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그렇게까지 해야 돼?"
"안 하면 수습이 안 됩니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셈 치고……."
오프게임넷의 회의실.
결승전을 눈앞에 두고 분주하다.
상상치도 못한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 미래라.'
어디까지나 주관할 뿐이다.
자신들이 서비스하는 게임이 아니다 보니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
"롤판이 잘 나간다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관객이 필요합니다."
"흠."
"무료로 전환하죠. 이번 한 번만 눈물을 머금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최적이었다.
이번 섬머 시즌은 어떻게 봐도 흥행할 요소밖에 안 보였다.
'2만 명이나 수용 가능한 큰 부지를 빌렸는데.'
결승전 경기장을 정하던 8강 당시만 해도 그러했다.
대진을 봤을 때 이건 십중팔구 대박이다.
A조는 얼밤, 불밤, KTX, 마진 인기팀들이 속해있다.
B조는 비인기팀만 있긴 해도, 그 삼선 화이트가 버티고 있다.
팀 오정환이 해체된 이상 현존 최강의 팀으로 분류된다.
이번에도 결승전에 올라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KTX도 A조에서는 가장 인기가 낮고, SKY T1은 아시다시피……."
"에혀, 개ㅈ슼!"
기존 강팀들이 컨디션 난조로 미끄러졌다.
꿩 대신 닭이라도 잡으려고 했지만, 웬 듣도 보도 못한 잡새가 날아오른 것이다.
─속보) LCK Summer 결승 전 좌석 무료로 진행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 축제의 한 마당이라는 행사의 취지를 살려 결승전 전 좌석을 무료로 개방할 예정이다. News]
표 안 팔릴 거 예상되니까
전 좌석 무료로 돌려버림
└오프게임넷 영리하누
└태세 전환 우두루급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
└불밤&얼밤 쌍으로 탈락에, 삼선까지 떨어진 상황이라 예상은 했는데 └그저 ^무^
도저히 스토리텔링을 그려낼 각이 안 보인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구색이라도 갖춰야 한다.
특단의 조치.
덕분에 여론은 어느 정도 완화된다.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철빡이74호님, 별풍선 1009개 감사합니다!
소신 발언 화끈하누!
"철빡이 행님 철꾸개 앙 기모띠~! 롤알못을 롤알못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행님들!"
?롤알몰쉨ㅋㅋㅋㅋㅋㅋㅋㅋ
?롤린이도 아는 걸 지만 모름
?철꾸라지 마음에 드네
?오정환 묻어버리자 ㄹㅇ
하지만 그 말이 잦아들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비판 여론은 여전히 거세고, 대중은 자신들을 대변해줄 존재를 원한다.
'오정환 이 새끼 역배충이었구만?'
오정환이 롤판에서 세를 늘린 과정.
철꾸라지를 직원들을 통해 대강 알게 되었다.
남들이 어렵다는 걸 해내고, 그만큼 큰 리턴을 받는다.
이는 실제로 유효한 방식이다.
"행님들 제가 아직 롤은 잘 몰라요. 근데 토토는 많이 해봤거든요? 커뮤니티 여론이랑 전문가 기사를 봤을 때 개ㅈ슼이 이길 확률은 0%입니다. 인정? 어 인정~"
?토토로 배웠으면 ㅇㅈ이지
?롤잘알인데?
?롤갤도 그렇고 인벤도 그렇고 전문가들도 다 킅이 이긴다고 장담함? 앙 인정띠!
성공을 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반대로 실패하는 순간 민심이 등을 돌릴 위험성이 크다.
'내가 그걸 부추기면 되는 거지.'
철꾸라지는 롤판에 발을 딛자마자 엄청난 기회를 잡게 되었다.
오정환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
많은 시청자들이 불편해한다.
대척점에 서서 여론을 긁어모은다.
롤판에서 지지 기반을 빠르게 확충한다.
─영화 '정상전쟁2' 시나리오 떴다 ㅋㅋ
? 공격 측 세력
루피역: SKY T1 (개ㅈ슼)
흰수염역 : 오정환 (나와 함께 갈 자는 목숨 버리고 따라와라!!)
? 수비 측 세력
세계정부역: KTX 롤스터 B
해군 원수역: 철꾸라지 (처형을 방해하게 놔두지 않아……!!)
