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4화
진정한 승자
꽈앙!
자신도 모르게 내려친다.
움푹 파인 LCD 모니터 안에서 손을 빼내며, 다크는 바로 구급상자를 찾는다.
'나답지 못했어.'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고 말았다.
피가 뚝뚝 흐르는 손을 소독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코물쥐: 비가 오면 옷이 젖듯이 내가 상대면 어쩔 수 없어요
코물쥐: 당연한 거야 ㅋ 1위 꿈 포기하지 마요 ㅎ
아니, 피가 거꾸로 솟는다.
망가진 모니터의 왼쪽 아래.
전적창에 남겨진 메세지를 보며 분노를 되새긴다.
'이 코만 큰 X새끼가.'
본래라면 자신과 같이 게임할 수준조차 되지 못한다.
대리 게임에서 만났다면 십중팔구도 아니고 전부 이겼다.
그런데 고전파의 트롤.
그리고 오정환의 존재.
둘의 존재가 만들어낸 필연이었을 뿐이다.
'…….'
그렇기에 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게임에 영향력을 미쳤다.
그에 반해 자신.
이미 이긴 게임의 무게 추를 기울일 뿐이다.
닷지로 만드는 팀운이 없는 상황에서는 변수를 만들 능력이 전무하다.
그런 약은 수로 점수를 올렸으니 실전에 가까운 상황이 되자 게임을 이기지 못한다.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된 마당이다.
지직! 지지직!
모니터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주먹을 꽂은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화면을 알아볼 수조차 없다.
사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기종이 아니면 게임에 집중을 할 수 없어 단종을 대비해 여러 개를 사뒀다.
징징
주먹이 운다.
모니터를 두 번이나 내려쳤다.
이번에는 워낙 힘을 준 탓에 찰과상을 피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찰과상.
큰 상처가 아니지만 다크는 민감하다.
장비도 세세하게 따지는 마당에 욱신거리는 상처를 용납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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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
1. 오정환
2. 다크
3. SKY T1 Taker
4. KT 썸데이
5. 강찬밥
6. 삼선 갤럭시 임프트
7. 마진 프레이
8. 짐에어 레이스
9. 삼선 갤럭시 다대기
10. 제닉스 코코넛
+----------------------------
랭킹도 슬슬 경우의 수가 적어진다.
남은 시간은 9시간.
버닝을 한다면 반전을 노려볼 수도 있겠지만, 솔직하게 그 확률이 높지 않다.
'…….'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며 깊은 자기혐오에 빠진다.
도저히 게임을 할 정신 상태가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키사마〕
「키사마ㅏㅏㅏㅏㅏㅏㅏ」
―바빠
―세기말이야
「보고 있었구나 ㅎ」
「근데」
「나도 골드 가야 되는데~」
―다른 애한테 부탁해
「난 다크가 듀오해주면 좋겠는데~」
걸린 것이 많다.
최근 친하게 지내는 여사친과도 연락을 포기하고 있을 정도다.
'대리도 사실상 폐업했고.'
2천만 원 이상의 기회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대리를 했으면 그 이상 벌고도 남았다.
타닥, 탁!
본전 심리.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내기엔 억울하다.
다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방법을 짜낸다.
「LoL) 다크. 세기말 챌린저 감별사」_ ?0명 시청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방송을 하는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콘텐츠가 될 거라고 확신을 했지만.
* * *
삼파전.
최후의 1위는 셋 중 하나로 거의 결론지어지는 분위기다.
─다크 솔랭 더 안 돌리네?
자러 갔나
└연패 꼬라박고 포기한 듯?
└상심했나 보네 ㅋ
└라이벌 '코물쥐'한테 패배해 버렸자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글쓴이― ㄴㅇㅁ
그중에서도 두 번째로 유력한 다크의 행적이 묘연해졌다.
정말 몇 시간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커뮤니티의 관심이 집중돼있다 보니 금세 이슈가 된다.
여러 가지 뇌피셜이 오가고 있었는데.
<아 이거? 보이지? 나 손을 다쳐 가지고.>
장본인이 방송을 켰다.
까까오팟TV.
다크는 이곳에서 가끔 방송을 하곤 한다.
─사악한팟수님, 쿠키 10개 감사합니다!
1위 포기하는 거임?
