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보라판
택시가 가고 있다.
부우웅~!
덜덜 떨리는 낡은 차 소리.
이후에 일어날 행동이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조성한다.
"아저씨."
"네, 손님~"
"5500원이 나왔는데 제가 지갑에 돈이 없거든요? 어떡하죠?"
"어허허허허."
―쫄? 쫄?
―아 봐달라고!
―막상 하려니까 쫄았눜ㅋㅋㅋㅋㅋㅋㅋ
―구태일 이 새끼 방송감 없누
택시 기사가 사람 좋은 웃음소리를 흘린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만만하게 봐줄 리가 없다.
"요금 계속 올라가요 아저씨!"
"경찰서 가야지 그럼~"
"아, 아저씨! 경찰서 가는 건 반칙이죠!"
이런 진상 손님 한두 명 봤을 리 없으니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주고받는 대화 하나하나가 진짜다.
기사와의 실랑이가 긴장감을 조성하며 방송이 탄력을 받는다.
'세상 삭막하네. 기름값 나오면 뭐 얼마나 나온다고.'
구태일로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여러 또라이짓을 해 보긴 했지만 사람 상대로는 아무래도 드물다.
"그럼 돈 넣은 만큼 뒤로 가주시면 안돼요?"
"뭐어?!"
"공짜로 타는 건 좀 그러니까 뒤로 가달라고요."
"뒤로 가는 차가 어딨어~?"
―진짜 미친 새낀갘ㅋㅋㅋㅋㅋㅋㅋ
―그거 말 되네
―플러스마이너스 0은 ㅇㅈ이지
―이거 짜고 치는 거 아닌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북에서 온갖 기행을 펼친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몸에 배긴 비정상적인 발상이 입 밖으로 툭툭 튀어 나온다.
'이게 방송이구나.'
흘깃 살펴본 채팅창 반응이 좋다.
별다른 공약을 건 게 아님에도 시청자 수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잠깐 내려서 담배 하나 피면서 생각할게요."
"핸드폰 내놔."
"해, 핸드폰 없어요!"
"그럼 경찰서 가야지~"
"아, 아 잠깐만요 진짜……."
그 뒤처리가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이조차 방송이고, 돈이 벌린다고 생각하면 잔머리가 술술 돌아간다.
"여기 편의점 있으니까 돈 뽑아올게요."
"카드도 되는데?"
"이거 엄마 카드라 함부로 쓰면 혼나요."
"그래, 처음부터 그랬어야지."
―엄캌ㅋㅋㅋㅋㅋㅋㅋ
―그 나이에 엄카 쓰누
―변명각 만드는 듯? ㅋㅋ
―여기서 튀면 레전드
그럴듯하게 둘러대고 택시에서 내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다.
뛰어가는 방향은 편의점이 아닌 역질주.
"흐흐흐! 흐흐흐!"
줄행랑을 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5분 동안 전력으로 뛰어 건물 사이로 숨어든다.
「보라) 구태일. 시키면 한다! 택시 공짜로 타는 법 알랴드림!」
_ ?13, 320명 시청「보라) 코물쥐. 야외방송 (머리 깎기 전) ― 잘생김 주의」_ ?11, 823명 시청
가쁜 숨을 내뱉으며 확인한 핸드폰.
구태일은 씨익 미소 짓는다.
코물쥐를 드디어 앞섰다.
─미친놈좋아함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이걸 진짜 하네 미친놈잌ㅋㅋㅋㅋㅋㅋ
"허억, 허억……. 미친놈 형님! 열혈 달라 그러시네~ 걱정 마십쇼. 시키면 한다! 공약 무조건 지키는 페북 대통령 구태일이에요~!"
―캬 ㅇㅈㅇㅈ
―얼마나 저질 체력이면 그거 조금 뛰었다고 죽을라 카네 ―택시 기사 아재 개불쌍ㅋㅋㅋㅋㅋㅋㅋ―이걸로 끝임?
시청자 반응도 쏟아진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미친 행위.
오직 자신의 방송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것.
'씨~바 대충 감 잡았네.'
개인 방송이 어떤 것인지.
철꾸라지를 통해 배웠고, 페북에서 갈고닦았으며, 실전 경험을 통해 최적화시키고 있다.
─페북보고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형! 나 태일 형 팬인데, 페북 보고 옴ㅋㅋ
"팬클럽 가입 고맙다. 네 친구들한테도 알려줘!"
기존 팬들까지 하나둘 넘어오며 방송이 궤도에 오른다.
그런 구태일의 기세는 심상치 않은 게 분명하지만.
