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화
"BJ?!"
그렇게 특이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응."
"아니, 근데 그게 아무나 돼?"
"그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더라고~"
인터넷 방송은 일상 생활에 자연스럽게 침투해있다.
e스포츠는 물론이고, SNS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준은 아니다.
연예인이 그러하듯 익숙해졌을 뿐이고, 아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럼 BJ 하는 거야?"
"아 뭐래! 그냥 해보는 거지."
"그게 하는 거지. 유명해지면 사인 좀!"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할 수 있다.
이것저것 검색을 하고, 수고를 들이면 실제로 가능하다.
이에 관심을 가진 채민이 말을 꺼내며 화제에 불이 붙는다.
잘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엽기만 하지만.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소영은 조용히 듣고만 있다.
자기 그룹 이야기도 아니고, 그런 것도 없지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두 칸쯤 떨어진 책상에 앉아 귀를 기울인다.
자신도 대화에 참여하는 상상을 하면서.
"저기."
"네?"
"나 채민이야. MT에서 인사했었지?"
"아, 응……."
그러한 반응.
멀리서 보면 티가 안 날 수가 없다.
평소 신경이 쓰이던 사람이라면 더더욱이다.
'그렇게 궁금하면 같이 이야기하지.'
'생기긴 이쁘게 생겼는데…….'
'왜 저러는 거야 대체?'
채민네 그룹도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예쁜 애가 있으면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진다.
말도 잘 듣고, 눈에 띄려 하지 않는다면 더욱 좋다.
그래서 소영과 친하게 지내줄 생각이 있었는데.
"뭐래?"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아 근데 있잖아~!"
""깔깔깔!""
대화가 안 통한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네 번 했음에도 안 넘어가면 무시하게 돼있다.
고등학교 때처럼 괜시리 꼽을 주는 일은 없지만, 글자 그대로 투명 인간 취급이다.
현재 소영의 상황.
'나도 안다고 할걸.'
뒤늦게 후회를 곱씹어도 이미 지나간 일이다.
어떻게 말을 해야 했을지.
채민이 지나가고 나서야 생각이 난다.
매번 이 모양 이 꼴이다.
지금은 물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랬었다.
사람과의 대화가 불편하다.
'좋은 대학교만 가면 어떻게든 된다며.'
부모님의 말씀을 착실하게 따랐다.
불편한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데 눈을 돌리고 공부에 전념했다.
그 결과 한국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합격 선물로 쌍꺼풀 수술도 하고, 용돈도 두둑이 챙겨줬다.
예쁜 옷도 사고 화장법도 바꾸는 등 노력을 했다.
그 보람이 있었는지 MT에서 주목을 좀 받았지만.
'진짜 엄마 바보.'
신입생이 된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멍청했다.
친구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공통된 대화의 주제도 가져야 하고, 그 이전에 말 자체를 해야 한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막상 사람을 마주하면 생각이 굳는다.
나중에 말이 떠올라도 당시에 못 뱉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소, 소영이 과제 했니?"
"네……."
"이번 거 교수님이 함정 내신 것 같던데 오빠 거 참고할래?"
"괜찮아요……."
결국에 남은 건 이상한 오빠들.
혼자 있자 만만히 봤는지 자꾸 말을 걸어온다.
싫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동성도 상대하기 어려운 마당에 이성은 상상도 안 된다.
괜히 엮였다가 이상한 일을 당하면 어떡하지.
인터넷에서 보았던 이야기가 머리에 맴돈다.
'하아.'
결국 남은 선택지는 고립.
이제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시점에서 암담하다.
소영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멍하니 앉아있다.
대머리 교수님이 떠드는 강의는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토독, 톡!
유일한 낙이다.
몰래 핸드폰을 두들기며 히죽히죽 웃는다.
그녀가 보고 있는 화면은.
