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화
법정 싸움으로까지 번진 사태.
여론은 당연히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재판은 여론이나 상식을 근거해 내려지지 않는다.
법적인 잣대를 엄격하게 따른다.
연합뉴스― 「BJ 폭행 사건……, 피해자측 고소 취하」
MBC― 「오정환 폭행 진실공방. 피해자 가족 "끝까지 안 간다"」
KBS― 「'오정환 사건', 게임 및 인터넷 방송의 폭력성에 대한 의구심 다시 잠재워」
Yes or No.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승자는 모든 것을 얻지만, 패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데.
〔업체 파벌 단톡방〕
―소송 결과 나왔습니다
「그래」
「빨랑빨랑 처리해!」
―오정환이 이겼다고 합니다
「뭐?」
「이겼다고??」
「그걸 뭐 어떻게 이겨. 아버지가 장관이라도 돼?」
―판결문이 공개돼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분기점으로 여겼다.
패소.
합의든, 벌금이든, 징역이든 확정이 되면 여론은 등을 돌릴 것이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염부장은 오정환이 고소당했다는 기사를 보고 시나리오를 짰다.
1심이 확정되는 순간 진행을 시키자.
사실 볼 것도 없다.
대놓고 폭행을 했다.
든든한 빽이 있지 않고서야 반드시 진다.
―이렇게 돼버렸으니
―가능한 원만하게 수습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보겠습니다
「승소했을 때는 생각을 안 했어?」
「허어……」
「홍이사님이 불편해하시지 않나!」
―죄송합니다 한쪽 시나리오에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었어서;;
회사 차원에서 움직이기에는 대의명분이 필요하다.
법정 싸움에서 패했다는 사실.
범죄자를 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론도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납득할 것이다.
'그런데 이겨버리면.'
정반대의 시나리오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흉흉한 여론이 더 기세등등하게 요구할 것이다.
대의명분.
회사 차원에서 무시로 일관하기 힘들다.
입장문이라도 내야 최소 달랠 수가 있다.
'오정환 이 자식 운도 좋지. 아니, 잠깐?'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됐지만, 사실은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오정환은 망설임도 없이 배수진을 선택했다.
설마 계획한 일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하자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오정환의 성격을 생각하면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일반인을 개 패듯이 패버린 것부터가…….'
평소 그의 행동 방향과는 너무 어긋나있다.
다른 좋은 방법이 분명 있었을 텐데 말이다.
꿀꺽!
모든 것이 오정환의 계획대로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침이 삼켜진다.
"사장님."
"그래."
"아무래도 안고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야 그러는 편이 좋긴 한데."
남수길 대표이사에게 올라가는 보고.
이병권 비서는 건네받은 내용을 상기하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다.
'또?'
파벌에서 시선이 안 좋게 변했다.
따라서 보고서의 내용과 대응도 부정적일 줄 알았다.
"영구정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서 여론을 진정시키고, 오정환 본인과도 복귀 일정을 상담해보자고."
"음."
"언론이 굉장히 보수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저희가 반대로 포용력을 발휘한다며 민심을 단번에 잡을 수 있다."
"괜찮네!"
정반대로 평소와 같다.
완전히 오정환을 싸고 돈다.
어차피 자신은 올라온 대로 보고만 하는 입장이다.
'이유가 있었고, 민심도 좋은데 그만한 인재를 잃을 수는 없지.'
남수길의 입장에서도 좋다.
사고 치던 대기업BJ들이 나가리가 된 마당에 오정환마저 없어지면 타격이 크다.
파프리카TV에서 그의 존재감은 이미 커졌다.
승소 소식이 뜬 다음 날 주가가 갭상승을 할 정도로 말이다.
폭락한 원인이기도 하니 당연하다.
반대로 말하면 오정환 하나 때문에 시가 총액이 움직일 지경이다.
"식사라도 한번 같이 해야겠는데?"
"저 오늘 좀 일이 있어서……."
"너 말고 이 새끼야!"
윾신, 철꾸라지 등처럼 속이 까만 놈도 아니고.