천룡인역: 이경영 (재밌네. 진행시켜!)
SKY T1+오정환= 해적 연합
KTX+철꾸라지= 해군 본부ㄷㄷㄷㄷ
└ㄹㅇ 목숨 버리누
└이게 2가 나온다고?
└개ㅈ슼 처형식은 무적권 봐야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경영은 언제나 백미
보라판에도 영향을 미친다.
철꾸라지와 오정환.
두 대기업BJ의 대결 구도는 정말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떡밥이다.
1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오정환이 승리했고, 철꾸라지는 영구정지라는 수모를 당했다.
─ㅈ정환 롤판 때문에 거품 잔뜩 꼈던데
이번 기회에 제발 존망 했으면
└삐빅! 12등급 철빡이의 에너지가 감지되었습니다
└존망은 무리고 거품은 좀 빠질 듯ㅋ
└내가 롤해서 아는데 이번에는 오정환이 무리수 둔 거 맞음. 철꾸라지가 인방 대통령답게 치고 나갈 타이밍 잘 잡음글쓴이? 우리 철통령님을 알아보네
그런 만큼 칼을 갈았다.
철빡이들은 오늘만을 기다렸다.
오정환을 끌어내리고, 자신들의 주인인 철꾸라지를 복권시킨다.
"기름 부어!"
"부을 필요 없겠는데요? 이미 타고 있어서."
"아……."
파프리카TV 최악의 팬덤.
안 그래도 엄청난 화력과 실행 능력을 가진 이들이 목적 의식까지 일치하고 있다.
직원들이 선동할 필요도 없다.
이미 물밑에서 철꾸라지를 원호하기 위한 작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철빡이〕
「지금 롤판 ㅈ밥들밖에 없어서 오정환만 끌어내리면 끝임」
「족구형 세상이짘ㅋㅋㅋㅋㅋㅋ」
「그거 모르는 놈도 있누」
「코 큰 새끼랑 웬 멍청한 애새끼가 1만 따리 찍던데 우스움」
「철꾸라지 없으니까 수질 관리가 안 된 거지」
「ㅊㄲㅇ」
철꾸라지를 향한 그들의 충성심은 광적인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태워서라도 반드시 원하는 바를 이루고 만다.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오정환<<롤알못이라 생각하면 개추 +7
─개족환이 거품일 수밖에 없는 이유. Fact [50] +81
─상식적으로 SKY가 KTX를 이길 수가 있냐? [3]
─빈집털이로 우승하고 입 터는 거 추함 +1
.
.
.
롤판에 불을 붙인다.
철꾸라지 대 오정환의 구도.
이 사태를 최대한 키워 빼도 박도 못하게 한다.
'이제 와서 발을 빼면 팬들이 많이 실망할걸?'
파프리카TV 대통령이란 자리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오른 게 아니다.
수많은 대기업BJ들과 전쟁을 치렀고, 그런 만큼 엄청난 노하우를 축적했다.
요는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다.
여론을 부추겨서 판을 키우고,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 분기점으로 만든다.
간접적이며 효과적인 공격 방식.
심익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금의 자신이 둘 수 있는 최선이다.
천운을 잡았다고 철꾸라지는 생각하고 있었다.
* * *
2013년 8월 31일.
결승전의 날이 밝는다.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형 지금이라도 승패 연연하지 말고 보자……
"100개 고맙다. 근데 그렇게 박쥐처럼 바꿀 거면 애초에 이야기도 안 꺼냈지."
지난 1주일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발언의 무게가 무게인 만큼, 어느 정도 파급 효과는 예상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심심했겠지.'
철꾸라지로서는 찔러본 정도일 것이다.
옛날을 생각하면 분쟁이라 할 수준도 되지 못한다.
가벼운 선전포고.
정말 시시한 사건으로 끝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만 말이다.
끼익?!
시청자들과 약속을 했던 대로 찾아왔다.
잠실 올림픽 보조 경기장.
8천 개의 좌석과 그 두 배에 가까운 스탠딩석이 정말 여유가 넘칠 정도로 비어있다.
낮은 기대치와 오보까지 겹친 결과다.
결승 티켓이 무료로 풀리자, 지나치게 사람이 몰린다는 설레발이 퍼지며 그나마 올 사람들도 오지 않았다.
"와 오정환이다!"
"형 저 팬이에요! 사인해 주세요!"
