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화
오랜만이 아닐 수가 없다.
"봄이가 왔어?"
"와버린 거예요."
"봄이가 왔어!"
'와버린 거예요!"
시간으로 따지면 반년.
정말 오랫동안 못 본 듯한 느낌의 봄이가 눈앞에 있다.
'당연히 몇 번 보기는 했는데.'
정말로 감옥에 갇힌 게 아니니 당연하다.
본인으로서는 같은 심정인지 눈물을 글썽글썽한다.
호다닥!
활짝 펼친 품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
마치 이산 가족이라도 되는 듯한 상봉이 펼쳐진다.
"아우, 진짜!"
"꾸웨엑……."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대가리를 안 깨물고 넘어갈 수 없다.
'정말 대가리가 작아.'
싱그러운 봄냄새가 코를 찌른다.
깨무는 보람도, 특유의 리액션도 정말 그리웠다.
"머, 머리가 너무 아파요."
"아프니까 청춘이야."
"아니에요! 그럴 리 없어요!"
ㅋㅋ
상당히 다급한 모양이다.
우리 봄이도 제법 컸고, 이 패턴도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물어 뜯긴 이유.
능지가 다운됐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니라고 믿는다.
"후후, 오빠는 제 머리를 깨물었기 때문에."
"때문에?"
"맛있는 걸 사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깨물린 거야?"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거예요!"
ㅋㅋ
나름대로 목적 의식이 명확했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다소 걱정이 된다.
'그럴 나이는 그럴 나이지.'
2013년도 거의 끝나간다.
우리 봄이가 주장하는 사실상 어른에 가까워진 것이다.
젖살이 토실토실하게 올랐던 얼굴이 갸름해졌다.
키도 조금은 커져 호리호리하다.
"봄이 오빠 볼에 뽀뽀."
"저 그런 거 하면 안 되는 나이예요."
"그런 게 어딨어. 봄이랑 오빠 사이에."
"이번이 마지막인 거예요~"
전국 아버지들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쁘다.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봄이가 왔어?
"온 거예요! 와버린 거예요!"
―갑자기?
―아니 왜 하필……
―봄이 반갑긴 한데 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은 가을이야 돌아가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날이 날이다 보니 채팅창 민심이 술렁거린다.
'그게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의 차이지.'
조건을 다는 순간 사랑이 아니게 된다.
우리 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봄이 얼굴이 반쪽이 됐어."
"후~ 정말 엄마만 몰라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ㅋㅋ
어머님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어 차이가 있을 뿐.
'다 자기 인생 할애해서 키우는 건데.'
기왕 키울 거면 그 결과물이 예쁘기를 바란다.
꾸역꾸역 먹고 있으면 뒤통수 마렵지.
"저 요즘 완전 토끼예요."
"또 토끼야?"
"말도 마세요~ 풀만 먹고 있어요. 밥도 쪼금만 주는 거예요."
―봄토낔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님이 뭘 좀 아심ㅋㅋㅋㅋㅋㅋㅋㅋ
―강제 다이어틐ㅋㅋㅋㅋㅋ
―봄이 어머님 예쁨?
우리 봄이가 식탐이 장난 아니다.
가만히 두면 통통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신다.
'외모라는 게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어렸을 때는 잘 모른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사니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무르익는 것이 있다.
봄이 어머님이 정말 참하시다.
최근 아버님과 사소한 말다툼을 하셨다던데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저 요즘 완전히 건강해 버리고 있어요."
"살이 쏙 빠졌어."
"제발 먹을 것 좀 주세요!"
ㅋㅋ
딱히 그래서 밥을 안 챙겨주는 건 아닐 것이다.
살이라는 게 한번 찌면 나중에 빼도 요요 현상이 오기 쉽다.
평소에 관리를 잘해둬야 한다.
채식 위주의 반찬.
그러면서도 균형 있는 영양식을 맞춰주신다.
육식 토끼인 봄이의 입맛에 안 맞으니 문제다.
─게임군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밥을 먹더라도 솔랭은;;
"에이, 제가 솔랭 1위 한다고 프로 복귀할 것도 아니고."
"?"
―이 중요한 시기에 제발
―봄이는 나가있어
―봄이는 아무고토 몰라요
―그저 봄버지
다른 문제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우선 순위가 밑이다.
'우리 봄이 밥 맥이는 게 제일 급하지.'
한창 바쁠 시기.
하루의 시간을 쪼개서 왔다.
끙끙 앓고 있는 고민도 해결해주고 싶다.