방송만 열심히 하는 우수BJ의 표상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본인도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독려해주면 앞으로는 더 잘하리라 믿는다.
"근데……."
"네?"
"재판은 어떻게 승소를 했지? 결정적인 증거 같은 걸 가지고 있었나?"
"아, 추가 보고가 올라오긴 했는데요."
만약에 사건이 잘 안 풀렸어도 어떻게든 복귀는 시켰을 터다.
남수길은 오정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재판은 힘드리라 여겼다.
어떻게 1심을 이겼는지 궁금하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피해자의 콧물이라고 합니다."
"뭐?"
"피해자의 콧물이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었습니다."
"……다시 조사해와."
아무튼 말이다.
* * *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한 계획이다.
'작은 그림 말고.'
법정에서의 다툼.
그것이 있을 거라고, 이길 거라고는 당연히 장담할 수 없다.
내가 무슨 코미카도나 나루호도가 아니니 말이다.
합의금을 뜯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비장의 카드는 있었다.
한국에서는 일부 1등 시민에 한해 헌법을 무시할 수 있다.
'딱히 그러려고 친하게 지낸 건 아닌데.'
봄이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봄이가 엮인 일이다 보니 자발적으로 협조를 해왔다.
일이 잘 풀렸으니 다행이다.
큰 그림 또한.
사실 진짜 목적은 봄이였다.
〔우리 봄이♡〕
―봄이야
「(Why? 토끼콘. jpg)」
―맛있는 거 먹었어?
「(인상 쓴 토끼콘. jpg)」
「말도 마세요」
「우리 엄마는 저를 토끼 취급하는 게 분명해요!」
ㅋㅋ
우리 봄이의 행복한 일상.
어느 정도 되찾은 모양이다.
식생활에 다소 불편이 생긴 것 빼고는 즐겁게 지낸다고 한다.
'세상일이라는 게.'
사회적 인식이 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시간이 겁나 오래 걸리거나, 계기가 되는 사건이 터지거나.
전자는 너무 긴 시간이다.
프리랜서도 아니고, 학생인 봄이에게는 너무 심각한 고통이 따른다.
그걸 좌시할 만큼 인내심이 깊지가 않다.
내 스타일 대로 리스크를 딛고 한 방에 팍― 터트렸다.
―곧 개학이니까 숙제 잘하고
「(No Problem 토끼콘. jpg)」
―오빠 좋아해?
「좋아해요!」
―오빠 사랑해?
「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게요」
ㅋㅋ
우리 봄이의 하트도 말이다.
서운한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여하튼.'
논란이 된 대로 BJ들의 권익 신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럴 만한 임팩트가 있는 사건이었다.
연예인들과 비슷한 고민.
연예인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푸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참아야 하는 건 맞아.'
그건 공통적이다.
쓸데없이 사고 치고 다니는 건 철꾸라지밖에 더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을 가진다.
바로 공감대.
시청자들이 생방송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
다이렉트로 전해진다.
BJ가 무슨 심정이었는지.
중간 다리가 곡해할 여지가 없다.
"허허, 왜 이렇게 웃나?"
"지인에게……, 아니 BJ하와와라고 혹시."
"아, 알지! 알지! 모를 수가 있나. 연락이 왔어? 잘 지낸대?"
"네, 잘 지낸다고 합니다."
공감이라는 것은 그냥 공감해!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건 공사감독병 정도일 것이다.
'BJ가 가진 가장 큰 무기지.'
PD나 언론을 거치지 않아도 나의 심정을 솔직하게 전할 수 있다.
그리고 생방송 특유의 감성.
정황상 이해가 간다.
글자로 보면 딱딱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몰입이 된다.
그것을 백분 활용했다.
어찌저찌 잘 풀렸다.
리스크가 컸던 만큼 리턴 또한 짭짤하게 돌아온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짜릿한 순간이다.
그래서 사고 치는 것을 그만두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좀 심했어. 알지?"
"예……."
"허허, 딱히 훈계하려는 건 아니고. 일단 먹어. 응?"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곤란하다.