─구태일 드디어 코물쥐 대가리 땄눜ㅋㅋㅋㅋㅋㅋㅋ
[공사장 김씨짤. jpg]
내가 왕년에는 코물쥐를 어?
어이 구씨, 아가리 닫고 밥이나 얼른 먹어~
└철꾸라지 똥받이로 코물쥐 대가리 딴 게 인생 최대 업적ㅋㅋㅋㅋㅋㅋ└(곧 다시 따일 예정) └이제 더 학대할 젖꼭지 남아있음?
└코물쥐 하나 이기려고 별짓을 다 한다 ㅋ
그 말이 인정을 받았다는 소리는 아니다.
닳고 닳은 보라판의 시청자들이 모를 리가 없다.
단기적인 이슈.
잠깐 병신짓을 할 때만 보고 빠지는 밀물&썰물과도 같은 방송이란 사실 말이다.
─코물쥐가 다시 구태일 대가리 땄는데?
구태일 이 새끼는 30분을 못 버티네
└병신짓 끝났잖아
└뜨려고 발악하는 느낌 ㅋㅋ
└페북 급식들이나 저러면 좋다고 빨아주지
└재밌긴 한데 방송 텀이 너무 김
추월당한다.
시청자 수를 다시 따라잡힌다.
그에 따라 시청자들의 여론도 다시 혼잡스러워진다.
―숨 좀 그만 쉬어, 이 약골 새끼야!
―돌아가서 기사 아재 반응 보자
―역시 병신짓 원툴……
―태일이한테 물쥐는 아직 버겁지 ㅇㅇ;
그리고 우습게 보인다.
우스운 짓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당연하다.
철꾸라지가 1등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고의 자리만이 자신을 향한 비난의 방파제가 되어준다.
구태일도 페북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 찍어 눌러주면 되지.'
한두 번으로 안 된다면 여러 번, 계속하면 된다.
파프리카TV에 이제 막 눈을 뜬 구태일은 흥분에 가득 차있다.
* * *
개판 싸움은 보라판의 일상이다.
자극적인 방송을 부추기는 요소이기도 하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대응을 해도 조바심이 나게 돼있다.
마치 주식처럼 시청자가 오르락내리락하는데.
'내가 왜 그런 조루랑 경쟁을 해야 돼?'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
기껏해야 어디서 굴러먹던 말 뼈다귀한테 내 심신을 소모하는 것은 낭비.
─코가엄청커짐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어제 코물쥐 행복사 할 뻔함 ㅋㅋㅋ
"그래요? 밥을 엄청 맛있는 걸 먹었나 보네."
―밥이 문제가 아닌데 ㅋㅋ
―스테이크 먹음
―맛이 느껴지겠냐고~
―그냥 맨밥만 먹어도 행복하지……
코물쥐에게 바통을 패스하고 있다.
동시간대 방송을 잘 소화하고 있는 모양이다.
'행복하다잖아.'
코물쥐와 서은의 합방.
다소 어리숙하긴 해도, 오히려 그렇기에 느껴지는 재미도 있다.
은근하게 썸 같은 것을 타며 호평을 받는다.
생각 이상으로 훨씬 잘해주고 있다.
─KBG0920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둘이 혹시 사귀면 응원하실 건가요? ㅎ
"100개 감사합니다. 응원…하죠. 제 팬이고, 팬클럽 회장이라고 제가 사생활을 옭아매진 않아요."
―진짜로? ㅋㅋ
―코망이가 너무 아까운데……
―왜 말 더듬으셨나요!
―근데 둘이 사이 진짜 좋아 보임
평타만 쳐줘도 충분했다.
구태일이 똥꼬쇼로 벌이는 단발성 화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니 말이다.
'스토리가 계속 엮이잖아.'
스토리텔링.
내가 방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다.
화제의 지속성이랑 측면에 든든한 텃밭을 제공한다.
〔개인 방송 갤러리〕
─코물쥐 가망 있다고 보냐? [12]
─분석) 코코망이 찐사심 아닌 게 맞는 이유. Fact [15] +21─ㅊㄲㅇ ―1
─코물쥐 흥분하니까 코 커지는 거 개웃김ㅋㅋ [2]
.
.
.
방송이 끝난 이후로도 반응이 이어진다.
롤판은 물론, 보라판에서도 점점 더 관심이 늘어나는 추세다.
'미숙한 애들일수록 응원하고 싶어지거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보라판의 민심이 워낙 짓궂으니 말이다.
+든 ―든 관심인 건 확실하다.
