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00화 (500/846)

500화

<확률이 이상해!>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오정환이?"

<네, 확실한 정보에요!>

오정환의 존재감.

지금은 BJ로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가 달랐다.

'아니, 나도 이제 알 만큼 알아.'

단풍잎스토리의 랭커로 말이다.

한때 그와 대적했던 베르사유 길드의 길마 소연은 한순간 일었던 감정을 가라앉힌다.

당했다.

당하고 또 당했다.

정말 치를 떠는 경험이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있었던 사건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그냥 뭐 그렇다는 거죠…….>

"이제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단풍잎스토리를 접었다.

그것까진 아니지만 옛날에 비하면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 수준이다.

간간이 접속해서 친창과 길드원의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

그리고 장사랑 템세팅을 간간히 바꾸는 정도.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은 여전히 소모한다.

하드코어 게이머였던 그녀들에게는 간소한 취미 생활이다.

'오정환은 그나마 나았지.'

길드원의 전화를 받으며 소연은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스카니아 서버의 패권을 두고 큰 다툼을 벌였다.

그 세력 싸움에서 밀려났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문제는 오정환이 접은 이후.

"그런 개념 없는 BJ 새끼들 두 번 다시 상대하기 싫으니까 말도 꺼내지 마."

<아, 역시 그렇죠? 헤헤…….>

이전부터 눈엣가시였다.

항아리 도박, 사냥터 방해, 보스 몬스터 갑질 등.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사고뭉치 녀석들이다.

물론 비매너 유저는 쌔고 쌨지만, 한 가지 다른 건 그들이 방송을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인기를 악용해 시청자들을 선동한다.

'우리가 스카니아의 적폐 세력이라고 지랄들을 해대는데.'

질서라는 게 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초록불에 손을 들고 다니지 않으면 사고 확률이 급증하게 돼있다.

그게 답답하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정 띠껍고 꼬우면 다른 질서를 제시하면 되는 일이다.

책임 없이 권리만 누리려는 BJ들.

그들을 통제하기에 자신들은 너무 약해졌고, BJ인지 뭔지를 보는 시청자들은 너무 많아졌다.

<그래도 좀 아쉽긴 해요.>

"뭐?"

<옛날 단풍잎은 정이 있었는데 헤헤.>

"……."

무지성의 이들이 말이다.

과거에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스카니아 유저들은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그냥 게임에 접속해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지.'

자신도 초보자 시절에는 그러했다.

랭커들이 뭐 했다고 하면 같이 기뻐하고, 서버에 중대한 일이 생겼다고 하면 같이 대처한다.

랭커가 된 이후로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스카니아 서버를 대표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에 진지했다.

하지만 BJ의 팬들은 그런 개념이 없다.

아니, 개념 자체가 없다.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즘 비매너 길드들 엄청 바글거리고, 돈슨도 사행성템 엄청 출시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지들이 원한 거잖아?"

<걔네들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을까요?>

"하긴."

적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스카니아가 아니다.

난생 처음 외세의 침입이란 것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차라리 오정환은.'

설사 싸운다고 해도 밥그릇 다툼이다.

스카니아의 대표로서 책임과 권리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하고 있다.

세력 다툼에 밀려나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을 벗어 던져 가뿐하기도 했다.

그들은 아니다.

자신들의 스카니아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다.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를 개뼈다귀들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베르사유 단톡방〕

「뭐 어쩔 수 없죠.」

「ㅋㅋㅋㅋㅋ」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 피할까요? 잊고 사니까 저는 속이 편하네요.」

「하동아……」

「게임 하는 삼촌이모들도 계셔」

「아 죄송합니다;;」

「ㄴㄴ」

「하동이 잘못이 아니지」

「에혀, BJ새끼들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뿐.

일개 유저에 지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을 베르사유 길드원들도 받아들였다.

세상이 달라졌다.

부정할수록 구차해진다.

무엇보다 게임에 시간을 쏟는 것도 열정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우리가 비매너를 왜 잡아줘?'

