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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511화 (511/846)

511화

<수빈의 고민>

엎질러진 물은 사실 주워 담을 수 있다.

'손이든 빨대든 수건을 짜든 방법은 많잖아.'

다소 더러워지긴 하겠지만 컵에는 담긴다.

굳이 마시고 싶으면 정수기 효과가 있는 빨대로 빨아 먹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가장 최악인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더러워진 바닥만 남고, 물은 물대로 잃는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빨랐다는 속담이 있을 만도 하다.

츄르릅!

민하처럼 말이다.

외출을 나가기 직전.

칼퇴근을 하고 온 그녀가 나의 집에 도착했다.

쇼파 아래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다.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간의 성과를 묻는다.

"일은?"

"아직 더 하려고요."

"그래?"

"막상 계획을 세워보니까 쉽지만도 않더라고요. 게다가……."

BJ로서 나름 기반이 닦였다.

방송 짬밥도 나름대로 먹었다.

하지만 전업이라는 게 쉬울 수가 없는 일이다.

'슬슬 알 때지.'

내가 구구절절 말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얼마나 불안정하고, 심적으로도 힘든지 배우게 된다.

"제가 연수 씨 꽉 잡고 있는 게 정환 씨한테도 좋지 않아요?"

"나쁠 건 없겠지."

"그렇죠?"

나름대로 인생 계획도 수립해두었다.

각 어장의 성과도 괜찮게 거두고 있는 모양이다.

'야망 있잖아.'

진지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딱히 신경 쓰진 않는다.

다른 쪽 밥을 먹고 있는 입술이나 잘 움직여줬으면 좋겠다.

츄릅!

츄르릅!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

어느 정도 연륜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 색깔이다.

'정장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현직에서 일하고 있기에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날카로운 느낌의 혀도 여전히 좋다.

"제가 연수 씨랑 사귀면 어떡할 거예요?"

"어떡할 게 뭐 있나?"

"정말 아무런 생각 없나 보네……."

"여길 못 쓰면 좀 아쉬운 정도겠지."

"웁!"

뒤통수를 잡고 힘을 주어 당긴다.

괴로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봉사를 이어나간다.

'입 하나는 괜찮은데 아쉽지.'

남의 것이 되기 전에 뽕을 뽑는다.

볼이 홀쭉해져 못생겨진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

엎질러진 액체.

주워 담을 수 있다는 듯 손가락과 혀로 쓱쓱 핥아 음미한다.

"청소."

"당연히 해야죠. 그러니까 다음도 해주세요."

쪽 하고 입을 맞추며 핥는다.

정성스럽게 혀를 놀리며 치켜뜬 눈을 마주쳐온다.

"만약 사귀어도요."

"어."

"키스까지만 할게요. 키스까지만."

"그런 입으로?"

굉장히 열심이다.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뭐, 양치 깨끗이 하면 되겠지.'

그러니까 예쁜 혀가 유지되는 것일 테다.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알아서 잘하면 될 일이다.

끼익?!

나도 선약이 있다.

대충 세안을 시키고 보낸다.

지인 BJ 중에 만남을 요청한 사람이 있다.

'BJ라는 직업의 특성상 선후배? 같은 개념을 논하기 애매하긴 한데.'

그것이 편한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런 입장으로 있어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안녕하세요!"

수빈이.

여캠듀스 101에서 자신을 연습생 출신이라 소개했던 아이다.

프로그램 취지에 맞춰 지금은 여캠으로 활동하고 있는 걸로 안다.

"딱히 방송도 아니고, 나이 차이도 솔직히 별로 안 나니까 편하게 말해."

"네, 오빠!"

"근데 꾸미고 나왔어?"

"아, 딱히 신경 많이 쓴 건 아닌데 헤헤……."

그 이상은 굳이 알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냥 혹시 몰라서 나가기 전에 한 번 검색을 해본 정도다.

'만나러 올 건 알았지만.'

100%는 아니고 십중팔구로 말이다.

BJ 일이라는 게 정말 해봐야, 해보고 또 해봐도 항상 배울 것투성이다.