남수길 대표이사.
그의 초대를 받아 식사 자리에 참석하고 있다.
'사장 앞에서 폰 두들기는 게 실례인 건 맞는데.'
그도 원하고 있을 것이다.
봄이의 근황이 어떠한지.
나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하와와는 뭐 어떻게 한다고 하나?"
"곧 3월이라 개학 준비하고 있나 봅니다."
"아 개학! 그렇지, 그렇지. 고등학교는 졸업해야지. 크흠!"
이래 봬도 파프리카TV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대외적인 영향력은 나보다 앞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중요한 인재.
누가 키웠고, 누가 관리하는지 모를 만큼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다.
'사장이기도 하고.'
파프리카TV 내부의 일에도 꽤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단순히 운영만 하는 게 아니라, 이벤트 등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한다.
그 스스로 개인 방송국도 가지고 있을 정도다.
대외적인 이미지도 굉장히 개방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집, 꽤 괜찮지 않나?"
"네, 너무 맛있네요. 너무 맛있어 가지고 계속 음미하고 있었습니다."
"허허, 천천히 들어."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다.
그걸 순순히 믿는 사람은 순진하기보다는 멍청한 사람일 것이다.
'한 기업의 오너가 움직이는데.'
미디어를 함부로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일론 멩스크나 트럼프만 봐도 와 닿는 사례가 한두세네 개가 아니다.
물론 기업 크기가 비할 수 없지만, 기업가들이 노출을 꺼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이색적인 행보를 밟고 있는 건.
"슬슬 복귀해야지?"
"네?"
"방송 말이야. 언제까지 방송을 쉴 수는 없잖아?"
"아~"
당연하게도 회사 차원의 대응이다.
남수길 본인의 의지도 있겠지만, 방향성과 계획은 업무팀이 수립한다.
'입김이 꽤 센 것은 사실이긴 하지.'
파프리카TV의 내부 사정.
내부 인사만큼 빠삭하게 알고 있다.
그와도 한두 번 대화를 해본 게 아니다.
"뭐 사업이라도 생각하고 있어?"
"사업이요?"
"다른 BJ들은 정지 좀 풀어 달라고 난리거든. 정환 씨는 별생각이 없어 보이네?"
"하하."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호쾌하지 않다.
굉장히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전형적인 사업가 스타일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기 사람한테는 끝없이 잘해주지만, 아닌 사람한테는 선을 확 긋는다.
멀리하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당연히 바라죠."
"음~"
"근데 그렇게 되면 형평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형평성?"
"결과적으로 잘 풀리긴 했어도, 불미스러운 사태를 일으킨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그의 성격이 파프키라TV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시크릿 방식.
롤로 치면 씨지맥이랑 비슷한 타입이다.
'솜방망이 징계를 받으면 나는 좋은데.'
장기적으로 선례가 된다.
새로운 적폐라는 이미지의 싹이 트일 수 있다.
내가 억울한 것과 별개로 안 좋게 보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당장 들리지 않는다고 묵과하는 것은 지펴진 불씨에서 눈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냥 내 개인적으로도 바라지 않기도 하다.
"오~! 아직 젊은데 생각이 깊구만."
"당연한 거죠."
"그 당연한 걸 못하고 징징대는 BJ가 얼마나 많은데! 오늘 시간 많나?"
"정지당해서 널널합니다."
"허허, 괜한 걸 물어봤네. 술도 한잔 하지! 부담 갖지 말고."
유혹.
실제로 많은 BJ들이 받아들인다.
나라고 예외일 수는 없고,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 스스로 정한 선은 지키고 싶다.
'괜한 약점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그렇기에 파프리카TV에 귀속된다.
메이플에 귀속된 펑이요처럼 말이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아 술이라고 하니까."
"응?"
"저도 괜찮은 곳을 알고 있거든요."
"허어~ 내가 술맛은 좀 까다로운데."
"만족시켜 드릴 자신 있습니다."
"허허! 그럼 믿고 가보지."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문제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