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화
<해방된 봄이>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다.
'나에게도 있고.'
리아에 이어 잘 썼다.
유라도 나름대로 과거가 있는 모양이다.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첫경험은 몇 살 때였는데?"
"천박한 얘기를 좋아하시네요."
"……."
그럴 수 있다.
만약 그때 그랬다면.
누구에게나 선택을 고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여자애들은 특히 더 그렇겠지.'
철없는 학생 시절.
순간의 선택이 어떠한 스노우볼로 굴러갈지, 아군 정글러만큼 모를 수가 있다.
유라도 그러했다.
피임을 철저히 하지 않은 커플의 말로는 보건 교과서에서도 실려있는 내용이다.
"낳았어요?"
"아뇨."
"음, 그래."
뒷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본인의 선택이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근데 실수도 주워 담을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을 거 아니야.'
후자였다.
어떻게 적기에 선택을 잘해도, 돈 문제는 피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마침 수능이 끝난 고3.
나이로 봤을 때 위험 요소가 크게 없다.
"그 정도 돈이면 그래도 금방 청산했을 텐데?"
"막상 해보니까 신경 쓸 게 좀 많아서……."
"그랬겠지."
사람이 이유 없이 큰돈이 생기면 십중팔구는 조절을 못 한다.
로또 1등 당첨자들이 불행하게 사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일이도 있어.'
불행해진 사람 이야기가 유명해져서 그렇지, 적당히 조절하면서 잘 사는 사람도 분명 있다.
안타깝게도 전자의 케이스.
몇 년 더 시간을 허비했다.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려서 탈피하려 했지만, 이미 헤퍼진 씀씀이는 쉽게 돌아가지 못한다.
비슷한 일.
수익이 높은 일.
여캠이란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소개를 받아 가자 김군이 있었다.
"그래서."
"네?"
"앞으로 어떻게 하게?"
"그야 오빠한테 신세 지고 싶어서……."
심익태 같은 업체처럼 강압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희망자를 받는 것이고, 본인이 원하면 그만둘 수 있다.
'좀 더 스마트한 방식이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
BJ업계에서 굉장히 케케묵은 문제다.
끼가 넘치는 신인 BJ가 싹이 마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빠는 실력 없는 애 밀어주기 싫은데."
"하, 하지만 저 오빠가 하란 대로……."
"그러니까 실력을 기르라고."
"응기잇!"
손가락으로 조금 괴롭혀주자 그제야 말을 알아듣는다.
사실 엔터는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연예계에도 있는데 뭐.'
마찬가지로 검증이 된 엔터와 사기꾼 소속사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성장 과도기인 BJ 업계에는 후자가 대부분이다.
차후 덕자 사건 등.
폭로가 나오는 건 빙산의 일각조차 아니다.
부당 계약과 업계 갑을 관계 때문에 유야무야 묻힌다.
"야하게 해서 시청자……, 꼬셔요?"
"하아."
"응기잇!"
"그걸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거지. 야하기만 하면 삼류지."
그로 인해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유망한 신인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엔터에 소속된 이들이 불공정 경쟁으로 가로막는다.
'2017년 이후로 스트리밍 업계가 얼마나 커지는데, 업계 1위인 파프리카TV에서 대형 신인이 안 나와.'
파프리카TV 내에서만 먹히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불공정 경쟁에 의한 폐해는 아무리 숨겨도 드러나게 돼있다.
철저하게 검증이 된 신인을 밀어줘야 한다.
엔터가 제대로 된 구조를 띄려면 그러한 전제가 필수.
참방!
유라가 욕조에서 일어난다.
아직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노력을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오빠가 관리하란 대로 열심히 해."
"네!"
"착하지."
"그, 근데요……."
"?"
"다음에 또 안아주시면 저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있어서 표정은 안 보인다.
하지만 허벅지 사이에서 흐르는 계곡은 욕조의 수돗물만이 아니어 보인다.
"여기가 어디라고?"
"오빠, 오빠 집이요."