'돈슨 본사 가서 항의하는 것도 진 빠진다.'

'유저 규합은 개뿔이 마누라랑 용돈 합의도 못하는 마당에.'

시간은 그 어떤 것도 희석시킨다.

한때 하드코어 게이머로 랭커 자리를 꿰찼던 그들이지만, 옛날처럼 게임에 인생을 갈아 넣을 엄두가 안 난다.

소위 말하는 현게를 탔다.

언제까지 게임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현실적인 생각이 들면서도 가슴 한편에 있는 아쉬움을 속일 수는 없었다.

* *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면 중이 떠난 절은 관연 어떻게 될지.

'그냥 뭐 판자촌 되는 거지.'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풍잎스토리 각 서버를 주름잡던 최상위 길드들이 적폐 세력 같아 보여도, 나름대로 역할이라는 게 있었다는 이야기다.

"들리세요?"

<네!>

<펑이! 펑이!>

<아 진짜 오랜만이네요, 오랜만!>

그에 반해 BJ들.

모른다.

그냥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녀석들이다.

근본이 없다는 소리를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 없는 권리는 그냥 야스지.'

얼마나 신나겠어.

한 서버를 안방 쓰듯이 해도 아무도 터치를 안 한다.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짓을 마음껏 저지를 수 있다.

"그동안 뭐 하셨어요?"

<저희요?>

<아~>

<그냥 재밌게 지냈죠! 뭐 다를 거 있나. 스공 올리고, 보스 레이드 하고 흐흐.>

―하긴 뭐 별 거 있나

―단풍잎 향우횤ㅋㅋㅋㅋㅋㅋㅋㅋ

―ㄹㅇ 단비들 총출동이네

―와 오정환 인맥 뭥미?

얼핏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게임 뭐 즐겁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일반 유저들은 그렇게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근데 인플루언서는 다르다고.'

랭커다, 거대 길드다 옛날 개념으로 보면 어색하지만 현재로 따지면 그냥 유명인이다.

BJ도 그 범주 안에 포함이 된다.

단풍잎스토리로 벌어먹는 이상,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를 방관하는 것이 단풍잎BJ들의 잘못이다.

"뭐 달리 하신 건 없고요?"

<어……, 글쎄요.>

<맞다! 맞다!>

"아, 뭐 있어요?"

<정환님은 LCK도 우승하고 무승귀신도 때려잡고 엄청 바쁘셨던데.>

"저는 뭐 여러 가지 했죠."

<하하.>

<하하하!>

<펑이! 펑이!>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을 재확인한다.

내가 단풍잎BJ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따른다.

'차후에 단풍잎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잖아.'

비매너 유저.

지나친 사행성.

빙산의 일각만 따져도 골치 아픈 문제가 산더미다.

그 이상으로 내부는 곪아 터져있다.

과거와 달리 문제가 지나치게 많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풍잎매니아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이번 단풍잎 패치도 정환이가 만들었는데 ㅋㅋ

"100개 감사합니다."

<아 리얼?>

<언제 또 그런 것까지 했대. 나는 또 돈슨이 정신 차린 줄 알았네!>

<펑이! 펑이!>

―진자 ㄹㅇ임 ㅋㅋ

―단풍잎BJ들도 못한 걸

―이래서 갓정환 갓정환 하는구나

―펑이요 개귀엽네 ㅋ

유저들을 대표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코나 파고 있다.

별풍선 받으면서 침이나 질질 흘리고 다닌다.

'돈슨 입장에서 얼마나 만만하기 짝이 없겠어?'

이전까지는 힘들었다.

뭐 하나 패치하면 랭커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따지려고 든다.

클라이언트 채로 뜯어내서 분석하니 몰래 패치도 안 통한다.

감시당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에 반하면 BJ.

적당히 기 좀 세워주면 지들이 뭐나 된 줄 알고 으스댄다.

돈슨에 우호적인 말을 해준다.

그걸 듣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할 말이 절대 없다.

