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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443화 (443/846)

443화

황금빛 액체가 줄줄 샌다.

클럽의 반짝이는 조명에 산산히 부숴지는 그 모습이.

'재밌네.'

테이블 위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두 허벅지에 힘을 꽉 주고 있다.

얼음통에 엄청난 기세로 담긴다.

본인도 슬슬 끊고 싶겠지만 원래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멍청하게 맥주까지 마셨으니 더더욱이다.

한참을 시원하게 일을 본다.

얼굴을 가려봤자 모래 속에 머리를 박은 타조와 같은 꼴이다.

'뭐, 다를 게 있겠어.'

본인이 지금 살고 있을 인생도 그럴 텐데.

얼음통 안이 출렁거릴 정도가 돼서야 겨우 잦아든다.

괜히 휴지를 찾다 개구리처럼 엎어지기 전에 손을 써준다.

꾹꾹 눌러 안쪽까지 닦는다.

"자, 잠깐 뭘 하는……."

"소독."

아주 깨끗하게 말이다.

휴지에 위스키를 살짝 적셔서 콕콕 찍듯이 중요 부위를 소독한다.

'알코올이니까 당연히 효과가 있지.'

실제로 전쟁이 나면 각 증류소는 강제 징수된다.

법으로 제정이 돼있어서 소주든 양주든 가리지 않는다.

발렌타인, 로얄 샬루트의 키몰트가 소독약이 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안 될 것도 없는 일.

"으, 으흐흑……."

"앉아."

"왜 이러는 거야 나한테……."

이물질 묻은 곳을 만지고 싶진 않으니까.

본인으로서는 취급에 충격받은 듯 울음을 터트리려고 한다.

'뭐쩌라고.'

살갑게 대해줄 이유가 없다.

여기가 업소도 아니고, 숨 가쁘게 살아온 인생도 아닐 텐데.

"야 우냐?"

"다 너 때문이야."

"뭐가? 들어나 보자."

"몸이 이상해진 것도, 죽고 싶은 기분 드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남들 아등바등 살아갈 때 쉽게 몸이나 굴렸으니 인과응보.

'늦고 빠르고의 차이지.'

이런 업계에서 일하는 건 자기 자신을 깎아가는 행위다.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래서."

"아! 아아!"

"겁나 좋아하면서 왜 그래."

"좋으니까, 슬프니까, 으아, 으아앙……."

한바탕 울음을 쏟아낸다.

울음인지, 신음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다행인 건.

와아아아아?!

클럽이다.

스테이지에서는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어떤 소리도 환호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저쪽에서는 이쪽이 공연일 수도 있겠지만.'

클럽 자체가 원래 그렇고 그런 공간이다.

안 보이는 곳에서 할 거 다 한다.

VIP 테이블도 그런 위치.

엄폐물이 될 만한 것들이 많다.

설사 본다고 해도 VIP라는 특성상 쉽게 건들지 못한다.

"야, 부순다."

"으, 응?"

"하나, 둘."

"대체 뭘……. 아!"

공연의 클라이맥스와 함께 연주된다.

나은의 몸이 미친 듯이 덜덜 떨린다.

어느 순간 뚝 끊긴다.

코드가 뽑힌 것처럼.

얌전해진 몸을 들어 무릎 위에 올린다.

잠시 후, 테이블을 치우러 직원들이 온다.

"어, 형 분위기 좋네요?"

"그래, 고생 좀 해주고 술도 하나 가져와 줘 좋은 걸로."

"네, 헤헤! 기대하고 계십시오~!"

얼핏 보기에는 안겨있다.

여자, 남자 모두 재미를 보기에 안성맞춤인 자세다.

그 실상은.

쪼옥?

입술을 훑어도 반응이 없다.

몸도, 정신도 부서져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큰 충격.

행동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대로 가지고 노는 것도 재미는 있겠지만.

"야, 들리지."

"……."

"대답 안 하면 망가뜨려 버린다?"

"맘대로 해. 이미. 윽."

자신의 입술을 잘근 깨문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인드.

더 이상 괴롭혀봤자 좋은 반응이 나오기 힘들다.

와아아아아?!

다음 공연이 시작된다.

소란스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슬슬 진짜를 시작한다.

"아……."