"그래, 쓰고 말고는 내가 정하는 거야."
"응기잇!"
물이 어디서 또 생겼는지 뚝뚝 떨어진다.
말썽꾸러기인 애들은 몸으로 알아듣게 하는 것만큼 쉬운 방법이 없다.
'학교 체벌도 강화를 해야 돼.'
때려야 말을 듣는 애들이 있다.
체벌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남용만 하지 않으면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다.
"잘해."
"네!"
"알았어?"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떡춤에 한해서는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 *
파프리카TV.
─꿀맛참기름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학원에서 뭐라 안 함? ㅋㅋ
"10개 팬가입 감사합니다! 아직은 안 들킨 것 같아요. 히."
―이걸 안 들키네
―학생들은 다 알지 않음?
―갠방갤에 인증글 올라왔던데 ㅋ
―왜 내 급식땐 없었어 ㅠㅠ
여캠듀스 101 출신의 BJ들은 빠른 속도로 정착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건.
'이게 여캠이 맞나?'
BJ토끼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된 채이는 다소 떨떠름하다.
방송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자신이 상상한 여캠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시청자들과 오순도순한 분위기.
딱히 싫다는 것은 아니다.
─봄이의삼촌팬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우리 봄이 잘 부탁드립니다 ㅠㅠ
"삼촌팬 님 오늘도 천 개 감사합니다~! 촌지 안 주셔도 되는데."
―촌지 ON
―촌지 아시는구나!
―그게 뭐임?
―아는 사람 최소 딱딱!
직업적 특성.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하긴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철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학부모한테 전화 오면 어떡하지?
크게 찔리지 않는 선에서 방송을 해나가고 있다.
공통된 화제도 있어 방송 난이도도 생각보다 수월하다.
「날씬하고 쫙 빠진 섹시한 귀 난 토끼예요~♬」
물론 가끔은 시동을 건다.
별풍선 리액션.
여캠들이 장사(?)를 어떻게 하는지 대충 귀띔받은 바가 있다.
시그니처 메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가치를 부여한다.
리액션과 방송적 홍보를 동시에 이루는 방법.
―꺄
―눈나 미쵸ㅋㅋㅋㅋㅋ
―안무 개귀엽다
―ㄹㅇ 컨셉 잘 정한 듯
오정환에게 배운 토끼춤.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간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안무는 따라하기도 쉽다.
─코스프레충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의첸풍!
다음 콘텐츠로 연결하기도 편하다.
채이도 열혈 시청자의 전문 용어를 알아들을 짬이 되었다.
바니걸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타난다.
채팅창은 더욱 열광의 도가니가 된다.
그러한 컨셉에 충실한 건.
샤악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검은색 가터벨트를 입은 다리를 한껏 꼬며 쓰고 있는 안경을 괜시리 요염하게 치켜올린다.
"쌤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거 맞지~? 어디 이상한 데 보고 있는 거 아니지~?"
―넴ㅋㅋ
―아무튼 그럼!
―현역 선생님 ㅗㅜㅑ
―여기가 국평오 맞춰준다는 그 학원 맞나요??
BJ섹시쌤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스스로도 오그라든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히토미나 폰허브에 나오는 선생님과 현실의 선생님은 180도 다를 수밖에 없다.
─마조히스트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선생님 숙제 해왔어요! 열혈 달았어요! 칭찬해주세요!
"어머, 말 잘 듣는 아이한텐 상을 줘야지. 음~ 어떤 걸 줄까?"
―엉덩이 때려주세요!
―이런 선생님이면 맞아도 기분 좋을 듯ㅋㅋㅋㅋㅋ
―검스 허벅지 미치겠다
―입던 검스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열혈들이 원한다.
채팅창의 반응도 좋다.
수입까지 짭짤하니 어느새 자아가 두 개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러면 되지 않을까?'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정환에게 넌지시 들은 것이 있다.
소희는 소품으로 준비해둔 책상 위에 걸터앉는다.