치이익……!
불판을 가지고 와 고기를 굽는다.
미리 사온 음식 재료들로 테이블 위가 한가득이다.
"이걸 제가 다 먹어도 되는 걸까요?"
"그래."
"그치만, 그치만 엄마가 또 뭐라 할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렇구나."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눈치를 본다.
나와 어머님의 내통 관계를 다소 눈치챈 걸지도 모른다.
'그럴 나이지.'
우리 봄이도 성장을 하고 있다.
느리지만 착실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 삶의 보람이다.
"풀부터 먹고, 고기를 먹으면 칼로리 흡수가 늦어져."
"히이잉……."
"그래도 고기를 못 먹는 것보단 낫잖아?"
"그런 거예요~"
―그런 거야?
―봄이 너무 예뻐졌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앙
―방금 고전파 또 이김
먹는 순서 다이어트라는 게 있다.
식이섬유→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먹으면 혈당이 가파르게 올라가지 않는다.
먼저 먹은 식이섬유가 소화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먹는 양을 안 줄여도 되고, 포만감도 올라가서 일석이조.
"저 풀 먹는 건 자신이 있어요."
"그래."
"하지만 고기를 못 먹으면 슬플 거예요."
"그렇구나."
ㅋㅋ
우리 봄이를 위해서 찾은 식이요법이다.
만족하는 듯 쌈장을 찍은 오이와 상추를 꾸역꾸역 먹고 있다.
'얼마나 귀여워.'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이미 이룬 셈이다.
그 과정에 해당되는 자질구레한 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개ㅈ슼매니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번 판 고전파 질 듯!
"자꾸 중계하지 마세요. 우리 봄이 밥맛 떨어지게."
"풀맛이에요."
물론 과정이 화려하면 좋겠지만, 구태여 뺏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두었다.
'78점이나 벌려두었는데.'
챌린저 구간이라는 게 상위권일수록 점수 올리는 게 쉽지 않다.
높았던 MMR도 슬슬 까먹었을 것이다.
꾸역꾸역!
고기를 먹고 있는 우리 봄이처럼 말이다.
볼따구가 터져라 밀어 넣고 있는 게 평소의 애환이 엿보인다.
"제가 게임을 한다고 무조건 올라가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운이 안 좋아서 질 수도 있어요."
"그런 거예요?'
"그럼에도 올라간다면 그냥 운명이겠죠. 저와 봄이처럼."
"?"
―헝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무조건 날 텐데
―이건 진짜 '사랑'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찰 아저씨 여기예요!
세기말의 끝을 향해 시계가 째깍째깍 흘러간다.
* * *
그 시간은 다가온다.
〔로드 오브 레전드 갤러리〕
─아아아아악! 초―비상입니다!
─그 무승귀신은 솔랭도 승리 못 하네 ㅋㅋㅋㅋㅋ [85] +212
─오정환 1위각인데 [1]
─11시 59분 59초에 시작된 게임도 인정됨? [7]
.
.
.
2013년 11월 16일 0시.
세기말의 끝이 고작 30분 남았다.
챌린저 랭크 게임 한 판, 한 판이 마치 대회처럼 거론되고 있다.
<들려요 제 하트? 원딜로 이런 판 하면 심장 존나 두근거려. 와~ 고전파랑 등 맞대고 캐리했다!>
―네??
―고전파: 게임 혼자 했네
―10킬 먹은 원딜이 딜이 ㅎ……
―ㄹㅇㅋㅋ만 치세요 여러분
인터넷 방송 시청자 추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코물쥐의 방송은 평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흥행을 하고 있다.
「보라) 오정환. 세기말에도 밥차는 굴러간다」_ ?50, 891명 시청
「LoL) 코물쥐. 한국 넘버원 원딜러 코물쥐 이의 있나?」
_ ?36, 973명 시청「LoL) 씨지맥. 딱 1승만 젭라 ㅎ」_ ?35, 398명 시청
오정환이 롤방송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같은 라인인 코물쥐가 그 수혜를 톡톡히 입는다.
3픽: 으악 무승귀신이다!!
4픽: 꺄아악!?! 저리 가 이 무승귀신!!!
cGvMax: 히히 못 가
마찬가지로 씨지맥의 방송.
특별한 콘텐츠까지 진행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본인으로서는 딱히 의도한 사항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절대우승못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무승귀신 귀신 같이 알아보고 칼같이 닷지하넼ㅋㅋㅋㅋㅋㅋ
"진짜 딱 한 판만 이기고 즐겁게 관전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1승을 못 하냐
―이미 소문 다 퍼졌어 ㅋㅋㅋ
―지금이라도 그 용한 점쟁이한테 1억 주고 제령받자……
―그저 ^무^
관전 방송을 진행하며 손이 근질근질했다.