여전히 무반응을 유지하려 하지만, 감상이 안 생길 수가 없다.

클럽이라는 장소는.

'소리가 울리잖아.'

고막만이 아니라 피부로도 느껴진다.

특히 스피커 주위에 있으면 몸 안쪽까지 영향을 받는다.

가만히만 있어도 기분이 고조된다.

이러니저러니 썸이 잘 엮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싫어?"

"……."

"대답 안 하면 뺀다."

"……해줘."

"잘 안 들리는데~"

"마음대로 해줘. 마음대로 흑흑."

"망가뜨려도?"

"이미 끝났어."

맡겨오는 몸을 살살 쓰다듬는다.

조금 기분을 달래준 후 본격적으로 스퍼트를 올린다.

와아아아아?!

소리에 맞춰.

그 이상의 충격을 준다.

두 배 이상의 묵직한 쾌감이 몸 안에서 팡팡 터진다.

마음껏 신음을 질러도 문제없다.

야시시한 목소리가 아닌 괴성이라도 어차피 들리지 않으니까.

쪼옥?

공연이 끝날쯤 되자 맛이 가 있다.

스스로 달라붙어 역으로 재미를 본다.

허벅지를 팡! 때려서 정신이 들게 만든다.

"뒷정리해."

"네, 네네! 할게요……."

이대로 있으면 망신을 당하는 건 남자 쪽이 아니다.

자신이 일하는 공간이기도 하니 적잖이 신경 쓰일 것이다.

'정신도 돌아와 있고.'

허겁지겁 내 무릎 위를 닦는다.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에는 자신도 모르는 감정이 깃들어있다.

"형님!"

"그래."

"제가 페어링을 고려해서 골랐거든요."

"음~ 시가랑?"

"네, 이거."

다시 소란스러움이 잦아지자 두림이가 찾아온다.

내려놓는 술의 이름은.

「조지 티 스택 주니어」

버번이다.

미국의 위스키로 높은 도수와 강렬한 맛은 시가의 연기에도 지지 않는다.

"조니 블랙으로 인퓨징한 시가라 스모키한 맛도 있을 겁니다."

"별걸 다 하네."

"헤헤, 취미라."

세팅을 하고 사라진다.

무릎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분위기는 감안해주는 것일 테다.

'아는 사이면 더 민망하기도 하고.'

나은이 다시 착석한다.

새롭게 보이는 술에 대한 기억.

썩 좋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마실래?"

"아니, 전……."

"마셔."

"네."

잔에 담아주자 조심스레 입에 갖다 댄다.

달달하고 좋은 목 넘김에 술술 마셨더니 꽐라가 된 기억이 있으니까.

"콜록! 콜록, 콜록."

그보다 훨씬 노골적이다.

67도의 정신 나간 도수와 고숙성 버번의 진한 오크향이 식도와 뇌를 태워버린다.

"콜라 타 먹을래……."

"미쳤니."

독한 매력이 있는 술도 있다.

희석시키면 맛을 크게 해치기 때문에 따로 먹는 방법은.

'사실 그냥 마시면 되긴 하는데.'

굳이 찾는다면 시가.

이독제독으로 입에 머금으면 한 모금 넘기는 게 쉬워진다.

온몸의 구멍이 뻥! 뚫리는 듯한 강렬한 임팩트와 함께.

그 맛이 제법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또 정신 못 차리고 마셔라."

"아, 아으……."

"취했냐?"

"왜 나를 못살게 구는 거예요."

분위기는 풀렸다.

그렇다고 상황이 일단락된 건 아니다.

정신이 돌아오긴 했어도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다.

겁먹은 눈으로 지켜봐 온다.

언제 또 태세를 급변할지.

나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귀찮아.'

좋게좋게 지내면 되지.

윽박지르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필요한 과정이라 판단했던 것.

쪼옥?

입을 맞춘다.

시가 연기를 한 모금 삼키게 하자 다량의 니코틴에 의해 비몽사몽해진다.

손잡이를 꽈악 움켜쥐며 물어본다.

"너도 알잖아. 너 같은 막장년들은 개 패듯이 패야 말을 듣는 거."

"아! 아으……."

"너 꿈이 뭐냐?"

"없어! 없어!"

"없지? 그렇지?"

십중팔구 그러하다.

