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화
<게이머는 게임사를 못 이겨>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나쁜 의미로 쓰이는 속담이지만, 현실은 고치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개돼지들은 일반인들의 상상 이상이야.'
미안하다고 보상템 몇 개 푼다?
이번만은 봐준다! 이러면서 용서한다는 게 단순한 드립이 아니다.
뉴데일리― 「불매운동 번진 엔×소프트…… 외국인은 11일째 '줍줍'」
인싸이트― 「'잘한 부분은 인정' 클로저× 복귀 유저 증가 PC방 점유율 상승!」
전자신문― 「'던파' PC방 점유율 0.81%P↑ 슈퍼계정 논란 잠잠해졌나?」
오마이뉴스TV― 「논란 속 100위권 밖 추락 '에픽세×'…… 인기 회복 비결은?」
클로저×, 던파, 리니× 등에서 터졌던 사건들.
한국 게임 역사상 유저의 불매 운동이 성공한 적이 없다, 라는 비아냥은 실제로 이루어진 역사의 결과물이다.
'유저들이 항의해서 개선 사항을 쟁취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분노에 치를 떠는 유저들과 달리 게임사들은 이성적으로 관찰한다.
얘네가 당장은 화를 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열되겠지.
역사를 보고 배워버린 것이다.
순순히 안 들어주고 간을 본다.
유저를 상대로 흥정을 하고, 자신들이 우위에 서려 한다.
"와아……. 보내주신 파일, 성원과 기대라 생각하고 저희가 성심성의껏 검토해 보겠습니다. 근데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당장은 힘들 것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네?"
장연수가 참석한 유저 대표들과 기자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살살 끄덕인다.
암묵적인 동의를 받겠다.
그도 그럴 게 양이 많다.
거의 한 박스 수준으로 세세하게 분류한 서류 뭉치는 어떻게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뭐, 사전에 이야기는 나눴지.'
단풍잎에 복귀한 것부터가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진심이 엿보였으니 허락한 것이기도 하다.
병크가 터지자마자 조속한 대처.
나름대로 각오를 했다는 방증이다.
나름대로로는 턱도 없이 부족해서 그렇지.
"그러실 것 같아서."
"아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하하."
"요약 PPT도 준비해 왔습니다."
"……."
대책이 얼핏 괜찮아 보이지만, 사실은 더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물이 더 뚝뚝 떨어진다.
손바닥 찢어질 정도로 걸레를 짜듯이.
'한국 게임 업계에서 병크가 터졌을 때 유저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 식이냐면.'
한 20%만 해주면 돌아오겠지?
아ㅋㅋ 20%로 안 되네 오케이 30%!
게임사들이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십중팔구 이러한 의도다.
캬 질기네. 50% 먹고 떨어져!
설사 100%를 받아냈다고 쳐도 과정부터가 이미 실패에 가깝다.
게임사의 의도대로 놀아난 것에 불과하다.
사실은 120%도 할 수 있다.
게임사가 절대 바보가 아니다.
유저들의 불만을 모르는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개돼지들한테 사료를 너무 많이 주면 버릇이 나빠지지 않을까?
그러한 기조가 업계 전반에 만연해있다.
유저를 상상 이상으로 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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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유저 간담회 개선 요구』
1. 구체적인 개선 방안과 계획
2. 확률 조작에 대한 보다 명확한 시인
3. 디렉터 본인이 직접 유저와 소통하겠다는 의지 표명
4. 글로벌 단풍잎도 똑같은 버그가 있는 것으로 확인됨. 단풍잎스토리 내부 문제가 아닌, 돈슨 전체의 책임임을 인정 및 사죄
5. 확률 로직 공개
6. 천장 시스템 도입
7. 아이템 능력에 영향을 주는 캐시 아이템은 유저들과 합의된 경우에만 출시할 것
8. 본서버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패치는 테스트 서버에서 충분한 사전 테스트를 거칠 것
10. 운영진의 공정한 확률 로직 구현 실패로 피해를 입은 유저들에게 납득 가능한 피해 배상안을 마련할 것
11. 1~10의 법적 구속력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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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기준이 겨우 그 정도다.
