면 물이 안 좋을 수가 없는 곳이잖아요."

박두림.

K? 클럽의 바텐더로, 최근 매니저 직급으로 승진한 모양이다.

사람 쓰는 리사이클이 워낙 빠른 업계다 보니 드물지도 않지만.

"소주 칵테일이 워낙 인기가 있어서."

"웰컴 드링크로?"

"네, 좀 싼티 나서 걱정이 되긴 했는데."

"……."

생각보다 장기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이를 도입한 두림이는 지배인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1층 바를 담당하게 되었다.

'사실 인싸 문화라는 게 별로 이해는 안 돼.'

겉보기와 재미를 중시한다.

소주 칵테일.

소주로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고?

과일도 한두 개 꽂아주니 겉보기에는 그럴듯하다.

다량의 설탕으로 달달하게 탔으니 맛이 없기도 힘들다.

백종원 선생님이 괜히 설탕을 폭포처럼 퍼붓는 게 아니듯이 말이다.

"담금주로 기주를 바꾸면 좀 더 맛이 살 거야."

"담금주요? 그 담금주?"

"도수가 높아서 칵테일용으로는 더 좋거든. 원가도 후려칠 수 있고."

"오~"

"사이다 타는 변형 레시피도 가능해지지."

"오~~!"

물론 품질을 관리하지 않으면 롱런하지 못한다.

적어도 괜히 먹었다는 인상은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두림이 정도면 알아서 잘하겠지.'

술섞개.

바텐더를 비하해서 부르는 멸칭이다.

유흥에서 일하는 바텐더들은 직업의식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림이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적어도 QC가 안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일단은 내가 창시자다 보니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이게 형님이 낸 아이디어잖아요?"

"그런가?"

"에이, 사실 그게 중요한 거죠! 요즘 형님 모르는 애들이 어딨겠습니까~"

관계 또한.

나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클럽의 흥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좋지.'

숨만 쉬어도 시비 걸릴 일이 많은 곳이다.

내 편이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다.

무엇보다.

"아! 제가 좀 많이 붙잡고 있었죠?"

"내가 널 붙잡고 있었지. 일 해야 되는데."

"일은 애들이 하죠~ 저는 이제 짬이 되다 보니까 헤헤. 여자 붙여 드릴까요?"

이곳에 온 목적.

잡담 좀 떠들고, 인맥 관리 좀 하기 위함은 당연히 아니다.

여자를 안기 위함도 아니다.

결과론적인 의미에서는 비슷할지 모른다.

"걔 불러줘 걔."

"누구요? 그때그때 이쁜 애들 알아보는 거라 저희가 고를 수는 없는데."

"살짝 태닝한 가슴 크고 멍청한 애 있잖아."

"아, 나은 누님……."

말끝을 흐린다.

딱히 모르진 않을 것이다.

워낙 특징적으로 생기기도 했거니와.

"근데 형님 정도면 눈치채셨겠지만 그게 그……."

"알바라고?"

"헤헤, 그런 느낌이죠! 술 접대는 몰라도 2차는 아마 안 갈 겁니다. 그 누님이 보기보다 쉽지가 않아서."

클럽의 속사정.

다 알고 있는 마당이다.

소위 말하는 물 좋은 년들이 날이면 날마다 방문할 리가 없다.

'VIP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데.'

수질도 관리해야 되고, VIP 대접할 여자도 필요하다.

그래서 '알바형 손님'을 풀어놓는다.

십중팔구 그런 년일 것이다.

다 알고서 저지른 일이기도 하다.

아는 입장에서 보면 다 티가 난다.

조금 괴롭혀도 찝찝하지 않아서 오히려 괜찮다.

"일단 불러보겠습니다."

"전화로?"

"에이~, 뭐 다 아시잖아요, 이미."

재미있는 밤이 될 것만 같다.

* * *

위이이잉~!

시끄럽다 못해 귀가 따가운 클럽 안.

소리는 당연히 들을 수가 없다.

진동은 피부를 타고 느껴진다.

'아! 아, 아 진짜…….'

나은은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받는다.

민감해진 피부 탓에 진동 모드조차 짜증이 날 지경이다.

"아, 왜!"

<접니다. 누님.>

"그니까 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일어난 짜증을 풀기에 이보다 더 적격이 없다.

