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6화
학원.
기껏해야 20명 남짓한 직원이 있는 빌딩 내에서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너도 들었어?"
"그러게 왜 유 선생님과 박 선생님을 2군으로 내려서."
"학원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들은 거 아니겠지?"
"아 몰랑!"
자신의 귀에 대놓고 들려올 정도로 말이다.
양머인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 없다.
'내가 공부의 신인데!'
자신이 판단한 최고 수준의 강사가 1군에 있다.
그 점을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콕 짚어 유 선생과 박 선생에게 강의를 받고 싶다는 수강생이 늘었다.
아니, 수강생 자체가 늘었다.
빙그르르르~
더 이상 돌림판을 돌리지 않아도 될 정도.
한 명 모시기도 힘든 최상위권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다.
〔학원장 단톡〕
「요즘 학생들이 자꾸 유출되네요」
「어쩔 수 없죠」
「공부의 신이 있는데~」
「머인 씨가 정말 능력 있으시긴 하죠」
「저희도 본받아야 합니다」
「공부의 神!」
「(웃는 이모티콘. jpg)」
「(쪼개는 이모티콘. jpg)」
다른 학원 관계자들에게 원망 섞인 부러움을 받을 만도 하다.
장본인의 심정은 180도 다를 뿐이다.
'그래, 내가 공부의 신이라고.'
자신의 판단이 절대 틀릴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라고 결론짓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다.
그토록 밀었던 1군은 유명무실해졌고, 학원의 중심은 유 선생과 박 선생이 되었다.
양머인이 그렸던 그림은 이게 아니다.
딸랑♪
딸랑♪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성공이란 결과를 만든 것은 말이다.
그렇게 화가 잔뜩 나있는 것과 상관없이.
"수강 신청하러 왔는데요."
'어머님! 아시겠지만 저희 학원 1군 선생님들이 정말……."
"네, 알고 왔어요. 여기 소희 선생님과 채이 선생님이 유명하시다고."
"……."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가게에서 손님이 왕이듯, 학원에서는 수강생이 왕이다.
한두 명이면 모를까.
하루에도 열댓 번씩 찾아온다.
그들 전부를 홀대하며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동네 장사.
안 좋은 소문이 생기면 학부모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진다.
울며 겨자 먹기로 환대하며 받아들인다.
'두고 봐라 두고 봐.'
물론 생각을 굽힌 건 아니다.
자신의 완벽한 계획이 어째서 엇나갔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공부의 神.
학원 업계에서 자신을 부르는 이명이다.
그만큼 공부에 있어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졌다.
"학원 모의고사요?"
"그래, 방학 시즌이 얼마나 중요한데 선발 라인업은 제대로 갖춰야지."
"어……, 1주일 남았는데."
"그냥 해!"
그런 자신이 선택한 1군 강사진이 실력에서 밀릴 리 없다.
인터넷 방송인지 뭔지.
'이상한 노이즈 마케팅 때문이지.'
학원장 권한으로 원내 모의고사를 밀어붙인다.
학생들의 수준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진짜 목적은 확인.
자신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
『원내 모의고사 성적표.』
1. 킹짱고 봉주혁 ?2군
2. 화산고 송희주 ?1군
3. 아이고 하빛가람 ?2군
4. 섹시고 박별찌 ?2군
5. 섹시고 임아람 ?2군
+――――――――――――――――――――――
자신감이 근본부터 무너져 내린다.
상위권을 대부분 2군, 그것도 유 선생과 박 선생의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
강사를 보는 눈.
학원 운영 실력.
공부의 신인 자신의 예상이 전부 빗나가고 말았다.
'……아니, 어째서?'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생각해서는 알 수 없는 문제도 있었다.
* * *
남을 가르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떤 분야든 간에.'
굉장히 실패,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다.