─코물쥐 가지고 노는 거 존나 재밌네 ㅋㅋ
이 새끼 도네로 희망 주면
팔랑귀라서 ㄹㅇ 그런 줄 앎
내가 큰손이었으면 다리 한번 놔볼 텐데
└겜비라서 순진해
└큰손 새끼들아 별풍 여따 쏘라고!
└갠방갤 작당 들어가자
└여캠이랑 썸 타는데 이성 유지하면 빼박 비즈니스지 ㅋㅋ
그것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본인의 심장이 허락한다면 우결로도 갈 수 있다.
팬덤이 있는 남녀 BJ의 교제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다.
* * *
"끄아아아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ㅊㅋㅋㅋㅋㅋㅋㅋ
―이 맛에 태일이 방송 본다
―ㄹㅇ 차력쇼네
구태일의 방송.
본인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이후 잘되고 있다.
높은 시청자 수를 유지하며 보라판에 자리 잡는 데 성공한다.
"형, 후시딘 가져왔어요."
"마데카솔을 가져와야지! 새살이 솔솔~"
"새살이 솔솔이래. 키키킼."
"이 새끼들아. 얼른 내놓기나 해!"
자극적인 방송은 흥행의 치트키다.
단기적이고, 장기적이고를 떠나 잘 먹힐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아오……, 이러다 젖꼭지 떨어지겠다.'
너무 힘들다.
페북에서 많아야 일주일에 두 번쯤 하던 기행을 하루에 네댓 번씩 하고 있다.
정신적인 건 둘째 치고 육체적으로 너무 피로하다.
"자학적인 행위를 좀 줄여보는 건 어때요?"
"그러고 있지……. 그래도 힘들어."
"뭐 어쩌겠어요~ 형이 그거 말고 뭐 잘하는 게 있어야지."
"뭐 이 새끼야? 아오옷……. 면봉 나무에 스쳤네."
""키키키킼.""
이런 짓을 과연 며칠이나 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너무 힘들거니와, 비교 대상까지 있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진다.
'나도 분냄새나 맡아보고 싶은데…….'
경쟁 BJ는 달달하게 썸을 타고 있다.
코쟁이 새끼가 엄청나게 예쁜 여캠의 치마폭에 둘러 쌓여있다.
구태일이 방송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파프리카TV 하면 여캠 아님?
꿈만 같은 일상이 기다릴 줄 알았지만.
〔구태일의 방송국〕
─도로에서 차에 치여 보기 어떰?
─보드카 1L 원샷 하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우리 학교 급식 개꿀맛임!
─이이잉~ 기모링~!
.
.
.
현실은 자학의 나날이다.
풍력도 생각보다 썩 나오지 않는다.
팬덤의 주요 연령층이 급식이기 때문.
페북과는 수익 구조가 다르다.
시청자의 자발적인 후원이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큰손이 절실하다.
'하, 그냥 페북으로 돌아갈까.'
구태일로서는 고민이 깊어진다.
힘들긴 미치게 더 힘들고, 보람은 보람대로 없으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 솔직한 이야기가 들린다.
〔철꾸형님〕
「태일아」
「바쁘냐?」
─네 형님!
─바빠도 형님이 부르면 당장 달려가죠~
「그래?」
「그럼 잠깐 와줘야 쓰겄다」
─네
─근데 무슨 일이신지??
철꾸라지.
구태일이 존경해 마지 않는 방송인이다.
그처럼 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니가 태일이냐?"
"아, 네……. 맞습니다. 근데 누구신지."
"익태 형님이다. 말 높이고 실수하지 마."
"야, 야, 편하게 있어. 뭔 쌍팔년도 군대도 아니고~"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인지.
구태일로서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보라판이 돌아가는 구조를 직접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오…….'
눈앞에 있는 40 전후의 남자.
그 철꾸라지가 어려워하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너도 여캠이랑 방송 그러고 싶잖아?"
"사실 네. 헤헤."
"언제까지 간장 마시고, 지 몸 학대해 가며 체면 구겨지게 방송할 거야."
"간장은 먹을 만한데요?"
"이거 참 제대로 미친 새끼네 하하."
"헤헤헤헤."
자신이 가장 원하던 것을 들어주겠다.
현재의 구질구질한 방송에 탈피해 화려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진짜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안 할 이유가 없다.
철꾸라지형의 지인이라고 하니 믿을 만한 근거도 충분하다.
"여기 보이지? 계약서에 사인하고."
"네!"
"이후로는 형이 주는 일감만 잘해주면 돼. 구체적인 건."
"……제가 책임지고 교육하겠습니다."
"그래. 믿고 맡긴다?'
진짜 보라판에 발을 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