거기서 더 나아져 봤자 절대적인 기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 이렇게나?"
"지극히 상식적인 선의 요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묵묵히 앉아있던 유저 대표들과 기자들.
몇몇이 격한 박수를 치자 눈치를 보던 이들도 동참하게 된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하면.'
모두가 Yes라고 할 때 No를 외치는 건 힘든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여론 분열의 여지까지 생긴다.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도 현실적인 마지노선을 찾게 된다.
이 불길이 꺼지기 전에 결판을 내야 한다.
게임사가 유저를 상대로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간을 끌다가 분열되면, 하나씩 구워삶는다.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인지시킨다.
나라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뭉쳤다.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될 것이다.
'실제로.'
현재 단풍잎의 흥행.
갑자기 숨이 확 트이긴 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상집 분위기였다.
이를 반전시킨 사람이 누구인지.
인지하고 있다면 쉽게 대답을 꺼낼 수 없을 것이다.
"어… 어……. 유저분들의 분노는 깊이 통감을 하고 있고, 저희도 최선의 대응을 검토할 것을 약속드리지만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거든요?"
"원래 방 청소 한 번에 하려고 하면 힘들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방을 해보려고 한다.
확실히 현실적인 문제라는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데 뭐 어쩌라고.'
평소에 잘했으면 이럴 일도 없다.
제발 방에서 좀 나가!! 방에서 쉰내가 난다 쉰내가!
어머니들이 방 청소에 광적인 집착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과정이 어찌 됐든 해야 한다.
무너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본전은커녕 그 이상의 노력을 해야 쉰내가 빠질 수 있다.
"진짜 검토, 검토거리네."
"검토래. 키킼."
"네? 네? 무슨 말씀이시죠?"
"크흠! 검토한다는 애매한 표현이 아닌, 확실한 대답을 듣자는 게 저희 유저 대표단의 공통된 의견이어서요."
"……."
확실하게 의견을 규합시켰다.
그럴듯한 말에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있지 않다.
결정적으로.
'병신들이 사고를 안 치잖아.'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 말처럼 집단 행동을 하면 꼭 분위기를 해치는 인간들이 있다.
BJ 새끼들이 꼭 그러했다.
운영자에게 확답을 받아야 돼.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한 뜻으로 행동해야 돼.
응, 별풍선, 유튜브각 꿀 빨 거야~
별거 아닌 것 같아도 분명히 영향이 크다.
이미 발을 한 짝 빼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계기를 주면 헬렐레~ 사료를 먹으러 간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하겠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그래서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게임사가 이겼다는 역사만 1스택 더 적립될 뿐이다.
울상이 되어버린 장연수씨가 안타깝긴 하지만, 사정을 봐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최대한 노력해 봐도 이 자리에서 대답드릴 수 있는 건 2, 3, 8, 10번 정도지. 1, 5, 6번은 내부 검토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검토요?"
"죄, 죄송합니다. 말버릇 같긴 한데 이게……, 제가 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4, 7번은 제 권한을 확실히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11번은 정말 너무 큰 거라서 어떻게 논하기가;;"
그 와중에 머리 회전은 나름 되는 모양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게임사 돈슨에 입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좀 더 애써봐.'
유저들의 분노를 1/10이라도 느꼈으면 싶다.
* * *
간담회.
〔단풍잎스토리 갤러리〕
─오정환 딜량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장연수 불쌍하긴 첨이네
─ㄹㅇ 만렙 엔버가 전 부위 레전드리 극옵 맞추고 추옵/어빌도 극으로 맞춘 수준의 폭딜 아니냐? ㅋㅋ [18] ―10─단갤 투표) 저거 다 해주면 단풍잎 복귀한다 [71] +207.
.
.
실시간으로 방송이 되고 있다.
오정환의 방송이 아닌, 돈슨의 공식 스트리밍이지만 결과는 매한가지다.
엄청난 이목이 모인다.
수많은 유저들이 간담회를 시청하며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다.
─단갤 투표) 저거 다 해주면 단풍잎 복귀한다
[오정환 간담회 요구 사항. jpg]
복귀빠따다(개추)
개돼지겜 절대 안 한다(비추)
└이건 해야지 ㅋ
└추천 올라가는 속도 무엇?