<나 세팅에 민감한 거 알잖아 애들아~ 손이 이런데 어떻게 게임을 해.>
―헐
―어디 많이 긁혔나 보네
―구태일 젖꼭지 반도 안 다쳤는데……
―빡쳐서 모니터 때려 부순 거 아님? ㅋㅋ
충신지빡이님이 채팅금지 1회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사정을 전한다.
1위 경쟁을 포기하게 된 이유.
시청자들 대부분이 그의 팬이다 보니 납득한다.
평소 세팅에 대해 주구장창 이야기해온 만큼, 그의 팬인 만큼 고개를 끄덕인다.
채팅창 분위기를 본 다크는 진짜 목적을 꺼낸다.
<어차피 몇 시간 안 남았으니 나도 세기말이나 즐기려고. 지금 챌린저에 올라가기 위해 많은 큐가 진행되고 있을 거 아니야?>
태풍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챌린저 최상위는 오히려 한가하다.
자신처럼 1위를 찍으려는 극소수의 유저를 빼면 독기가 빠져있다.
쿠웅!
딱 그 아래.
다이아1과 챌린저 사이에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다크는 그 현장을 방송하며 어그로를 끌 계획이다.
─사악한팟수님, 쿠키 500개 감사합니다!
ㄹㅇ 개재밌겠네 챌린저 감별샄ㅋㅋㅋㅋㅋㅋㅋㅋ
<평생 남는 기록인데 기왕이면 챌린저 수준에 적합한 애들이 올라가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캬 그걸 직접 판단한다
―다크가 하면 ㅇㅈ이지
―'다크' 히어로네 완전ㅋㅋㅋㅋㅋㅋㅋㅋ
―코물쥐 때문에 빡쳐서 짠 콘텐츠구나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평소 다크의 방송을 애청하는 시청자들로서는 환영이다.
그야말로 챌린저 구간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전지적 다크 시점에서 깊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의 팬 대다수가 그래서 좋아하는 만큼 인기를 끄는 건 당연하지만.
─다크 챌린저에서 트롤 방송하네
그걸 낄낄 거리면서 보는 애들은 대체 뭐지
└재밌던데 왜 엄근진함?
글쓴이― 그야 재미는 있겠지. 근데 당하는 사람은?
└희생양 잡고 조리돌림 하는 거지
└생각 있는 애들이 다크를 빨겠음?
단순한 장난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 의해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근 2주 동안 경쟁을 펼쳤다.
커뮤니티의 언급 빈도가 많아졌다.
미운털이 박히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다크 이 새끼 지 1위 못 찍으니까 꼬장부리네
지보다 약한 애들 가지고 놀고 있음
정말 갈 데까지 간 듯
└팩트) 원래 대놓고 대리하는 막가파다
└그걸 이제 앎? 째트킥!
└1위 찍고 했으면 안 추했는데
└코물쥐한테 발리고 분풀이하는 거잖아 ㅋㅋㅋㅋㅋ
그리고 실력.
아마추어 1위라는 민낯이 벗겨졌다.
공격을 받아낼 실드도 깨져버린 셈이다.
이전부터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많았다.
공격은 강해지고, 실드는 깨졌으니 딜량은 자연스럽게 우상향한다.
<오히려 말이 많을 수도 있어요.>
마지막 결정타.
세기말 챌린저 구간을 중계하는 방송은 다크 하나뿐만이 아니다.
씨지맥은 일찌감치 챌린저를 찍어두고 여유롭게 관전 방송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떡밥을 찾아서 말이다.
─스폰지케이크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다크 방송 분위기 엄청 유쾌하던데?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 합리화가 들어가는 거지 약간.>
―C언어 ON
―다크랑 씨지맥 친구 아닌가
―친하니까 잘 알겠지 ㅋㅋ
―오 그럴 듯해
챌린저 게임은 물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상황도 전부 다.
같은 챌린저이자 지인이기까지 한 씨지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봐주는 건 없다.
그의 직설적인 화법은 피아를 가리지 않는다.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뱉어낸다.
<유쾌한 척을 하고 있는 거지. 쿨찐을 넘어선……, 유찐! 드립 치면서 놀고 있을 걸 아마? 그게 아니면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걸 버틸 수가 없으니까.>
그것이 어떤 파급을 몰고 올지.
애초에 생각이란 것과는 거리가 먼 남자였다.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할 말이 있음 시즌3ㅋㅋㅋㅋㅋㅋㅋㅋㅋ
─씨지맥 ㄹㅇ 사람 심리를 꿰뚫었네
─대황맥의 심리 마술!