"꼴에 매니저 좀 달았다고.'

두림이.

1층 바의 매니저를 맡고 있다.

클럽에서는 나름 직급이 있는 편이다.

전부터 알고 지냈고, 나이도 자신보다 어리다.

최근에 조금 잘 나간다고 콧대가 높다.

가끔 쥐어 박아주고 싶다.

<누님 콜 왔거든요.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갈게! 갈게! 드러워서 간다."

<헤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상급자라서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꼽다.

사내새끼가 굽실거리는 것도 말이다.

무엇보다.

'너 때문에 여기가 X발 오정환 클럽 같잖아.'

오정환이 왔었다는 소문을 듣고 온 손놈들이 넘친다.

주위에서 그 세 글자가 들릴 때마다 신경이 잔뜩 거슬린다.

여기저기가 욱신댄다.

자신의 몸이 고장 난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삭신이 삐걱거리는 신호를 울리고 있다.

또각! 또각!

하지만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룸에 오는 변태 같은 아재들은 싫증이 났고, 클럽에서 놀 거 놀면서 돈까지 벌고 싶다.

괜찮은 남자 꼬셔서 몇 번 자면 괜찮아질 것이다.

두림이가 부른 테이블이 괜찮은 놈팽이길 기대했는데.

"너, 너, 너너……, 너, 너, 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익숙한 위치.

익숙한 남자.

머릿속 트라우마가 선명히 떠오르려고 한다.

"잘 지냈어?"

"이 새끼야. 내가 너 때문에……."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지르고 싶다.

클럽의 시끄러운 소음을 웃도는 데시벨로 말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목청이 고장 난 것만 같다.

이도 저도 못하고 있던 나은의 살덩이를.

꽈악?

너무 자연스럽게 잡혀버린다.

어떻게 반항이고, 소리고 내지르고 싶지만 그것이 안 된다.

'자, 잡아 뜯긴다!'

이성적으로도, 본능적으로도 거부한다.

몸이 덜덜 떨리며 수그러진다.

의사와 상관없이 착석.

"잘 지냈냐고."

"……."

"묻잖아."

"아, 아아! 잘 지냈. 으흐흑."

아프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가드를 불러 개 패듯이 패고 내쫓고 싶다.

그것이 안 된다.

몸이 움직이는 걸 거부한다.

'시, 시발…….'

얌전히 앉아 술을 따르는 신세.

당장 그의 비위를 거슬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머리도 몸도 경고를 보내고 있다.

"아파요."

"응?"

"아! 아아! 그렇게 세게 힘주면……."

"느껴? 아니면 실리콘이라도 들었어?"

"아, 안 들었는데. 으흐흑."

순수하게 아프다.

갑자기 힘을 확 줄 때마다 살덩이가 뭉개질 것 같다.

전기가 통한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 떨리는 건 덤.

'이, 이렇게 반죽 주무르듯 했으니 피멍까지 들었지 흑…….'

일전에 만났을 때.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겼다.

하지만 술시중을 들었다는 기억은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잠에서 깨어나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중요 부위가 엄청나게 아프고, 눈에 띄는 타박상까지 입었다.

다행히 옷 위로 드러나지 않아 일은 할 수 있었지만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 남자가 자신에게 했던 짓.

"왜."

"아! 아아!"

"웬만한 자극으론 재미없잖아. 너."

"그, 아, 그……, 아!"

수치스럽다.

치욕스럽다.

잊고 지내던 감정이다.

이쪽 업계에서 닳고 닳으며 그런 시시껄렁한 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

'아예 장난감 취급이잖아.'

가끔씩 있다.

여자를 성욕풀이의 대상도 아닌, 장난감 취급만 하는 변태들.

잘못 걸리면 글자 그대로 인생이 끝장난다.

"저, 저기."

"응?"

"다, 당신 유명한 사람이잖아. 이, 이런 짓 해도 아아!"

"뭐?"

"아니에요……. 으흐흑."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다.

당장 자기 자신의 몸이 소중하다.

이 업계에 살며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

'아니, 뭉개져서 할매처럼 되겠다고 이 새끼야…….'

적나라하게 위험 신호를 울린다.

하지만 몸이 반항을 거부하고 있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춰 빠져나가야만 한다.

"너도 좋잖아?"

"좋지 않아요. 아! 아프기만 한데 으흐흑."

