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4화
한국대학교 학생들의 아침은 부지런하다.
'X발…….'
'이게 등교냐? 등산이지.'
'아침마다 운동이 돼서 좋네. 히히.'
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등교 코스가 매우 길다.
대부분의 대학이 그러하듯 넓은 부지를 잡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것이 하필 경사져 있다.
올라갈 때마다 체내에서 아드레날린이 생성되어 학생들의 심신을 절로 단련시킨다.
째액! 째액!
유일한 낙.
아름답게 가꿔진 나무에서 새들이 노래한다.
2년 전부터 한국대학교의 등교 코스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누가 심었는지 모를 식물들이 즐비하다.
예쁘고, 다채로워서 보고 있다 보면 피로가 가시는 느낌을 받는다.
"이거 심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학비로 심었겠지."
"선배들이 심었대."
"오~"
"그것도 엄청 예쁜."
"올?"
한국대 7대 불가사의에 포함되게 되었다.
진지한 화젯거리라기보다는 소소한 잡담거리로 알려지고 있다.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오오~"
"우리 학교도 이쁜 애들이 있구나."
"절대 우리 학년은 아닌데."
"선배겠지??"
예쁜 여자.
수많은 학생들 중에 반드시 한 명은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더 눈에 띈다.
"서은 선배일걸? 같은 학과라 알아."
"앞판 어때 앞판."
"뒤태는 노인정이지."
"존나 예쁠걸? 나 눈도 못 마주침."
"쌌다!"
스무 걸음 앞에서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 그녀를 보며 들뜬다.
적당히 짧은 치마 아래의 다리 라인에 흐뭇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 애새끼들이 꼴에 달려 있다고.'
올해로 4학년.
서은은 한두 번 겪는 상황이 아니다.
그들이 신입생이라는 사실도 척 보면 안다.
신발만 슬쩍 봐도 구분이 된다.
이 그지 같은 등산로를 멋내기용 패션화로 올라가는 것만큼 바보짓이 없으니까.
'진짜 그지 같아.'
셔틀 버스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운행 시간이 너무 팍팍하고,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해서 타기가 힘들다.
물론 양보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호구들을 이용하면 말이다.
그것도 이제는 지친다.
"서은아!"
"안녕하세요, 오빠."
"아, 안녕하지~ 근데 혼자 가는 거야? 심심하면 오빠가 같이 갈까?"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무수한 오빠들 때문이다.
어장 관리도 수조가 너무 커지니 하나하나 상대하는 것이 고역이다.
'영양가도 없고.'
과거의 자신과는 다르다.
BJ로 잘 나가게 되었고, 수입도 안정화가 되었다.
무엇보다 눈이 높아졌다.
"서은아!"
"안녕~"
"어제 술자리 왜 안 왔어! 애들 다 왔는데. 나 가서 너만 찾았다."
명훈이.
학과 최고의 훈남으로 통한다.
취업도 예정돼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인기가 더욱 많아졌다.
'그럼 뭐해 존나 작다던데.'
여자들만이 모인 단톡방에서 종종 이야기가 나온다.
누구누구 멋있다고 하면 사귀었거나, 썸 탔던 애들이 한마디씩 까는 것이다.
견제의 이유도 있기 때문에 순순히 믿을 건 아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흥이 식는다.
남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됐다.
"오늘은 꼭 와! 알았지?"
"또 마시게?"
"신입생들이 많이 와 가지고. 아 참! 신입생들이 너 엄청 만나고 싶어하더라. 애들 엄청 귀여워."
"그래? 다음에 갈게~"
"으, 응……."
상큼하게 말을 하는 걸 상큼하게 씹는다.
이런 식으로 거절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어련히 알아들을 것이다.
'남자라면 좀 더 확실하게, 거절할 수 없게 몰아붙여야지. 쫌생이마냥.'
전혀 타입이 아니다.
신입생들은 더더욱 관심이 없다.
멀어지는 복학생 선배와 명훈을 보며 서은은 한숨을 내쉰다.
앞으로 1년이나 더 다녀야 한다.
이 지긋지긋한 등산로, 아니 헐떡고개라 부르는 언덕을 말이다.
발정 난 남자들도 상대해야 한다.
어떻게든 수작을 부리려는 속셈인 걸 모를 수가 없다.
아니.
'강의 듣기 전에 한번 달래고 올까.'
발정 난 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가랑이가 갑자기 쑤신다.
뭘 좀 해야 살 것 같다.
평소 자주 애용하는 곳이 있다.
수리 중인 화장실.
인적도 드물고, 사람도 잘 오지 않는다.
커플들이 종종 쓰긴 하지만 지금 시간대면 괜찮을 것이다.
강의 시간이 곧이니 서둘러 뛰어간다.
'그때 여기서.'
정환과 마주치기도 했다.
확 잡아서 그냥 확!
남자라면 여자를 강제로 따르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 느꼈다.
정말 무참하게 당했다.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여신 취급인 자신이 말이다.
당할 때도 좋았지만 이후로도 의식하게 된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젖어버린다.
'아, 나의 주인님.'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도 그가 다니라고 했기 때문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자퇴했을 것이다.
명령은 절대적.
어기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몸에도 마음에도 완전히 새겨진 지 오래다.
그의 앞에서 자신은 순한 강아지에 불과하다.
평소와의 갭은 스스로 생각해도 흥분된다.
최고의 딸감으로 쓰고 있는데.
"읍읍!"
하나 더 생긴다.