적폐를 몰아내고, 인플루언서라고 빤 게 그런 BJ들이었으니 말이다.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한 국민은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 새뮤얼 스마일스

개돼지에 대한 격언이다.

어디서 한 번씩은 들어보지만, 자신이 해당될 거라고는 보통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도 마찬가지야.'

단풍잎스토리는 과장 없이 작은 나라에 해당하는 규모를 가졌다.

나라에서 일어난 법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부셔서 다시 단풍잎 하게 되셨어요?>

<돈슨에서 부탁했대잖아!>

"그것도 있고, 롤 큐 잡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짬 내서 즐기기 좋거든요."

<아~!>

<요즘 적폐 길드들 없어서 보스 타이밍 잡기도 편해졌어요!>

<펑이! 펑이!>

확실히 좋은 게임이다.

20년이 지나서도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경량화 패치까지 하면 더더욱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다.

LoL처럼 무거운 게임을 하는 중간중간에 즐기기 딱 좋다.

BJ는 물론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가벼운 몰입감을 선사한다.

'단풍잎을 모르는 사람도 단풍잎을 즐길 수 있지만, 던파는 모르는 사람이 던파를 보면 눈부터 찡그려지잖아.'

흔히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지만 근본적으로 하늘과 땅이다.

단풍잎이 면제겜 소리를 듣는 건 오롯이 BJ들이 무책임하게 싸질러 놓은 똥 때문이다.

─메창인생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근데 템 어떡함? 똥값 됐을 텐데

"당연히 처분했죠. 단풍잎 원투데이 하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년만 접어도 똥값 되지

―역시 고수

―패치를 하도 해대서……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게임을 미꾸라지 몇 마리가 망치게 두고 싶지 않다.

그를 위한 첫 걸음.

'돈슨과는 협상이 잘 되고 있으니.'

본격적인 시동을 걸 시간이다.

단풍잎을 근본부터 뜯어 고치기 위해서는 BJ는 물론 유저들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럼 아이템 새로 맞추실 거예요? 직업도?>

"그래야겠죠."

<아~ 힘들 텐데.>

<돈 좀 깨질 걸요?>

<요즘 레전드리 등급에 에디셔널 잠재 옵션, 그리고 추가 옵션까지 나와 가지고 흐흐.>

이렇게 순진무구하게 개돼지처럼 지갑을 펑펑 열어 재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번쯤 의심을 해봐야 한다.

'물론 기업의 목적은 이윤이고, 게이머가 돈을 써야 하는 건 맞아.'

그래야 게임사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 말이 날로 처먹어도 된다는 소리는 절대로 아니다.

"혹시 무기 보보보 띄우신 분 계세요?"

<보스공을 3개요?>

<그건 에반데…….>

<확률상 너무 낮아서 나도 아직은 없네~>

―와 설마

―요즘 펑이요가 스공 1위 아님?

―정환이도 한번 보여주나?

―ㄹㅇ LCK 상금만 다 때려 박아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단풍잎스토리만 한다면 매의 눈으로 감시할 것이다.

돈슨이 개짓거리를 못하도록 말이다.

'내가 몸이 10개도 아닌데.'

당연히 할 수가 없다.

설사 한다고 해도 부족하다.

랭커가, BJ가, 네임드가, 그리고 유저들이 합심해서 대항해야 할 스케일의 문제다.

지금까지는 물고기를 잡아줬다.

앞으로는 잡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개념 없고 무지하고 덜떨어진 BJ들부터 조련한다.

"큐 잡는 시간에 가볍게 즐긴다고는 했지만 저도 일단 단풍잎 유저기 때문에."

<그렇죠!>

<근본이신데 근본!>

<펑이?>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힘을 가져야 한다.

BJ가 아닌 한 명의 단풍잎 유저.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한다.

자신들이 멍꿀멍꿀거리는 개돼지 대장이라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자신이 그런 존재라고는 추호도 생각 안 할 것이다.

사람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

"스카니아, 아니 단풍잎 전체에서 범접할 사람 없는 최고 세팅 한번 맞춰볼까 하는데."

가벼운 사고를 하나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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