―골반 돌아가는 거 봐 ㅋㅋㅋㅋㅋ
―다리가 ㄹㅇ 머꼴이네
―밟혀보고 싶다 ㅎ
―사이 보여줘
다리를 강조하는 댄스.
좁은 자취방 안에서 섹시함을 과시한다는 게 살짝 현탐이 오긴 하지만 적응할 때도 되었다.
'생각보다 힘드네. 골반도 아프고. 그래도 대충 하지 말랬지…….'
오정환의 지시대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보람이 있는지 채이와 소희 방송은 꾸준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성장 중이다.
카톡!
카톡!
가끔은 컨셉이 아닌 진짜를 해야 될 때도 있었다.
* * *
12월의 말.
다가온 운명이 고개를 들이민다.
"봄이가 와썹?"
"봄이가 와썹!"
""예에~!""
격하게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그대로 손을 잡고 덩실덩실 한 바퀴 돌며 춤을 춘다.
"꾸웨엑……."
그리고 정해진 통과 의례를 가진다.
봄이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목청껏 과시한다.
"아프다고 청춘이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지."
"히잉……."
부들부들 떨어 댄다.
언제 깨물어도 최고의 반응을 보여준다.
"맛있는 걸 먹을 거예요."
"그래."
"억울해서라도 많이 먹을 거예요!"
"그렇구나."
ㅋㅋ
애석한 방향으로 성장을 했다.
참을성이 많이 늘어난 모양이다.
'긴긴 고등학교 생활을 버티려면 그래야지.'
정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다가오는 방학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전부터 궁금했어요."
"뭐가?"
"오빠는 왜 제 머리를 깨무는 거예요?"
"그러게."
"?"
그런 봄이에게 한 가지 속보가 있다.
전해주기 전에 밥부터 배가 빵빵하게 먹여준다.
탕! 탕! 탕!
도마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산 낙지.
식칼로 내려쳐 탕탕이를 만든다.
'살아있는지 실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거든.'
물론 이 낙지와는 별개다.
이미 죽은 녀석이 자극받은 신경에 의해 꿈틀댄다.
"낙지로 전골을 만들 거야."
"매콤한 게 좋아요~!"
"다리는 회로 먹고 있어."
"저 엄청 좋아해요. 산낙지이~!"
오직 한국에서만 먹는 별미.
세계 10대 혐오 음식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산낙지를 잘 먹는 아이지.'
아주 게눈 감추듯 해치운다.
참기름을 넉넉하게 찍어 후루룩 찹찹 먹는다.
지금까지는 잘 커왔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봄이도 한 걸음 나아가야 할 때.
"봄이 요즘 공부는 어때?"
"후~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런 거야?"
"그런 거예요……."
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을 해본다.
시무룩하다.
말꼬리가 내려간다.
사실 자세한 사항은 이미 내통 관계를 이루고 있다.
'봄이 어머님이 정말 고민이 많으시지.'
최근에 바빠서 핸드폰으로만 연락을 나눴다.
조만간 직접 봬서, 사과라도 하나 깎아 먹으며 오붓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다.
"세끼 밥만 맛있으면 열심히 공부할 자신이 있어요."
"밥이 맛없어?"
"말도 마세요. 기숙 학원은 정말 감옥이에요. 우리 엄마보다 밥을 맛없게 하는 거예요!"
ㅋㅋㅋ
엄마한테 한 대 맞을 소리를 한다.
모녀간의 사이가 좋은 듯하면서도 팽팽한 기류가 흐른다.
'그런 게 가족이지.'
보고 있으면 훈훈하다.
둘의 사이에 끼어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나날이다.
보글보글!
빨간 낙지 전골이 끓고 있다.
숙주나물이 아삭아삭한 식감을 더하며 매운맛까지 덜어준다.
"침 닦아."
"삼킬 거예요."
"그래도 되지."
"저 이제 한동안 말을 못 할 거예요. 먹는 데 집중할 거예요!"
ㅋㅋ
우리 봄이에게 있어 행복한 순간.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조금 이따가 말을 해도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