* * *
나는 인사성이 밝은 편이다.
지나가다 지인을 만나면 상대가 나를 못 알아봐도 찾아가서 인사한다.
"읍읍!"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이다.
기다리고 있다가 덮친다.
이전에도 한 번 했지만.
'스릴 넘쳐.'
당연히 해서는 안 될 짓이다.
지인이기도 하고, 본인도 좋아한다.
요즘 신경을 안 써줬으니 특별 서비스로 해준다.
"켁! 케켁……."
이곳 화장실.
어떤 의미가 있는 장소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상체를 잡아 올려 목을 꽉 잡는다.
숨 쉬는 게 버거워질 정도로, 실신은 안 할 정도로 힘 조절을 한다.
오랜만에 보는 서은의 목은 훨씬 하얗고, 부드럽고, 고와졌다.
관리를 잘하고 있다.
"아! 아아! 끄힉!"
시끄러운 입을 목을 졸라서 막는다.
1분 정도는 산소가 부족해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도 해주는 것이다.
별거 없지만 학교 안이라는 상황이 흥분된다.
'좀 심했나?'
오는 길부터 보고 있었다.
도도하게 다니는 것을 보니 가학심이 들끓었다.
비싼 척하는 년을 보면 망가뜨리고 싶다.
조금 심하게 망가뜨렸을지도 모르겠다.
3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나를 확인하더니 다시 쪼그려 앉는다.
"멍!"
"오, 잘해."
"멍멍! 멍멍멍♡"
조교가 제대로 되어있다.
손바닥을 내밀자 손을 얹어온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니 싫어할 수가 없다.
"잘 지냈어?"
"멍멍!"
"오빠인 거 알았어?"
"멍멍!"
턱을 살살 쓰다듬는다.
예뻐지고, 본래 좋았던 패션 센스도 더욱 세련되어졌다.
방송도 잘하고 있는 걸로 기억한다.
하나쯤 상을 줘도 괜찮을 것이다.
쭈욱!
입을 맞춘다.
부드럽고 맛도 꽤 나쁘지 않다.
굉장히 순종적이라 혀도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할래?"
"아."
"개처럼 너덜너덜해지고 싶냐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변기에 앉아 서은을 안는다.
행복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왜 이렇게 가학심을 자극하냐.'
가는 목을 꽉 조이며 입을 맞춘다.
간간히 힘을 풀어 공기를 한 모금씩만 전달한다.
서은이 가장 좋아하는 쾌감을 천천히 불어 넣어준다.
샤아아아아?!
헝클어진 옷차림과 화장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
한 10분 정도 기다리자 나온다.
여자치고는 많이 서둘렀다.
"왈왈!"
"말로 해."
"오빠 갑자기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저야 반가운데……."
"하하."
정말 동물처럼 솔직해서 귀엽다.
물론 나에 한해서겠지만 잘 길들인 보람이 있다.
'이런 플레이 때문에 온 건 아니고.'
지난번에는 휴학 목적이었다.
이번에는 정반대의 이유로 오게 되었다.
"복학이요?!"
"왜 그렇게 놀라."
"아니, 그…… 오빠 이제 나이가."
"죽을래?"
"멍멍! 죽여주세요♡"
시간이 날 때 한 학기 이수해두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대학 생활이라는 게.
'사실 스케줄 안 지키면 재밌어.'
난감한 시간대에 강의가 잡히고, 학점 관리도 빡세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씩 학교 가기 싫은 날이 있다.
조금 망나니 같은 생활을 해도 상관이 없다.
까놓고 말해서 여차하면 자퇴해도 되는 입장이니 말이다.
"근데……."
"뭐 또."
"오빠가 복학하면 학교가 좀 시끄러워지겠는데요."
"음?"
"알아보는 사람 많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생기는 문제점도 있다.
인지도가 붙었고, 최근에는 불미스러운 사고도 하나 터졌다.
'괜찮아.'
학교가 한두 명 모이는 곳도 아니고.
나 하나 섞여들었다고 그렇게 티가 날 리가 없다.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
내가 손 번쩍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안 들킨다.
특히 복학생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신경 끈다.
존재감이 시체급이라서 더욱 괜찮다.
"그러고 보니 저도 복학생 오빠들은 거의 신경 안 쓰는데."
"…좀 잘 대해줘."
얼마나 외로움을 탈 시기인데.
소외된다는 것은 사람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무료하진 않을 것이다.
아는 사람이 몇 명 정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 너는?"
"저는 어찌저찌 잘 숨기고 있달까."
"그래?"
"몇 명 정도는 들키긴 했는데……."
일부 알아본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잘 넘어간 모양이다.
소수라면 입막음이 될 수도 있다.
'사실 BJ라는 게.'
엄청 유명한 것 같아도 현실에서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인터넷 방송을 보는 사람과 안 보는 사람.
캠으로 보이는 얼굴과 실제 얼굴이 차이가 있기도 하다.
한눈에 알아보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강의 안 가도 돼?"
"아, 곧 시간이긴 한데……. 빼거나 대출 부탁할까요?"
"다녀와. 오빠도 강의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평범하게만 지내면 괜찮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눈에만 띄지 않으면.
"이거."
"혹시 주시는 거예요?"
"따듯하게 먹고 싶은데 실수로 차가운 캔을 뽑았거든."
"네."
"어떻게 데워야 할지 알지?"
"아! 설마……. 네♡"
두근대는 맥박을 느끼며 서은을 쓰다듬는다.
재미있는 학교 생활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