〔똘이의 방송국〕
─똘형 낙서 겸 팬아트! [3] +3
─선생님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1]
─하울의 움직이는 성(ハウルの動く城)ost 인생의 회전 목마 피아노 커버 [5] +2─대충 B컵이라 칩시당 ㅇㅅㅇ
.
.
.
자신의 방송국.
소영은 BJ를 하고 있다.
방금 전 화제에 귀를 쫑긋한 이유이기도 하다.
'에헹.'
겨울방학 무렵부터 시작했다.
친구가 없다 보니 달리 할 것이 없었고, 넋 놓고 있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고3 수능부터 거의 반년.
매일매일 재미 삼아 키다 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약간이지만 인기를 얻었다.
방금 전 화제에 참여했다면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말이 많았을 것이다.
첫 단추를 채우지 못한 이상 불가능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ハウルの動く城)ost 인생의 회전 목마 피아노 커버
[유튜브 영상. avi]
너무 좋은 곡이에요!
└좋은 곡이네요 듣진 않았습니다 오홍홍
글쓴이? 헐 ㅠㅠ
└똘이다!
└똘이 착하네 이런 씹덕글에도 댓글 달아주구
대신 인터넷에서 쏟아낸다.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팬들이 많다.
'팬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
잘은 모르겠다.
자신도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딱히 직업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소통 창구.
기나긴 겨울방학 동안 심심함을 달래주었고, 앞으로도 신세를 질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나온다.
남들은 재미있게 친구랑 논다던데.
대학 생활은 상상한 것과 달랐다.
사각 사각
하지만 자신만 이렇게 심심하게 있는 것이 아니다.
요 며칠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다.
'진짜 모범생이네.'
별건 아니다.
강의를 몇 개 같이 듣는다.
저 오빠도 항상 뒷자리를 고수하는 성향이 있는 듯하다.
자신이 그렇다 보니 이해가 간다.
매일매일 일상처럼 반복되자 관심이라는 싹이 트게 되었다.
스스로도 모르는 새 말이다.
"이상 리만 가설을 가볍게 증명해봤습니다. 이해 안 되는 사람~?"
""없어요!""
지루한 강의가 끝난다.
대머리 교수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신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푸는 거지…….'
다른 학생들은 진도를 잘 따라가는 모양이다.
옹기종기 모여 강의실을 우루루 빠져나가는 모습도.
사각 사각
유일하게 그 모범생 오빠만이 남아 필기를 마저 한다.
왠지 모를 동질감에 조금 기쁘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긴 한데.'
척 봐도 복학생이라는 게 티가 난다.
신입생 여자애들 사이에서 복학생은 기피 대상이다.
아저씨 같은 분위기.
세대 차이가 난다는 등 악평을 단톡방에서 들은 바가 있다.
'그래서 그런가?'
주위에 사람이 없다.
항상 혼자 있다.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은 바가 있다.
다음 강의 시간.
아니나 다를까 또 뒷자리에 앉아있다.
조금 호기심이 인 소영은 옆자리에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는다.
"양? 밀스 이론의 존재와 질량 간극이 어떻게 되는지……."
강의를 들으며 살며시 살핀다.
또 열심히 필기를 하고 있다.
옆모습만 보고 평가하자면.
'멀쩡히 생겼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최소 못생기지는 않았다.
잘 쳐주면 살짝 훈훈하다.
무엇보다 여자들한테 엄한 짓 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만 한다.
소영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간다.
자신의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공부만 하려는 걸지 모른다.
오히려 그게 당연할 수도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말이다.
'하긴 선배들은 취업이다 뭐다…….'
인생 사는 게 팍팍하다.
대학생이 됐다고 끝이 아니다.
아직 와 닿지는 않지만 들어본 기억은 있다.
─혹시 복학생인 사람 손~~~~~
나 지금 학굔데
내 옆에 복학생 오빠 있거등??
신입생이 말 걸면 무례하게 느껴질까?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똘이루!
└썸을 탄다니 우리 똘이 다 컸네……
똘이? 아니거등~
└이 결혼 반댈세 ㅇㅅㅇ
어디까지나 인터넷 썰.
