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45화 (445/846)

445화

광복절 특사

2013년의 파프리카TV.

사실 시장 자체는 이미 형성되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인방판 크기는 비슷해.'

파프리카TV로 한정한다면 말이다.

토이치TV, 유튜브 기타 등등 경쟁 플랫폼이 생기며 업계가 커졌을 뿐이다.

딩동♪

수준 높은 BJ와 스토리텔링이 있다면 성장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그럴 만한 크루원은 이미 갖춰둔 마당이다.

"멍멍!"

"옳지, 착하지."

"헥헥헥……."

살짝 맛이 가있긴 하지만.

하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초커를 확 조여 흥분을 진정시킨다.

'완전히 개네.'

애완견 카페에 가면 한 마리쯤 있을 것 같다.

서은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본다.

녹을 듯한 표정이다.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

주인과 애견은 이심전심이라는 말처럼.

"멍멍!"

"그랬어?"

"멍멍, 멍멍멍……. 왈!"

딱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대충은 알겠다.

최근 방송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적잖이 신경 쓰거든.'

남녀 BJ의 썸.

뻔하면서도 잘 먹히는 콘텐츠다.

스토리텔링만 제대로 엮는다면 말이다.

그걸 해줬다.

서은이에게 준 임무.

너무 잘 수행하고 있다 보니 역으로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철컥!

목줄을 메어 준다.

전용 초커에 딱 연결이 되는 맞춤형 사슬이 정말 개 목줄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헤엑, 헤엑, 헤엑……."

흥분한 듯 호흡이 가빠진다.

눈이 살짝 위험하게 돌아가 있다.

최근 꽤 오래 방치를 하긴 했었다.

'이러다 사람 물겠네.'

누군가의 코가 물어 뜯길지도 모른다.

상의를 살짝 들어 아랫배의 살을 어루만진다.

이미 예열이 돼있는 듯 엄청나게 뜨겁다.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자 부드럽게 파묻힌다.

"멍! 멍! 으힉……."

그것만으로도 보낼 수 있을 기세다.

누르는 부위마다 반응이 달라 재미가 있다.

'한창 야들야들할 때라.'

딱 요즘 애들이다.

잘 꾸미고 다녀서 어쩌다 시내에 나가면 한 번쯤 눈이 가는 스타일.

냄새도 향긋하다.

굳이 뭐 안 뿌려도 달달할 나이다.

조금 괴롭히자 피부가 땀으로 촉촉하게 젖는다.

"멍! 멍! 끼잉……."

"말로 해."

"주, 주인님."

"아, 진짜 귀엽네."

눈망울에 눈물이 살짝 올라있다.

가학심을 자극하는 게 굉장히 훌륭한 M의 표본이다.

"저 열심히 했어요."

"응."

"하란 대로……. 혹시 거슬리셨다면."

오들오들 떠는 모습까지 완벽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여러 가지 짓을 해주고 싶지만.

'서은이도 슬슬 안정을 찾아야지.'

어디까지나 받아줬을 뿐이다.

컨셉 플레이는 결코 취향이 아니다.

무엇보다.

"잘했어."

"정말요? 주인님 멍멍!"

"그래."

"호, 혹시 괜찮으시다면… 다뤄주시면 안될까요? 제 주제에 맞게."

클럽에서 적당히 풀고 왔다.

사람이 매운맛이 땡길 때도 있지만, 연거푸 먹는 것은 몸이 안 받는다.

목줄을 잡아당긴다.

기대에 가득 찬 눈초리로 쳐다본다.

귓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그동안 재밌는 일 있었어?"

"네, 네!"

나름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BJ 생활이라는 게 겉보기에는 정말 별거 없어도, 듣고 보면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정신적인 부분만 충족시켜도 충분하지.'

클럽에서 만난 애들처럼 어지간히 자극에 맛이 들린 케이스가 아닌 이상 파트너가 누구인지가 더 중요하다.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야기 계속 해."

"네! 저, 듀오를 하다가 자꾸 시청자들이 연애 쪽으로 엮어서……."

키운 보람을 느끼면서도, 솔직하게 질투심도 인다.

이렇게 말을 잘 따라주면 나도 안심이다.

찰싹!

그 보상으로 조금 놀아준다.

평범한 플레이.

서은에게는 오히려 안 해준 측면이 있다.

"앞으로도 말 잘 듣고."

"저 따위한테……."

"그럼 또 귀여워 해줄 테니까."

"헤, 헤헤헤."

그렇게 놀을 나이 대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언젠가 정상적인 삶을 살았으면 싶다.

'코물쥐는 좀 아니지만.'

* * *

광복절 특사.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에 의한 것으로, 특정 범죄인에 대한 형 집행을 면제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걸 하자고?"

"이유야 어찌 됐든 잘 끼워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파프리카TV의 대표 이사실.

비밀스러운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기획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남수길이 의미심장하게 살핀다.

'결국 문제는 Yes or No겠지.'

파프리카TV에는 여러 BJ들이 있다, 혹은 있었다.

내부 정책에 반하거나, 악질적인 짓을 범해 영구정지를 당한 이들도 존재한다.

그런 이들을 풀어 달라?

말 같지도 않고, 절차상으로도 불가능하다.

글자 글대로 영구적인 정지 처분을 당했으니 말이다.

「8.15 광복절 기념 영구정지BJ 복귀 프로젝트」

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방법이야 만들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매년 이뤄지고 있다.

광복절이다, 3·1절이다, 부처님 오신 날이 뭐다 해서 범죄자를 풀어주는 이벤트.