성공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더 그러한 경향이 생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차라리 길을 모르면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보지만, 달콤한 성공을 맛보면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방학한급식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채이쌤 학원에서 인기 짱 많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요? 100개 팬클럽 가입과 생생한 현장 속보 감사합니다."
?진짜 수강생 등장ㅋㅋㅋㅋㅋㅋㅋㅋ
?'급'
?요즘 우리 반에서도 핫함!
?채팅창 급식 농도 보소 ㄷㄷ
여러 가지 방향, 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세상은 2차원이 아니니 말이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한 차원 높은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가르친다는 건 단순히 데이터를 머릿속에 때려 박는 행위가 아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자의 자질.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소희와 채이는 강사로서 비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BJ토끼녀의 방송국! 〕
─쌤 저 이번에 원내 모의고사 1등급 맞으면!
리액션 거눙?
BJ토끼녀? 가람이니? 원래 1등급인 걸로 아는데 10위 안에 들면 해줄게^^└이러니까 ㄹㅇ 선생 같네
└와 1등급 ㄷㄷㄷ
└성적으로 리액션 보상ㅋㅋㅋㅋㅋㅋㅋ
소통 말이다.
학생 스스로가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동기 부여를 해준다.
'굉장히 중요하지.'
동기 부여가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 절반을 채울 만한 능력도 충분히 있다.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잘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만 손을 봐주면 앞으로도 문제없을 것이다.
─바니걸페티쉬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제 안 벗는다고??
"제가 상담을 해봤는데. 학원 쪽에 항의가 들어오는 것도 있고, 차후에 발령이 나면 문제될 소지도 있다 보니 전보다 자제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오늘 개인 방송에서 각자 설명을 하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좀 해주세요."
?아니 왜
?학원에 전화 건 어그로 있다 ㅇㅈ?
?바니걸 없는 토끼녀라니……
?근데 이건 터질 만하긴 했음
컨설턴트.
본인들이 원해서 여캠으로 데뷔하긴 했지만, 그 한 가지 방향만 밀어붙이는 건 하책이다.
차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유명해지고 있으니 더욱 말이다.
'어차피 급식 꼬인 시점에서 열혈 장사하기는 글렀고.'
여캠을 하기 애매하게 됐다.
사람 다루는 일은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핏 똑같은 토끼 그림자여도 3차원의 도형으로 보면 다를 수 있다.
그 점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보라) 오정환. 토끼녀&섹시쌤 의상 골라주는 방송」_ ?21, 892명 시청
일반적인 여캠과는 다른 컨설팅.
토끼라는 컨셉은 유지하되, 본업의 비중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둘 것이다.
"저는 이거 좋네요, 이거. 움직이는 토끼 모자. 양옆에 내려진 부분 당기면 귀가 쫑긋 하거든요?"
?움직인다고?
?ㅁㅊ 저런 것도 있넼ㅋㅋㅋㅋㅋㅋ
?토끼녀 라이트 버전
?이제 섹시가 아니라 귀염이야?
실망하는 시청자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시청자도 생긴다.
물론 본질적인 부분을 바뀌는 건 아니다.
'색기는 유지를 해야지.'
단기간에 뜰 수 있었던 요소.
자극적인 이슈거리가 매개가 됐다.
단점 때문에 장점을 포기하는 건 멍청한 판단이다.
색기는 노출이 아닌 분위기에서 우러난다.
컨셉이 다져진 이상 유지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참기름중독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섹시쌤은 건전쌤으로 닉변각?
"섹시 정도는 상관없죠."
마찬가지.
소희도 노출을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요즘은 학부모들도 개방적이라, 선만 잘 지키면 어지간하면 괜찮다.
애들을 가르쳐본 적은 없어도, 애들을 상대해본 경험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래 봬도 위기 감지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하튼.'
손 대는 일마다 매우 잘 풀리고 있다.
우연이 아닌 필연.
낙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하면 내 덕이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고, 내가 밀어주니 금방 화제성을 가진다.