복학생들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물어보면 되지~'
자신의 방송국에 말이다.
글을 쓰고 1시간쯤 지나서 확인해보자 댓글이 몇 개 달려있다.
복학생이거나, 이었던 시청자들이 있는 듯하다.
놀랍게도 늙은 시청자들이 상당했다.
'옹~ 좋아한다고? 왜?'
글자로는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조 댓글이 많은 걸 미루어봐 맞는 말 같다.
그것과는 별개로 용기가 안 난다.
동성 친구에게도 말을 못 걸겠는데 연상의 남자라니.
'응?'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자신이 힐끔힐끔 쳐다본 것을 들켜버린 모양이다.
당황한 소영은 고개를 휙 돌린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도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는다
따듯한 눈웃음을 짓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 * *
대학교 생활.
그렇게 재밌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상한 현실의 괴리가 꽤 되지.'
내가 미연시의 주인공도 아니니 당연하다.
가만히 있는다고 여자들이 달라붙지 않는다.
"멍멍!"
강아지는 한 마리 달라붙어 있다.
서은이 창문 밖에서 손을 흔들며 들어온다.
"앉아."
"멍멍! 왈왈!"
"옳지."
네 발로 털썩 주저앉아 손가락을 핥는다.
조련이 아주 잘 되어있는 아이다.
'학교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가 본데.'
신입생 때부터 인기가 많았고, 4학년인 지금은 여왕이 다 되었다.
학교 생활을 아주 잘한 모양이다.
"기다려."
"끼잉……."
"하고 싶어?"
"멍멍멍♡♡"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욕구가 생긴다.
언제 사람이 들이닥칠지 모를 강의실이기에 더더욱.
지이익?!
냄새를 맡게 한다.
숨을 헐떡거리는 서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침까지 흘릴 지경임에도 내 허락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마디 말을 내뱉고 나서야.
'아, 좋네 좋아.'
물론 흔하다.
이 정도는 꽤 자주 받는다.
오전 강의 시간 동안 참고 있었다 보니 조금 마렵다.
'한창 풋풋할 때인 애들이 많더라고.'
그도 그럴 게 3월.
대가리에 피가 갓 마른 신입생들이 대량으로 들어온다.
딱히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신경은 쓰인다.
젊은 애들한테 둘러쌓여 있으면 말이다.
"잘했어."
"멍멍♡"
"사람 말 허락할게."
"오늘도 일용할 양식 감사합니다 히히."
서은 덕분에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
풋풋한 애들도 좋지만, 실전은 역시 편안함이다.
꿀꺽! 꿀꺽!
500ml의 물을 꺼내 입을 씻긴다.
받아먹는 모습이 정말 개 키우는 것 같아서 즐겁다.
"근데 여기 안 들키냐?"
"네! 절대 안 와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혹시 주인님의 은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바닥에서 일어난 서은이 스르르 벗는다.
어두운 강의실 안.
미약한 빛이 점성 있는 액체를 비춘다.
'뭐, 본인이 괜찮다면.'
허리를 끌어안는다.
그대로 품에 안기며 알아서 잘 자세를 잡는다.
"끄힉! 힑……, 에헤헤."
몸이 작아서 그런지 버거워 보인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괴상한 소리를 낸다.
"저번에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알아냈어요. 알아냈으니까."
"그래?"
"끄힑?!"
가학심을 이렇게 자극하는 걸 어떡해.
기특한 서은을 꽉 안자 자지러지게 좋아한다.
몸도 마음도 정말 착하다.
재학생이라 혹시 알까 싶어 물어봤는데 수소문을 한 모양이다.
'기껏 왔는데 얼굴은 봐야지. 서운하게 말이야.'
여름의 거처.
카톡으로 물어봐도 안 알려주고 한다.
좋은 정보를 얻은 대가로 서은을 취향대로 놀아준다.