└팩트) 저 중 절반만 해줘도 복귀할 새끼가 90%다 나 포함└멍꿀멍꿀!
물론 아닌 유저도 있다.
모든 게이머가 단풍잎스토리에 추억을 가진 게 아니고, 만족의 역치가 낮은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만족할 만한 결과.
그것이 나기에는 협상 테이블이 다소 좁았다.
─단풍잎 간담회 내용 요약. txt
1. 일부 내용 즉시 반영
2. 오정환 단호박 선언
3. 운영진曰 자신들이 양보할 수 있는 최후의 선
결국 2차 간담회까지 끌리는 듯
└치열해서 재밌었음 ㅋㅋ
└이게 2차전을 가네
└근데 오정환도 좀 답답한 게 너무 예스 아니면 노임└그래서 나 일퀘 해도 됨?
요구 사항이 전부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일부를 수용하고, 일부는 검토 후 대답을 할 수 있다.
또 그중 일부는 수용하기 힘들 수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PC방 점유율 종합게임순위」
1. 로드 오브 레전드 AOS ―
2. 써든어택 FPS ―
3. 단풍잎스토리 RPG △2
4. 피파온라인4 Sports ▼1
5. 아이온 RPG ▼1
하지만 그 말이 단순히 결론이 늦어졌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역치가 낮은 사람들은 이미 만족을 했다.
『단풍잎스토리』 ― 697.4 MB/1.46GB 남은 시간 계산 중……
슬슬 해결될 것 같으니까 게임을 하겠다.
일일 퀘스트도 해야 되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메이플개돼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어빌, 추옵 확률 업데이트 된 거 앎???
"보보보는 보보보는?"
―보보보는 OP라 ㄴㄴ래
―단풍잎 마렵네
―업데이트 공지 ㄱㄱ
―큐브질 금단 현상 슬슬 오짘ㅋㅋㅋㅋㅋㅋㅋ
그 중심에 있는 게 펑이요.
한 번 게임을 즐기다가 몰매를 맞았다.
하지만 여론도 슬슬 개돼지붐이 일고 있으니.
'잠깐 맛 정도는 볼 수 있지.'
실질적인 사정도 있다.
단풍잎스토리를 안 하니까 콘텐츠가 한계가 있고, 별풍선 수익도 평소에 미치지 못한다.
<메이플스토리~♬ 메이플스토리~♬ 메이플스토리~♬>
반가운 BGM가 함께 들어온다.
비록 여론은 개판이 났지만, 게임은 여전히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준다.
조금쎈양민[CH 20] : [슬레이어 펜던트] 선제 아님 ㅈㅅ
아이템도 말이다.
오정환을 이기기 위해 강화를 하고 있었다.
마침 괜찮은 옵션의 아이템 하나가 확성기로 떠오른다.
펑이요[스카니아-15]<< 200억에 삼
조금쎈양민[스카니아-20]>> ㄹㅇ? 당장 감
이른바 극추옵.
추가 옵션이 잘 뜬 아이템을 그렇게 부른다.
큐브는 직접 돌려서 레전드리 옵션을 띄우면 되는데.
─메잘알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지금 추옵 패치돼서 저 정도는 50억에 구해요!
"뭐?"
―확률 정상됐잖아
―요즘 개나 돼지나 띄움
―깜놀했네
―펑이 돈 많잖아 ㄱㄱㄱ
확률 로직 정상화 및 데이터 공개.
반가워야 할 소식이 만들어낸 나비 효과도 있었다.
극악이었던 확률이 정상화가 되며 기존 장비들도 똥값이 돼버렸다.
'…….'
온라인 RPG 게임에서는 흔한 일이다.
랭커일수록 엄청난 타격을 입기도 한다.
전 서버 1위를 다투던 펑이로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패치를 못 본 것도 아니고 보상 패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납득하기에는 액수가 워낙 한두 푼이 아니다.
보보보에 쏟아부은 5천만 원을 돌려받아도 적자일 정도.
─개돼지몬진화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돈슨 개X새끼들 아님?
"돈슨 이 X새끼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유저를 무슨 개돼지로 보나!"
협조할 마음이 사무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