"너무 눈에 띄면 좋을 일은 없거든."

"아, 아! 그렇구나……."

"모자 가지고 왔는데 쓸래?"

"예, 감사합니다! 빌려 쓸게요."

야구 모자를 꾹 눌러 쓴다.

그래도 눈이 갈 수밖에 없는 긴 웨이브 머리와 몸매다.

'관리도 꾸준히 하는 것 같고.'

보통 억눌러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은퇴한 아이돌들.

몇 년 후에 TV에서 보면 누구세요? 소리 나오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기본은 탑재되어 있다.

"밥부터 먹을까?"

"네, 저 자주 가는 식당 있는데……."

"오늘은 오빠가 쏠게. 응?"

"아, 감사히 먹을게요."

인격적으로도 똑 부러진다.

자신이 어떻게 처세를 해야 하는지.

어리바리 타지 않고 훅훅 꺾어 잘 도달하고 있다.

'남자는 어색한 것 같은데.'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둘러도 툭툭 치고 나서야 반응을 한다.

그마저도 굉장히 소극적이다.

정말 선수가 아닌 이상에야 서투르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연습생들 중에서는 흔한 케이스.

연애가 절대적으로 금지돼있다.

심한 곳은 남녀 연습생이 같이 밥도 못 먹게 한다고 한다.

"초밥 좋아해? 혹시 못 먹는 거 있어?"

"좋아해요! 못 먹는 거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종종 가는 초밥집으로 향한다.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평소 자주 못 먹는 음식.

'그러면서도 맛있고, 편하게 먹을 수 있고, 칼로리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자주 만나지 않은 여자랑 밥을 먹기 위해서는 그지 같은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 보람이 있었는지 분위기가 풀린다.

"맛있어?"

"네! 입에서 살살 녹아요. 밥도 조금 주고."

"밥 양 적은 게 취향이면 덜어내고 먹어."

"그래도 될까요?"

광어초밥 56kcal, 생새우초밥 55kcal, 참치초밥 85kcal, 참치뱃살 101Kcal 등.

밥에 양념도 많고, 생선에도 지방이 많아 사실 초밥은 칼로리가 낮은 음식이 아니다.

하지만 느낌적인 면에서 죄악감은 덜 수 있다.

'몸매 관리하는 애들이 다 그렇지.'

수빈이의 경우도 내심 신경 쓰고 있었는지 대화의 색체에서 묻어난다.

눈치를 보며 하나씩 깨작깨작 먹다가 본래의 식성으로 돌아온다.

맛있게 잘 먹는 20대 초.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 말이다.

보고 있기만 해도 입가가 흐뭇해진다.

"더 시켜줘?"

"네, 저……."

"마음껏 먹어. 수빈이가 혼자 초밥 3판 해치웠다고 시청자들한테 말 안 할 테니까."

"아 뭐예요, 오빠~!"

몸매도 말이다.

실내에 들어오자 겉옷을 벗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얼굴도 자세도 한껏 풀렸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운동을 해왔을 테니.'

아이돌들이 으레 그렇다.

가까이서 보면 근육이 탄탄해서 예쁘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게 된다.

몸이 호리호리하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가슴도 만져보면 결코 물렁한 느낌은 아닐 것이다.

"오빠."

"……."

"오빠?"

"이거 맛있네. 더 시킬까?"

"저도 그거 맛있었어요!"

무엇보다 순진하다.

연예계에서의 사회생활은 깍듯하게 배우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전무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일반적인 교육을 받은 게 아니니까.'

10대, 20대 초를 연습에 불태웠으니 당연하다.

겉보기에는 반듯해도, 일반인들보다 훨씬 어수룩한 부분도 많다.

그대로 연예인이 되면 모를까.

사회에 나오면 정말 벌거숭이다.

나쁜 놈들한테 많이도 이용해 먹힌다.

"근데요."

"응?"

"저 때문에 너무 시간 버리시는 건 아니죠?"