─승리 빼고 다 잘하는 남자ㅋㅋㅋㅋㅋ
.
.
.
입에 착착 달라붙는 어감이 커뮤니티를 타고 전파된다.
다크의 콘텐츠를 한순간에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그와 정반대.
묵묵하게 자기 할 일을 하는 유저도 있었다.
불협화음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목을 끌어당긴다.
─속보) 세기말 1위 쟁탈전 근황.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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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
1. 오정환
2. SKY T1 Taker
3. 다크
4. KT 썸데이
5. 강찬밥
+----------------------------
고전파가 다크 제치고 2위 먹음
오정환이랑 78점 차이
└막판 스퍼트 내누
└차이 많이 나서 안 될 줄 알았는데
└승도 별로 안 챙기고 이게 된다고?
└MMR이 다르지 ㅋ
그럴 만한 파급력과 실력을 지니고 있다.
즐겜을 하는 줄 알았던 고전파가 무섭게 치고 올라간다.
다크의 기권으로 1등이 굳어진 줄 알았던 경쟁 구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 고전파 1위 가능성 상당히 높음
고전파 L.A 가기 전 880점
고전파 L.A 복귀 후 다1
휴먼 강등되긴 했지만 당연히 MMR은 보존됨 ㅇㅇ
그래서 져도 점수 별로 안 깎이고
이기면 점수 20점 넘게 오르는 거
└오 그런 꼼수가
글쓴이― 꼼수가 아니지 제자리 찾아가는 거지
└다크 때문에 별게 다 꼼수로 보이네 ㅋㅋㅋ
└그래도 1위랑 점수 차가 꽤 나는데?
복선은 이미 깔려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추적하며 롤팬들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 * *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진다.
다크가 노리는 바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포지션에 있어야 특수를 누릴 수가 있으니까.'
부정적인 이미지.
정반대의 포지션에 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가지 전제 하에 말이다.
─해태크라운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다크 진짜 빈집털이였넼ㅋㅋㅋㅋㅋ
"에이, 프로들 게임 안 할 때라도 1등 찍으면 대단한 거죠. 아마추어인데."
―ㄹㅇ
―그냥 아마추어인데 올려지기 ㅈ됨ㅋㅋㅋㅋㅋㅋㅋㅋ
―걔가 잘했으면 프로를 했겠지^^
―정환이처럼 우승하던가 ㅋㅋ뤀ㅋㅋ
철꾸라지가 그러하듯 1등이어야 한다.
그래야 강자를 빠는 맛에 빠는 팬덤이 들러붙는다.
'영화에서 악당 좋아하는 사람도, 대부분 강한 악당 좋아하지.'
약한 악당은 사이다만 제공하고 끝난다.
다크 본인이 방송적 센스가 뛰어난 편도 아니니 더더욱이다.
세기말 솔로랭크.
이대로면 꽤 높은 확률로 1위 마감을 할 수 있다.
다크의 사업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비사이로막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방심하면 안 돼요! 고전파 무섭게 추격 중!
"그러더라고요. 롤드컵 끝나고 심심한가 보네."
―밥 먹고 온 사이에 22점 따라잡힘
―빡겜 하자 진짜……
―지금부터 승패승패만 해도 됨 ㄹㅇ
―정환이 여유 보소 ㅋㅋㅋ
이를 고스란히 가져온다.
다크의 사업을 완전히 뭉개기 위해서는 대신할 존재가 필요하다.
'애초에 그게 목적이었지.'
빛과 그림자.
일방적인 빨대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상생 관계 말이다.
나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세상일이라는 게 좋은 것만 주워 먹을 수는 없다.
아니, 사실 당연한 일이다.
"사실 오늘 손님이 있습니다. 밥도 그래서 미리 먹은 거고요."
―갑자기?
―고전파가 PPAP 추면서 나타나는 거임ㅋㅋ
―올 사람이 있나
―지금 5시간도 안 남았는데??
직업 자체가 180도 상이하다.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것이다.
고전파를 넘어서려고 하면 상생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경쟁이 아니라 상생이잖아.'
그 이전의 이야기다.
나에게 있어 어떤 것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있다
때마침 초인종이 반갑게 울린다.
딩동♪
오랜만에 한따가리 하러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