자신도 저 챌린저들 사이에 끼어서 피지컬을 뽐내고 싶으니까.
『패배』
『패배』
『패배』
무슨 귀신이라도 들린 듯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오기로 더 돌렸지만 평소와 달리 게임이 잘되지 않는다.
─씨지맥<< 이 새끼는 진짜 뭔가 있음
그냥 놀리려고 하는 소리가 아님
1승 하기를 계속 실패하는 중
심지어 다 이길 만한 게임이었는데 끝에 가서 귀신 같이 지더라 └몬가 몬가 있어……
└'귀신' 같이
└오정환 아니었으면 평생 우승도 못 하는 거 아니냐? ㅋㅋ글쓴이― 에이, 설마
사소한 트러블도 스토리텔링으로 엮인다.
그야말로 롤유저들의 대축제가 되어버린 분위기 속에서.
'…….'
다크는 일찍 방송을 종료했다.
달리 약속도 없어 침대에 누워있다.
글자 그대로 한가하게 말이다.
째각째각
평소 신경도 쓰지 않던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세기말은 곧 끝날 것이다.
고전파, 오정환 둘 중 하나가 1위로 기록된다.
그리고 그 안에 자신의 기록은 없다.
'내가 손이 멀쩡했으면…….'
IF도르.
만약이란 생각을 해보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보다 훨씬 전에 주도권을 빼앗긴 마당이다.
다시 되찾는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신의 주제에 대해 다크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캐리력이 없어.'
아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평가, 1위라는 자리.
그 두 가지가 스스로를 속이게 만들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한테 있다.
닷지와 잡기술로 만든 상황이 아니라면, 동등한 여건에서 캐리할 능력이 전무하다.
그래서 패했다.
그것을 부정하려고 싸웠다.
속시원히 받아 든 성적표에 불만이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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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오류』
이 계정은 2013/12/16까지 이용이 정지되었습니다. 상세 정보를 확인하려면 로드 오브 레전드 계정에 등록한 이메일 주소를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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죗값 또한.
방송을 켜고 트롤을 했다.
아니, 켜지 않았더라도 챌린저 구간인 만큼 십중팔구 먹었을 것이다.
'한 달 정지는 사실 별것도 아니지.'
영구정지.
본래라면 분명 그렇게 됐을 것이다.
세기말이다 보니 대리가 극성이었고, 게임사가 작정하고 잡은 모양이다.
〔대리기사의 쉼터〕
─저도 영구정지 당했습니다 ㅠ. ㅠ [3]
─라코 찾아가서 대가리 박으면 영구정지 풀어줄까요? [11]
─내가 왕년에는 대리로 월천 벌었는데 [2]
─어이 김씨 아가리 닫고 밥이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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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애용하는 대리기사 사이트 분위기가 장례식장이다.
그에 반하면 자신의 처지는 하소연하기도 뭣한 수준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내가 이런 말을 쓸 줄은 몰랐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대리를 폐업하고 솔로랭크에 몰두했던 탓에 게임사의 집중 단속에 걸리지 않았다.
─라코 찾아가서 대가리 박으면 영구정지 풀어줄까요?
저 진짜 어떡하죠
프로게이머 데뷔하는 게 꿈인데 ㅠㅠ
└ㅄㅋㅋ
└ㅇㅇ 알몸 도게자 박으면 풀어준다더라 (여자만 가능) 글쓴이― 진짜요? 남자는 안 돼요?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엑~
영구정지 당한 대리기사들의 글을 살펴보니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자신도 없이 영락없이 같은 처지가 될 뻔했으니까.
'그래, 머리가 덜떨어진 병신도 아니고 이 나이 처먹고 대리하다 걸리면 뭔 망신이냐.'
그동안 너무 철이 없었다.
눈앞의 돈 몇 푼에 현혹됐다.
그것이 자랑인 줄 알고 급식들의 히어로를 자처했다.
다크는 깊은 반성을 한다.
그런 짓을 안 해도 세상에는 할 수 있는 게 많고, 보다 가치 있는 일이 존재한다.
오정환.
자신이 그토록 목을 매던 솔로랭크 1위를 별거 아니라는 듯 포기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몰두할 걸 찾을 수 있을까?'
다른 인생을 걷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