"여론은?"

"철꾸라지 하나만 풀면 문제가 되겠죠. 광복절 특사로 대거 풀면 대의명분도 있고, 화제도 분산될 테니 괜찮을 거라는 계산입니다."

그것을 활용해 영구정지를 당한 BJ들을 풀어주자!

그 정신 나간 계획을 한사코 거부할 수만은 없다.

'아래에서 불만이 거셀 테고.'

파프리카TV는 중견 기업이다.

상당한 규모가 있는 회사고, 당연하게도 내부에는 파벌이 있다.

가장 거대한 파벌 중 하나.

업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졌다.

남수길도 그 사실을 다 아는 입장이다.

"일단 최종 보고서를 보고 결정하는 걸로 하지."

"기획안 자체를요?"

"기획 자체는 나쁘지 않아. 일단."

손을 쓸 수 없다기보다는, 안 쓰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정경유착이지만, 반대로 그래서 통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파프리카TV 최대의 돈줄.

보라판은 안고 가야 할 숙제다.

사고를 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하, 진짜 싫은데.'

그중에서도 특급 범죄자.

영구정지를 당한 BJ들은 사고뭉치임과 동시에 가장 많은 별풍선을 벌어들이는 수익원이다.

또 그중에서도 가장 흉악범이다.

철꾸라지가 친 사고는 파프리카TV를 넘어 세간까지 들썩인다.

"그럼 최대한 연막을 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준비를 하라고 돌려보내겠습니다."

"역시 안 하면……."

"안 된다고 보낼까요?"

"아니, 아니…… 일단 해봐!"

남수길의 입장에서는 정말 치를 떤다.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정부 규제를 당하면 시장 자체가 죽는다.

'철꾸라지 그놈은 증말 악질 중의 악질인데.'

나쁜 녀석일수록 수습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고를 친다.

철꾸라지는 액셀을 밟아도 정신 나간 수준까지 밟는다.

관리가 힘든 애물단지.

그만큼 영향력이 큰 것도 사실이다.

관련 요구도 자주 들었으니 적절한 타이밍일지 모른다.

'사장님도 납득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이병권 비서는 그 시기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업체 쪽의 파벌로, 남수길의 의사를 가장 곁에서 보는 인물이다.

사건이 일어난 게 약 1년 전.

광복절 특사라는 그럴듯한 이벤트.

타이밍을 잘 노려 계획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될 것 같나요?」

?말도 마십시오.

?사장님이 어찌나 깐깐하신지

「하…….」

?다행히 서류 통과는 시켰습니다.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ㅎㅎ」

그 보상.

현재 한국 인터넷 방송 업계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파프리카TV가 아니면 성인 방송 플랫폼밖에 남아있지 않다.

'후우……, 내가 이 새끼 하나 때문에 뭔 고생을.'

심익태는 카톡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철꾸라지의 빈 자리.

짭꾸라지를 통해 메꿔 보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철꾸야."

"네, 형님!"

"그동안 자숙 좀 했지?"

"……그렇습니다."

"목소리가 작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실시한 로비.

각 업체의 대표들이 모여 호소했다.

영구정지를 당한 BJ들을 풀어 달라고 말이다.

성인 방송에서 굴리기엔 아까운 인재들이 있다.

어떻게든 복귀만 하면 떼돈을 쓸어 담을 수 있다.

현재의 판도도 뒤집어엎을 수 있을지 모른다.

파프리카TV가 다시 보라판 중심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잘 좀 해라 진짜.'

가장 큰 축이 되는 건 철꾸라지다.

그 이외에 다른 대형BJ들은 복귀할 가망성이 사실 요원하다.

파프리카TV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윾신 등 반동분자들은 평생 정지를 풀지 못할 것이다.

"형이 너 풀어주려고 발로 뛰어다녔어."

"네."

"방송 열심히 하고, 사고 더 치지 말고. 또 정지당하면 너 이제 기회 없어?"

"알겠습니다."

철꾸라지는 개념이 없을 뿐이다.

파프리카TV에 반하는 짓은 저지르지 않았다.

운영진과 어찌저찌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

'돈도 그지같이 들었고.'

물론 그간의 친분과 수고비가 밑바탕됐다.

업체들과 작당을 해서 모았고, 가까스로 성공시킬 수 있었다.

새 인생을 살아갈 기회다.

앞으로 사고만 더 안 치면 된다.

그런 심익태의 생각과는 다르게.

'하라는 대로 할 줄 알고.'

철꾸라지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3년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심익태의 도움을 받아 어찌저찌 풀려났다.

그 대가.

그의 사업을 전폭적으로 도와야 했다.

돈은 많이 벌 수 있었지만, 그만큼 속박받는 것이 엄청나게 거슬린다.

'나 혼자서는 한계가 있어.'

얼마나 답답하고, 기가 차는 일인지.

지난 2년 동안 뼈저리게 느껴왔다.

반드시 탈피하고 싶다.

하극상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자신이 관계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토독, 톡!

혼자서는 안 된다.

집단을 이뤄야만 가능하다.

업체도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규모.

?오고 있냐?

「ㅇㅇ」

「형 마중 좀」

?마아아아아!

?싸가지가 바가지가?

「형ㅋㅋ 감 잃었네」

「그래선 요즘 애들한텐 안 먹혀요~」

?그럼 니가 함 해보든가

「ㅇㅋㅇㅋ」

「보여줄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전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며 대체할 수 없는 BJ로 자리매김한다.

'그래, 보여줘야지.'

완전히 달라진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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