가끔씩 보면 자신의 꿈(?)을 위해 화류계에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현실은 그마저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잘 나가는 느낌.

소위 말하는 인싸.

그런 재미도 딱 20대 중반까지다.

친구들은 다 취업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데 나는?

슬슬 마음의 심지에 불이 붙는다.

평소에는 잊고 지낼 뿐.

조금 그 문을 열면 기억한다.

자신이 현재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어차피 니 인생 쓸모없잖아."

"아으……."

"오빠 줘라. 좀 쓰게."

"아! 알았어! 알았으니 아흐앙……."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한다.

감정적인 타입은 감정적인 타입대로 잘 다룰 자신이 있다.

'다 비슷비슷하거든.'

유흥 쪽의 인맥도 필요하다.

걸려든 년이라면 마킹을 해두는 귀찮음을 감수할 만하다.

쪼옥?

입을 맞추며 다시 올라타게 만든다.

다만 방향이 반대.

자신이 누구의 여자인지 확실하게 자각시킨다.

남은 손으로 시가를 쪽 빤다.

자동 모드로 엉덩이만 비비고만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

"웁! 웁웁!"

입에 불어넣는다.

타는 듯한 목에 위스키를 넣어준다.

물로 삼키게 하자 역시나.

"히, 히히."

"좋냐?"

"몸이 이상해. 아으아."

"재밌지?"

"응!"

"오빠랑 있으면 항상 재미있게 만들어줄게."

"네!"

일시적인 부작용이 조금 있다.

안 그래도 나쁜 머리가 더 나빠진다.

'그걸 좋아서 하는 애들이 많지.'

약이나 문신 등.

불법적인 행위까지 저질러서 말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세상에 재밌는 건 많다.

이를 적당히 충족시켜준다.

그리고 삶의 목적을 찾게 해준다.

그 두 가지로 충실한 강아지를 얻을 수 있다.

"근데 내가 연상인데."

"그래서?"

"아,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너 친구 있냐?"

"당빠 있지!"

물론 부족하다.

겨우 한 명 가지고는 가끔씩 재미 보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 명만 만들면.'

나머지는 꼬치 꿰듯이 줄줄이 엮을 수 있다.

끼리끼리 논다고 멀리 찾아갈 것도 없다.

"안뇽!"

"세연이에요."

"아, 그래? 앉아."

핸드폰으로 한 명 부른다.

덕지덕지 바른 파운데이션으로 피부가 굉장히 하얀 처자.

바로 관심을 느껴온다.

친구가 잡고 있는 남자.

매력을 과시해 뺏고, 반응을 보고 싶어 한다.

쪼옥?

그대로 어울려준다.

숙인 고개를 잡으며 당긴다.

반쯤 안긴 듯한 모양새.

곁눈질로 살피니 히죽 웃고 있다.

나은을 향해 신호를 보내며 여자끼리 재밌는 싸움을 한다.

"아! 어?"

"일단."

두 손으로 확 끌어당긴다.

진짜 재밌는 건 남자랑 하는 것이란 사실.

"뭐, 뭐 하는 거야 둘 다!"

"글쎄~ 너도 당해보면 알겠지."

이미 알고 있는 나은이 도와준다.

친구라고 해봤자 얕은 관계다.

당장 눈앞의 년을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글자 그대로의 일.

공연의 템포에 맞춰 즐긴다.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웁! 웁웁!"

나은과 똑같은 것도 선물해준다.

딱히 담배에 선입견이 있어 보이진 않으니 과감하게 불어 넣는다.

꿀꺽!

다량의 니코틴과 알코올.

충분히 효과는 있겠지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조금 도움을 받는다.

"야, 탐폰 있냐?"

"있어요!"

"거기 위스키에 적셔서 이년한테 꽂아."

"어디에?"

질문의 답을 해준다.

히죽 웃으며 바로 실행에 옮긴다.

내가 시킨 것과 별개로 아주 흥미만빵이다.

'이래서 친구를 잘 사귀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네.'

장본인도 자업자득이지만 말이다.

둘 다 썩 좋은 친구를 사귄 것은 아니어 보인다.

내가 친구가 돼준다면 해결이 되는 일.

"@&%#$%#$%"

"이년 재밌게 우네."

"그쵸~?"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살짝만 본보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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