"그래?"

다른 쪽 손을 성큼 움직인다.

혹시 두 손으로 고문을 하려나.

머릿속 떠오른 예감은 다행히 빗나갔다.

'아, 잠깐만. 아흑! #$%^#@.'

긍정적인 쪽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옷을 찢기라도 할 기세로 거칠다.

그 자체는 있을 수 있는 일.

클럽이다.

서로 부비고 만지는 건 별일도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아파! 그만! 아으아!"

"잘만 우네."

처음으로 터진 목청이 시원하게 질러진다.

그동안 꾹 눌려지고 있던 만큼 더욱 크다.

'나 왜 이래. 몸 미쳤어!'

하지만 클럽.

그 정도의 소리는 가볍게 묻힌다.

코앞에 공연 무대가 있는 VIP테이블에서는 특히 더하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쾌감이다.

고장 났던 몸이 드디어 원하는 반응을 내고 있다.

그 남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

"개좋지?"

"아으아……. 전혀!"

"그래?"

"쪼아! 개좋아!!"

이 악물고라도 우기고 싶다.

솔직한 몸에 의해 금방 들통나버릴 거짓말이다.

스테이지 위에서는 보일 것이다.

자신이 덜덜 떠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전부 다.

그런 망신을 신경 쓸 겨를도 없다.

나은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복잡하다.

'지, 진짜 아파 죽겠는데 왜…….'

위도 아래도 고통뿐이다.

여자를 다루는 방법이 너무 거칠다.

평범한 여자였다면 울음을 터트렸을 정도.

그것이 일상인 나은은 조금 다르다.

정신이 확 들며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의 고조가 전신을 지배하고 있다.

"마셔. 눈치 보지 말고."

"취, 취할까 봐."

"그때도 물처럼 마셔 놓고 이제 와서 뭘."

딱히 술이 취한 것도, 약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기에 더 무서운 일이다.

상대가 자신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

'진짜 뭐 이상한 약 탄 거 아니야? 나 왠지 요즘 머리 나빠진 것 같기도 하고.'

당시에도 이상했다.

빠르게 필름이 끊긴 것도, 고작 하룻밤 정도로 몸이 고장 난 것도 말이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

꿀꺽! 꿀꺽!

방법은 단 하나.

나은은 기억해냈다.

한 번 화장실에 간 기억이 있었다.

"잘 마시네."

"으, 응."

"양주도 마시지."

"모, 목이 타서. 맥주가 마시고 싶네."

생리 현상이다.

빠르게 마시면 금방 찾아올 것이다.

맥주를 두 병이나 비웠으니.

"나 잠깐……, 가도 돼?"

"마려워?"

"응! 꽃 좀 따고 올게."

자연스럽다.

의심스러울 부분이 없다.

나은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사, 살았다!'

마음속에서는 환호를 외치고 있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그대로 줄행랑을 칠 것이다.

그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여기서 해."

"응? 금방 갔다 올게."

"여기서 하라고. 보고 싶으니까."

"뭐, 뭘?"

오정환의 손가락 끝이 테이블 위의 무언가를 가리킨다.

그것을 머리가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까지 다소의 시간이 소요된다.

'응? 응응?'

테이블 위의 얼음통이 보인다.

* * *

가끔씩 있다.

아니, 의외로 많다.

'골 빈 년들.'

겉으로는 굉장히 화려해 보인다.

그런 인생을 사는 것만 같다.

실상은 그냥 병신.

당장 하루를 사는 데 급급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인생 자체가 방향성을 잃게 된다.

"자, 장난하는 거지?"

"장난이지."

"아, 아하하!"

"처음부터 쭉 장난이었어."

"……."

눈앞의 덜떨어진 년도 말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막막한 게 아니라 아예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문신 돼지 같은 새끼들이랑 사귀는 거잖아.'

안전 기지.

내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나를 배신하거나 버리지 않을 존재.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게 사실이다.

실상은 당연히 그럴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골 빈 년과, 골 빈 놈의 환장의 조합이다.

그런 인생이 예약돼 있는 년이라면.

"봐주세요."

"응?"

"다른 건 뭐든지 할 테니까. 도망가지도 않을 테니까……."

"해."

"네, 할게요!"

"하란 거 하라고."

"……."

조금 교육을 해주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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