"에이, BJ 좋은 게 시간이 남아돈다는 건데. 맛있는 거 또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네!"

그런 케이스도 있다는 소리다.

같은 업계의 선배로서 좌시하지 않는다.

말문이 슬슬 열린다.

"저 사실 오빠한테 상담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어, 편하게 얘기해. 그냥 불렀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아, 네! 그게……."

그냥 불렀어도 좋았겠지만, 그녀의 성격과 배경을 생각하면 그럴 확률은 낮다.

무엇보다.

'BJ 일이라는 게 보기보다 어려워.'

단순히 외모가 좋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여러 요소가 있다.

그 정도는 알고 임했을 것이다.

여캠듀스에서도 진지한 태도가 호평을 이끌어냈다.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좀 있지?"

"네, 헤헤."

"이야기가 좀 길어질 거 같은데 밥도 다 먹었으니 이동할까?"

"커피는 제가 살게요!"

작은 성공.

자신감이 차올랐을 것이다.

엄청난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확신은 가지지 않았을까.

'연습생 출신 애들이 다 그래.'

자존심이 세다.

수빈이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고, 반응까지 좋으니 살짝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수 있다.

"카페는 번잡해서 좀 그렇고 음……, 술 마실 수 있어?"

"네, 조금 정도는."

"오빠 믿지?"

"오빠 짓궂어요~"

택시를 타고 간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기 쉬운 장소.

'스피크이지 바.'

리아와 왔던 곳과는 다른 곳이다.

순수하게 술을 즐기기에 좋다.

"여기 오빠가 자주 오는 데예요?"

"가끔."

"와~ 고풍스럽네요. 여기 앉으면 될까요?"

지하에 위치해 있다.

계단을 통해 내려가자 작은 방이 보인다.

작은 쇼파와 의자들.

테이블까지 있으니 착각할 만도 하지만.

'그런 컨셉이지.'

이 작은 방에서 주문을 받는다 한들 월세 돌리기도 빠듯할 것이다.

벽에 세워진 책장을 가리키자 그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이 바 이름이 르챔버거든?"

"여기가 바에요?"

"르챔버라고 쓰여진 책을 찾아봐."

"어……, 책이 많은데."

넓은 책장.

위에부터 아래까지 쭉 살펴보고 옆의 책장까지 보고 나서야 발견한다.

『LE CHAMBER』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무슨 킹스맨마냥 지문 인식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눌러봐."

"이렇게? 와아~~!"

컨셉 가게이니 말이다.

책장이 자동문처럼 스르르 열린다.

그리고 안쪽의 화려한 공간이 드러난다.

'이런 인테리어도 가격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좀 그렇긴 한데.'

여자와 함께 올 때는 항상 옳은 선택이다.

반응이 가장 좋을 만한 걸로 시킨다.

"첫 잔은 블랙 벨벳, 둘째 잔은 챔버 스토리로 시간 두고 부탁드려요."

"주문 받았습니다. 바 테이블로 오실까요?"

"저희는 이쪽 끝에."

"네~"

칵테일.

나는 고도수가 좋고, 달달한 건 질색이지만 여자들은 대개 그 반대다.

"여기 비싸진 않을까요?"

"어디 가서 오빠한테 얻어먹었다고 말할 때 미담이 될 수 있는 걸로 사야지."

"아~ 헤헤."

그편이 잘 넘어가기도 한다.

취중진담으로 어느 정도 알코올이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꿀꺽꿀꺽!

도착한 칵테일을 마신다.

처음부터 독특한 걸 마시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이거 맥주 아니에요?"

"흑맥주랑 샴페인을 스깐 거지."

"스깠어요?"

"응."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골랐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맥주잔을 홀짝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예상했던 그대로의 이야기다.

본인으로서는 무거운 고민일 수 있지만, 나로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앞으로 저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만."

"네?"

"여기 뭐 묻었다."

"어, 어디? 꺄!"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냄새.

당황한 그녀의 어깨를 확 당겨 입을 맞춘다.

'침이 졸라 달달해.'

칵테일보다 맛있는 걸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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