"그래, 고맙다."
?갓정환 인지도 ㄷㄷ
?급식들 신났누
?사람 없어서 다행이네
?진짜 오늘 경기장 간 애들은 찐팬이다
그래도 조금은 불었다.
내가 대놓고 방송에서 언급했기 때문이다.
나를 지지하는 팬들과 나를 만나고 싶은 팬들이 오며 조금은 북적인다.
"VIP석 티켓이 있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VIP티켓 있으신 고객님은 이쪽으로……, 아 설마 오정환 선수?!"
"예."
"위에서 전달 사항이 있었는데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일개 BJ가 아니다.
발언의 파급력도, 경력도 말이다.
방송이 나간 이후 오프게임넷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래 봬도 전 프로니까.'
나름 예우를 해주는 모양이다.
그 이전에 오프게임넷도 목이 말랐을 것이다.
축제가 되어야 할 결승전이 초상집 되기 일보 직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VIP석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예. 근데 누구세요?"
"스태프입니다! 궁금하신 점이나 불편한 점 있으시면 뭐든 말씀해주세요. 오정환 선수가 와주셔서 저희가 정말 살았거든요~"
?오정환 선수 ㅋㅋㅋㅋㅋㅋ
?선수 맞지
?높은 사람 같은데
?오정환 선수 왜 이렇게 어색하냐 ㅋㅋ
스태프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BJ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보니 큰 감흥은 없지만.
'그래도 방송사랑 인연이 생기면 좋지.'
방송 업계가 워낙 고인물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만들고, 좋은 소문이 퍼지면 언젠가 득 볼 일이 생긴다.
"보시다시피 좌석이 정말 많이 비었어요."
"예."
"지금 카메라로 시청자분들이 보고 계신 걸로 아는데, 근처에 사시는 분들 계시면 지금이라도 오세요! 어차피 결승전이 몇 시간씩 진행되니까~ 와주시면 저희가 자리가 만약 없다고 해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무료 홍보라는 바겐세일을 해줄 만하다.
딱히 불순한 의도라기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두둑!
후두둑!
그런 절박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결승전 오프닝 5분 전.
조금씩 떨어지는 물줄기가 굵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역대 최악의 결승전이라고 불렸지.'
올라간 팀들도, 준비 과정도, 결승전 당일도 말이다.
정말 보기 드물 정도로 삼위일체가 이루어지며 흥행 면에서 참패를 거뒀다.
─철꾸라지팬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하늘도 개ㅈ슼을 거부하는데 정환이 혼자 고생이 많네 ㅠ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타이밍이 참 절묘하네."
?하늘도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좀 웃겼다
?나 슼갈인데 방금 피식함
?지금이라도 손절 치자 형……
안 그래도 사람이 안 왔는데 설상가상 소나기까지 오니 왔던 사람도 떠난다.
지금 관중석은 우비와 우산을 찾는 사람들로 난리가 나 있다.
다행히 내가 있는 좌석에는 차단막이 설치돼있다.
알고 있기 때문에 우비도 가져왔고, 마음의 준비도 돼 있어서 호들갑은 떨지 않는다.
와아아아아아─!
그런 자잘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승 무대.
양팀의 선수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다.
그 안에는 기대가 되는 선수들도 보인다.
'사실 안 봤어 나도.'
기대치가 워낙 최하였다.
거의 볼 가치가 없다는 게 주류 의견이었다.
굳이 볼 거면 집에서 보고, 안 봐도 딱히 상관은 없다.
당시의 나도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바쁜 일도 있었다 보니 녹방으로 감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바보 같기 짝이 없는 일.
─이성적인팬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개ㅈ슼을 대체 왜 좋아하는 거임? 이해가 안 되네
"오해가 있으신 분들이 계신데 좋아해서 한 말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우승팀을 점찍어본 거지."
?그건 더 말이 안 되는데
?경기를 안 보고 찍은 건가……
?내가 보기엔 미드 감성임
?고전파도 그냥 평범한 솔랭 전사인데 너무 고평가야 ㅋ
SKY T1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서 e스포츠팬이라면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경기다.
이른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 불리는 순간이다.
<2013 LoL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시즌의 결승전을 지금부터! 여러분의 뜨거운 환호! 함성과 함께 시자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익숙한 외침과 함께 막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