다소의 소란이 일어나도 역풍으로 충분히 잠재울 수 있다.
혹시 모를 사태까지 계산하여 짜낸 책략이다.
위기는 곧 기회.
보라에서 갈고 닦아온 짬밥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나의 일은 지나칠 정도로 잘 풀리고 있지만.
카톡!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 * *
해가 떠오르면 달은 저문다.
한국 게임 시장의 패황 자리를 꿰차고 있던 게임사.
『DONXON』
분당구 판교에 위치해있다.
2012년경 세워진 으리으리한 본사의 입구에 대리석으로 된 알파벳 팻말이 시선을 끈다.
'후우…….'
장연수는 생각이 많아진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삼성이 부럽지 않았다.
과장이 아닌 진심이다.
그만큼 게임 업계에서 돈슨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엔씨와 넷마블 등 경쟁 게임사가 있기는 하지만, 고객 연령층이 겹치지 않는다.
그들처럼 아재겜도 아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돈슨의 게임을 한다.
나이를 먹어도 게임은 할 테니, 돈슨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었는데.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회의가 시작된다.
이사급 회의.
단풍잎스토리의 대표로 불려온 장연수는 가시방석이다.
'소화제 먹고 올 걸…….'
숨이 턱턱 막힌다.
위장은 쓸데없이 위액을 내뱉는다.
한마디로 속이 쓰리다.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건 결코 좋은 일만이 아니었다.
실제 자신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이들 대부분이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스카웃 돼서?
아니, 쫓겨났다는 표현이 옳다.
회사 내 불미스러운 사태, 혹은 실적의 책임을 지고 말이다.
"단풍잎스토리."
"……."
"단풍잎스토리?"
"네, 네! 보고 하겠습니다. 보고요."
잠시 멘붕에 빠져있던 장연수는 조금 늦게 반응한다.
쏟아지는 눈총을 감수하며 쭈뼛쭈뼛 일어나 보고서를 읽는다.
"2013 4분기 및, 2014 1분기 실적 전망입니다. 11주년 축제를 기획하고 있으며……."
"아니, 그런 거 말고!'
"아 갑갑해!"
"실적 전망이라며 실적!"
가시방석.
회사의 높으신 분들께 조리돌림을 당한다.
갈구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군대식 마인드에 사로잡혀있다.
'아오, 내 팔자야.'
불과 1~2년 전만 해도 그러지 않았다.
돈슨 전성기 시절 단풍잎스토리 디렉터는 출세 특급 코스였다.
그냥 별 거 안 해도 무조건 잘 나가게 돼있다.
어쩌다 프로젝트 한두 개를 성공한다?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깔린다.
자신도 그 레일에 올라선 줄 알았다.
지난 1년간 별별 일이 다 터지더니 목줄이 위험천만한 처지가 돼버렸다.
"한마디로 밝지 않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희도 최선을 다 하고 있고."
"구체적으로."
"겨울 방학이 다가온 만큼 방학 특수를 잘 살려서 해보려고, 헤헤."
옛날처럼 꿈에 기댈 수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실정을 다 알게 된 마당이다.
출세는커녕 자리를 부지하는 것도 버거워졌다.
'나도 X발.'
엄창우 이사.
직속 상사이자 前단풍잎스토리 총괄 디렉터였던 그가 건너편에 보인다.
자신도 그처럼 승진 코스를 밟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단풍잎스토리의 실적이 지금 이대로 지속된다면 자신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하다.
꿀꺽!
모든 책임을 껴안고 가라앉는다.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다.
총괄 디렉터 자리에서 밀려나는 순간, 십중팔구 잘리거나 좌천될 것이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된다.
그런 장연수의 핸드폰이.
카톡!
울린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임원급에게나 무시 받지, 이만한 자리에 올라온 자신이 알림을 걸어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엄창우 이사님?'
그는 이미 구세주를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